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 속지 마라"

2024.06.26 14:33:42

이정균

시사평론가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 되 나온다" 구한말과 해방 정국 시기 민초들 사이에 불렸던 민요다. 날카로운 송곳에 급소를 찔린 것처럼 전율 돋게 하는 예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을 이해하는데 이처럼 간단명료한 정의가 달리 있을까 싶다. 지난 19일 러시아와 북한이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명시한 북·러 조약을 맺자 "소련놈에 속지 마라"가 다시 떠올랐다.

-북·러의 군사동맹 복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기 전인 6월 5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은 걸 높이 평가한다"고 발언하여 한국을 안심시켜 놓은 뒤 북한과는 군사동맹 복원 조약을 체결했으니 우리 뒤통수를 쳐도 너무 세게 쳤다. 푸틴이 한국을 대놓고 조롱하며 안보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러시아에 반격할 수 있는 카드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할 수도 있는데 앞으로 러시아가 하는 걸 봐 가며 결정하겠다는 경고성 발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이에 대해 푸틴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한다면 아주 큰 실수"라며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훤히 들여다보며 공격해 들어오는 러시아다. 흔히 속인 놈보다 속은 자가 문제라고 하는데 국제관계에선 더 치명적이다.

우리가 아무리 북·러 조약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목소리 높이고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를 이끌어 내도 꿈쩍할 두 나라가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범국 러시아에게 다양한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등 무기를 공공연히 제공하는 북한을 강도 높게 제재해 왔다. 그러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걸 넘어 북·러의 군사동맹 관계 격상을 목도하고 있다.

단언컨대 북·러조약을 폐기하거나 수정할 가능성은 없다. 푸틴이 말하기를, 한국은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북·러조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나오는 마당에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우리가 외교적으로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경제적 제재 등의 국제규범을 거론하지만 외교적 수사에 그칠 뿐이다. 외교적 노력으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결정적 안보 불균형을 해소할 수는 없다.

답은 핵에 있다. 한국이 살려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 밖에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는 남한을 향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악담으로 협박하더라도 대남 선전용 공갈로 치부하고 넘겨왔다. 하지만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현 시점에는 핵공격 협박을 공갈이 아니라 실질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북한의 핵무기가 군사력 세계 5위인 남한의 재래식 무기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미국의 핵우산을 믿어도 되는지 의구심 갖게 했다.

핵무기와 미사일 고도화에 성공한 북한이 미국에게 맞짱 뜨자고 덤벼드는 걸 보면서도 경제 제재가 두려워서 남한은 자체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못한다. 그 많은 핵무기를 폐기했던 우크라이나가 핵보유국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엄청난 피해를 입으며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걸 실시간 지켜보면서도 남한은 지금보다 못살게 될까봐 자체 핵 보유를 망설인다.

우리의 안보가 얼마나 더 심각한 위협에 처해야 자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남한에 대한 핵 선제 타격을 법제화 한 북한과 양적 질적으로 북한을 훨씬 능가하는 핵 능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적 동맹국 조약을 맺었다. 우리에게 물러설 여지가 어디에 있는가.

-생존 위한 자체 핵무기 필수

미국 의회와 학계에서도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 혹은 나토식 핵 공유가 거론되는 상황인데 우리가 자체 핵 보유 필요성을 꺼릴 시기가 아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체 핵무기 보유에 동의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북러조약 체결과 관련해 자체 핵무장과 잠재 핵능력 구비 검토를 국책기관 최초로 제안했다.

엊그제는 러시아(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 발발 74주년이었다. 제2의 6·25를 막으려면 자체 핵무기가 필수다. 한국의 자체 핵무기 보유는 생존을 위한 외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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