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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영동 양산팔경

휘도는 금강을 따라 쏟아지는 여름 풍경

  • 웹출고시간2013.06.30 19:37: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홍대기
여름은 푸르다. 아니, 푸르다 못해 검푸르다. 장엄하다. 거대하다. 물길과 숲속과 들꽃 피는 언덕을 보라. 늠름하고 윤기 흐르는, 그리하여 진하고 진한 풍경화에 가슴 떨리는 뜨거운 열정과 그 내면의 순결함을 느낀다. 4월엔 온통 꽃들의 만찬이더니 어느새 꽃비 흩날리고 7월엔 초록의 숲으로 가득하다. 다시, 10월이 오면 붉은 물감을 한 옷을 갈아입을 것이고 겨울이 오면 순백의 꽃가루가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솔잎 향 그윽하다.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과 크고 작은 잎새와 그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햇살과 함께 긴 숨을 들이마셔야 비로소 서정을 느낀다. 들꽃 피고 산새 지저귀고, 초록으로 우거지고 불타는 낙엽 떨어지고, 이슬 얼어 서리되고 눈꽃이 만발하고, 비바람과 맑고 고운 햇님 달님 오가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곳에 오르면, 그곳을 걸으면 예쁜 심성, 고운 살결을 가진 여인을 만날 수 있다. 무드 있고 거센 물살처럼 엉키고 부딪치며 끌어안고 포옹한다. 누가 숲이고 강물이며, 누가 햇살이며 누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인 것을, 크고 작은 물줄기가 모여 거센 물살을 이르듯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생명뿐이다.

ⓒ 홍대기
둘이 합쳐지는 곳엔 언제나 뜨거운 사랑과 울림이 있듯이 자연과 내가 합궁을 하니 고요한 산천 자잘자잘 소란스럽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소낙비와 계곡물이 만나고, 바람과 나뭇잎이 만나고, 햇살과 그림자가 만나고, 너와 내가 만난다.

자연은 이토록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온 몸을 바쳐 헌화하고 정진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여자와 일과 자존심에 눈이 멀고 시도 때도 없이 상처받고 있으니 부끄럽다. 일컬어 절망의 시대, 신음의 시대, 어둠의 시대에 포위돼 있다. 나는 온 몸이 화끈 달아오른다. 오늘 밤에는 낡은 일기장에 연필로 꾹꾹 눌러 반성문이라도 써야겠다.

ⓒ 강호생
영동의 양산팔경은 말 그대로 여덟 가지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계절별로 보는 맛과 품는 느낌이 다르니 일 년에 32개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그리하여, 마음 약한 사람들은 숲속과 강물과 산새들과 바람결에 마음 빼앗길까 두렵다. 춤추는 들꽃, 숨쉬는 장독, 쏟아지는 물살, 노래하는 풍경소리에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푸른 창공을 떠도는 구름, 살랑이는 바람, 오가는 방랑자들 모두 십오야 달처럼 맑고 향기롭다. 그 기운 그대로 세상에 쏟아지면 좋겠다. 이 걸음이 무익하지는 않고 세상의 그 무엇으로 남고 싶다.

양산팔경은 영동군 양산면 일원에 있는 여덟 개의 보물이다. 천년고찰 영국사, 비봉산, 강선대, 용암,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이 그것인데 선녀가 목욕하기 위해 내려오던 곳이라는 강선대는 사람 마음 들뜨게 한다. 강변에 솟은 바위를 포위하듯 빼곡한 소나무, 아담한 정자, 정자를 품고 있는 숲과 강물과 맑은 햇살과 바람…. 어디선가 선녀의 옷 벗는 소리가, 두레박으로 하얀 속살에 물 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용은 왜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을까. 선녀의 목욕장면을 훔쳐본 죄값을 치르는 것이 아닐까. 용의 모습을 닮은 용암에서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그리고 경선대로 발길을 옮겨 흐르는 물살과 숲의 풍경에 각다분한 삶을 찌꺼기를 토해낸다. 생명은 흐르는 것, 사람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숲들도 흐르고 내 안의 사랑도 흐는 것,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자연이나 사람이나 모두 썩게 마련이다.

ⓒ 홍대기
양산팔경은 온 통 물길, 숲길이다. 숲길의 백미는 울울창창 소나무가 아닐까. 송호리국민관광단지에는 100년 넘게 살아 온 소나무가 솔향기를 흩뿌리고 있다. 여의정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소나무다. 수백년 묵은 소나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푸른 기운이 쏟아진다. 맑은 물길이 쏟아진다. 청춘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자풍서당은 또 어떠한가. 조선 초기에 풍곡당(豊谷當)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후 선비들이 대자연을 품으며 학문에 정진했던 곳이다. 고려시대의 절터였기 때문에 불교의 향기가 끼쳐온다. 봉황대를 지나 강가 절벽 숲속으로 밀려 들어가니 함벽정(涵碧亭)이 수줍은 표정으로 방랑자를 반긴다. 오는 사람 마다않고 떠나는 사람 붙잡지 아니하니 인생은 이처럼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것이 아닐까.

양산팔경의 백미인 천년고찰 영국사는 오름의 길이다. 높은 절벽을 휘감고 흐르는 천태동천(天台洞天)을 오른쪽에 끼고 오르다 보면 진주폭포, 삼단폭포가 굳게 닫혀있는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고갯마루 너머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23호 은행나무는 1000년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신령스러움이 느껴진다. 나라가 어려울 때면 이 은행나무는 밤마다 서럽게 울었다. 잘못된 세상을 보며 슬퍼하였으리라. 인간들아, 제발 똑바로 살아라. 욕망의 때를 벗어라.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라…. 이렇게 세상 사람들을 향해 따끔한 채찍을 내리는 것 같다. 사찰의 풍경 소리가 맑다. 쏟아지던 햇살도 이곳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숲 속에서 달려온 바람이 심술궂다.

ⓒ 홍대기
길 위에 길이 있다. 그 길은 계절을 가로지르는 시간의 창이며, 계절과 맞닿은 공간의 문이다. 그 길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행하는 투어리스트들의 상처 입은 가슴이다. 길은 만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 문화와 문명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 끝없이 조우하고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지혜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다. 길은 추억이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이별로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추억을 만들어 준다. 짧거나 강렬하게, 그리고 촉촉하거나 그윽하게 말이다. 길은 동행이다. 혼자 걸어도 혼자가 아니다. 가슴 아플 때 함께 아파하고 기분 좋을 때 함께 즐거워하는 가슴 따뜻한 동반자다.

다시,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동안 나는 맨몸으로 풍랑과 맞서보지도 않았으면서 내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쫓기듯 살아오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옛 이야기를 헌신짝 버리듯 한 것은 아닌지, 지나온 길과 지나온 세월과 지나오며 부딪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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