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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파워 - 괴산 출신 안치호 한국농어촌公 기술안전품질원장

가난이 싫었던 빈농의 아들 첨단농업 주춧돌
새만금 프로젝트·간척지 매립·전문화단지 등 기획
농업기술 해외수출도…농업토목 기술 후손에 전파

  • 웹출고시간2014.01.26 19:44:38
  • 최종수정2014.01.26 19:44:38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으로 꼽혔던 새만금 사업, 벼 재배면적이 1천825㏊에 달할 정도의 광활한 영토가 새롭게 확보됐다.

이 곳에 구축된 워터프론트(Wwater Front). 워터프론트는 큰 강이나 바다·호수 등과 접하고 있는 도시공간을 의미한다. 워터프론트는 넓은 면적의 개방적 공간으로 과밀하며 폐쇄된 공간 속에 갇혀 있는 도시민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장소다.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서 태어난 안치호(57) 한국농어촌공사 기술안전품질원장.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을 죽도록 싫어했다. 학창시절 그는 삼시 세끼 끼니조차 때우지 못했던 60~70년대 조국의 첨단농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괴산 이담초와 목도중을 졸업한 그는 청주농고에 진학했다. 어려운 집안사정을 감안해 수업료가 전액 면제될 수 있는 성적우수 장학생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첫 발령지는 충북도청 치수과, 이후 건설과가 신설된 보은군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군대에서 중앙부처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1980년 제대 후 보은군청에 사표를 내고 옛 재무부에 발을 디뎠다. 전두환 집권 후 부처 통·폐합이 단행됐다. 그는 또 다시 사표를 냈다.

1980년 11월부터 공인감정사 공부를 했다. 동시에 한국농어촌공사 시험도 준비했다. 그리고 1981년 10월 한국농어촌공사 시험에 합격했다.

다른 공기업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러나 은사님의 권유를 받고 1982년 2월 한국농어촌공사에 입사했다.

농어촌공사 충북지사 근무 시절, 괴산 학동지구 양수장 설치공사 현장감독을 맡았다. 1983년 충주에서 충주댐과 연계된 달천지구 양수장 건설사업에 투입됐다. 이때부터 그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각종 라이센스(License)에 도전했다. 최근까지 10여 개에 달하는 자격증은 그가 쏟아낸 땀방울의 결정체다.

8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농어촌공사에서 그는 늘 신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직접 현장에 투입됐으며, 각종 인·허가까지 도맡아 처리했다.

1992년 토목직 중 유일하게 본사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면서 한국농어촌공사가 국가의 예산을 지원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충남 당진의 도비도농어촌휴양단지 조성사업. 그는 친환경농업교육장과 각종 휴양시설 등을 조성하는 등 '도비도의 신화'를 이뤄냈다.

2005년 1단계 새만금간척사업 개발보고서를 만들었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새만금 간척지에 경제자유구역청이 설치되자 안 원장은 토지공사와 경쟁에서 20년 간 사업시행자권을 획득했다.

2008년 9월 FEZ 사업시행자가 지정되고, 2009년 3월 새만금 경제자유구역 기공식이 열렸다. 이 곳에 그가 추진한 워터프론트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아이디어가 됐다.

2012년 1월 본사 사업계획실장 재직시 농촌환경에 맞는 농업전문화단지 모델도 제시했다. 축산과 원예, 채소, 화훼 등을 집단화(클러스터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2013년 한국농어촌공사 기술본부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농업기술을 해외에 수출함과 동시에 농어촌공사 최고의 기술메카인 기술안전품질원 승격을 주도했다.

지난 22일 취임한 초대 안치호 원장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최근 충북RCY위원회 3대 위원장에 취임했다"며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지상과제였지만, 이제는 우리의 농업기술이 해외로 수출될 만큼 첨단농업 노하우는 급성장했다. 퇴임 후에는 고향에서 각종 토목기술을 후손들에게 전파하면서 지역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동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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