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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파워 - 새마을운동 1호 농업인 하사용옹

"잘 살아보세~"…희망의 씨앗 전국에 심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하우스시설 전파
'나도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 자신감 키워
"농작물 기를 땐 제 자식처럼 잘 보살펴야"

  • 웹출고시간2013.11.11 22:13:35
  • 최종수정2014.04.01 14:11:13
식민지와 전쟁 등으로 우리나라도 가난에 신음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보릿고개'라 했던가. 먹을 게 없어 들과 산을 오가며 풀을 뜯어 먹었다. 단지 살기 위해서 말이다.

1973년 한국에 산업화 바람이 불었다. '잘 살아보세'는 일상에서 주고 받는 덕담됐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노래는 국민가요 같았다. 초록색의 새마을기(旗)는 전국 곳곳에서 펄럭였다.

충북농업의 대부(代父) 하사용(84)옹의 시간은 1974년 5월에 머물러 있었다. 전국에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던 당시, 故박정희 前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을 위해 힘써달라"는 말과 함께 받은 휘호를 들고 웃고 있다.

ⓒ 이주현기자
하사용(84)옹은 당시나이 마흔에 '새마을 운동 1호' 농업인으로 뽑혔다. 별다른 기술은 없었다. 그렇다고 돈이 많고 명예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내세울 거라곤 성실함뿐이었다. 그는 청원군 오송읍에서 하우스시설을 이용해 채소를 재배하는 청년이었고, 이제는 한세기 우리나라 농업의 한 획을 그은 대부(代父)가 됐다.

지난 8일 청원군 오송읍 정주리에 있는 하옹의 집을 방문해 두시간 가량 담소를 나눴다.

"배고픈 게 뭔지 감이 안 오지요? 살을 빼기 위해 밥을 굶는 것과는 비교가 안 돼요.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던 당시 농업은 질보단 양이었어요. 배고프니까 많이 먹으려면…. 농작물은 무조건 커야 했고 많이 생산했어야 됐죠."

하옹은 시간을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20여분 간 고난과 역경을 겪은 자신의 인생을 떠올렸다.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유명해진 계기를 '비닐하우스'라고 했다.

정부에서 보릿고개에 허덕이는 농촌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비닐하우스 재배를 권장했던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농어민소득증대특별사업'이란 특별 지시를 내렸다. 쉽게 말해 농사에 필요한 자금을 일부분 지원해준다는 것인데, 사업 대상기준은 까다로웠다. 농업인들에게 대폭적인 자금을 지원하되 이 사업을 이끌어갈 유능한 지도자가 있는 지역이어야 했고, 주민들이 20~30% 정도 자력 부담해야 했다.

하옹은 이미 1963년부터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했다. 조기 수확도 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를 받은 하씨는 충북 곳곳을 돌며 비닐하우스 시설법을 전파했다. 그 결과, 농촌 곳곳에서 비닐하우스가 집단으로 세워졌고, 배추, 시금치, 토마토 등 싱싱한 채소가 사시사철 출하됐다.

하옹의 표현을 빌리면 비닐하우스는 '채소들의 집'이다. 사람의 집이 무너져서는 안되듯,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아 애써 키운 채소들이 눈더미 속에서 죽어버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다는 굳은 믿음을 그는 갖고 있다. 채소들은 그가 매만지는 손길과 그의 발소리를 들으며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도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늘 푸르름을 자랑했다.

새마을 운동이 전국적 범위로 확산된 1971년부터는 새마을 정신을 전파하는 농업 선구자가 돼 기업체, 관공서, 학교, 심지어 교도소에서까지 초청을 받아 강연했다. 세련된 말재주가 없어 투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진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묵묵히 땅에 고개 숙여 살아가는 농부의 모습으로 감동을 줬다.

강연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겨울에 폭설로 숱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데 어째서 하옹의 비닐하우스는 끄덕없느냐는 것이다.

"농작물을 기를 때는 제 자식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성을 쏟아야 됩니다. 제 자식처럼 아끼는 농작물이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면 죽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둘 수야 없지 않습니까. 푸릇푸릇 자라는 농작물들이 폭설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며 나를 보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둡니까. 어떻게 나몰라라 하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습니까. 그건 농사꾼이 아니죠."

/ 이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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