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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 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형체 없는 바람이 때를 기다린 듯 내 몸을 빌려 한참을 울고 간다. 홍고린 엘스(Khongoryn Els)에서 만난 바람, 내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내 몸 여기저기로 쏟아져 들어와 자리를 잡더니 점퍼 속에서 머리카락 위에서 마구 통곡을 한다. 망연히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지나치기를 기다린다. 잠시 바람이 멈춘 틈을 타서 사막을 오른다. 그러나 또다시 사막에 흩뿌려지는 앙칼진 바람은 온 몸을 난타해 정신을 멍하게 한다. 여기는 고비의 끝없는 사구가 펼쳐진 곳이다. 홍고린 엘스는 '노래하는 언덕'이라 는 뜻이란다. 바람에 몸을 싣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온 모래 알갱이가 내려앉아 이 거대한 모래 언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높이가 300여 m에 이르며 폭 12㎞, 길이 100㎞로 길게 펼쳐져 있는 이곳은 몽골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장엄한 모래 언덕중 하나라고 한다.

 모래 언덕을 오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발이 사구의 몸속으로 푹푹 빠지고 바람은 몸을 때리며 물러설 기세가 없다. 만만하게 봤던 곳이 내 온몸의 힘을 다 앗아간다. 저질체력으로 소문난 나를 보며 일행들은 작은 언덕을 도전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러나 나는 한사코 제일 높은 언덕을 오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60보를 오르고 잠시 숨을 고르면서 모래에 앉아 쉰다. 그리고 또다시 60보를 오르고 숨을 고른다. 그러기를 수 십 차례 두발로 걷던 나는 어느새 네발 단린 짐승이 돼 모래 언덕을 기다시피 오르고 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비온 뒤 솟아나는 독버섯처럼 머릿속 가득 피어난다. 그러나 여기서 지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든다. 선두에서 출발을 했던 나는 어느 틈에 제일 후미로 밀리고 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까마득하게 보이던 정상이 눈에 잡힌다. 먼저 올라간 일행들이 지칠 대로 지쳐 기어가고 있는 내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나는 정상의 모래언덕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정상에는 이렇다 할 평평한 공간이 없다. 그야말로 정상은 삼각형의 꼭짓점 같다. 모래바람 때문에 눈도 뜰 수 없는 아슬아슬한 곳에서 나는 서있다. 바람의 위세는 정상에서 점점 더해가고 서 있기도 힘들다. 사람들은 높은 곳을 갈망한다. 높은 곳은 넓은 시야가 확보돼 모든 것을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그 좁은 자리를 지키려면 얼마나 외롭고 힘든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일까.

 간신히 바람 속에서 몸을 지탱하며 점퍼에 달린 모자를 끌어당겨 쓰고 아득하게 보이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고 게르들이 느타리버섯처럼 솟아있다. 반대편을 본다. 끝없이 펼쳐진 사구다. 인공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모래 언덕이 바람 속에 온몸을 내 맡긴 채 오도카니 서있다. 오늘은 이런 모양이지만 바람이 몸을 펴기 시작하면 내일은 사구의 모양이 또 바뀔 것이다. 내가 저 곳에 떨어지면 나는 흔적도 없이 묻혀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나를 담은 사구는 시치미를 떼고 입을 다물겠지.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겠지. 등줄기로 뾰족한 송곳이 지나가는 것 같다.

 오늘 고비를 오르며 두려움의 온도를 온몸으로 느낀다. 오른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험난한 작업인가. 그리고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시간들인가. 모진 바람을 맞으며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득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 중심을 지키려 해도 바람 때문에 휘청일 수밖에 없는 맘을 조금은 이해 할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하다. 비탈을 달리며 또는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며 단박에 내려온다. 땅에 발을 붙이니 바람도 없고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민초다.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그저 응원의 박수를 보내련다. 아래를 굽어보며 민초들의 아픔을 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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