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의 명칭이 '미호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 3월 충북도가 환경부에 하천명 변경을 건의하여 국가수자원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7월 7일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천'에서 '강'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미호천은 음성, 진천, 괴산, 증평, 청주 등 충북 5개 시·군을 지나 세종에서 금강과 합류하는 충북 중부권역 대표 하천이며 유역면적이 충북 전체 면적의 25%를 차지하는 등의 위상으로 볼 때 '강'의 명칭 사용은 지당하다고 본다.
*** 지리책에 동진강, 미곶강 기록
문제는 '강'이 아니라 '미호천'에 있다. 미호천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이 일대를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식민지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통용된 어느 지리책에도 미호천이라는 지명은 없다. 동여도(18세기 중엽), 해동역사(1823년), 대동지지(1865년), 증보문헌비고(1903년~1908년)에도 미호천이라는 표기는 없고 물줄기를 따라 구간별로 오근진, 작천, 진목탄, 동진강 등 여러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여러 이름으로 불리거나 서로 다른 한자음으로 불리는 것을 한가지 명칭으로 보고하라"(조선총독부 관보 638호, 1914년 9월 16일)고 지시하여 '미호천(美湖川)'으로 개명됐다. 여러 가지 하천명을 한가지 명칭으로 통일시키라는 지시는 식민지에 대한 효과적 지배 체제를 강화한다는 뜻이다. 일제에 의해 미호천으로 둔갑하기 이전에 두루 사용되던 우리 선조들 냄새 배인 여러 가지 고유의 하천명과는 전혀 무관한 옷을 억지로 입힌 것이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100년 간 일본제국주의가 붙인 명칭으로 불리어 온 게 미호천이다.
충북도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명칭 변경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며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일제가 원활한 식민 통치를 위해 붙인 지명은 미호천뿐 아니라 충북과 전국에 무수히 많으며 이를 당장 원위치 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미호천을 강으로 명칭 변경하는 중대한 사안을 추진하며 일제 잔재를 영원히 고착화 시킬 수 있는 미호강으로 명명한 것은 문제가 있다. 충북도가 환경부에 미호천 명칭 변경을 건의하기 전에 역사적, 문화적 차원의 신중한 검토가 이뤄졌어야 하며 미호천의 유래를 객관적으로 공유하고 유역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어야 한다.
이시종 전 충북도지사가 지난해 9월 '물이 살아있는 미호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는 미호천이 미호강으로 변경되기 이전 시점이다. '물이 살아있는 미호강 프로젝트'는 '미호강 수질 1급수로 복원' '미호강 수량 대량 확보' '미호강 주변 친수여가공간 조성'을 골자로 향후 10년 간 총 6천500억 원을 투자한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용역을 올해 2월 발주하고 내년 6월 용역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퇴임을 앞둔 도지사가 자신의 임기 내에 용역 결과도 나오지 않는 대형 프로젝트를 후임 도지사에게 넘겨 부담을 준다거나, 미호강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별개로 치고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졸속 변경한 충북도는 지탄을 피할 수 없다.
*** 명칭은 정체성의 집약
충북도의 건의를 받아 미호천의 명칭 변경을 심의한 환경부조차도 보도자료(2022년 7월 5일)를 통해 "미호강은 1900년까지는 통일된 지명이 없이 불려오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미호천으로 표기되어 지금까지 그 지명을 사용해 왔으나 역사문헌자료에 따르면 미호강은 동진강, 미곶강 또는 지역에 따라 북강, 서강 등과 같이 '강'의 명칭을 사용해 왔다"고 밝혀 미호강 명칭이 일제잔재인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동진강, 미곶강 등 강의 명칭이 이미 존재했으나 충북도의 요청에 따라 미호강으로 변경해 줬다는 얘기다.
강은 생명의 원천이며 최우선적 생존 조건이다. 그런 강의 명칭을 소홀히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충북도가 역사적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동진강 등 강의 명칭을 버리고 굳이 일제 잔재인 미호강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청주시 통합 이전인 2013년 청원군이 강내면을 미호면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다가 '미호면'은 일제 잔재라는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사례가 있다. 이번 미호강으로 명칭 변경 추진 과정에서도 미호천 유역 이장단협의회가 미호강 반대 현수막을 걸며 항의했고, 운초문화재단은 충북도와 환경부, 국민신문고 등에 일제 잔재 '미호강'이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동진강'으로 명칭 변경해 달라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충북도가 미호강으로 관철시켰다.
오근진, 작천, 진목탄, 동진강에 물길이 흐르면서 인근 유역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형성 한 이래 가장 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미호강 프로젝트이며 명칭 변경이다. 이름은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정체성의 집약인데 일제 잔재를 극복하기는커녕 대대로 답습하려는 행정이 놀랍기만 하다. 미호강은 역사문헌에 기록된 명칭으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