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전면 유리 너머로 난로 근처에 모여앉은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무심한 듯 한껏 나른하게 몸을 굴리다가도 사람이 다가가면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친밀함을 내보인다. 메뉴를 준비하는 카운터와 고양이의 방 옆으로 창문이 뚫린 방에서는 커다란 스탠다드푸들이 한껏 목을 빼고 사람을 반기며 꼬리를 흔든다. 그야말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엔탈피는 열역학의 핵심 함수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윤진상 대표가 2명의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사업을 시작하면서 본질을 잊지 말자며 결연히 새긴 이름이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예비창업패키지를 통해 연료전지 등을 제조하는 사업으로 시작했으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제품을 제조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인증과 판로 등을 고려할 때 승산이 없었다. 구입한 장비를 활용할 방안으로 나온 것이 나무에 사진이나 문구를 새길 수 있는 공방이었다. 레이저, CNC, 용접 등의 이론과 실습을 거친 이들에게 나무는 무른 재료이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담은 결과물이었다. 공간을 마련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언제나 고양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보호하게 된 고양이들이 어느새 6마리로 늘면서 함께할 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사무실 천장에서 발견한 새끼고양이를 시작으로 진상 씨와 고양이의 인연이 이어졌다. 행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에 발끈해 집으로 데려온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친한 지인의 가게에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를 맡게 되기도 했다. 좁은 자취방에서 맡아 보호하는 고양이가 늘어나며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길 가운데 놓여있던 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여섯 마리 고양이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건강하지 못했던 고양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동안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을 때도 있었다.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돌봄의 무게를 체험하니 자연스레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을 알게됐다. 충북대 인근에서 운영하던 공방을 정리하고 운천동 골목으로 찾아든 것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골목 어귀에서 생각을 정리하다 우연히 눈에 띈 빈 건물에 시선이 멈췄다. 오래된 주택을 이리저리 손 봐가며 적합한 공간으로 꾸몄다. 동물과의 공존을 고려해 공간을 나누되 막힘없이 공유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엔탈피는 일반적인 고양이 카페라기 보다는 고양이가 있는 카페다. 손님들을 위해 고양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와 함께 있을 곳을 마련하다 보니 카페가 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식 자랑하듯 귀여운 나의 고양이를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힘든 순간에도 곁에서 가만히 위로가 되어준 녀석들의 진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저 보고 있어도 위안이 되는 동물들의 움직임은 엔탈피를 따뜻하게 채운다. 함께 시작한 친구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흩어지고 혼자서 엔탈피에 남았다. 끝까지 가지못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잡기는 수월해졌다. 진상 씨가 만드는 목공 제품에는 동물을 위한 제품이 많다. 주문 제작으로 이뤄지는 제품들은 가족과의 추억을 담은 사진이거나 반려동물의 이름 각인 등이 주를 이룬다. 나무에 새길 수 있는 추억의 카테고리는 모두 담을 수 있다. 이름과 사진을 새긴 팻말을 비롯해 길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나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 등 재능기부로 이어가는 봉사는 가까이서 돌보지 못하는 동물들이 길에서나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따뜻한 나눔이다. 엔탈피 카페에서 복잡한 열역학 함수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사연을 안은 고양이들이 사랑을 받고 얼마나 편안해 졌는지,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 주는지 차 한잔의 여유와 함께 위로를 받으면 된다. / 김희란기자
