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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8.18 16:07:26
  • 최종수정2013.08.18 16:07:26
ⓒ 홍대기
쪽빛으로 반짝이는 호수, 물결위로 잘디잘게 부서지는 햇살, 연연한 처녀성을 담는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니 작열하는 태양이 세상을 온통 후끈 달군다. 태양의 계절 8월이다. 애나 어른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그늘지고 한적한 곳, 푸른 물에 흠뻑 물들고 빠지고 싶은 곳을 찾아 나선다. 도심에서는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영화관과 쇼핑시설에서 사치를 즐긴다. 삶이 고단하고 지친 사람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 산과 들, 호수와 바다로 소풍을 떠나는 등 한여름의 문화아지트를 찾아 나설 것이다. 날짐승 들짐승도 더위 사냥에 나서고 이름 모를 꽃잎들은 한낮의 열기 속에 헐떡거리며 축 늘어진 게 안쓰러울 뿐이다.

ⓒ 강호생
이른 새벽, 초평으로 가니 비로소 서정적인 호수를 만난다. 살랑살랑 버드나무와 느티나무에서 끼쳐오는 싱그러움이 일상과 무더위에 지친 내 마음으로 들어오고,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들도 생기발랄하다. 푸른 쪽빛으로 반짝이는 호수와 그 물결위로 잘디잘게 부서지는 햇살은 맑고 투명한 조각보를 닮았다. 아침 호수는 연연한 살빛의 처녀성을 갖고 있다. 물안개를 품고 풍덩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이곳에서 밤을 세운 강태공의 마음은 텅 빈 충만, 그 자체가 아닐까.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도 좋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잡았던 고기마저 호수속으로 자유의 길을 가도록 하는 미덕도 좋다. 호수의 맑은 정신을 품고, 대지의 꺼지지 않는 기운을 맡으면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면 되는 게 아닌가. 나도 그곳에서 거짓의 옷을 벗고 하늘하늘 춤추는 발그레한 요정의 꿈을 꾼다. 이해인 수녀는 "살아있는 것은 아픈 것/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사람들에게도 꽃처럼/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라며 생명예찬을 하지 않았던가.

ⓒ 홍대기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온도계를 갖고 있다. 인간의 온도는 37도지만 마음속의 온도는 똑같지가 않다. 어떤 삶,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온탕일수도 있고 냉탕일 수도 있다. 또 장미꽃처럼 정열적이거나 찔레꽃 향기처럼 그윽하고 품고 싶은 온도를 지닌 사람도 있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식물이든 동물이든, 바람이든 이슬이든 각기 저마다의 온기를 갖고 태어나며 자라고 있다. 그렇지만 녹색의 자연과 호흡하고 아름다운 서정과 눈을 마주치는 생명들에게는 남다른 에너지, 희망의 온도가 있다.

초평 호수가를 한바퀴 돌다보니 어렸을 적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입가에서 맴돈다. 모두들 초록과 생명,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는 노래인데 부를수록 기쁨이요, 들을수록 정겨움이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 빛 물이 들지요/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초록빛 여울물에 두 발을 담그면/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우리 순이 손처럼 간지럼 줘요…'의 <초록바다>나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예요…'<파란마음 하얀마음>이나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네/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훨훨…'의 <과수원길>, 그리고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의 <옹달샘> 등 모두가 생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 죽음과 좌절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시대 저잣거리의 노래와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편안하고 정겹고 사람냄새 흙냄새 모두 같으니 욕심은 사라지고 희망이 싹튼다.

ⓒ 홍대기
수로의 직선거리가 64km에 달하는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초평저수지는 시시각각 풍경의 옷을 바꿔 입는다. 물안개 피어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매력인 새벽, 수 백 개의 수상 방갈로의 풍경속에 빠져보고 싶은 한낮의 낭만, 청소년수련원과 호수 주변의 고즈넉한 시골길의 풍경, 호수 곳곳에 드넓게 퍼져 있는 수초들의 신비, 호수 한 가운데 푸른 둥지를 틀고 있는 쥐꼬리 명당이라는 작은 섬, 그리고 순례자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붕어찜 요리 등 오감이 즐거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팔뚝만한 붕어들이 입질을 하니 강태공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겨울에는 얼음낚시터로 제 겪이고, 호수와 산을 끼고 길게 다듬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기분도 삼삼하다. 산마루의 농암정에서는 저수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그 길의 끝에 농다리가 있으니 역사의 길, 생명의 길, 자연의 길을 온 몸으로 품으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 홍대기
초평저수지는 한반도와 그 주변지형을 꼭 빼닮았다고 한다. 사계절 마르지 않는 물과 푸른 숲과 수많은 생명들이 고요한 듯 하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니 한국의 서정을 닮은 것 같다. 그리하여 초평호수를 여행한 사람은 그 느낌과 감동을 오래 간직한다.

해는 길고 무량하게 쏟아지는 볕이 자글거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어디에서 왔는지 호수 한 가운데에 물새들의 날개짓이 평화롭다. 어디선가 짙은 향기를 품은 연기가 허공을 향해 은유의 꼬리를 물고 가물가물 피어오른다. 바람의 현을 타고 일렁이는 풀잎들, 그 순결한 풍경에 내 마음을 잠시 맡겨본다. 오늘 하루는 세상의 일과 담을 쌓고 볼 일이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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