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MC 송해 선생님의 별세

2022.06.08 16:26:36

이정균

시사평론가·전 언론인

일요일 낮 12시 KBS TV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최고령 MC 송해 선생님이 별세했다. 올해 95세인 송해 선생님은 전국노래자랑 시청자이든 아니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 MC다. 35년 간의 최장수 MC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 된 그야말로 한국 방송연예계의 전설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여 스무 살 나이에 고향 황해도 재령을 떠나 월남한 후 남한에서 연예계 활동을 하며 온갖 부침을 겪었고 그토록 그리던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갔다.

***각박한 세상에 여유 선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방송연예계 풍토에서 시청자의 사랑을 송해 선생님처럼 긴 세월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 많고도 많은 연예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겠는가. 송해 선생님 부음 기사를 보면 오늘의 명성이 있기까지 일취월장 한 것만은 아니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마지막에도 간직하며 꼭 황해도 무대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싶다던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전국을 돌며 울고 웃었다. 전국의 지자체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을 자기 고장으로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송해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각박한 세상에 여유를 선사했다.

송해 선생님이 주목을 받는 것은 연예인으로 타고난 끼에 더해 성실한 노력과 체력관리로 정상의 인기를 꾸준히 누렸다는 점인데 특히 고령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최고령 MC의 자리를 오랜 동안 지켰다는 것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나머지 후반생을 새롭게 설계하여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는 추세에서 영원한 현역을 자랑하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평을 듣는 송해 선생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스갯소리로, 송해 선생님의 부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는 얘기가 회자됐었다. 저토록 나이 들어서도 돈을 잘 벌어오는데다가 중요한 건 전국을 다니며 방송하다보니 집에서 밥을 먹지 않기 때문이라고. 농담이긴 하나 우리나라 노년 문제의 현실이 녹아들어 있다.

노년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노년 문제가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우리나라를 재앙 수준으로 몰아넣게 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어제 오늘 듣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여 2022년 4월 현재 전국 평균 17.5%의 고령인구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노인 비율 7% 이상~14% 미만)를 넘어, 고령 사회(노인 비율 14% 이상~20% 미만)에 이미 진입한 것이며, 초고령 사회(노인 비율 20% 이상)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노인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은 초고령 사회 기준을 벌써 넘은 곳도 다수다.

우리나라 노년의 특징은 가난, 질병, 고독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노년으로 갈수록 더 가난해 지고, 질병은 더 늘어나고, 고독의 늪은 정해진 수순이다. 노년에 접어든 중년들의 최대 고민은 '지금보다 더 늙어서 병들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한다. 어떤 이는 현실적 대안이 없으니 노인요양원을 알아본다 하고, 다른 이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면 모두 불행해 지니 혼자서 버티다가 정리하는 게 옳다 하고, 극단적인 이는 우리나라도 안락사 제도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도 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이도 저도 문제다.

***하늘나라에서 "천국~ 노래자랑"을

내가 송해 선생님을 추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돌아가신 우리 엄마 때문이다. 생전의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방송이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일요일 교회에 다녀오신 엄마는 성경책과 찬송가, 돋보기가 들어있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TV를 켜고 열렬한 시청자 모드로 들어가곤 했다. 출연자들이 뽐내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지만 송해 선생님이 출연자들과 나누는 꾸밈없는 대화와 그때그때 상황에 맞도록 자신의 몸을 기꺼이 던지는 장면을 보며 요절복통 하는 엄마는 송해 선생님의 찐팬이었다. 어쩌다가 전국노래자랑을 못 보게 되거나 뒷부분만 시청하는 날엔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엄마의 실망스런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런 엄마도, 송해 선생님도 지금은 안 계신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송해 선생님이 "천국~ 노래자랑~~"하며 등장하여 수많은 찐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우리 엄마도 어느 곳엔가 섞여 박장대소 할 수 있기를 상상해 본다.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8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