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이 온 국민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선물했다. 2020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하여 세계의 축구 강호들과 당당히 겨뤄 12년 만에 16강 진출을 이루는 과정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남미의 축구 강국 우루과이 전에서 무승부로 비길 때만해도 벤투 감독의 한국형 빌드업 축구가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어도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이후 치러질 나머지 경기에 기대를 걸게 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경기인 가나와의 대결에서 경기의 내용은 좋았으나 2대 3으로 패하면서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가 복잡해졌다.
*** 묵묵히 준비한 기적
우리가 조별 예선 마지만 상대인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만 하고 우루과이와 가나의 대결에서 우루과이가 우리의 입맛에 딱 맞는 점수차로 이겨줘야 16강 진출이 가능하게 돼서 큰 기대를 걸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포르투갈은 벤투 감독의 모국이며 세계적 스트라이커 호날두가 주장을 맡고 있는 강팀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우리가 포르투갈을 꺾기는 했으나 이번에도 그런다는 보장이 없었다. 공격수인 주장 손흥민 선수의 안면 수술로 인한 마스크 착용, 역시 기대를 많이 받는 공격수 황희찬 선수의 부상에 따른 앞선 경기 결장, 수비의 핵 김민재 선수의 부상 등 악재가 많았다. 거기다가 가나와의 경기가 끝난 뒤 심판에게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은 벤투 감독은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휘하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을 때, 모두가 의심할 때, 묵묵히 준비한 자에게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종합 악재를 뚫고 우리 선수들이 포르투갈을 드라마틱하게 격파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손흥민 선수가 70m를 치고나가 포르투갈 선수 7명을 무력화 시키고 오직 한 가지 길 밖에 없는 가랑이 사이로 패스하여 황희찬 선수가 논스톱 슛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거두는 장면은 온 국민을 전율케 했다. 거의 절망적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현실로 불러낸 우리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커다란 행복을 선사했다. 비록 8강전에서 브라질에게 1 대 4라는 큰 점수 차로 패하여 여기에서 행진은 멈추지만 우리 선수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결실은 실로 값지며 그 의미는 오래도록 빛을 발할 것이다.
1980년대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을 휘두르던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소위 '3S정책'이라며 비판받던 단골 소재가 있었다.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 관련 정책이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3S 쪽으로 돌려 최면을 거는 우민화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스포츠 분야는 1981년 유치에 성공한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이 있고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 1983년 프로씨름, 1983년 농구대잔치, 1984년 한국배구슈퍼리그가 출범했다. 스크린 분야는 1980년 컬러TV 방송 시작, 전국적 VTR 보급, 1981년 영화 상영 규제 완화, 애마부인 류의 에로영화 범람(1982년 극장 개봉작 56편 중 35편이 에로영화라는 평가) 등을 든다. 성 관련 분야는 1982년 37년 만에 야간통행금지 해제로 성매매업소와 유흥업소 등 성 관련 산업이 증가하고 이와 더불어 조직폭력배들이 급팽창하는 부산물도 생겨났다. 이외에도 포르노 테이프 확산, 에로영화 흥행 등을 사례로 든다.
위의 사례들이 실제 우민화정책 차원에서 시도된 것인지, 아니면 경제사회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지에 대한 끝장 결론이 날 리 없는 사안이기는 한 데 이러한 논란이 존재했던 건 사실이다.
*** 동시대인의 자랑스러움
아이러니 하게도 국가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국민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전해 주는 영역은 3S 중에 스포츠와 스크린이 단연 압도적이다. 국제대회에 출전해 국위를 선양하고 개인의 명예를 드높인 스포츠 선수들이 부지기수이며 이들을 보며 국민들은 울고 웃을 수 있었다. 한류로 지칭되는 K무비, K드라마, K팝 등의 엔터테인먼트는 스크린 산업의 중추에 해당한다. 비단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처럼 전문적인 전업인은 아니어도 생활체육과 동호인으로 문화활동을 하는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실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도, 삶의 방식도 많이 바뀐 것이다.
2020카타르월드컵 대회에서 16강 진출에 머물렀다고 우리 선수들을 비난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브라질 전에서 보듯이 개인기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 현격한 실력 차이에도 주눅 들지 않고 그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주며 감동의 대서사를 쓴 젊은이들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쏘아 올린 것은 희망이었다. 이런 젊은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