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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2.06 13:56:51
  • 최종수정2024.02.06 13:56:51

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내 일상엔 소소한 루틴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마신 후, 화장실에 가서 시 한 편을 낭송한다. 아침은 내가 만든 플레인요구르트 한 컵을 먹고, 퇴근 후엔 베란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며 한동안 멍때리기를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벗고 다른 삶에 푹 젓는다.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날은 금요일이다. 금요일이면 난 영상 속 인물이 되어 울고 웃는다. 코로나가 터지고 영화관을 못 가게 되었을 때, 넷플릭스를 신청했다. 보고 싶은 것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는데, 대부분의 OTT 영상물은 시리즈로 제작이 되어서, 그것을 다 보려면 밤을 새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타인이 되어보는데, 그 정도의 시간은 지불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인간 실격』 포스터를 발견했다. 1948년 발표한 오사이다자무의 소설을 개작하여 만든 영화일 거라 짐작했다. 눈 내리기 직전 왈칵 쏟아질 것 같은 하늘처럼, 읽는 내내 우울의 숲속을 걷게 했던 소설이다. 반가웠다. 버튼을 눌렀다. 암울한 분위기와 동반 자살 등 일부 느낌은 같지만, 전혀 다른 드라마다. 게다가 16편이다. 밤을 꼴딱 세워도 못 볼 분량이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화면을 응시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유독 내 눈을, 귀를, 가슴을 당기는 것이 있다. 아버지와 딸이다. 딸은 부정이라는 인물로 작가였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붓을 꺾고 우울한 시간을 걷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폐지를 줍는 성실하고 착하고, 오로지 딸이 세상의 전부이며 치매기가 살짝 있는 노인이다. 드라마엔 둘의 대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 오밀조밀하고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왜 그리 정겹게 느껴지는지,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들은 케이크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아버지가 있었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의 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붕어빵이 보인다. 안으로 조금 더 발을 들인다. 아버지가 손에 봉지를 들고 걸어 오신다.

한 입 베어 물면 몸 안에 퍼지는 소리

꿈틀꿈틀 유영하는 골목의 등뼈 위로

거나한 노랫가락이 타박타박 걸어온다

부스럭대는 검은 봉지에 발소리가 포개지면

외눈박이 가로등은 리듬에 맞춰 윙크하고

별빛은 비틀거리는 그림자를 비춘다

휘청이는 밤을 접으며 웃음 짓던 당신

위 속에 팥알 같은 종양을 숨긴 채

빵처럼 부푼 몸으로 붉은 꽃을 토하던,

별빛을 등에 지고 붕어빵 내밀던 아버지

문득 하늘을 보면 꼬리 흔드는 물고기 자리

말없이 반짝거리며 골목을 내려다본다

-─ 김나비,「물고기 자리」전문 《나래시조》 2023년 겨울호

겨울이면 떠오르는 간식이 있다. 붕어빵이다. 맛도 맛이지만, 그 붕어빵에 얽힌 아득한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 좋다. 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착한 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있어서 다행이다. 눈이 온다. 하늘에서 누군가 기척을 한다. 오늘은 눈을 맞으며 붕어빵을 먹고 싶다. 붕어빵틀 앞에 소복소복 쌓인 붕어빵 중에 제일 못생긴 붕어를 하나 들고, 기억을 연하게 오래오래 되새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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