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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 주성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새벽 다섯 시, 용대리의 하루가 열린다. 이곳에 온 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일어나자마자 산야초로 만든 효소 한잔을 물에 타서 목 안에 넘기며 생각에 젖는다. 적막한 산속, 풀벌레 소리가 고요를 허물고 있다. 여섯 시가 되길 기다려 아침 산책을 나선다. 하얀 모자를 쓰고 핸드폰을 든다. 신을 신다가 다시 들어와 쌀과자 두 쪽을 챙긴다. 마당 입구엔 호랑이 개 두 마리가 여름을 지키고 있다. 얼룩덜룩한 호랑이 무늬 옷을 걸친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는 매일 아침 그들에게 쌀과자 한쪽씩을 던져주고 외출을 허가받는다. 처음엔 사납게 짖어대던 그들이 아침마다 과자를 상납하자 꼬리까지 살살 흔들며 흔쾌히 산책을 허락한다. 사나운 문지기에게 잘 다녀오겠노라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들은 쌀 과자에 현혹되어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집 앞 다리를 건너 논길을 걷는다. 허공엔 거미줄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마치 누군가의 소식을 모아서 전해 주는 와이파이 표식 같다. 거미줄 속에는 갖가지 곤충들이 숨 없이 걸려있다. 싱싱했던 그들의 생을 압축해서 전시해 놓은 것처럼. 논은 초록 융단을 깔았다. 가지런하고 늘씬하게 자라고 있는 벼의 종아리를 훑다가 논바닥을 본다. 바닥엔 우렁이들이 평화로이 쉬고 있다. 그 옆 수로는 시멘트로 잘 정비를 했다. 시멘트벽엔 우렁이들이 핑크빛 알을 잔뜩 슬어 놓았다. 마치 껌을 씹다 붙여 놓은 것처럼 분홍 덩이들이 다닥다닥하다. 걷다가 고개를 드니 언덕엔 산딸기들이 붉은 눈망울을 굴리고 있다. 손을 뻗어 이슬 머금은 눈알을 따 입에 넣는다. 오돌거리며 혀 안에 씹히는 상큼한 즙이 싱그럽다. 들길엔 망초가 가느런 허리를 흔들고, 간간이 만나는 날개하늘나리꽃은 주홍색 입을 벌리고 웃고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왜가리 울음소리, 산비둘기 구구 노랫소리,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귓속으로 걸어온다. 소리에 소리를 덧입히듯 경운기 소리가 아침을 뚫고 지나간다.

이곳저곳에 눈을 팔다 보니 용대리 석교에 이르렀다. 조선 시대에 건립된 다리 중 오늘날 형태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석교란다. 뭉툭하고 투박한 큰 돌로 쌓아 올린 자연 판석이 정겹다. 이쯤에서 발길을 돌린다. 돌아서며 전깃줄에 들깨처럼 앉아 있는 까마귀와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맑은 하늘을 앵글에 담는다.

돌아오는 길, 마을 끝에 개를 철창에 가두어 놓고 기르는 사육장이 있다. 첫날과 둘째 날은 나를 보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우악스럽게 짖던 개들이 이제는 내 발소리에 익숙해진 듯 물끄러미 목소리를 지우고 나를 쳐다본다. "안녕 얘들아~ 잘 잤니?"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어 준다. 개들은 "끼잉 끼~잉" 답을 하며 애잔한 눈빛을 내게 던진다. 앞다리를 철장에 올리고 뒷다리로만 아슬하게 서서 애원하듯 쳐다본다. 나도 저렇게 지구라는 철창에 갇혀 시간에 사육되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들은, 애쓰면 살아야 하는 것들은 너도 나도 다 애처롭다.

글을 낳는 집이 눈에 잡힌다. 집 입구에 누군가 등을 말고 앉아 있다. 가까이 가니 옆방에 묵고 있는 작가가 쪼그려 앉아 풀숲을 뒤지고 있다. 나를 보자 그녀는 풀꽃을 따와 팔목에 감아준다. 용대리의 싱싱한 하루가 환하게 웃으며 기지개를 켠다. 다시 시작이다. 어떤 시인은 시 쓰는 일은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다고 했던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얼마나 쓸쓸한가. 나는 어떤 물고기일까. 무엇에 이끌려 여기까지 와서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가. 그래도 비상을 꿈꾸는 물고기가 혼자만이 아니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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