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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6.23 17:53:2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홍대기
물은 선하고 맑으며 향기롭다.

달콤한 행복이자 고단한 삶속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며 청춘이며 사랑이다.

땅 속 깊은 오지의 저 끝에서

젖 먹던 힘을 다해 용솟음칠 때는

바람보다 햇살보다 구름보다 꽃보다

더 큰 하늘이다 우주다 태양이다.

그리하여 물은 계곡을 따라 폭포수가 되고

무디어진 촉수를 되살리는 소리가 되고

마른 대지에 촘촘히 피어나는 빛이 되고

지저귀는 산새처럼 숲 속의 악동이 된다.

다시 물은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아픔을 딛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월과

그렁그렁한 풍경을 함께 감싸며

바다로 바다로 달려간다.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저녁에 한 잔,

그리고 커피 한 잔의 풍경을 마시며

솔잎 향을 마시며

꿈을 빚고 낭만을 빚는다.

내 안의 사랑도 빚고 헛헛한 마음도 빚고

정처없는 나그네의 빈 가슴마저도 실실하게 한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듯이

물은 제 아무리 궁핍한 삶을 살아도

자글거리는 볕 앞에서 구걸하거나

소슬한 바람 한 점 빌리는 일 없다.

물은 있는 듯 없는 듯, 가는 듯 마는 듯

이랑져 흐르고 떠도는 혼령처럼 정처 없다.

그렇지만 내 안의 자궁이고 자연의 숨결이며

반짝이는 별이고 대지의 어머니다.

고여 있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새싹들이 여릿여릿 머리를 내밀면서,

남녘의 매화가 붉은 꽃망울 터뜨리면서,

푸른 숲속의 열정과 붉게 물든 단풍의 순정과

벌거벗은 나목으로 도열해 있는 산정의 쓰라린 고독의

마디마디에 물은 그곳에 있었다.

잠시 삶의 깃을 접을 뿐 한시도 방심하거나

곤궁함에 사위어 간 적이 없다.

차고 가련한 여인의 하얀 속살을 촉촉이 적실 때에도,

산등성이 바람이 휘휘 달려와 밤꽃 향기를 풀어놓는 초여름

써레질과 모 심기와 밭가는 구릿빛 농부의 염원 속에서도,

녹록치 않은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장독대 정화수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어머니의 간절함에도,

조근조근 주고받는 소풍길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에도,

물은 사유의 보궁이다. 춘정의 달콤함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내 청춘의 노래다.

그래서 물이다. 생명이다. 예술이다.

우리의 삶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다.

우리는 날마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신다.

무지개를 품는다.

춤추는 이 땅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혀 끝에서 피어난는

백만송이의 꽃이다.

그리하여 물을 마시는 것은

가슴에 선하고 맑고 향기로운

호수를 들이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푸른 호수를 마신다.

ⓒ 강호생
우리는 생명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의 마지막 마디까지 물을 품으며, 물과 함께 존재한다. 일상이자 운명같은 것이 되었기에 물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은데, 생각하니 우리는 그동안 물을 너무 홀대해 왔다. 즐거운 소풍길을 이야기하면서 사유의 보궁이자 소풍길의 원류는 숲도 길도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물로 시작하고 물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 홍대기
고맙게도 이같은 깨달음은 '멋진 신세계' 장계관광지에서 터득했다. 구읍에서 시작된 향수 30리길의 종착점이기도 하고, 정지용 시인의 시를 주제로 한 문학공원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며, 숲과 호수와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장계관광지는 구읍에서 보은방향 37번 국도를 따라가다 길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놀이기구 가득한 유원지였는데 낡고 쇠락한 공간을 정지용 시인의 시를 테마로,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새롭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곳에는 모단광장, 모단가게, 모단스쿨, 카페프린스 등의 테마가 있는 시설물과 일곱 걸음 산책로가 있다.

ⓒ 홍대기
이 중 시인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은 대청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일곱 걸음 산책로'가 아닐까. 일곱 걸음 산책로라는 이름은 정지용 시인의 시 '꽃과 벗'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의 이름뿐 아니라 풍경조차 시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깔끔하게 단장된 건물의 외벽, 피로해진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 대청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을 추억하는 공간…. 발 닿은 곳마다, 눈길 마주하는 곳마다 시인의 주옥같은 시가 맑은 웃음으로 인사한다. 호수를 품고, 시인의 향수를 노래하며, 예술의 가치를 담는 싱그러운 초록 여행이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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