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섬 유도

2021.04.01 16:34:38

2창수

아티스트

1866년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섬나라 특유의 문화를 극복하고자 대륙에 기반한 교두보 마련에 노력을 기울였다. 신식 무기와 신식 군함을 수입하여 기존의 해군력에 비해 상당한 진전을 이루자 인접 국가인 조선을 통해 섬나라 극복을 이루려 했다. 사건의 발단이 운요호사건이다. 영국에서 수입한 운요호(雲揚 うんよう, 운양호)는 강선 철골에 목조로 된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식 함포가 가능한 군함이다.

1875년, 운요호는 5월 25일 부산에 도착했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군함의 위력을 보여주며 외교교섭을 시도했으나 조선 정부는 협상을 거절했다. 국가 간 예의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나라별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윽박지르는 듯한 협상은 조선정부에서도 불쾌한 일이었다. 일본은 뜻대로 되지 않자 운요호를 강화로 이동시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게 한다. 강화도에서 시작된 이 도발이 강화도 조약으로 이어지고 일본에 유리하도록 조선이 개방되었다. 강화에서 싸운 전쟁은 한양을 목전에 둔 일이기에 그만큼 조선정부의 부담이 큰 것이었다. 강화군은 한양으로 가는 뱃길이 연결되어있는 교통과 군사의 중요한 지역이다. 그렇기에 강화에는 외세를 막기 위한 다양한 군사적 요충지를 진지로 구축해놓았다.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강화고려궁지(江華高麗宮址)부터 시작하여 운요호사건 때 박살 난 초지진등 다양한 군사적 시설이 있다. 당시 운요호는 강화 초지진까지만 오고 돌아갔으나 오늘날은 다양한 현대식 진지까지도 구축되어있다. 외세보다는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운요호가 쑥대밭을 만든 초지진을 넘어 한강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면 강화도 물줄기가 한강과 임진강 물이 합해져 나뉘는 곳, 월곶돈대에 '연미정'이라는 군사요충지가 있다. 임진강과 염하강의 모양이 제비 꼬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연미정이다. 고려시대 고종이 사립교육기관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고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하는 기록이 있다. 연미정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는 유서 깊은 곳인데 현재는 북을 감시하는 군사기지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2008년부터 민간인에게 개방되어 북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북을 감시하는 군인들이 서로 다른 마음으로 같은 곳을 보는 곳이다. 높은 곳에 있으며 물줄기 3곳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연미정은 한강 하구 중심에 따라 남과 북으로 나뉜다. 북한의 개풍군이 강 건너편에 있으며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개성이 보이는 거리에 있다.

과거 강화의 군사적 상황을 보호해주고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갑옷의 역할을 강화가 해왔는데 국가 간 무한경쟁과 경제의 상황에 따라 물리적 국경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새롭게 재편되는 국경 없는 지구촌화에서도 연미정은 여전히 국가 안보의 갑옷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이 전쟁을 치르려면 서울을 공격 할 것이지 강화도까지 와서 공격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없겠으나 강화의 연미정은 습관처럼 국가를 지키는 곳이 되어있다.

북에서 내려오는 임진강 물줄기와 남에서 내려오는 한강 물줄기는 김포와 파주에서 만나 강화로 흘러든다. 물에는 이념도 없고 국경도 없이 흐른다.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강줄기 속에는 유도라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으므로 남한 땅이라 불리지만 남북 각각 철조망으로 쌓여있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땅이다. 그 덕에 이곳은 동물들이 살기 좋은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강화에 있는 철갑을 두른 갑옷 사이 살짝 삐져나온 말랑한 속살이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 아무도 가지 못해 만들어진 생명의 섬 유도에는 생태적 이해관계가 만들어 놓은 자연국립공원이다. 운요호를 타고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던 일본에 마음 아파하던 한국의 역사는 오늘날 남북 대치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로에게 가해지는 강요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이해관계 속 유도는 조용히 답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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