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귀농부부의 마을 사랑 이야기

2012.01.11 18:14:07

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근무

겨울바람이 차다. 풀벌레, 벌, 나비, 잠자리, 똥개가 어울려 시끌벅적하던 마님네 마당도 을씨년스럽다. 마당가에 놓인 장독대에 올망졸망한 항아리들도 서로 엉덩이를 붙이고 짧은 겨울 햇볕을 쪼이고 있다.

그런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두타산 산그늘이 주눅이 든 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지난 가을 마님을 희롱하다 혼쭐이 난 후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금족령의 형을 받은 탓이다.

사고가 나던 그날도 마님네 집 앞 들녘에서 막걸리 주고받는 소리와 흥에 겨운 콧노래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렸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님이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거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니 촌장님, 쌍둥이 할아버지, 샛별이 할머니, 새동이 삼촌, 하근이 아저씨가 막걸리 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잉? 제게 뭐여?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저것은……. 옳거니! 두타산 산자락 한 폭도 내려와서 저 자리에 끼였구먼."

이미 여러 잔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취한 두타산 자락이 바람에 흔들 거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아니, 나도 못 끼는 자리에 건방지게 산자락까지 끼어서 놀아· 글치만 무쟝 부럽네. ~~"

마님이 꿀꺽하고 침 삼키는 소리에 도토리 몇 알도 덩달아 떨어지고, 고개를 든 두타산 자락이 열려있는 마님네 거실 창문으로 후다닥 뛰어들어 왔다. 그 바람에 마님은 새참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해버린 두타산 품에 얼떨결에 안겨버렸다.

그날 오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원고 천방지축 마님과 피고 두타산을 상대로 재판이 열렸다.

"원고는 평소 자신의 순결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며……. 어쩌고, 저쩌고……."

천방지축 마님이 울상이 되어 징징거렸다.

"촌장님! 저는 대따 억울하네요. 저 큰 덩치가 갑자기 들이닥쳐 덮치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나여? ㅜㅜ"

두타산도 연신 허리를 굽히며 용서를 빌었다.

"촌장님! 그것이 다 새참 술 탓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고……. 궁시렁 궁시렁……."

"좋다! 새참 술을 건넨 내 탓도 있으니 정상을 참작하마."

벌건 대낮부터 구경거리를 제공한 둘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리며 쳐다보는 가운데 촌장님이 드디어 판결문을 낭독했다.

"두타산은 벌건 대낮에 마을 유부녀를 희롱한 죄로 앞으로 형 종료시까지 마을로 내려오는 것을 금함!

두타산과 마을 사람들이 수군대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형기는 3월이다!"

두타산이 촌장님 바지자락을 잡고 늘어지며 사정을 했다.

"촌장님, 그건 너무 많아요. 기나긴 겨울동안 혼자서 어떻게 지내라고……."

"시끄럽다! 집행 종료일은 내년 춘삼월이다! 이것으로 천방지축 마님과 두타산의 풍기문란에 관한 재판을 마치겠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넵!"

천방지축 마님과 두타산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촌장님은 허허거리며 웃었다.

"근데, 오늘 너덜땜에 재미나서 막걸리 한잔 더 해야겄다."

"짝-짝- 짝-"

마을 사람들 박수 소리에 낮잠을 자던 겨울 햇볕이 푸르르 얼굴을 털고 일어났다.

가끔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까짓것 죄인이 되어주자.

- 천방지축 마님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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