[충북일보] 점심시간이 지나면 카운터 테이블을 가득 채운 에스프레소 잔이 즐비하다. 거뭇해진 하얀 잔은 식후 가벼운 에스프레소 한잔의 즐거움을 털어 넣고 떠난 이들의 흔적이다. 트레몰로커피웍스는 깔끔 그 자체다. 이렇다 할 간판도 의자도 없는 외견부터 단출한 메뉴까지 군더더기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코끝을 파고드는 짙은 커피 향만큼 짙은 파란색 타일 위에 길게 뻗은 스테인리스 테이블과 하얀색 원형 테이블 두 개가 전부다. 카페를 이야기 장소로 사용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머물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장소일 수 있다. 테이블에 선 상태로 지인들과 약간의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은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 주문한 에스프레소가 나온 뒤 '홀짝'. 잘 마셨다는 인사와 함께 3분 이내로 나가는 손님도 많다. 이들의 목적은 온전히 커피다. 이규빈 대표가 기획한 가게의 이미지다.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이 대표는 고향인 청주로 내려와 커피 그 자체를 즐기러 오는 손님으로 채워진 가게를 그리며 2019년 11월 문을 열었다. 에스프레소 문화가 생소하던 청주에 용감하게 문을 연 첫 번째 스탠딩 에스프레소 바다. 커피 일을 하는 사람은 많다. 트레몰로의 커피는 명확하다. 그럭저럭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는 것에 그쳤던 규빈 씨가 원하는 커피 맛을 알게 된 것은 학교 앞 유명 카페에서다. 그동안 마시던 커피와 전혀 다른 독특한 맛과 향은 전공하던 기타도 뒤로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커피에 꽂힌 규빈 씨가 커피를 배우는 방법은 어렸을 때 기타를 배우던 방법과 비슷했다. 학원보다는 교회 등 실제 연주를 하는 곳에서 시작했던 기타는 형식적인 교육보다 실전이 중요함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카페를 찾아가 무조건 두드렸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에 더해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열심히 이수했다. 좋아하는 맛의 기준을 세우고 그 맛을 따라가는 것이 일종의 훈련이었다.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그 맛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닮고 싶은 여러 모델을 정해 장점을 흡수하고 나만의 맛을 표현해냈다. 장비를 사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장비를 다뤄본 것도 도움이 됐다. 스페셜티 커피 등 높은 등급의 생두보다는 보편적인 맛에 초점을 맞췄다. 등급이 낮은 커피라도 질 좋은 커피는 있다는 확신으로 유통업체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로스팅을 찾아 트레몰로 커피웍스만의 커피 맛을 만들었다. 그로인해 다양한 원두 납품처도 확보했다. 비정제 원당으로 단맛을 더한 에스프레소는 쌉쌀한 시작과 달콤한 끝 맛으로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다. 카카오파우더 코팅이 더해지는 스트라파차토나 레몬의 상큼함을 더한 로마노, 크림으로 부드러움을 더한 콘파나 등 에스프레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메뉴는 한 번에 두세 잔씩 마시는 손님들의 입맛까지 사로잡는다. 커피믹스나 아메리카노에 국한됐던 중년 고객들의 발걸음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커피를 시작하며 부채처럼 쌓였던 마음의 짐은 일회용품에 대한 죄책감이다.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테이크아웃을 지양한다. 하루 평균 150잔이 넘는 커피잔을 씻어내면서도 밖으로 나가는 쓰레기가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 가게에서 가벼운 가격으로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떠나는 손님들도 쓰레기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하다. 규빈 씨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협업을 꿈꾼다. 좀 더 많은 매장에서 트레몰로커피웍스의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가볍게 즐기는 에스프레소의 짙은 맛과 향이 청주시민들의 입 안에도 익숙하게 스며들 날이 머지않았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묵직한 버터크림으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동그란 얼굴에 귀까지 볼록한 갈색 곰이 있는가하면 노란 계열에 빨간 연지를 찍고 부리와 벼슬까지 표현한 닭 모양도 있다. 때로는 모자를 쓴 강아지나 캐릭터의 얼굴도 작은 케이크 위를 장식한다. 시즌에 따라 나오는 산타나 눈사람, 할로윈을 상징하는 디자인이나 학사모를 쓴 동물들도 탄성을 자아낸다. 한 손에 쥐어질 만큼 작은 컵케이크가 누구나 반할만한 귀여운 디자인으로 오밀조밀 늘어서 있다. 작지만 묵직하게 전해지는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가 다양한 맛으로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선택을 기다린다. 하나만 있어도 그 자체로 완전하지만, 여럿을 모으면 또 다른 조합으로 재미를 준다. 취향대로 골라 모은 컵케이크는 커다란 케이크를 먹기엔 부담스러울 때나 주위에 간단하게 마음을 표현할 예쁜 선물로도 제격이다. 청주 가경동 골목의 컵케이크 전문점 모일리는 길모퉁이에 자리 잡았다. 커다란 창문이 개방감을 더해 널찍한 실내가 더 넓어 보인다. 환한 실내가 아늑해 보이는 이유는 빛과 실내 장식이 주는 효과다. 정혜선 대표가 손수 꾸민 내부는 조명과 소품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낮에는 햇빛이, 저녁에는 조명이 공간의 감성을 달리한다. 한편에 마련된 편안한 분위기의 방에서는 단골들의 담소가 새어 나온다. 모일리라는 이름에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사랑스럽게 담았다. 맛있는 디저트와 음료로 누구나 쉽게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취미로 배웠던 베이킹이 새로운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 20살에 처음 맛본 컵케이크의 감격으로 카페를 다니며 맛있는 디저트를 먹다 갖게 된 취미였다. 첫 컵케이크에 담았던 막연한 꿈은 몇 년 만에 현실이 됐다. 여러 곳의 컵케이크를 먹다 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내 입맛대로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맛있는 컵케이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유행을 타고 우후죽순 생겼던 다른 디저트 가게들과는 차별화된 메뉴이기도 했다. 3년 전 문을 연 모일리에서는 혜선씨가 먹고 싶은 컵케이크를 만든다. 매일 아침 만드는 컵케이크 종류만도 20가지 정도다. 바닐라, 흑임자, 쑥, 당근, 초콜릿, 치즈 등 주재료에 따라 버터크림의 색과 맛은 물론 시트의 색과 맛도 달라진다. 귀여운 디자인이 품고 있는 색깔로 맛을 짐작해보는 재미도 있다. 기본적으로 풍부한 맛을 묵직하게 녹였다. 발로나 초콜릿, 고메버터 등 눅진한 맛을 위한 재료는 아끼지 않는다. 