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조차도 작품의 질이나 예술적 수준을 자본에 의해 나누고 있다. 사고로 사람이 죽어도 그 사람이 사는 동안 얼마를 벌지를 미리 예측해, 사람생명의 가치를 평생노동을 통한 비용으로 물어주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서 예술 또한 가격으로 등급을 정하고 또 낮은 등급에 속하는 작가들은 낮은 부류의 작가로 무시를 하거나, 자신 삶을 필요 없는 일에 매진하는 대상쯤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예술품을 잘 파는 작가들이 그닥 훌륭하거나 대단치는 않지만, 일반 작가들과 다른 대우를 받기 위해 목에 힘주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예술가에게는 예술가 말고 별다른 지위를 지니진 못한다. 그렇기에 불의의 사고나 장애를 얻게 되면 전문직업인으로 대우를 받기보다는 일용직, 무기술 노동자로 대우를 받는다.
2005년 37살의 구본주 조각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20여곳에서 작품이 매입된 촉망받던 젊은 예술인이었다. 그런 그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시간강사 기간만 인정한 그의 수입은 예술가적 작품의 가치와는 별개로 일용직보다도 못한 시간강사 임금을 소득기준으로 삼고, 남은 수명과 활동에 대한 미래의 비용을 보험사에서 계산을 했다. 수입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사회에서 아직 예술계가 해결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후 예술인 복지법은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최고은 작가는 이웃집에 '배가 고프니 식은 밥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요?' 라는 메모를 끝으로 굶어 죽었다. 2011년 한국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통해 예술인들의 삶이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아직 제도적 장치로 연결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대부분 예술인은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4대 보험 바탕의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런 예술인들을 돕기 위해 예술인복지법과 재단이 운영되고 있으나 아직은 초기 단계라 할 일이 많다. 유럽의 경우처럼 단기적 활동 중 공백기간 동안 예술가들의 어려움을 위해 단기실직수당과 같은 것을 지급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으나 표면적 활동을 등록하지 않고 즉흥적 관계 맺기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예술계에서는 예술종사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예술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예술인 등록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런 등록의 방법이 전문적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를 구분 할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예술가로 등록 되어진 예술가라고 동일한 예술가적 대우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취미생들의 대규모 가입은 결국 전문예술가들의 이탈로 이어질 것이다. 예술가적 지위를 아마추어, 취미생들이 주로 있는 예술가 조직으로 변질될 위험은 시작 초기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다.
대다수 도시, 우리 주위엔 도시의 철학, 사회, 역사적 맥락과 관계없는 화강암, 스테인레스로 되어있는 조형물이 많이 있다. 부르는 것이 엿장수 값인 이 조형물들은 천지개벽 중에도 빠짐없이 동내를 빛내어 왔다. 별다른 고민 없이 진행된 작품들은 도시의 품격을 심하게 저하 시킨다. 이렇게 설치된 조형물들은 한 도시의 미적 수준을 평가하기보다는 상황에 맞추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그 조형물의 수준을 본다면 도시 문화수준을 보는것에 꽤 좋은 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도시의 예술품에서 도시의 품격이 나올 것이고 지역 예술인들의 대우에 의해 지역예술의 격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