밥벌이 전쟁 8회

2016.06.30 14:45:59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쨍! 하고 얼음보다 더 차갑고 단단하게 굳었던 장내 분위기는 나의 '미친놈!' 발언으로 순식간에 깨지고 말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강림만 아직도 얼어붙어있었다. 나는 강림을 내려다보며 웃어주었다. 얼어있는 그의 눈동자에 웃고 있는 내가 비췄다.

"당신의 더러운 성취욕 때문에 상처 입는 사자들이 없었으면 좋겠네."

나는 그의 옆을 지나 천천히 내려와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는 마음의 소리가 내 뒷덜미를 잡고 늘어졌다.

'뭐야? 이왕 하려면 좀 더 세게 해서 강림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놓던지.'

'김 사자에게 저런 뚝심이 있는 줄 몰랐네.'

'저런 자가 우리의 리더가 되어야하는데….'

'겁 대가리 없는 놈이로군. 강림을 건드리다니. 저러다 영원히 사라져야 세상 무서운 줄 알지. 쯧쯧.'

그들의 속말이 내 뒤를 따라 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탁탁 털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곧 소나기라도 쏟아낼 듯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켜만 보고 있는 겁니까? 우리의 최후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모두 왜 침묵하고 있는가· 산 자의 영혼을 훔치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사자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억만 겁의 시간동안 유지해온 저승과 이승의 질서가 무너지는 걸 알면서도 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이런 곳에서 내 영혼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간세상에서처럼 삶에 대한 희로애락을 특별히 느끼는 것이 아니니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내 힘으로 저렇게 미친 듯 돌아가고 있는 걸 바꿀 수는 없지만 굳이 나까지 거기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았다.

"구차하게 붙들고 있어야 할 만큼 대단한 혼도 아니잖아."

혼자 중얼거리는데 문득, 버들강아지를 보고 행복해하던 그 여자가 궁금해졌다. 한 때는 그녀의 순수한 혼을 탐냈던 내가 부끄러워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대의 혼을 탐냈던 건 혼이 너무 맑아서 그랬소. 미안하오."

그때, 행사장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를 부르면서 달려왔다.

"김 사자님! 잠깐만요!"

뒤를 돌아보니 얼마 전에 사자로 임명된 새내기 동방이었다.

"뭔 일인가?"

동방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어차피 조만간에 우주 밖으로 밀려날 신센걸."

동방은 내 눈을 보면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누가 누구를 밀어낸다는 건 말도 안돼요. 우리는 여럿이지만 하나로 이루어진 조직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라서 너무 싫어요. 김 사자님 영혼이 소멸되면 저도 같이 소멸될래요."

나는 동방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허허. 무엇 때문에? 이제 겨우 사자의 삶을 시작한 자네가?"

"모르겠어요. 저는 이곳은 평등하고 편안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요. 인간들이 사는 곳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차라리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의 상태가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을 종종 했거든요."

나는 그의 어깨에 내 팔을 둘렀다. 안쓰러운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난 사자 자격이 어차피 없다네. 인간이 품는 감정 따위를 가지고 있으면 사자 역할을 하는데 문제가 많거든."

동방은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헤헤. 저도 그래요. 그래서 김 사자님을 좋아하나 봐요."

"허, 이거 큰일 났군. 나 때문에 아까운 사자만 하나 잃게 생겼어."

조금 전에 행사장에서 얼어붙었던 내 가슴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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