국내산으로 준비하는 쑥과 흑임자 등은 한입 가득 존재감을 남긴다. 로투스와 쿠키, 당근과 블루베리 등 시트에서 씹히는 재료와 크림 속 재료는 같지만 다르다. 모든 메뉴는 모일리표 비율로 구성한다. 종류를 달리해 반죽하고 굽고, 각각의 크림을 만들어 머릿속에 있던 디자인을 컵케이크 위에 표현한다. 캐릭터가 아니면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마카롱 같기도 한 다양한 형태의 크림이 시트 위에서 귀여움을 발산한다. 주재료에 따라 직접 끓인 시럽이나 잼 등을 곁들인 조합은 늘 뿌듯하게 내놓는 자신 있는 레시피다. 생블루베리를 반죽에 넣어 익히고 라즈베리 콩포트를 곁들인 빅토리아 케이크나 제주 당근을 갈아 사용한 반죽에 견과류로 고소함을 강조한 당근 케이크는 컵케이크의 인기에 힘입어 조각 케이크와 홀케이크로도 인기 있는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주문받은 도안으로 만드는 도시락 케이크도 디자인 감각을 드러낸다. 날마다 다른 포인트를 갖추고 가지런히 세워진 그 날의 컵케이크 행렬은 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띄워진다. 모일리에는 다양한 이들이 모인다. 용돈을 모아 들고오는 초등학생부터 손주를 등에 업은 할머니까지 달콤한 휴식을 찾아온다.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컵케이크가 가볍지만 든든한 행복을 전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다양한 종류의 빵들이 진열대에 놓여있다.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주는 샌드위치와 핫도그, 수제 햄버거도 준비된다. 쿠키와 브라우니 등 제과류를 포함해 30가지가 넘는 제품 구성은 여느 빵집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경동 어느 한적한 골목의 평범한 동네빵집처럼 보이는 이곳에는 특별함이 묻어있다. 동네 아이들이나 지나던 주민들이 반갑게 말을 걸어오는 따뜻함에 더해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쉼 없이 이어진다. 비건스토리여누는 달걀과 우유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비건베이커리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주로 쓰지만 이 모든 재료의 제한은 맛의 한계로 이어지지 않았다. 모르고 먹으면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부드럽고 담백하다. 4년 전 문을 연 이곳은 아들 연우의 건강을 위한 엄마의 노력에서 시작된 하나의 이야기다. 분유를 먹고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부터 알게 된 아이의 체질은 엄마를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어떤 재료에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면 그 음식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고른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늘 공부하고 수소문하며 아이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 냈다. 달걀과 우유, 붉은 고기 등이 맞지 않았던 연우를 위해 수도권 곳곳의 비건베이커리를 누볐지만 건강만 생각한 곳도 많았다. 맛이 충족되지 않는 음식은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입이 즐겁지 못했다.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체질이라면 직접 만들어 먹여보기로 했다. 다른 세상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비건에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였다. 취미로 시작한 비건베이킹은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맛보여주고픈 욕심과 만나 금세 수준급 실력으로 올라갔다. 정보를 공유하고 완성된 제품을 주변과 나누다 보니 식재료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건스토리여누는 이예은 대표와 남편 신상철 대표의 긴 고민 끝에 친정이 있는 청주에서 아이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작은 빵집이다. 많을 때는 40여 가지에 이르는 메뉴가 준비되는데 둘이서 모든 것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코넛오일과 두유 등을 사용한 식물성 버터나 현미유가 유지류로 쓰인다. 때문에 달걀과 우유 없이도 고소한 제과류의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천연 재료를 활용한 건강 메뉴도 많다. 진도에서 받은 생 쑥을 반죽에 사용해 빵 단면에서 쑥 줄기가 보일 정도로 향긋함이 돋보인다. 국산 팥을 끓여 만드는 앙금은 당도는 낮추되 고소함은 더한다. 식빵에 쓰이는 밤과 고구마 등도 당연히 국내산이다. 식빵에 쓰이는 토마토소스, 바질페스토는 물론 소보로에 쓰이는 콘버터 소스 등도 여누의 부엌에서 만들어 진다. 감자를 찌고 부드럽게 으깬 감자 샌드위치를 비롯해 크랜베리와 와사마요 등 3종에 이르는 샌드위치는 마요네즈부터 버터와 바질갈릭소스, 피클까지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국산 쌀가루와 유기농 비정제 설탕, 코코넛오일, 코코넛밀크, 죽염 등 보이지 않는 재료도 자신 있는 것만 사용한다. 애써 골목을 찾아온 손님들은 언제든 스스럼없이 원재료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다소 까다로운 질문에도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부심이다. 비건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초코와 치즈, 소세지와 패티 등 어려웠던 부분을 표현할 수 있는 제품도 많아졌다. 햄이나 고기 등 좋아하는 맛을 포기하지 않고도 누구나 평소 좋아하는 메뉴로 쉽게 비건 음식을 접한다. 예약으로만 판매되는 케이크는 친구들의 케이크를 바라만 보던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아이의 체질 때문에 먹이지 못했던 케이크에 난생처음 초를 불며 생일파티를 할 수 있었다는 엄마들의 감사 인사는 또 다른 가족의 비건스토리다. 누구나 걱정 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따뜻한 빵집으로 오래 남는 것이 연우네 가족의 목표다. 