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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내 인생 같이 뿌연 날이다. 안개가 손가락을 풀어 온 세상에 희뿌연 물방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흐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 안개에 몸을 내준다. 안개는 말없이 내 몸 여기저기 물방울을 칠한다. 손을 벌려 안개의 꼬리를 움켜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꼭 쥔 손안에는 쥐었다 놓은 손아귀 힘에 눌려 아픔만 가득하다. 입을 벌려 야금야금 안개를 베어 문다. 아무 맛도 씹히지 않는다. 그저 습한 느낌만 입안을 맴돌 뿐. 마치 아무것도 없이 떠돌다 사라지는 삶처럼 잡히지 않는 안개 속에서 나는 눈을 감는다.

인도의 마지막 날이다. 안개에 휩싸여 알 수 없는 인생을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찾으러 떠나온 길이었는데 그 무엇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안개 속에서 오리무중이다. 아침을 먹고 타지마할로 향한다. 안개의 배를 가르며 차가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안개속이다. 차가 안개 속을 헤집자 집과 나무와 도로와 차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것·뒤에도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타지마할은 안개의 옷을 입고 뿌옇게 서 있다. 뿌연 세상을 빠져나온 낯익은 새소리가 정원에 빼곡하게 떠다닌다. 새들은 안개에 덮인 잔디 위를 조롱조롱 걷고 있었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이 만들었다는 묘지 타지마할. 사랑했던 아내 타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건축을 했다고 한다. 묘지라기보다는 거대한 궁전 같았다. 22년 동안 2만 명이 동원되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의 방대함과 화려함에 입이 딱 벌어진다. 샤자한은 죽은 아내 타지를 그리워하다 끝내 미쳐버렸다고 한다. 누군가를 미칠 정도로 그리워해 본적이 있었던가. 미치기는커녕 그리움이라는 단어조차도 가물가물하다. 나는 죽을 때 까지 그런 사랑은 단 한 번도 못해 볼 것 같다. 그런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건지 궁금해지면서 부러움이 밀려왔다. 은순 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야, 남자를 만나도 저런 남자를 만나야하는데!" 난 그녀의 얼굴에 묻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치우면서 나지막이 말한다. "언니, 이번 생엔 글렀고 다음 생엔 저런 사랑을 할 수 있게 알라 신에게 우리 기도하자!" 그녀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아침 새 소리와 뒤섞인다. 마치 사이다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거처럼 청량하다.

인도에서의 시간을 배낭에 꼭꼭 넣고 공항으로 간다. 면세점에서 지인들에게 줄 림치약을 사고 내게 줄 코끼리 상을 산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대표적인 인형을 사서 내게 선물하는 게 내 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각 나라를 상징하는 인형을 하나씩 사와서 그 곳에서의 기억을 인형 속에 넣고 그 인형을 샀던 나라에서 내가 했던 생각들, 내게 밀려들었던 장면들과 나를 훑고 지나갔던 썰물 같던 날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곤 한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본다. 어둠이 검은 안개처럼 내려와 인도 거리를 덮고 있다. 온다는 비행기는 한 시간 째 감감무소식이다. 언제 어디서 연착될지 모르는 인생처럼 나의 시간은 델리 공항에서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연착하고 있다. 두 시간을 더 기다리고서야 비행기를 탑승한다. 이미 진한 어둠에 물든 공항의 밤이 깜깜한 눈을 빛내며 나를 배웅한다. 드디어 비행기가 발아래 쥐고 있던 인도 땅을 놓고 하늘로 오르기 시작한다. 거대한 인도가 점점 멀어진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인천공항이다. 두고 온 타지마할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 웅장함과 화려함을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잘 도착했냐고 묻는 남편의 목소리가 귀를 쓰다듬는다. 샤자한 같은 권력도 부도 갖고 있지 않지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얼른 내 작은 집으로 달려가서 안개처럼 조용히 쉬고 싶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안개 그러나 자세히 보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안개. 안개처럼 소리 없이 흔적을 지우며 흔적으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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