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 소문났네

천방지축 귀농부부의 마을 사랑 이야기

2012.01.25 16:07:57

권영이

동화작가·증평군청 행정과

지난 가을걷이를 끝내고나서 마을 사람들은 저녁만 먹으면 마을회관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누구네 집 큰 딸이 이번 설 때 용돈을 얼마를 주고 갔느니, 아무개네 며느리는 입덧이 심해 명절 쇠러 못 내려왔다느니 주로 이웃 사람들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정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시골마을이다.

마님네 부부도 예외는 아니다. 이 마을로 이사 온 지 어느덧 십년이 넘었건만 농사도 살림도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참견하기를 좋아한다고 어른들이 천방지축 부부라고 놀린다.

마님 아들이 아침 일찍 깨워달라면서도 미심적은 표정을 짓는다.

"걱정 마, 인마."

아들에게 큰 소리를 쳐 놨는데 새벽 두시가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언덕 아래 김씨 아저씨네 늙은 개가 가랑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눈치 없는 달빛마저 마님 이불속까지 파고든다.

설핏 잠이 들려고 하는데 삼돌씨의 코고는 소리에 잠이 확 달아난다. 이건 완전히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다.

"에이, 나이 먹으면서 코 고는 소리는 왜 점점 커지는 거야?"

마님은 안 오는 잠과 엎치락뒤치락 씨름을 하다 말고 씩 웃고는 삼돌씨 코를 쥐고 비튼다.

"자기야! 일어나 봐."

"그~렁, 푸~하~하"

"얼른 일어나 봐!"

마님이 다시 코를 비틀자 삼돌씨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왜? 뭔 일 있어?"

잠이 덜 깬 삼돌씨 눈이 벌겋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내 대신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될까? 귀찮아서……. 히히."

"그려? 그럼 다녀와야지."

삼돌씨는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화장실로 가더니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나서 의기양양하게 마님 옆에 와 앉는다.

"마님, 삼돌이가 마님 대신 볼 일을 보고 왔는디유."

"어? 어. 그럼 이제 그만 자."

마님은 아랫배를 잡고 궁둥이를 들썩인다. 조금 전에 시원하게 볼 일을 보던 삼돌씨 때문인지 더 급해진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는 마님을 삼돌씨가 확 주저앉힌다.

"어딜 가시려고? 방금 전에 소인이 대신 갖다 왔잖유."

삼돌씨가 마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마님이 울상을 짓는다.

"나 엄청 급해. 얼른 볼 일 보고 자고 일찍 일어나서 아들 깨워줘야 해."

아랫배를 잡고 끙끙대는 마님을 보고 달빛도 환하게 웃는다. 밖에서 이 재미난 꼴을 구경하던 함박눈도 웃음을 펑펑 터뜨린다.

"쟤들(달빛과 함박눈)이 동네방네 소문내면 어쩌지. 가뜩이나 천방지축이라고 놀림을 받는데……."

내일이면 온 마을에 소문이 다 날 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앞으로 다시는 장난치지 않겠다고 싹싹 빌고 겨우 풀려난 마님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마님은 그날 밤에 그동안 고고하게 지켜온 체면을 달빛에 몽땅 녹이고 만다.

소문날까 두려워 말고 소문거리를 만들지 말자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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