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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전쟁과 평화가 공존한 장소로 각광

무극전적국민관광지·반기문유엔평화기념관

  • 웹출고시간2023.06.20 11:19:58
  • 최종수정2023.06.20 11:19:58

무극전적국민관광지 전경

ⓒ 음성군
[충북일보] 음성군이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역사적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일 군에 따르면 음성은 6·25전쟁 첫 승전지이자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유엔의 8대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전 총장의 고향이다.

해마다 6월 25일이면 떠오르는 명소가 음성군 음성읍 무극전적국민관광지다.

6·25전쟁 초기 연전연패하며 후퇴하던 국군이 처음으로 승전보를 전한 곳이 음성읍 감우재다.

1950년 7월 4일부터 10일까지 네 차례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 6사단 7연대와 1사단 11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상대로 북한군 1개 연대 이상 병력을 무찔러 6·25전쟁 최초의 승리를 거뒀다.

이 음성지구전투(감우재·무극리·부용산·동락리 일대)로 국군 사기를 드높였다.

북한군의 남하를 늦춰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시간을 벌면서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한 전투다.

감우재전승기념관 전시실

ⓒ 음성군
군은 이를 기념해 1986년 6월 무극전적국민관광지를 조성하고 2003년 11월에는 감우재전승기념관을 건립해 호국·보훈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상 2층 건축 전체면적 348.38㎡의 기념관에는 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의 병기류, 복장류, 보급품, 총탄에 맞아 깨진 감우재 마을 종, 생활도구 등 약 200점이 전시돼 있다.

이 곳에는 21세기 새천년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377점의 문화유산을 선정해 500년 후에 개봉하도록 한 '음성타임캡슐 2000'도 있다.

군은 당시 전쟁을 직접 목격한 마지막 생존자 김갑수 선생의 이야기를 '6·25 감우재 전투 마지막 목격자의 이야기를 듣다'란 제목으로 음성군 공식 유튜브 채널 '상상대로 음성'에 올려 전쟁의 실상을 기록했다.

이 같은 전쟁과 대비되는 평화 상징 건축물도 있다.

반기문유엔평화기념관이다.

반기문평화기념관 전경

ⓒ 음성군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원남면 행촌리에 2018년 12월 개관했다.

7천803㎡의 터에 건축 전체면적 2천856㎡ 규모의 이 기념관은 반 전 총장과 유엔 관련 전시와 체험활동, 주제별 기획전시가 열린다.

지난달에는 전 세계 인권문제와 인권 침해를 알리고자 결성한 세계 원로 지도자들 모임인 '세계원로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조병옥 음성군수는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 세대에게 전쟁의 무서움과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알게 해주는 무극전적국민관광지와 세계평화의 상징 반기문유엔평화기념관에 많이 방문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감우재전승기념관과 반기문평화기념관 운영 시간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 추석, 국경일, 법정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관람은 무료로 할 수 있다.

음성 / 주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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