한번 먹어보면 다른 빵맛까지 궁금해지는 여누의 다채로운 빵들이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하게 만든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손바닥보다 작은 잔을 채운 검은 액체가 짙은 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입 머금으면 커피 본연의 씁쓸한 맛이 입 안을 감돈다. 주의를 기울이면 약간의 단맛과 풍미를 느낄 수도 있다. 적은 양으로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커피 에스프레소다.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인기(?)가 많지는 않지만 고유의 씁쓸함과 향미를 즐기는 에스프레소 마니아도 분명 있다. 청주 운천동에서 2020년 문을 연 블랙에센스커피바는 에스프레소를 주메뉴로 내세웠다.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다른 커피 메뉴도 몇 가지 준비된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 소매는 물론 브루잉 커피도 판매한다. 다른 커피전문점과의 차이를 위해 고심한 결과다. 정구영 대표는 10년 넘게 커피를 공부하고 있는 커피 애호가다. 군 시절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에 커피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은 실행이 됐다. 가장 가깝게 배울 방법을 찾았다. 제대와 동시에 전공을 바꿔 호텔 제과 음료 학과로 편입했다. 커피와 제과 등을 배우며 판단이 옳았음을 느꼈다. 커피와 관련된 일로 경험을 다졌다. 안 해본 일에 대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커피는 즐거웠다. 제대로 로스팅 된 좋은 생두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격이 잊히지 않았다. 바리스타로 시작해 사회적 기업에서도 관련 분야에 몸담았다. 커피를 깊이 알아갈수록 로스팅과 어울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원두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생두를 선택하고 타거나 설익지 않게 고루 볶아내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10년쯤 커피를 공부하며 경험하고 나니 자신만의 가게에 대한 구상이 생겼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하던 중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일과 커피를 병행하기로 했다. 오롯이 커피에 집중할 수는 없었기에 절반쯤은 공방 형태를 갖췄다.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연습공간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해 커피 머신을 다루고 로스팅을 경험해 볼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때로는 커피와 관련된 모임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문을 여는 며칠은 직접 로스팅한 원두와 커피를 판매했다. 커피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게 하고 싶어 커피로모이다 라는 상호를 걸었다. 1년쯤 운영해본 결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함을 느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에 전념하면서 에스프레소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에스프레소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블랙에센스커피바를 선택했다. 로스팅을 지속하기에 원두와 드립백 등도 판매량을 늘렸다. 블랙에센스커피바는 기존의 커피전문점이 하지 않았던 영역에 거침없이 도전한다. 몇 달간은 지역 내 로스팅 카페의 원두를 조금씩 가져와 메뉴로 판매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맛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같은 원두도 로스터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을 느끼길 바랐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렵다고 느끼는 에스프레소를 가볍게 소개하기 위해 캡슐커피를 이용하기도 했다. 저렴하고 다양한 에스프레소의 시음 기회를 제공해 짙은 부담스러움을 없애려는 시도였다. 본질적으로는 에스프레소가 아메리카노처럼 쉽게 접하는 커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블랙에센스커피바가 내놓은 에스프레소용 원두는 입문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약간의 단맛과 부드러움을 지녔다. 매일 아침 한입에 털어 넣어도 부담 없는 커피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커피를 다뤘지만 로스팅 세미나나 카페쇼 등 커피에 대해 배울 기회는 놓치지 않고 찾아 나선다. 익숙한 맛에 멈추지 않고 로스팅 방식이나 추출 방식을 바꿔가며 가장 좋은 맛을 찾기 위해서다. 오랫동안 커피와 함께하고 싶은 커피 애호가의 깊은 고민이 짙게 농축된 한잔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당연했던 일상이 사라지면서 현실의 색이 바랬다. 오래된 사진처럼 선명함을 잃고 활기마저 사라졌다.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나는 일이 전처럼 쉽지 않고 마음을 달래던 여행도 어렵다. 마스크가 씌워진 얼굴은 이전에 없던 제약이다. 길어진 시국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절대 친숙해지지는 않는다. 마음도 이전 같지 않다. 보이지 않는 포장지를 씌운 듯 답답한 이들이 많다. 그런 자신의 변화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눈치채지 못한 이들도 있다. 안지은 대표가 지난해 5월 청주에 문을 연 '아코텐'은 색을 통해 지친 마음을 치유한 자신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시작한 브랜드다. 어려서부터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림을 끄적이던 지은 씨는 자연스레 미술을 전공했다. 조소와 디자인, 순수미술과 영상 등 미술이라는 범위 안에서의 변화는 늘 두근거렸다. 