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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서원계곡에서

소나무의 푸른 기운과 호수의 물살과
바람의 화원이 만들어낸 초록 이야기

  • 웹출고시간2013.05.26 19:52:2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강호생
여행이란 낯선 설레임이자 닫혀있는 몸과 마음의 열어젖힘이다.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풍경을 몸으로, 가슴으로 흘러들게 하고 닫혀있는 생각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신비의 세계다. 그래서 대숲에도 마음이 시리고, 물소리 바람소리도 내 몸에 들어오면 청량하고 공명한다. 갈밭에선 쓸쓸하고 서걱거리며 숲속에선 바스락거리거나 그윽하니 발 닿는 순간마다 새로운 발견이자 축복의 연속이다.

여행을 즐기다 보니 투어리스트가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여행 10계명이다. 서두르지 말라. 특히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정상을 서둘러 오르겠다는 마음 때문에 허둥지둥 거린다. 올레길 둘레길을 걷다가도 다음 일정에 쫓겨 서둘러서 목적지를 다녀오려고 한다. 볼 것 다 보지 못하고 여흥을 제대로 즐길 수 없으니 절대 서두르지 말라. 욕심을 부리지 말라. 인생의 끝은 있을지 모르나 산길과 들길의 정상은 없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에 산을 오를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남들보다 빨리 오르려 하고 앞서 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저잣거리의 누더기 같은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그릇에 그 무엇도 담을 게 없을 것이다.

ⓒ 홍대기
배낭을 가볍게 하라. 사람들은 배낭 속에 많은 것들을 담는다. 대부분이 먹을거리와 상비약이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담으려 하면 안된다. 되돌아보면 이 많은 것들을 모두 소화시킨 게 얼마나 될까 후회막급인 경우가 많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야 한다. 무리를 짓지 말라. 국내 등산인구는 2천만 명 이상이다. 성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즐긴다. 이 때문에 앞동산 뒷동산 할 것 없이 한국의 산하는 온통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부산하고 웅성웅성 거린다. 홀로 외로이 떠나는 여행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오붓하게 걷는 여행이면 좋겠는데 산악회, 동창회, 계모임 등 들개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다. 당장은 즐거울 수 있지만 정신 사나워 다음날 상쾌한 마음으로 일하는 게 쉽지 않다.

오르려 하지 마라. 어느 산악인은 말했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라고. 애써 오르려 하지 말라. 내 마음과 발길 닿는 곳까지만 자박자박 걸어라. 그러다가 되돌아오면 또 어떠한가. 나의 삶과 나의 노정이 무익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니던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지금 당신은 비루하고 번잡한 일상, 심신이 피폐해진 슬픈 인생을 위로해 줄 그 무엇을 찾고 있을 것이다. 자연 속의 수많은 생명과 역사와 문화를 벗 삼으면 좋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구석구석 살펴보고 그 내밀함을 엿들어야 한다. 그리고 가슴으로 품고 마음속에 담아두면 어떨까.

생각의 그릇을 만들어라.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벗 삼았다면 이들과 하나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시인이 되는 것이다. 가벼운 시집 한 권, 에세이 한 권 들고 떠나라. 생각의 곳간을 채워라. 그리고 대자연의 이야기를 한 줄의 시로 남겨보자. 대자연을 호흡하고 대자연과 하나되며 대자연에서 얻은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써 보자. 누구나 가슴 따뜻한 서정시인이 될 수 있다. 계절에 어울리는 공간을 선택하라. 이 땅은 사계절이 분명하고 그 선과 색이 강렬하기로 소문 나 있다. 봄꽃과 대지의 기운을 맛볼 수 있는 곳, 한 여름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녹음방초의 숲속, 오방색 물결 가득한 풍요의 마을, 그리고 설경이 일품이거나 한유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뒷골목 등 계절에 맞게 투어하고 즐기면 기쁨과 감동이 두 배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라. 길이 있는 곳이라면 온통 사람의 물결로 가득하니 이왕이면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라.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 자연의 길을 찾아라. 기록하라. 우리는 죽기 전까지 걷는다. 직립보행을 하는 것 자체가 인생이고 운명이며 삶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억하고 남길 수 있는 저장고가 필요하다. 일기형식도 산문이면 또 어떠한가. 헛되지 않는 나의 삶, 소중하고 아름답게 연출하고자 한다면 기억의 저장고를 만들어라.

ⓒ 홍대기
사람들은 충북 보은하면 법주사와 속리산, 그리고 정이품송을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명소일진데, 오늘은 속리산 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호수의 마을, 숲속의 마을, 소나무의 마을 서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의 큰 가지 하나가 부러지자 언론은 온통 국가의 재앙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1993년의 일이다. 이후 정이품송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늠름한 자태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이품송의 정부인송인 서원리 소나무에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천연기념물 제352호인 정부인소나무는 정이품송과는 달리 뿌리 부근에서부터 줄기가 둘로 나누어진 채 참하고 푸른 기운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 하나가 작은 숲을 가꾸고 있는 것처럼 우람한데 정이품송과 비슷한 600년 정도의 세월을 달려왔다고 한다.


서원리는 정부인송을 시작으로 온통 소나무 숲이다. 숲속의 소나무는 물론이고 호수와 계곡과 들판에도 푸르고 기개 곧은 소나무가 널려 있다. 안개 짙게 깔린 새벽에는 보일 듯 말 듯 신비스러움이 끼쳐오고, 햇살 좋은 한낮에는 말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하며, 해질녘의 서원리는 솔숲 사이로 붉게 물든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낚고 인생도 낚는다. 그 풍경의 신이함이 모든 감각을 통해 몸속으로 밀려오니 소리로, 색깔로, 그리고 냄새로, 풀꽃향기로 나그네의 시심을 울린다.

ⓒ 홍대기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은 속리산 자락을 품고 있는 삼가저수지인데, 저수지를 중심으로 상류의 만수리에는 만수계곡이 있고 하류의 서원리에는 서원계곡이 돗자리를 깔고 있다. 멀리 천황봉까지 계곡이 이어지기 때문에 속리산과 구병산 줄기의 협곡을 병풍처럼 감싸면서 기묘한 풍광을 자랑하고 있으니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곤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 호들갑 떨지 않고 소나무숲 그늘 아래에서, 계곡과 절벽을 사이에 두고, 오솔길과 산길 들길을 오가며 잃어버린 청춘과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노래한다. 세월은 굽이굽이 휘돌아가고, 나의 길은 정처 없으니 소나무처럼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서 푸른 노래를 부르리라. 길 떠나는 이들이여. 오늘의 출발역이 곧 내일의 종착역이라는 것을,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기쁨이고 아름다운 꽃송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라. 여행이 끝나고 일상에 서면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니 인생은 여행이다. 끝없는 여행이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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