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국방을 신뢰하고 싶다

2023.01.04 16:07:13

이정균

시사평론가

북한 무인기 5대가 지난 달 26일 서울, 김포, 파주, 강화 일대를 최소 7시간 동안 휘젓고 날아다니다가 온전히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건은 실로 충격이다.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를 추적, 격추하는 데 실패한 국방력에 실망했고 불안감을 숨길 수 없다. 군 당국은 "무인기를 식별했으나 민가나 도심지 상공이라 비정상적인 상황 발생 시 우리 주민 피해를 고려해서 사격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우리 헬기가 100여 발의 기관포를 사격하고도 격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작전개념이라면 앞으로도 북한 무인기가 우리의 영공을 침범하여 민가나 도심지 상공에 들어서기만 하면 격추시키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 북한 무인기는 격추되었어야

이번 사건은 많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국방력을 믿어도 되는지 근원적 의문을 던지게 했다. 그동안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일으킬 때마다 우리 군이 강력 대응을 자제해서 그렇지 작심하고 보복하려 한다면 첨단 무기로 무장한 남한의 압도적 군사력을 북한이 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신뢰했다. 그러나 북한 무인기 5대를 7시간 동안이나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한 국방력을 목도하니 우리 군에 대한 신뢰에 균열이 생긴다. 대응을 자제한 게 아니라 실패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 정도의 국방력이라면 어떻게 북한의 더 큰 실제 공격으로부터 국민과 영토를 보호 할 수 있겠는가. 이 지점을 군 당국도, 국민도 정말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스틸웰 전 미 국무부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의 "북한 무인기는 격추되어야 했다"(They should be shot down)는 지적에 많은 문제점이 응축돼 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무수한 국내외적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결정적 토대는 든든한 국방에 대한 믿음이었다. 북한의 무장간첩 남파, 서울 불바다 위협, 연평도 해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 갖가지 도발을 해 와도 국민들은 동요하지 않으며 경제 발전, 민주화 투쟁, 세계시민 대열에 매진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해외에서는 한반도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조마조마하게 생각하는데 정작 한국에 와 보면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태평하게 일상생활을 해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국방을 신뢰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며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공언하며 햇볕정책을 밀어 붙일 때만 해도 "북한에 퍼주기"라는 비판은 무성했어도 남한 국방력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현실화, 고도화 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실제상황으로 급변했다. 이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 공격 능력 보유, 수중발사, 이동식 발사대, 고체연료 이용 수준을 갖췄고 대남 선제공격과 남한 맞춤형 핵탄두 개발을 공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우리 군이 동해로 쏜 미사일은 뒤로 날아가 떨어지는 망신을 보여줬다.

북한의 핵에 대응하기 위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으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기는 하나 북한처럼 국제적 고립을 감수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일각에서는 만약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과연 미국이 본토에 대한 핵 공격 위험을 무릅쓰면서 남한을 핵우산으로 보호해주겠느냐는 걱정을 할 만큼 안보환경의 취약성이 노출된 상태다.

*** 평화는 평화롭게 오지 않는다

바로 이런 시기에 북한 무인기 5대가 동시에 기만비행하며 남한 영공을 침범했고 우리의 전투기, 공격 헬기, 방공레이더 등 방어자산을 총동원했으나 7시간이 되도록 우왕좌왕 하다가 모두 놓쳐 버리고 말았다. 무인기 크기가 2m로 작아서 격추시키기 힘들다거나, 우리 주민 피해를 우려했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무능이 드러날 뿐, 무능을 용납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베트남전쟁 내내 미국의 전폭적인 무기 지원을 받아 군수물자 보급이 충분했던 월남군과 변변치 못한 재래식 무기에 의존한 월맹군은 군사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월남은 처참하게 패망했다. 배에 기름이 낀 월남군의 정신전력이 배고픈 월맹군과 베트콩에게 뒤처졌고,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월남군이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월맹군에게 패배한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가 뼈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전쟁은 없어야 하나 평화를 입에 달고 산다하여 전쟁이 막아지지는 않는다. 평화는 평화롭게 지켜지지 않는다. 드론 부대 확대 개편, 무인기 방어 신무기 도입 등이 지당한 사후 대책이긴 한데 그에 앞서 우리 군의 신뢰 회복을 위한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국민은 국방을 신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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