자유로움을 그리며 떠났던 프랑스 유학에서 디자인과 아트의 모호한 경계 속 미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은연중에 심리와 연관된 미술을 찾아 공부하며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매달린 것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형태를 갖춘 미술품보다는 마음을 담아낸 색 자체로 매력을 느꼈다. 기분과 마음에 따라 원하는 색과 표현하는 색이 달라지는 것이 다수의 경험으로 증명될수록 확신을 느꼈다. 관련 분야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기도 하고 프리랜서로 일해보기도 했다. 미술을 시작하며 가졌던 '자신만의 브랜드'라는 꿈이 뚜렷해졌다. 어떤 사물이나 형태의 디자인보다는 안지은의 이름을 건 특색있는 브랜드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위축됐던 순간 브랜드의 방향이 정해졌다. 크라우드펀딩으로 가볍게 시작한 컬러테라피는 수요를 예측하기에 충분했다. '불면증에 좋은' 혹은 '스트레스에 좋은'처럼 추상적인 개념으로 접근한 컬러테라피에 많은 사람이 호응했다.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중적인 색채도 좋지만, 개별적인 상담을 통해 '나만의' 색 조합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아코텐에서는 컬러테라피를 통한 심리상담과 컬러페인팅을 병행한다. 현재 느끼는 감정을 색으로 표현한 결과지와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심리 상태를 진단하고 그것에 맞게 필요한 색을 추천해준다. 각자에게 맞는 색상이 캔버스 위에서 마음을 채운다. 그림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는 색채 그 자체로 표현하는 그림이라서다. 원하면 형태를 갖춰도 되지만 추상적인 모습으로 색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색을 가까이 두고 바라보면서 위안을 얻는가 하면 색을 표현하는 행위로 벌써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 상담과 조언으로 각자에게 필요한 색을 조합하다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많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 3명이 그림을 완성하고 보니 각자가 그날 선택해서 입고 온 옷 색깔과 같았다. 우연히 끌리는 색이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색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가족끼리 상담할 때는 함께 살면서도 몰랐던 성향을 털어놓는 가족 구성원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다. 아코텐은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해도 괜찮다. 다양한 색으로 표현하기 위해 마음을 꺼내보는 일 자체가 일상에 활기를 더할 변화의 시작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가지만 남은 식물들 사이로 무언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보인다. 본연의 잎은 떨어졌지만 소원 카드가 그 자리를 채웠다. 카페를 찾아온 이들이 나무에 걸어두고 간 흔적이다. 갖가지 바람이 담긴 작은 나뭇조각이 추운 겨울 단풍잎을 대신한다. 소원이 걸린 단풍나무 외에도 수십 종의 식물로 꾸며진 작은 정원은 소원(小園) 카페의 상징이다. 계절마다 다른 꽃으로 색을 채운다. 카페를 설계하면서부터 함께 고민한 정원은 작지만 알차다. 아기자기하게 나눈 구획을 따라 잠시 산책하기도 좋다. 자신을 부르는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꽃은 카페 안에서도 훤히 내다보인다. 이병주 대표가 처음 접했던 카페 아르바이트로 시작된 카페에 대한 꿈은 그 공간의 어떤 점이 좋아서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감사였다. 맛이나 공간, 또는 사람을 따라 그곳을 찾아오는 손님을 보며 온전히 내가 꾸민 공간에 내 손님을 만들고 싶었다. 목표를 위해 군시절을 제외하고 꾸준히 일했다. 여러 카페와 베이커리 등에서 일하며 장단점을 파악했다. 다른 카페와 차별성을 위해 음료 제조는 물론 제과제빵을 배우고 익혔다. 북적이는 도심보다는 도심과 가까운 한적한 곳을 원했다. 여러 번 발품을 판 끝에 터를 잡고 구상했던 공간을 만들어 갔다. 처음 해보는 일인 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조용하던 동네에 자리를 잡으며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변 이웃들과의 소통이다. 부모님이 먼저 나서 이웃을 만났다. 공사 기간에도 양해를 구하며 조심스레 다가선 새로운 카페 주인에게 마을 주민들도 반기며 마음을 열어줬다. 긴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여는 날 솜씨 좋은 이웃이 선물한 '소원' 전각 간판은 멋들어진 모양에 애정까지 담겼다. 이웃의 따뜻한 선물은 미리 준비했던 간판을 뒤로하고 입구 앞에 걸린 소원의 얼굴이 됐다. 소원은 다른 직원 없이 가족들의 도움으로만 꾸려나간다. 아침 11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에 닫기까지 분주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문을 열기 전 매일 굽는 빵은 대략 20가지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제과와 제빵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준비한다. 전문가의 손길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 병주 씨의 정직한 손맛이다. 기교를 부려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준비한 베이커리다. 몇몇 메뉴를 내세우기보다는 손님들의 기호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메뉴를 변경한다. 노력으로 익힌 기술이기에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까지 수백 번의 수정과 서로의 조언이 들어간다. 블루베리, 자몽, 생강, 레몬, 오미자 등 손수 만든 수제 청도 에이드와 차 등의 음료로 손님을 찾는다. 오미자 메뉴는 따로 없지만 다른 수제청 음료의 감칠맛을 위해 몇 방울씩 첨가하려 따로 담는다. 크림에 두 배의 정성이 필요한 소원커피는 소금바닐라라떼에 소원 카페의 풍부함을 담은 달콤한 맛으로 시그니처가 됐다. 