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32회

2018.03.01 16:43:53

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2차 퇴출자 명단이 게시된 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관 앞 광장에서 서성이던 사자들은 좌불안석을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안과 초조, 공포 대신 저승세계에서 소멸되는 자가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들뜬 술렁임이 감지되었다.

나는 마음이 찹찹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내 마음과 다르게 평소보다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렸다.

젊은 사자들 몇몇이 모여 하는 말들이 내 귀를 통해 가슴으로 들어와서 박혔다.

"2차 퇴출자가 겨우 다섯에 불과하니 최종 퇴출자는 한 둘뿐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도대체 마지막에 걸리는 사자가 누굴까·"

"어휴, 그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지금도 여기가 따끔거린다니까."

젊은 사자 하나가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가슴이면 그나마 낫지. 나는 그동안 오줌을 지리는 바람에 여기가 다 찌들어버렸어."

다른 사자가 자기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다리를 흔들었다.

"어디 좀 보세나. 이런! 찌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져서 앞으로 써먹기는 영 글렀네그려."

익살스럽게 생긴 사자가 농을 치자 모여 있던 사자들이 와르르 웃는 모습을 보니 뱃속 깊은 곳에서 화가 울컥 올라왔다.

"조용히들 하게! 지금 죽을 맛인 동료 사자들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자신만 아니면 괜찮다는 듯 떠들어대는 사자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그들은 웃던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때 본관 현관 쪽에서 키가 훤칠한 강림처사가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사자 몇이 따라 나왔다. 방금 전에 내 일침에 고개를 숙였던 사자들이 황급히 강림처사 앞으로 가서 고개를 깊이 숙이고 인사를 했다.

"회의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강림은 자신에게 인사하는 사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를 보고 물었다. 그의 반듯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광장의 중심을 지나 나에게로 맞바로 꽂혔다. 방금 전까지 술렁이던 광장에 쏴한 바람이 일었다. 그때까지 광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던 사자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나는 다가오는 강림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눈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빛이 나와 눈이 부셨다.

"김 사자님은 일 안하십니까·" "무슨 말이오·"

"이 시간에 여기서 서성이시니 하는 말입니다."

나는 강림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강림처사야말로 사자들을 대동하고 쏘다니는 것 같은데 일은 언제 하오·"

강림처사도 내게 질세라 내 눈을 내려다보고 입술 끝을 슬쩍 올리며 빈정거리는 투로 대꾸했다.

"그거야. 김 사자님이 알바 아니지요. 나도 내 몫은 철저히 하고 있으니 염려 놓으시지요."

나도 그에게 기가 꺾이고 싶지 않아 눈을 부라리고 맞섰다.

"나도 강림이 걱정해주지 않아도 내 몫은 다 하고 있소만……."

"음. 김 사자님 담당구역은 좀 수월한 곳이라지요·"

"그게 무슨 말이요·"

"다들 김 사자님이 특혜를 받아 수월한 지역을 맡아 실적 채우기가 용이하다고 불평을 하더군요."

나는 눈에 힘을 풀지 않고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럼 그대가 맡은 지역과 바꿔주리까·"

"하하하!"

강림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그의 가지런한 이가 햇볕에 부딪혀 반짝거렸다.

"좋으실 대로……."

강림의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가 거슬려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손에 힘이 불끈 쥐어졌다. 마침 내 감정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동방이 강림 앞으로 다가왔다.

"아하하하. 강림차사님. 가까이서 뵈니 더 잘 생기셨어요. 그렇죠. 김 사자님·"

"허허험."

강림은 갑자기 앞에 나타나 자기 얼굴을 올려다보며 요리조리 살피는 동방을 보고 헛기침을 했다.

"염라대왕님이 폭 빠지게 생기셨어요. 오호, 대왕님 취향을 알 것 같아요."

강림차사가 동방을 보고 발끈했다.

"이 봐! 그게 무슨 소리야·"

"헤, 별 뜻 없이 한 말이지만 신경은 쓰셔야 할걸요."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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