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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시간은 꼬리도 없이· 잘도 헤엄친다. 벌써 새해를 맞고도 두 달이 어제로 흘러갔다. 성급한 초봄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길을 잃고 주춤거린다. 아직은 칼칼한 월문리의 아침이 눈을 뜬다. 난로 위에서는 생강과 계피를 넣은 주전자가 끓고, 꿀꿀이는 난로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시간을 잊고 있다. 산을 향해서 난 거실 유리창 앞에는 햇살이 수없이 많은 발을 들이 밀고 있다. 나는 창가에 흔들의자를 놓고 햇살을 쬐며 『호모데우스』를 펼친다. 내 옆엔 철이와 영이가 엎드린 채 꼬리를 흔들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다. 컴퓨터 유트브에선 쇼팽의 녹턴이 흐른다. 거실에 풀어진 쇼팽의 선율이 허공을 가득 채우며 떠돈다. 하루가 아다지오 보폭으로 걷기 시작한다.

창으로 넘어오는 햇살의 꼼지락 거리는 발가락을 눈으로 만지고 있는데, 피지에서 문자가 날아든다. 도원리 언니다. 피지로 어학연수를 간 언니가 이곳의 안부를 묻는다. 육십이 다 된 나이에 학생비자로 먼 이국땅에 가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언니가 마냥 부럽고 또 대단해 보인다. 그곳의 날씨와 풍경들과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톡으로 보며, 새삼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언니는 시험지를 사진 찍어 톡으로 보내온다. 17문제 중 3문제를 틀렸다고 아쉬워한다. 그녀에게 대단하다고 하자 그녀는 Beginner반으로 쉬운 코스라 했다. 아무리 그렇다 손 치더라도 그 나이에 공부를 하러 이국땅으로 떠났다는 그 자체에 갈채를 보낸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손자들 재롱이나 보고 편하게 휴양지로 여행이나 다니며 살 나이다. 그런데 그런 나이에 공부라니. 그녀의 알뜰한 시간 활용법과 인생 사용법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농사며 정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그녀다. 그녀의 정원엔 사철 없는 꽃이 없을 정도다. 해바라기, 목련, 채송화, 넝쿨 장미, 봉숭아, 메리골드, 분홍달맞이꽃, 금계국, 목화 등 철마다 예쁜 꽃들이 손을 흔들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게다가 그녀의 잔디밭엔 풀 한포기 보기 힘들다. 토끼풀과 민들레 망초를 비롯한 이름 모를 풀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우리 집 잔디밭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녀가 한 시도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마당에 두건을 쓰고 나와서 꽃을 가꾸거나 텃밭의 풀을 뽑고 있다.

겨울은 시골 생활에선 잠시의 휴지기다. 일 년간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자연이 잠시 내려준 선물이다. 그녀는 그 선물을 물처럼 흘려보내지 않았다. 겨울 동안의 그 잠깐의 자투리 시간도 영어를 배우며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 누구나 받는 선물이지만 그녀만 받은 선물처럼 귀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 까지는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많은 그녀를 보고 난 후에 난 너무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다는 생각을 한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고 말한 시인의 말이 설핏 스친다. 놀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 손으로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분명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 던져진 내가 오늘 속에서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천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아껴 쓰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해서 천재는 아니라도 평범한 사람의 반열에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주말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잡히지 않는 시간이 꼬리도 없이 자꾸 헤엄쳐 멀어진다. 멀어지는 시간을 바라만 볼게 아니라 시간을 불러야 겠다. 그 시간과 어우러져 함께 걸으며 시간의 손을 잡아야 겠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주어진 내 시간을 포개어 후회 없는 시간을 살리라. 저만치 길을 잃어 주춤거리던 봄이 새 길을 내며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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