시원하게 펼쳐진 통유리창이 아닌 벽면은 액자 같은 프레임으로 또 다른 그림이 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작은 정원을 보려는 이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창문 앞에 앉는다. 여름에 특히 인기를 끄는 루프톱은 정원은 물론 주변 마을의 풍광까지 살필 수 있는 독특한 전망을 자랑한다. 햇볕이 따뜻한 날이면 겨울에도 야외에서 한잔의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이 찾아온다. 특별히 볼 것이 없어도 그저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분위기 자체로 마음이 채워진다. 병주 씨에게 소원은 작은 정원이자 바람이고 자랑이다. 맛이든 공간이든 이곳의 분위기이든, 무언가를 찾아온 손님이 나름대로 소원을 즐긴다. 원하는 바를 오롯이 즐기고 돌아가면 그것이 그들만의 '소원'인 셈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푸딩'은 익숙하지만 낯설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디저트이면서도 여느 디저트처럼 수제 전문점은 쉬이 보기 어려워서다. 달콤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는 개개인의 기억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식사의 마무리로 즐겼던 한 입, 기분 전환을 위해 일부러 찾아 먹었던 한 입의 추억이 확실하게 각인된 이들은 분명히 있다. 청주 사창동에 푸딩 전문점 스위트핏을 연 신용호 대표는 그 수요를 읽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디저트라기엔 조금 어려운 푸딩에 확신은 용호 씨의 이력에서 왔다. 이렇다 할 꿈이 없었던 학창시절 제과 제빵을 좋아하던 친구와 조금 더 놀기 위해 처음 들어선 학원에서 흥미를 찾았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신기했다. 호기심에 등록한 학원은 전공으로까지 이어졌다. 케이크를 만들고 빵과 과자를 굽는 것은 끝없는 배움이었다. 하나씩 성취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유명한 케이크 집과 개인 카페 등에서 실무를 접하며 기량을 닦았다. 정해진 레시피로 즉석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주방의 현실은 한계가 있었다. 몇 년간 같은 일을 하면서 정체되는 느낌이 들었다. 배운 것을 기반으로 하되 또 다른 영역을 접할 수 있는 일터로의 전환을 꿈꿨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일에서 넘어간 영역은 제품 개발 분야다. 식품 회사에 들어가 젤리와 푸딩 등 디저트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중적인 입맛을 사로잡을 디저트를 연구하다 보니 제과제빵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비슷한 형태에도 수많은 재료를 접목할 수 있었다. 딸기, 바닐라, 메이플, 커피, 초콜릿, 치즈 등 더하는 재료에 따라 다른 제품이 됐다. 실험과 시도는 재미있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정해진 공정과 시장 가격이 넘지 못할 선이었다. 좋은 재료를 쓰고 풍부한 맛을 내고 싶어도 상한이 정해진 가격선에 맞추지 못하면 그림의 떡이었다. 대량 생산을 할 때는 사람의 손으로 하면 들어가지 않아도 될 부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쉬웠다. 제품을 개발하며 참고한 꾸준한 판매량을 보고 푸딩에 대한 수요를 확신했다. 수제 푸딩을 먹고 싶지만 찾을 수 없어서 대체재로 시판 푸딩을 접하는 층을 사로잡기로 했다. 경험과 경력을 토대로 용호 씨만의 건강하고 맛있는 푸딩을 만들면 청주에는 없었던 '푸딩맛집'을 탄생시킬 자신감이 생겼다. 시판 푸딩에 대한 첫 경험으로 푸딩에 대한 편견이 생긴 이들도 스위트핏의 공략 대상이다. 지나치게 단단하거나 물렁거리는 느낌이 싫어 푸딩을 피해온 지인들도 용호 씨의 푸딩 한입에 선입견을 녹였다. 스위트핏의 푸딩에는 설탕 대신 말티톨을 넣는다. 설탕과 비슷한 단맛으로 무설탕의 건강함을 내세웠다. 커스터드와 크림우유, 초콜릿 푸딩으로 구성된 현재 메뉴는 푸딩의 기본이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 캐러멜 소스양을 조절해 개인의 취향껏 당도를 맞춘다. 무설탕 초콜릿을 사용하는 초콜릿 푸딩은 괜히 꺼렸던 엄마들의 마음마저 부드럽게 만든다. 대중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향과 맛은 누구와 나누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아 벌써 몇 번의 단체 주문도 이어졌다. 배달을 시작한 뒤 가장 바쁜 시간은 의외로 오후 6시 이후다. 일상을 마친 이들의 저녁 시간을 함께하는 달콤한 위로인 셈이다. 손바닥만 한 작은 푸딩이 한껏 탱탱하게 컵을 채운다. 부드럽게 떠올려 입에 머금으면 순식간에 스며든다. 전직 개발자가 꿈꾸던 수제 푸딩의 황금비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김희란 기자
[충북일보] 화려한 서핑보드가 벽을 장식한다. 수시로 다른 서핑보드로 바뀌는 이유은 실제 사용중인 보드이기 때문이다. 파도 위를 누비다 잠시 벽에 걸리는 서핑보드는 피자웨이브의 특별한 색깔이다. 곳곳에 걸린 서핑 사진과 영상 속 커다란 파도는 피자웨이브의 이름 그 자체다. 송병남 대표는 파도를 사랑하는 서퍼(surfer)다. 3년 전 여름 우연히 강원도 양양에서 서핑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재미없는 스포츠였던 서핑이 일상이 된 것은 잘하고 싶은 욕심과 의지 덕이다. 잘 안따라 주는 몸을 끌고 바다에 떠있을 때 파도가 시작되는 라인에서 기대에 찬 사람들이 보였다. 파도가 올 때를 기다리다 물살에 보드를 띄우고 몸을 움직이며 물살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덩달아 설렜다. 온전히 취미로 서핑을 즐기려면 실력이 따라줘야 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일을 몰아서 하기 시작했다. 평일은 야근, 주말은 바다였다. 계절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파도를 따라 전국 바다를 누볐다. 어느 때는 동해로, 남해로, 제주까지 파도의 일정에만 귀를 기울였다. 실력이 쌓이자 서핑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오로지 서핑만 하고 싶어 하던 일도 그만두고 제주로 향했다. 6개월 정도는 밥 먹고 서핑만 하며 서퍼의 삶을 누렸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슬며시 고개를 들 무렵 제주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지인이 눈에 들어왔다. 