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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보은 호점산성

울창한 숲길, 오랜 풍상으로 젖은 성벽, 호수의 맑은 기운이 끼쳐온다

  • 웹출고시간2013.06.02 17:14:3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홍대기
도법자연(道法自然). 노장사상의 핵심이기도 한 도법자연은 형식과 가식을 없애고 대자연과 호흡하며 본래 타고난 모습으로 살아야 진정한 도를 얻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자는 진정한 삶이란 자기와는 안(安)해야 하고, 남과는 화(化)해야 하며, 자연과는 락(樂)해야 하고, 도와는 유(遊)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움을 통해 삶을 디자인하고 철학과 놀이와 미래의 꿈을 빚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원시적이고 유목과 목가적이었을 그 옛날, 이처럼 도법자연을 외친 것을 보면 그들은 이미 미래를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중국 고전 번역가로 유명한 웨일리는 세상에서 가장 심오하고 흥미로운 책이 바로 「장자」라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 앨빈 토플러 역시 "서구 문명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세계는 동양사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외쳤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그리고 동산의 달을 다섯 벗이라며 자연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또 유배지인 전남 완도의 보길도에서 아름다운 대자연의 사계(四季)를 「어부사시사」에 담았다. 오죽하면 꿈결같은 섬의 풍경과 고기잡이의 유유자적한 삶을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사와"라며 춤으로, 노래로 부르지 않았던가. 비슷한 시기에 우암 송시열은 산 좋고 물 맑기로 소문난 화양동으로 낙향해 학문에 몰두하면서 100여권의 문집을 만들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수많은 창작물을 쏟아내지 않았던가. 자연을 벗 삼으면 각다분한 세상 이야기를 멀리할 수 있고 생각이 맑아지면서 시심에 젖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순해지는 것이다.

자고이래 우리 민족은 산과 하천과 들을 과분할 정도로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로 산과 들과 호수는 인산인해다. 이 때문에 산행과 자전거 동호회가 넘쳐나고 있으며 사진, 영상, 캠핑, 인문학 등 각양각색의 동아리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그들만의 꿈을 빚고 새로운 미래가치를 찾는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웰빙과 힐링이 대세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참에 우리고장의 구석구석을 각기 차별화된 멋과 맛과 향기로움이 물결치도록 하면 좋겠다.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마주하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향연으로 가득하고 숲길과 들길과 물길을 벗 삼으며 자족할 줄 아는 곳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아름다움에 젖고 꽃노래에 젖고 미래가치에 젖으면 좋겠다.

ⓒ 강호생
충북 보은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비경이 많다. 산 좋고 물 맑으며 경치 빼어나다는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도시 사람들이 달려가는데 이곳은 천만다행으로 인기척이 뜸하다. 회남면 남대문리와 회북면 용곡리에 터를 잡고 있는 호점산성 이야기다. 복원작업을 통해 가지런히 정리된 인위적안 모습이 아니다. 천년의 풍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주변의 울창한 숲이 호위병이 되어 오가는 나그네를 품고 있다. 멀리 대청호의 푸른 기운과 맑음이 끼쳐오고 있으니 온 몸이 부스러지는 것 같다. 한 조각의 햇살이나 자작나무의 껍질처럼 몸과 마음이 정처 없다.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점산성(虎岾山城)은 해발 367m의 호점산을 중심으로 5개 산봉우리와 계곡을 연결하고 있다. 3.5㎞의 짧지 않은 거리에 검은색 점판암으로 쌓은 토석축 산성이기 때문에 인근의 삼년산성이나 상당산성, 남한산성 등과 확연히 구분된다. 자연의 모습에 더 가까이 가 있다고 할까. 능선을 따라, 산비탈과 고개마루를 따라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세월을 풍상을 이겨내지 못해 주저앉거나 숲에 가려 위용과 기개를 잃어가는 모습도 또 어떠한가. 그 자체가 역사요, 자연이며, 아름다움이 아니던가.

ⓒ 홍대기
호점산성은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에 대비해 최영 장군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최영 장군의 태를 묻었다거나 그가 쓰던 금칼이 숨겨져 있고 3일간 먹을 양식이 이곳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등의 전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산성에는 신비하고 아픈 이야기가 많은데 그만큼 성을 쌓는 과정에서부터 전쟁을 치르며 고단한 삶을 지켜내는 것은 녹록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산성은 신화와 전설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능선은 온통 숲으로 가득하다. 치일봉과 정상의 전망대와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유월의 숲은 원시성을 품고 있다. 한낮에도 햇살이 조각처럼 쏟아지면서 어둠이 밀려온다. 습하고 찬 기운마저 감돈다. 골짜기를 따라 쏟아지는 물소리와 새들의 합창소리와 바스라거리는 숲의 이야기에 가슴이 서늘하다. 이따금 사람의 발길도 찾을 수 없어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위험천만이다.

숲들도 끼리끼리 어울린다. 미루나무 숲이 하얗게 부서지는가 싶더니 이내 소나무숲이 나그네 품에 안긴다. 피톤치드의 맑고 푸르며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이물질을 뱉어내는 것이 피톤치드라고 하던데, 사람에게는 보약이나 다름 없으니 고마울 뿐이다. 자연의 일이란 이처럼 유순하고 정직한데 사람의 마음만 정처없고 각다분하니 부끄럽다. 산길에서 만나는 돌무더기에는 세월의 더께가 쌓여있고, 상처 많은 나무는 결 고은 모습으로 의연하며, 한줄기 빗물도 결코 헛됨이 없이 계곡물이 되어 강으로 바다로 항해한다. 자연은 오직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주어진 모든 것을 숙명처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에 인간은 세월을 먹을수록 오지랖 넓게 곁눈질이고 욕망의 누더기만 깊어가니 슬픈 일이다.

ⓒ 홍대기
저 멀리 대청호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다. 산천이 이렇게 고요하고 듬직하며 제 갈 길을 가는데 사람의 몫이 아슬아슬하다. 산성이 이렇게 천년의 이야기를 침묵한 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인간들의 이야기는 어수선할 뿐이다.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제 집을 짓는다고 했던가.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거세다. 나도 마음의 집을 지어야겠다. 천 년, 만 년 가도 부서지지 않는 집을 지어야겠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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