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 총장 선출 문제가 지역사회의 이슈로 등장한지 한참 지났다.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극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 기형적 총장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대학 총장이란 자리는 교육적·사회적 권력과 명예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한 대학을 대·내외적으로 대표하는 실질적 존재이면서 대학의 교육정책 전반에 대해 관여하고 보직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한다. 지성의 상징임과 동시에 사회 정치적으로도 매우 존경 받는다. 대학 총장의 자리가 그렇다는 것이지 총장이 다 그런 건 아니다.
*** 총장 투표 선거룰 기 싸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학 총장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재 거의 모든 국립대 총장들은 투표로 뽑고, 사립대 총장들은 대부분 사학재단으로부터 임명 받으므로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긴 하다. 구성원들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학 총장과 사립학교 법인이 지명한 총장은 호칭은 같아도 위상이 다른 게 현실이다. 과거 총장 직선제가 한창 일 당시 교수들의 직접 투표로 당선된 사립대 총장들의 자부심과 사회적 존경심은 옛날 얘기가 됐다. 그만큼 투표는 힘이 있다.
국립대인 충북대 총장 선출 과정에 진척이 없다. 한국교통대도 비슷한 처지다. 총장 후보 선출을 위한 교수, 직원, 학생의 투표 참여 비율을 놓고 구성원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 구성원들이 더 많은 비율의 투표 참여를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의 양보를 요구하며 대치 중이다. 선거가 일상인 정치 현장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 이제는 대학 총장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공무원법 개정으로 이번 국립대 총장 선출부터 교수, 직원, 학생의 투표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각 구성원들의 투표 참여 비율은 대학 자율로 정하게 되어 있어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다.
민주화 이후 대학 총장 선거는 국립·사립대를 막론하고 총장 직선제는 곧 교수 직선제를 의미했고 사립대는 교수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총장 직선제를 단 한 번도 실시하지 못한 사립대학이 전국에 많다. 사립학교법에 의해 총장 임면권이 사학 재단에 있으므로 총장 직선제를 하고 말고는 사립학교 법인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이다.
국립대의 총장 직선제는 진화를 거듭하여 교수들만의 직선제에서 시작하여 직원과 학생들의 투표 참여를 자율적으로 정하다가 오늘날 교수·직원·학생 투표 참여 권리 보장에 이르렀다. 문제는 구성원들의 투표 참여 비율을 명문화 하지 않고 자율에 맡김으로써 대학마다 기 싸움이 치열하고 총장 선출 과정이 진행되지 않아 혼란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같은 논란은 예정된 수순이다. 어느 구성원이 법적으로 보장된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참여 비율을 스스로 양보하겠는가. 어느 구성원의 대표가 자신들의 대표성을 하향시켜 합의해 주고 욕을 먹겠는가를 생각하면 난망한 일이다. 이번 한 번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에 양보하면 차기 총장 선출에도 기준으로 준용될 게 뻔한데 어찌하겠는가.
*** 대학 수준 맞는 총장 선출 될 것
그러나 마지막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대학의 집단 지성을 믿어서가 아니다. 선거를 치르는 정치적 행위의 판단 기준은 지성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우선이다. 법이 정한 기한 내에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지 못하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총장을 임명하게 돼 있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지성의 전당이긴 하나 현실적 판단을 가벼이 여기는 공간도 아니다. 대학에 주어진 총장 선출권을 내부적 합의를 이루지 못해 반납해도 좋을 만큼 비현실적 집단은 아니다. 구성원의 투표 참여 비율을 고수하다가 끝내 합의 불발로 관제총장을 받아들일 때 돌아오는 이익과 구성원이 희망하던 투표 참여 비율을 낮춰 조정해서라도 직선 총장을 선출할 때 발생하는 이익을 비교할 때 어느 이익이 큰 것인가는 자명하다. 반대로 어느 길을 선택했을 때 대학이 입는 치명적 상처가 불가역적인지는 지극히 명확하다.
대개의 정치판이 그렇듯이 선거룰 협상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은 없으나 외부의 힘에 의존할 위험시기에 근접하여 초읽기에 들어가면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가 나온다. 다만 궁금한 것은, '모든 조직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대표를 선출한다'는 명제의 유효성을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