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즐거운소풍길ⅩⅡ- 문경새재에서

바람과 햇살과 구름이 쉬어가는 곳, 엽서같은 풍경을 담다

  • 웹출고시간2013.05.05 18:04:2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내게도 꿈이 있었던가. 아니, 지금 나는 무슨 꿈을 꾸며 어떠한 존재감으로 살아가는가. 시간은 숨막힐 정도로 거친 물살처럼 달리고, 지나간 내 삶의 기록은 속절없다. 지나온 추억에 대한 애틋함이 왜 없겠냐만은 아쉬움과 아픔과 미련 때문에 내 가슴이 헛헛해지는 것을 보면 인생의 마디마디에 나만의 깊디깊은 성장통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젊은날에는 사랑과 우정과 취직에 대한 성장통이, 중년이 되어서는 가정과 직장과 돈과 명예에 대한 성장통이, 그리고 지천명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오늘은 존재감과 내밀함과 미래에 대한 아픔을 겪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바람이 내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며칠 전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며 두 시간 넘게 눈물만 훔쳤다. 나이 들면서 바보처럼 눈물이 많아졌느냐고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내 마음의 고름, 각다분한 삶의 찌꺼기를 토해내는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 강호생
인생은 짧고 허망하다. 바람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을 꾼다. 꿈이란 본래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 밖의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삶의 존재 이유로 삼는다. 그래서 짧고 허망한 인생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박자박 내일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꿈이 있었던가 싶다. 단 한 번도 꿈을 일구지 못했는데 또 다른 꿈을 찾아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한 때 나는 부농의 꿈꾸었다. 시골의 드넓은 땅과 산과 냇가 모두 내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청년이 되어서는 불온하고 어두운 이 세상을 경멸하기 시작했고 성직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성경과 불경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선생이 천직일 것이라는 착각에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선생의 꿈을 빚기도 했다. 아픔이 많은 세상을 등지는 것 보다 세상 속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테라피스트를 꿈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림같은 미술관을 짓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며 영혼이 자유로운 방랑자를 꿈꾼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모든 사람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끔찍하지 않겠는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기계화된 세상의 종말이 어떤지 잘 설명하고 있는 않던가. 다만 우리는 꿈을 꾸며, 꿈을 빚어가는 그 노정 자체를 사랑하면 된다.

ⓒ 홍대기
근 삼십 년 전, 나는 첫 사랑의 여인과 문경새재를 걸었다. 햇살이 무성한 여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전국의 국립박물관을 열흘간 투어한 뒤 마지막 코스를 이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마침 여인은 길벗이 돼 주겠다며 괴산과 문경을 잇는 산길 9km를 걸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둘만의 오붓한 길을 서로 마주보며 손이라도 잡고 사랑을 노래할 법도 한데 나는 그날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손목 한 법 잡지 못했다. 그저 숲속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상가단지가 있는 입구에서 조령3관문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시멘트 포장길도 있지만 울울창창 숲과 계곡이 있고 선비길과 오솔길도 있다. 여인과 진한 말 한 마디 없이 나는 쏟아지는 햇살과 노래하는 산새와 정처없는 바람과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숲의 이끼를 품으며 걷고 또 걸었다. 여인은 악동같은 내가 싫지 않은지 뒤따라오면서 맑은 미소를 던졌다. 아,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여인의 손을 잡지 않아도, 여인을 품지 않아도 사랑은 이처럼 한 뼘의 거리에서 꽃이 피고 불멸의 향기로 아득한 것이구나.

ⓒ 홍대기
조령3관문을 지나자 숲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젖은 숲은 신선했다. 이 길은 선비길이다. 영남사람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책바위 돌탑'이라는 전설도 있다. 새재 인근 마을에 병약한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그 병을 고치려면 집을 둘러싼 돌담의 돌을 허물어 새재 책바위 앞에 쌓아 놓아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 3년 동안 돌탑을 쌓으며 치성으로 기도를 올리니 몸이 좋아졌고 공부를 열심히 해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나는 과거에 합격해 금의환향했던 그 길을 걸은 것이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큰 길이 나오고, 큰 길을 걷다보다 오솔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솔숲 쉼터에서 잠시 앉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솔바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량하게 앉아 쏟아지는 솔바람을 온 몸으로 들이마셨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 어름장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약수로 목을 축였다. 옥빛 계곡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계곡을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서 붉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몇날 며칠을 이 여인과 원 없이 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라며 자신을 채근했다. 해가 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인을 만나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여인을 만날 수 없었다. 문경새재라는 이름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아니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기라도 하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날의 아련한 추억과 애틋한 마음이 나를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 홍대기
첫사랑이라는 가당찮고 어처구니없는 착각이 부끄러워 젖멍울 앓는 것처럼 자꾸만 몸이 움츠러드는데,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첫사랑만은 잊지 못하는 기막힌 운명 앞에서 눈물이 난다. 따지고 보면 모든 비극은 환상과 미숙에서 비롯된다.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결과물 모두가 그러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헤어지기 전에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면 아련한 첫사랑은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왜 여인과 나의 미적인 거리가 사랑일 거라는 착각을 했는지 돌이켜보니 후회막급이다.

삶이란 한없이 깊은 오지일 뿐이다. 사랑은 더욱 어렵고 멀고 험해서 입술을 비집고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으니 이 얼마나 고운 아픔이었던가. 매섭던 북풍한설도 가고 대지는 새싹들이 여릿여릿 고개를 들고 있다. 아픔이 있어도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세상 속에서 느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의 사랑과 나의 삶과 나의 세상을 뜨겁게 사랑해야겠다. 갑자기 첫 사랑이 그리우면 나는 문경새재를 생각한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