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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Ⅱ - 정북토성길에서(上)

떠나라 낯선 곳으로, 품어라 맑은 풍경소리를

  • 웹출고시간2013.02.17 16:12:5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가끔 삶에 대해, 지나온 여정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상념에 젖는다. 지독한 고독의 잉잉거림으로 잠을 설치기도 하고, 황홀했던 삶의 마디마디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가슴 시리고 아픈 일 때문에 어둠의 뒷골목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자잘한 자갈길 같은 일상을 탈출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먹먹토록 먹을 갈아 연서를 쓰고 싶고, 내 삶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냇물이나 징검다리를 만나려 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한다. 산으로, 들로, 호수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도시의 구석구석을 정처없이 떠돌기도 한다.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마실 다녀오기도 한다. 어디 나 뿐인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일상을 탈출하려 한다. 새로운 세상에서 보고 느끼고 겪은 이야기가 마중물이 되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지 않던가. 나의 삶에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생각할 때, 각다분한 세상에 정신이 아득해져올 때 나는 길을 걷는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맑은 풍경소리에 마음이 젖고, 구순해지며,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충북의 구석 구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이름하여 '즐거운 소풍길'이다. 2년 전에 충북일보 지면을 통해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충북의 속살을 소개했으며,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기도 했다. 이 책은 2012년 문화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분들이 충북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면 좋겠다는 주문과 격려에 힘입어 방랑자의 길을 나선다. 이 길에는 화가 강호생 님과 사진작가 홍대기 님도 함께한다. 홀로 떠나는 길이 아니기에 행복하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아름다움으로 물든 충북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온 몸으로 품으면 좋겠다.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최고의 배움은 여행에서 얻어진다고 했다. 그는 내 마음이 가는 곳에 나만의 보물이 있다며 세상 속에서 자신을 명료하게 바라보라고 했다. 그는 또「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현실과 삶의 비범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사는지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존 스타인백은 저서「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서 여행은 인격, 기질, 개성, 고유성을 지닌다며, 여행은 그 자체가 한 명의 사람과도 같아서 똑같은 여행은 있을 수 없다고 여행예찬을 했다.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 존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중역으로 재직하다 네팔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늘 네팔을 비롯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책과 장학금을 주는 자선사업가가 된 것이다. 무사 앗사리드는 「사막별 여행자」라는 책에서 "자기 자신을 알고, 타인의 요구를 이해할 때 지혜가 생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또 타인의 요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며 여행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함께 이해하며 성장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낯선 여행, 낯선 길을 떠나는 것이 누구에게나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다. 누구든 만만한 도전이란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여행은 용기를 낳게 하고, 용기는 인내를 낳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통해 자신이 더욱 단단해지지 않던가. 만남은 신비하다. 사랑도 신비하다. 여행을 통해 누구나 삶의 신화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니, 상처받은 사람들은 지금 배낭을 메라. 떠나라, 하루 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담아라, 나만의 맑은 풍경소리를. 품어라, 꿈과 사랑과 우정과 반짝이는 햇살을….

ⓒ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뱀의 해다.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혐오감의 상징이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기에 뱀처럼 낮고 길고 느린 길을 찾아가고 싶었다. 연말부터 불어 닥친 북풍한설에 몸과 마음과 도시의 풍경 모두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에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먼 곳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라 가까운 도시의 뒷길을 선택했다. 바로 청주의 역사와 문화와 생태와 농경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정북토성 마을이다.

온 동네가 하얗게 젖어있던 그날, 나는 길을 걸으면서 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을 품고 있는 뱀은 둘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면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동물이다. 서양에서는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어 교활함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뱀은 지혜의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치료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동양에서 뱀은 십이지 동물로서 '불사'와 '재생' 상징이다. 1000년을 견딘 뱀은 이무기가 되고, 또 1000년을 견디면 용이 돼 승천한다고 해서 뱀은 인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정북토성은 청주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무심천과 논길과 마을길을 따라 걸어도 좋고 차창 밖의 풍경을 담아도 좋다. 무심천의 맑고 푸른 물살과 바람을 품으면 비로소 토성마을의 속살을 만날 수 있는데 정하리의 마애비로자나불좌상이 먼저 마중 나와 방랑자를 반긴다. 화려한 연꽃받침 위에 결가부좌한 이 마애불은 머리에는 둥근 형태의 두광이 돋보인다. 크고 넓은 귀와 이마, 당당한 어깨, 무릎까지 감싸고 있는 법의法衣 등 조각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 9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왜 이곳에 석불을 조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여리고 약한 인간의 수호신이 아니었을까.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마애불 앞에서 불경스런 마음의 때를 벗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목욕을 했을 것이다.

ⓒ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논과 밭이 낮고 넓게 펼쳐져 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야트막한 흙제방이 보인다. 이게 바로 토성이고 우측의 마을이 토성마을이다. 상당산성이나 남한산성처럼 기품과 위용은 찾아볼 수 없지만 흙내음이 끼쳐오고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냇물의 맑음이 쏟아지는 곳이다. 미호천변에 있는 정북토성의 역사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부권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농토를 지키고, 경작한 곡식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곡진한 마음을 담은 것이다. 곡창지대라 돌이 부족했을 터이니 안팎으로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끼워 넣어 틀을 만든 뒤 흙을 퍼부어 다지기를 반복해 켜켜이 쌓아올리지 않았을까.

성벽이 4m, 둘레가 650m에 이르는 정사각형의 성인데 당시로서는 대규모 토목공사였을 것이기에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민무늬토기와 쇠뿔손잡이토기 조각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는데, 이 토기들은 삼한시대의 유적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곳이 서기 130년경인 마한의 부족사람들이 토성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았던 것이다. 마한의 부족들은 이후 이곳에서 철기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인근 송절동에서 발굴된 대규모 토광묘군을 살펴보면 철제농구기류와 무기류, 둥근 바닥의 목 짧은 항아리가 많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후백제 견훤이 상당산성을 빼앗아 이곳에 창고를 짓고 세금을 보관했다는 자료가 있으니 청주의 역사를 품고 있는 소중한 곳이 아닐까.

나는 토성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하늘과 맞닿은 논과 그 사이로 하얀 이빨을 내밀고 있는 고랑뿐이다. 잘났다고 우쭐대던 산과 계곡은 찾아볼 수 없다. 발끝에서, 아니 땅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무슨 일일까. 옛 사람들의 삶과 옛 이야기의 아픔과 옛 풍경의 때묻지 않은 맑은 서정이 녹슬어가는 나를 흔들고 있다.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이곳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 사연 깊은 인연은 질기고, 그 질긴 삶의 인연들로 인해 발걸음은 더디기만 한 것이 틀림없는데 여기서 그 인연의 질긴 고리를 찾아야겠다.<계속>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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