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추는 우리 정서

정태국

전 충주중 교장

"젊은이! 성씨가 어떻게 되시나?"

거개 사람들은 자기 성에 씨자를 붙여서 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젊거나 어린사람만이 아닐 경우가 잦다.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상대방이 물어올 땐 자기 성에 '씨'자가 아니라 '가'자를 붙여서 답하는 게 올바른 예의요, 우리 정서다. 굳이 다시 말해본다면 누가 필자에게 성씨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상대방의 나이를 불문하고 "정가요"라 답하는 게 우리 정서적 옳은 답변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위일 경우엔 "저는 정가입니다"라 해야 하고 묻는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일 경우엔 "나는 정가일세"라 답해도 결례이거나 잘못된 답변은 아니다.

'씨'자에 대해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씨'란 말에 곡식의 종자를 가리켜서도 '씨', '씨앗'으로 말하는데, 사실상 우리의 과거 농경사회에서 씨앗보다 소중한 것도 그리 많지 않았을 법하다.

때로 종족을 일컬을 때도 '씨는 못 속인다.'고도 하는데 이는 곧 혈통(피)은 어떤 공통점 내지는 인성, 인품과도 관련을 보이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나이가 많은 입장에서 어떤 점포에 들렀을 때나 음식점 등에서 소녀가 안내할 경우 그를 부를 때 '아가'라 호칭하면서 말을 건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좀 들어 보일 경우엔 '아가씨'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여기서 아가와 아가씨란 두 낱말에 대해 짐짓 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씨'자를 붙인 경우는 상대방을 한껏 높여 부르는 거라고 생각된다.

아가씨란 호칭은 가족관계에서도 흔히 사용한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시누이를 부를 때 '아가씨'로 부른다. 다소 애칭으로 쓰는 경우도 손녀나 자기 딸을 부를 때도 다정한 감정을 듬뿍 담아 '아가씨'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란 호칭 역시 상당한 존칭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촌수를 따져서 당숙이나 외숙을 호칭할 때도 '아저씨'로 부른다. 혹여 촌수로는 아저씨이지만 나이가 자기보다 어릴 경우나 상대가 아직 어릴 경우에는 '아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쨌든 아저씨란 호칭 역시 공교롭게 '씨'자가 곁들여 있는데 그만큼 '씨'자는 상당한 존칭임이 틀림없지 싶다.

때로 전혀 모르는 사이의 상대에게 말을 건네려 할 땐 '형씨'라 칭하기도 한다. 혹은 성 뒤에 형이란 말을 붙여 '박씨', '이씨' 등으로도 부른다. 혹자들은 형이란 호칭이 붙어있으니까 존칭으로 아는지 학교 선배에게 '김 형', '정 형'이라 부르는데 그건 존칭이라기보다 평교간 또는 나이 아랫사람에게도 '오 형', '전 형' 등과 같이 성 뒤에 형을 붙여 부를 수 있으니 망발이 된다.

유사한 용어로 남자에겐 '군(君)'자를 여성에게는 양(孃)자를 성 뒤에 붙여서 부르는데 군이나 양은 사실상 어른들이 아랫사람을 한껏 높여 부르는 존칭어이다.

말이란 시대흐름에 따라, 문화 변천의 영향을 받아 생명체나 다르지 않게 변화무쌍한 것이라지만 좀 더 생각해보고 우리민족의 정서가 흠씬 담겨있는 아름다운 말로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곧 자신이 상대로부터 존중 받는 결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