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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제천자드락길

나지막한 산기슭을 따라 걷는 작은 길, 내 마음의 오솔길

  • 웹출고시간2013.07.21 19:31:4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홍대기
오늘은 온 가족이 자드락길에서 1박을 했다. 장맛비가 요란스러워 첫날은 비를 피할 요량으로 일찌감치 농원이 있는 팬션에서 멍석을 깔았다. 비좁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어기적거리며 힘겹게 들어갔더니 부챗살 모양을 한 계단식 농원이 있었다. 숲과 잇닿아 있는 조그만 집 여러 채와 넓은 울타리를 쳐 놓고 암탉 수탉 오골계 오리 집토끼 산토끼 수백여 마리를 방목시키고 있었다. 산속에서 어미 잃고 방황하던 고라니 새끼도 한 마리 있었는데 호젓하게 먹고 노는 모습이 영락없이 낙원이었다.

ⓒ 홍대기
산벚나무 소나무 참나무 같은 곧고 높은 나무와 단풍나무 아카시아나무처럼 작은 나무들이 깊고 푸른 숲을 만들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평화롭게 파닥파닥 거리니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구순할 뿐이다. 그토록 뜨겁던 태양도 수목의 비린내를 맡으면서 얌전하고 온순한 햇살이 되고, 늙은 숲 어린 숲, 날짐승 들짐승 할 것 없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있으니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마주치는 곳마다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그렇다. 숲의 또 다른 이름은 새로움이요 신선함이다. 그래서 숲 속의 모든 생명들에게 귀 기울이면 '수글 수글~' 혹은 '숙울 숙울~' 소리만 있을 뿐이다. 맑고 깨끗한 숲속의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이며 새소리 바람소리인 것이다.

ⓒ 홍대기
비가 그쳤으니 딸들과 함께 주변 마을의 풍경 여행을 시작해야겠다. 멀리 청풍호수에는 물안개가 하얗게 기지개를 펴고 있고 푸른 숲들도 신비의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수와 숲을 품으며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이곳 사람들은 자드락길이라고 부른다. 자드락, 자드락. 뭔가 원시적인 소리와 내음과 율동이 시작되는 듯하다. 인생의 아픈 마디를 모두 품어주고 새 살 돋게 할 것 같은 신성함이 숨어 있다.

밭에는 옥수수와 감자와 고구마 등 곡식들이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방랑자를 반긴다. 아이들은 빗물에 검은 빛이 도드라진 복분자 밭으로 뛰어간다. 산딸기처럼 달지 않고 무덤덤하지만 입안에서 착 감기는 맛이 좋다. 간에 좋고 정력에 그만이라는 복분자 따먹기를 한 참이나 했더니 손바닥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한 여름 산중의 으스스함을 느낀다. 늙은 부부가 복분자 수확에 구슬땀을 흘리더니 딸들을 향해 맑은 웃음으로 한 마디 던진다. "어디서 왔니· 먹고 싶은 만큼 따 먹거라." 아직도 시골은 훈훈하다.

ⓒ 홍대기
자드락길에는 산딸기 깨금 머루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숲속을 헤매다가, 혹은 길을 가다가 작고 몽글한 붉은 열매가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보이면 아이들은 휘리릭 달려가서 톡 따먹는다. 먹을 것 앞에서는 동심도 어쩔 수 없다. 탐심(貪心)에 빠져 온 몸이 산딸기 가시에 긁혀도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나는 붉게 타 오르는 산딸기를 혼자 먹기 아까워 한 움큼 따서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우윳빛 두 손으로 받아먹으면서 "어머, 색깔이 오고 있어, 색깔이…"라며 예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세상의 아름다움이 내게 밀려왔다. 빗물 품은 풀잎처럼, 찔레꽃 향기처럼, 하얀 솜사탕처럼 비릿하지만 달콤한 향기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늦은 여름에는 깨금 따먹는 재미가, 초가을에 머루 맛을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햇살 좋은 가을 어느 날, 어른들은 머루 더덕 오디 도라지 같은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옹기에 담아 술을 빚을 것이다. 이처럼 자드락길의 모든 생명들은 아름답다. 고여 있거나 한 곳에 몰입돼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감싸 안으며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 들을 기름지게, 산을 청정하게, 시냇물을 구순하게 지켜준다.

ⓒ 홍대기
청풍호를 끼고 있는 자드락길은 각기 다른 멋과 맛과 향을 간직한 7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다. 작은동산길의 1코스는 청풍면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한다. 청풍호 아래 61개 마을이 호수 깊숙이 잠들어 있으며, 호수를 끼고 모래고개, 중고개, 학현아름마을, 작은동산 등 숲의 길을 자박자박 걸을 수 있다. 2코스인 정방사길은 소나무숲과 길옆으로 맑은 물소리에 이끌려 정방사로 올라가는 길이다. 천년사찰인 금수산 정방사는 절벽 아래 제비집처럼 자리하고 있다.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월악산 영봉과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과 호수아래 황금빛 노을이 장관이다. 절 뒤편 기암아래 감로수 한 모금은 온갖 마음의 때를 씻어주고, 해우소에서도 청풍호 장관을 만날 수 있으니 이런 인연이 또 있겠는가.

3코스는 얼음골생태길이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생기는 빙혈을 볼 수 있다는 곳인데, 크고 작은 돌탑도 만날 수 있고 계곡물을 품으며 돌다리와 나무다리가 정겹게 반긴다. 만당암, 취적대, 얼음골로 이어지는 산길은 단풍나무, 자작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사계절 각기 다른 풍경과 멋을 선사한다. 4코스는 녹색마을길이다. 능강교에서 출발해 상천 산수유마을에 있는 용담폭포에 이르는 길인데 어디 산수유뿐이던가. 진달래꽃과 바위, 소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길이다.

ⓒ 홍대기
솟대체험과 숯가마체험, 산야초체험도 즐길 수 잇다. 5코스는 옥순봉길이다. 녹색마을이 끝나는 지점인 용담폭포에서 내려와 '금수산 탐방로'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쳐 만나는 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옥순대교까지 걸으며 숲과 호수의 맑은 정기를 품을 수 있다.

6코스는 괴곡성벽길이다. 삼국시대에 성벽을 이루었던 괴곡성벽길은 태초의 비밀을 간직한 때 묻지 않은 곳으로 월악산, 금수산, 그리고 호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자드락길의 마지막코스인 약초길은 약초와 다양한 버섯류를 직접 캐어 볼 수도 있고 웰빙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발 아래 펼쳐진 자연산 버섯의 생기를 닮으면 어떻고, 약초의 향기를 품으면 어떤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맑은 정신과 활력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지 않던가.

우리 가족은 이렇게 자드락길을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대자연의 풍광 품었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욕망의 옷을 벗고 맑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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