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천 과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방향성은 변화가 아닌 안정이다. 아직 전체 지역구 공천 작업이 끝나지 않은 걸 감안하더라도 혁신의 열망과는 거리가 멀고 잡음 없이 무탈한 길을 가고 있다. 영남과 수도권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공천 신청한 국민의힘 현역의원 몇 명을 민주당 소속 현역의원이 있는 지역구로 이동 배치한 것 말고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 이런 방식은 공천 신청자를 재배치 한 것일 뿐 고뇌에 찬 혁신의 노력은 아니다.
*** 인적쇄신·세대교체 어디로 갔나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며 출범한 비대위가 만든 시스템 공천이라기에는 감동 부재를 넘어 관심을 끌기에도 역부족이다. 인적쇄신을 통한 세대교체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도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기 힘든 게 선거인데 국힘의 공천에는 인적쇄신이 보이지 않는다. 세대교체는 현역의원 교체와 동의어다. 혁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세대교체 없이 선거에 임하려는 국힘의 자세는 오만이거나 실책, 둘 중 하나다.
충북의 경우 8개 지역구 가운데 청주 흥덕과 청주 청원을 제외한 6개 지역구에 대한 공심위 심사 결과 청주 서원은 단수 공천으로, 나머지 5개 지역구는 경선 지역구로 정해졌다. 국힘 공천 시스템에 의하면 현역의원 컷오프 대상이 충북·충남·대전·세종의 충청권에서 1명, 전국에서는 7명인데 충북의 현역의원 4명 모두 살아남아 경선을 거치게 됐다.
치열한 경선을 치르면서 낙마하는 현역의원이 나올 수 있지만 국힘의 공관위 차원에서 교체된 현역이 없다는 점은 혁신을 기피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21일 현재, 전국 253개 지역구 중 70% 가까이 진척된 공관위 심사 단계에서 컷오프 당한 지역구 의원이 전무할 만큼 국힘의 현역의원들이 양호한 의정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공천 과정만 놓고 보면 국힘이 왜 비대위 체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망각하게 된다. 국힘이 극심한 진통 끝에 비대위를 구성한 가장 큰 이유는 집권여당에 대한 사망선고였다. 기존의 국힘 지도부가 발휘하는 무능한 리더십과 국힘이 보여준 총체적 무책임에 국민이 등을 돌렸다. 위기에 몰린 국힘이 부랴부랴 외부에서 지원 받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태동한 게 한동훈 비대위다.
한동훈 비대위가 개혁과 변화를 절박하게 입에 올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초기 분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공천 심사가 조용하게 넘어가는 데는 민주당의 공로가 크다. 친문재인 현역의원 지역구에 친이재명 후보를 심으려는 자객공천 시도로 민주당이 혼란스러운 덕분에 국힘의 한동훈 비대위가 굳이 세대교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한다는 중간평가다.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과 안방을 양보하고 험지를 택한 하태경 의원만 억울하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국힘에서 이들 두 명 말고는 불출마나 험지를 자청한 다선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이미 정해진 공천 룰에 따르면 현역의원 하위 10%인 7명만 컷오프 되므로 국힘당의 의지로 실행하는 세대교체는 한계를 벗기 힘들다. 경선시 3선 이상 의원 15% 감점을 적용하더라도 득표율 기준이어서 다선의원이 누리는 기득권을 상쇄하기에는 약하다.
공천 과정에서 발생하는 후유증과 잡음을 최소화하는 게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주요 수단이라 해도 개혁을 외면한 대가로 구태정치를 이어가는 것은 비대위 체제 정당의 길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는 집권여당의 기사회생도 난감해 진다.
국힘의 공천 방식은 중앙당(비대위)이 정치혁신을 달성하려는 사명감으로 무장하여 세대교체의 키를 쥐는 게 아니다. 중앙당은 세대교체의 보조 역할에 머무르고 현역의원과 원외후보에게 경선 기회를 줄 테니 능력껏 싸우라는 거다. 현역의원을 꺾으면 세대교체요, 현역의원이 이기면 무난한 공천이 되는 식이다.
*** 책임 안 지려는 비대위
국힘 비대위가 외형적으로는 당을 강하게 장악해 끌고 가는 모양새지만 속속 드러나는 공천 심사를 살펴보면 비대위가 책임질 일을 만들지도, 떠안지도 않고 있다. 혁신공천의 수단이어야 할 경선이 목적으로 뒤바뀌는 경선 관리 비대위가 돼 버렸다. 좋게 말하면 민주적이고 다른 면으로는 집권여당이 가진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