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분의 1 확률로 여자아이가 근육이 소실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 '사랑'이의 치료비 모금을 위해 지난 5일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 광화문까지 740km를 걸으며 '46만명 1만원의 기적 챌린지' 국토대장정에 나선 전요셉씨가 20일 청주에 도착해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근육이 소실되는 희소병을 앓고 있는 세 살배기 딸을 위해 부산부터 서울까지 740㎞를 걷고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까지 무릎 수술을 4번이나 했고 연골연화증을 앓고 있기에 신체적으로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딸을 위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20일 낮 12시, 걸음마다 아픈 딸을 위한 기도를 올리며 도보 국토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 전요셉 청주 옥산 오산교회 목사를 만났다. 그가 걸친 조끼에는 '근육병으로부터 사랑이를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배낭에 설치한 배너에는 '사랑하는 사랑아, 널 위해 이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아빠는 참 기쁘다. 사랑이에게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딸 전사랑양의 병을 알리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 평균 40㎞를 걷고 있다는 전 목사는 이날 국토대장정 출발 보름만에 청주에 입성했다. 전 목사는 지난 5일부터 부산 기장군을 시작으로 울산, 경북 포항·경주, 대구, 대전, 영동 등을 거쳐 서울 광화문에 이르는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딸 사랑양은 듀센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DMD)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유전자 이상으로 근육의 회복과 재생을 돕는 종류의 단백질이 결핍되며 근육이 점점 소실된다. 10세 무렵에는 걷는 능력을 잃어 휠체어에 타게 되고 20세에는 호흡기를 끼기 시작하며 20~30대에 보통 심장·호흡기 근육의 부족으로 사망하게 되는 난치병으로 알려졌다. 남아에게는 3천500명 중 1명꼴로 나타나는 비교적 흔한 근육병인 이 병은 보통 여아가 걸렸을 경우에는 무증상이거나 경증으로 진행된다. 사랑양처럼 여아에게 남아와 같이 중증으로 발병할 확률은 5천만 분의 1이라고 한다.
현재 사랑양은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또래 친구들과 같은 모습으로 뛰거나 걷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래들은 두 발로 점프하고 뛰고 킥보드도 타지만 사랑양은 기우뚱 걷는 것이 최선이다. 전 목사가 보여준 영상에서 사랑양은 걸음마를 뗐긴 하지만 무릎 아래로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듯해 보였다. 계단을 오르내리기는 더 요원하다. 난간이나 보호자의 손을 잡아야만 간신히 오를 수 있고 내려오는 것은 앉아서 기어서만 가능하다.
ⓒ김용수기자
전 목사는 "아이가 밤마다 근육 경련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불길 속을 걷는 듯 뜨겁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다리를 주물러주는 일밖에 없다"며 "현재 한국에서는 듀센근이영양증의 치료제가 없고 스테로이드 약물로 염증을 예방하는 정도지만 부작용이 심해 이마저도 꾸준히 쓸 수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대가 수축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재활에 매달리던 중 최근 미국에 출시된 유전자 치료제 '엘레비디스'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약을 쓸 수 있는 골든타임은 4~6세다. 아직 근육세포가 많이 살아 있을 때 치료제 투여가 시작돼야 하지만 약값과 치료비만 약 330만 달러(한화 약 46억 원)에 달해 엄두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막막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던 전 목사는 칠레에서 같은 병을 앓는 아이의 어머니가 국토대장정을 통해 치료비를 모금해 미국에서 치료를 계획 중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그는 "기사를 보고서는 나도 이걸 해야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46억 원이 큰 돈이지만 46만 명에게서 1만 원씩 후원을 받으면 딸을 치료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며 "바로 도보 국토대장정 계획을 짜고 배너와 유튜브 등 준비를 마친 후 2주째 되는 날에 부산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전 목사는 국토대장정과 함께 1명 당 1만 원을 후원하는 '46만 명 1만 원의 기적 챌린지'를 펼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온정을 요청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전 목사는 식사하러 식당에 들렀다가 구걸한다는 오해를 사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손가락질 받거나 악담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간간히 마주하는 따뜻한 에피소드에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갖는다고 말한다.
전 목사는 "어떤 분들은 타고가던 차를 멈추고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차를 태워주겠다거나 커피를 사주겠다는 사람도 만나기도 한다"며 "그런 귀인들 덕분에 힘을 얻어 매일 걷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러한 온정들을 잊지 않으려 매일의 여정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유하며 감사를 전하고 있다.
가족이 기다리는 청주에 도착한 이날도 오후 7시까지 예정된 코스를 모두 걸은 뒤 SNS로 인증하고, 다음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온종일 걷는 여정을 이어간다.
"제 발걸음이 헛되어 누구도 사랑이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만이 두렵습니다. 딸의 다리가 조금이라도 더 굳지 않기를, 내일은 조금이라도 까치발을 덜 들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걷습니다."
/ 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