프랜차이즈 피자집과 차별화 하면서도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때마다 파도가 다르기에 어디든 비슷한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고향 청주에 자리 잡았다. 피자에 대한 연구로 몇 달을 보냈다. 버튼 한 번이면 수십가지 피자와 옵션을 찾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찾아서 먹을만한 가치가 있어야 했다. 냉동토핑을 오븐에 구워내는 가게와는 다른 차별화를 내세웠다. 피자웨이브는 모든 토핑을 직접 만들면서 최대한 푸짐한 모양새를 살린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메뉴는 베이컨매쉬 피자다. 잘게 자른 베이컨과 으깬 감자가 올라가는 이 피자는 준비과정만 몇 시간이다. 껍질을 깐 감자를 삶아 뜨거울 때 으깨고 부드러운 식감을 위해 최소한의 양념으로 맛을 낸다. 익숙한 피자 모양으로 자르지 않고 먹기 좋은 크기로 여러 조각을 내는 피자 위에 한 스쿱씩의 으깬 감자가 올라가 베이컨과 조화를 이룬다. 올망졸망 놓인 으깬감자는 보기에도 좋고 짭짤한 베이컨과 맛의 조화를 이룬다. 일일이 꼬리를 떼고 칠리 소스에 재워뒀다 푸짐한 야채와 함께 굽는 칠리 새우도 고객과의 소통으로 매운맛을 조절해 처음과는 다른 매콤달콤한 맛으로 완성했다. 직접 만든 양념에 재운 불고기가 듬뿍 올라가는 불고기 피자도 여느 냉동 식품과는 다른 육즙과 식감이 느껴진다. 매일 출근 전에 장을 봐오는 신선한 채소도 피자 맛을 좌우한다. 많이 늘어나는 치즈의 이미지 보다는 치즈 본연의 고소한 맛에 집중했다. 푸짐한 토핑과 두툼한 치즈가 한 입에 어우러진다. 서핑을 오래 즐기기 위해 시작한 피자웨이브다. 여전히 퇴근 후 바다로 달려가 단 몇 시간의 새벽 서핑을 즐긴 후 돌아오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신선한 재료와 차별화된 맛으로 손님이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선물하는 것이 병남씨의 목표다. 서핑 영상과 사진으로 가득한 가게에서 푸짐한 피자를 받아든 손님의 환호가 파도만큼 설렌다. 행복한 서퍼가 만든 색다른 피자가 손님들의 입 안에도 파도를 일으킨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갓 도축한 한돈의 몇몇 부위가 덩어리째 카페에 들어온다. 브런치 카페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쓸모에 따라 받은 고기는 주인장 손에서 세심한 손질과 숙성을 거친다. 며칠에 걸친 염장과 숙성이 끝나면 염도와 당도, 풍미와 익힌 정도를 모두 김영상 대표의 입맛에 꼭 맞춘 마느표 잠봉(jambon, 얇게 저민 햄)이 완성된다. 바게트와 잠봉, 뵈르(beurre, 버터), 소금만으로 맛을 낸 잠봉뵈르는 에끌레어 마느의 시그니처다. 직접 굽는 바게트의 바삭하고 시큼한 맛에 짭짤하고 촉촉하게 만든 잠봉, 고소한 버터와 소금 한꼬집이면 완성되는 단순한 맛이 오묘한 조합으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에끌레어를 팔지 않는 에끌레어 마느의 이름도 묘하다. 취업이 잘되는 분야를 고민해 전공으로 선택했던 기계공학을 뒤로하고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섰을 때 요리가 있었다. 요리를 풀어갈 배경을 대한민국으로 한정 짓지 않았기에 요리와 함께 배운 것은 영어다. 어느 정도 완성한 영어로 학원 강사와 요리를 병행할 수 있을 무렵 당시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유학을 떠났다. 원하던 나라로 가기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시작한 호주 생활은 다시 요리로 이어졌다. 요리 학교에서 연이 닿은 요리사들의 영향으로 이름난 여러 음식점을 경험할 수 있었다. 부부가 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국적을 특정하기 어려운 요리를 배우고 익혔다. 배운 것에 취향을 더해 나아가다 보니 불특정 다수의 식재료를 활용한 무국적 요리를 지향하고 있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리에 전념하다 아이가 생기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바로 요리를 해낼 자신은 없었다. 육아에 익숙해질 무렵 가볍게 시작해보고자 따뜻한 주택가에 들어서 에끌레어마느의 문을 열었다. 가벼운 베이킹으로 시작해 결국에는 요리로 갈 생각이었다. 어떤 요리를 만들더라도 타지에서 함께 고생했던 고마운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담고 싶었다. 마누라라는 애칭을 무국적 단어로 표현해낸 것이 마느(maneu)다. 당시 주메뉴였던 에끌레어를 간판에 담은 건 간판 제작을 맡은 친구의 디자인적 제안이었다. 가게는 베이킹 위주의 메뉴에서 빵과 어울리는 요리로 점차 색을 바꿨다. 직관적인 맛을 좋아하는 영상 씨와 대중적인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입맛 사이 간극을 줄여가며 하나 둘 씩 고정시킨 것이 현재의 메뉴다. 빵과 어울리는 몇 가지로 구성했던 브런치는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파스타와 샐러드로 영역을 넓혔다. 향신료와 허브 등이 특색을 더하면서도 명확한 맛의 구분을 추구한다. 최소한의 재료로 활용 가능한 모든 요리법이 동원된다. 잠봉과는 또 다른 염지와 숙성의 길을 걷는 등심은 도톰하지만 육즙으로 가득한 부드러운 식감으로 빵 사이에 들어간다. 바삭함을 잃지 않은 튀김옷이 빵과 고기 사이에서 균형을 지킨다. 돈카츠와 약간의 소스만으로 풍부한 맛을 내는 카츠산도다. 새우버거는 잘 구운 브리오슈에 식감을 살린 새우카츠를 튀겨 넣고 특제 마요를 발라 탱글탱글한 맛으로 통통하게 채운다. 샐러드에 들어가는 리코타 치즈부터 바질 페스토와 숙성토마토, 선드라이토마토 등 모든 재료가 에끌레어마느의 주방에서 만들어진다. 배달로도 주문할 수 있는 브런치 메뉴는 오전 10시부터 5시 반까지만 만날 수 있다. 한 시간의 브레이크 타임 이후 저녁 6시 반부터는 다른 메뉴가 분위기를 바꾼다. 라자냐와 잠봉파스타, 비스크 리소토, 양 갈비 등의 요리가 와인 등을 곁들이며 간단한 끼니로 부족한 이들의 욕구를 채운다. 감각적으로 담아낸 모양까지 한껏 식욕을 돋운다. 어쩌면 조금 실험적인 공간이다. 요리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영상 씨의 취향과 경험을 녹여낸 이색적인 메뉴가 에끌레어마느를 찾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맥주가 다양해졌다. 