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권자의 시간이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뚜껑 열기 전에는 모른다는 게 선거다.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가 어디로 불똥 튈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다. 선거의 속성은 미래 지향과 과거 회고의 변칙적 대립이다.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은 상대의 어제와 오늘을 심판하자는데 무게중심을 둔 과거 회고형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대체로 징벌적 투표행태로 나타난다. 미래 지향 접근방식은 정책, 비전 등을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가치투표 행태로 드러난다.
*** 징벌적 투표행태
과거를 회고해 보면 역대 선거는 거의 예외 없이 과거 회고형, 징벌적 응징투표였다. 이번 총선 역시 유권자가 여당과 야당 중 어느 당을 더 응징할 것인지 관심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두 거대정당의 선거전략이 미래지향 접근을 일찍이 포기한 채 상대당의 약점과 상처를 들춰내는 데 몰두 중이다. 어느 당이 더 나쁘고 어느 당이 덜 나쁘냐가 투표 기준이 될 전망이다.
투표에 참여할 유권자의 8할 정도는 이미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영 싸움으로 갈려 사안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고 내편 네편에 의해 지지여부를 정하는 투표행태가 심해져서다. 나머지 2할 정도가 중도층이거나 부동층이다. 유권자 성향을 오랫동안 국민의힘 계열 3분의 1, 민주당 계역 3분의 1, 중도·부동층 3분의 1로 분류하는 기준이 있었는데 사생결단의 진영논리 횡행으로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모든 선거는 약 20%에 속하는 중도층이 승패를 결정한다. 중도층 공략이 핵심 선거전략이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소수의 중도층, 어느 정당 성향에도 기울지 않은 스윙보터 유권자의 선택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언론보도를 보면, 여론조사 전문가와 정치평론가들의 다수가 민주당이 1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의석수에 있어 민주당 감소와 국민의힘 증가 변동폭이 관건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은 이종섭 호주 대사와 황상무 전 대통령 수석 처리 문제, 물가불안, 의정대립 등으로 인한 정권심판론이 악재라고 한다. 민주당의 최대 악재는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와 여소야대 입법 폭주인데 국민의힘이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선거 국면에서 보이는 특이 현상으로 조국혁신당 등장과 지지율 추이가 거론된다. 웬만한 양심과 상식으로는 얼굴 들고 다닐 엄두도 못 낼 텐데 조국은 정당을 만들었다. 보통의 정당이라면 공천 탈락 사유에 포함될 게 뻔한 사람이 조국인데 당 대표를 맡았고 비례대표 지지율이 민주당을 위협하는 기현상이다. 국민의힘에 반대하고 민주당을 비판하는 '반국비민' 성향의 유권자들이 조국혁신당으로 결집하고 있는 것이 여론조사에 읽힌다.
민주당 위성 비례 정당에 투표해야 할 유권자들이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더라도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을 찍을 것으로 판단되어 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현상을 국민의힘이 마음 편히 볼 수도 없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았던 '반국비민' 유권자들이 비례 정당으로 조국혁신당을 찍으러 가서 지역구 투표에 민주당 후보를 찍을 확률이 높아진다.
선거 이후 당명은 달라도 민주당과 조국당이 공동보조를 맞춰 대통령을 공격할 게 분명해 선거 분위기가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의 정국이 윤석열 정부 초기에 비해 갈수록 순탄치 못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미 조국 대표가 공언한 바 있다. 국민의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 시대의 명운 결정
앞으로 선거가 2주일 남았다. 유권자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짧게는 4년이 달렸지만 국가적으로는 한 시대의 명운이 걸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주인이며 갑(甲)인 정치제도임에도 스스로 권리를 반납하여 정치인들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는 지배하는 과두제의 철칙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더라도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 자체가 민주정체 구성원의 본분 수행이다.
유권자의 올바른 갑질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