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장으로 도시에 대한 인식전환과 남아있는 기념물로 인해 도시의 미관을 바꾸기도 한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만국박람회를 프랑스파리에서 개최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이다. 당시 유럽의 중심도시였던 파리에는 많은 문화인들이 살고 있었고, 아름다운 건물도 즐비했다. 그런 곳에 철로 만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보다도 2배나 높은 철탑을 세워놨으니 파리의 문화인의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이 매우 심했다. 박람회가 끝난 뒤에 철거의 위험이 있었지만 철탑을 안테나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겨우 존속됐다.
에펠탑으로 유명했던 파리만국박람회는 대한제국이 참가한 마지막 국제행사였다. 1900년 공식개막식인 4월 14일부터 11월 22일까지 대한제국은 오랜 시간 참가했다. 이 박람회는 대한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였고, 파견 관리도 왕족으로 파견할 만큼 공들인 행사였다. 1897년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대한제국을 세계에 알릴필요가 있었다. 그 중요도를 감안해 당시 학부협판(현 법무부 차관)인 민영찬을 준비위원장과 파견대표로 임명했다. 학부협판 민영찬은 명성황후의 조카였다. 당시에도 현재와 같이 파리시내에 일정부분 공간을 임대해 대한제국이 스스로 홍보부스를 만들고 전시도 기획해야 했다. 부족한 제정으로 임대비를 절감하기위해 프랑스의 부자들에게 차관을 도입해야하는 실정이었지만 그래도 문제없이 잘 진행됐다. 파리 만국박람회의 대한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으로 제작됐다. 대한제국관 앞에는 제물포의 골목길을 재현하고 기와집, 상가와 같은 일반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국제 행사는 한나라를 알리는데 더 없이 좋은 것이다. 1993년 대전에서는 미래를 이끌어갈 박람회를 계최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을 과학으로 생각하고 대전이 과학을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을 한 것이다. 대전시를 한국과학의 중심지로 만들 계획을 세운 것으로 인근에 세계적 기초과학 연구시설을 만들고 이를 융합하고 판매까지 가능하도록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를 2011년 특별법제정과 함께 시행했다. 대전은 1993년에 대전 엑스포93을 통해 세계박람회를 개최했다. 당시 국제박람회기구는 개발도상국에서 처음 개최된 것이었으며 108개국 33개의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상당히 큰 규모의 박람회였다. 박람회는 88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한 한국이 과학EXPO를 다시 열어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고 보다 나은 국가로의 인식전환을 위해 기획됐다.
도시미래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만들어 내는 것에는 장기적인 구상과 다양한 분야협력이 필요하다. 도시방향을 과학으로 정하고 박람회를 통해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분야와 문화예술과의 협력으로 대전시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른 도시들이 역사해석에 머무르고 그 원형을 찾고 자신들의 특색문화라 주장을 할 때, 한반도 내에서 다른 문화특색으로 보기 궁색한 경우가 많다. 대전은 과학의 도시라는 것을 통해 미래의 도시 모습을 만들고 있다. 대전시립미술관과 함께 과학을 기반으로 표현된 미술작품을 통해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의 메카로 만들려는 장기적 기획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술로 들어온 생명과학이라는 주제로 대전비엔날레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과학과 미술이라는 주제 전을 기획한 것이다.
문화는 다양한 분야의 방식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도 현실이 모여 이뤄진 것이다. 청주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다양한 분야가 힘을 모아 지역 축제나 박람회를 개최해도 좋지만 습관적으로 박람회나 축제를 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