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兄)은 먼저 태어난 가족관에 순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가계 존속의 의미로 나이에 따른 수직적 구조 조율 속에 우선순위를 나타내는 생물학적 우열을 칭하는 제도이다. 유교 사회에서 적출이라는 개념을 설립했다. 적출은 혼인의 관계에서 배출한 자녀를 뜻하는 것이다. 혼인의 출생자 중 적법한 상황에서 낳은 출생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과거는 아들을 중심으로 적출을 논했다. 재산분배의 상황에서 아들 간 구분하여 재산을 나누기에 부담이 되니 아들에 의한 재산 양도에 대한 문제가 관습과 제도로 정리된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장자가 집을 계승하며 차남 이하는 혼인 후 부모와 동거하다 분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동 집약의 농사가 중심이었던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은 곧 노동 인력이었기에 가족 단위로 필요한 노동력을 서로 나누며 살아갔다. 분가는 우리말로 하면 작은집이라는 뜻이다. 큰아들은 부모를 봉양하기 때문에 장자직계가족제도(長子直系族制度)를 중심으로 상속제도를 운영했다. 부모를 장자가 모시는 것이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고 장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평등한 대우 속 차남 이하의 적출에게 부러움을 받았다. 여기에도 경제의 개념이 들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를 물려 집안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각자 생존의 방식이 묻어있다. 여기에서 소외된 것은 여성의 역할이다. 단순히 장자나 아들을 생산하는 것뿐 여성들에게는 재산의 대물림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면 논의가 안 되겠지만 재산이 많아서 분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면 가족 구성원 간 곤란한 일이 발생한다. 단순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든 재산분배에 관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분배를 배제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남녀에 대한 같은 자식으로 법적 권리를 갖도록 현대 사회에서는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집안의 상속문서를 본 일이 있었다. 1500년대 조선의 문서였는데 그 문서에는 아들과 딸에 대한 고른 재산 배분을 명시했다. 양반 집의 고문서였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도 장자에게만 재산을 분배한다는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었고 딸 에게도 고르게 분배한 것으로 보아 본인 의지대로 해도 사회 통념에 반 한다고 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
평민에게는 별반 중요한 일이 될 수 없었겠지만, 왕과 같은 한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서 장자는 더 큰 책임과 권리를 가졌다. 정실(正室)에게서 난 자식이라는 뜻의 적통(嫡統)은 일부다처의 사회에서 집안 유지의 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조선에서 장자 승계는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도덕 원칙이었다. 그런데도 26명의 태조 이후 왕에게 장자로 승계한 경우는 단 9명뿐이다. 의술이 발달 못해 유아의 사망이 많다고 해도 장자계승이 30% 정도밖에 안 되었다. 조선의 왕도 그러했는데 민간에서 아직도 적통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요식행위일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은 성리학의 국가였다. 주자는 성과 리가 같다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했다. 성(性)을 순수한 이인 본연지성과 이기가 섞인 기질지성의 두 가지로 보았다. 타고난 본성인 '리'가 만인이 따라야 할 보편적 도덕 원리인 본연지성을 형성하고, 다만 인간의 기질의 상이함에 따라 현실로 구현된 성인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사람마다 달라져 사람들의 개성, 열등함과 우수함이 나뉘게 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끼리의 차이를 차별로 인정하고 이를 통한 제도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런 내용이 점점 굳어지어 신분제의 기틀로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차별하는 시대를 넘어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도 고통을 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먼저 태어난 경험을 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협력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적응 못하면 뒷방으로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