국내 시장을 선점했던 대기업 맥주가 대부분이었던 소매점의 진열대에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가성비로 시장을 확대한 수입 맥주 외에도 각 지역의 색채와 디자인, 이름을 담은 독특한 제품들이 채워졌다. 전에 보지 못했던 스타일의 맥주들이 소비자를 찾아온다.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이 개성 있는 맥주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맥주 맛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다.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유통 채널이 없더라도 특색있는 맛을 보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소비자가 늘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소위 '맥덕'들은 하루에도 여러 수제 맥주 펍을 다니며 맥주 맛을 보는 펍 크롤링(pub crawling)을 즐긴다. 양조장에 따라 다른 발효와 숙성 과정 등이 기존에 맛보던 맥주와는 다른 매력을 주기 때문이다. 재료나 배합에 대한 시도도 뚜렷한 개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이지민 대표는 대학 생활 중에도 창업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마케팅과 플랫폼 서비스 기획 등을 공부하고 경험했다. 대외 활동으로 인연이 닿았던 두 명의 친구와 관심사가 맞아 펍크롤링을 함께 하며 일상을 공유했다. 청주에는 없는 크래프트 비어펍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 즈음에 '노잼도시'라는 온라인상의 수식어가 이들의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휴식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술을 마셨다 하면 고주망태가 되는 음주 문화 대신 맥주 고유의 맛을 음미하고 어울리는 음식을 찾거나 직접 맥주를 만들어보는 체험까지 할 수 있다면 좋을 듯했다. 일상을 마무리하는 한잔으로 충분한 쉼을 느낄 수 있게 '홀리데이펍(Holiday PUB)'이라는 이름으로 청주 성안길에 실험적인 공간을 열었다. 김명윤 양조사를 중심으로 김동현 공동대표와 늘 함께 맥주 맛을 고민했던 홀리데이 구성원들이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었다. 재료를 섞고 비율을 조정하기를 수백 번. 맛보는 것만으로 취할 만큼 여러 번의 실험과 발효 끝에 위탁 양조를 통해 제조한 첫 번째 맥주는 '십선비ESB'다. 양반고을이자 선비의 고장이라는 청주의 정체성에 10명의 입맛을 반영한 결과를 더 했다. 주관적인 입맛에 객관성을 담기 위해 맥주 소믈리에라고도 불리는 시서론(cicerone) 자격도 모두 갖췄다. 시그니처 맥주 외에도 맥주 커뮤니티 등에서 유명한 전국 각지의 수제 맥주를 가게에 들였다. 꼭 그 지역에 가지 않아도 특색있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새로운 맥주를 들여올 때마다 이미 먹어본 사람은 물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해당 맥주가 만들어지는 배경이나 맛, 도수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한 잔의 맥주를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다. 처음의 목표처럼 맥주를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비정기적 맥주 시음회로 라거, 밀맥주, 에일 등 종류에 따라 맛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온도나 시음 환경 등에 대해 알리기도 하고 파티 형식으로 구성한 모임으로 맥주 마니아들의 발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시국이 되면서 홀 운영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보다 많은 이들에게 홀리데이펍을 선보이기 위해 사창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홀리데이펍은 맥주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열의로 가득하다. 같은 종류의 맥주도 부재료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색다른 경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청주의 매력을 더하기 위해 도전을 시작한 만큼 지역 청년 농가를 중심으로 특색있는 협업도 도전하고 있다. 조만간 위탁 양조에서 벗어나 양조장을 설립하고 홀리데이만의 제조 방식으로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그곳에서도 맥주만 만들지는 않는다. 관광과 체험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꾸릴 홀리데이의 재미가 청주의 휴일을 즐겁게 채울 예정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대학가는 변화가 빠르다. 매년 새로운 청년들이 유입되는 대학 인근의 골목은 어느 번화가보다 먼저 유행에 반응한다. 유행을 좇는 가게들이 문을 열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시류에 민감한 젊은 층을 흡수하기 위해 골목의 색채는 수시로 변한다. 때로는 유행하는 메뉴로 채워진 식당과 술집이 한바탕 휩쓸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음악을 내세운 장소가 골목을 떠들썩하게 채우며 연일 길게 늘어선 대기열을 만들기도 했다. 수요가 보장된 몇몇 편의점과 식당을 제외한 업종은 한 자리를 오래 지키기 어렵다. 충북대 중문 골목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청주에서 손꼽히는 유흥가였지만 세월이 쌓인 가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수많은 젊은이가 각각의 추억을 만들고 떠난 이 골목에는 04학번부터 21학번까지 공통의 추억으로 새길 장소가 있다. 닭똥집과 삼치구이로 유명한 '너구리'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너구리라는 이름의 간판 아래 약간은 어두운 실내, 포장마차 같은 테이블과 의자, 10여 년 전 가수의 주류 포스터도 그대로다. 벽지처럼 겹겹이 굳어진 벽 위의 낙서에는 누군가의 그 날이 적혀있다. 어깨높이의 가벽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두루마리 화장지마저 그 시절 감성을 위해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수년 만에 다시 찾아도 어제 온 듯 익숙한 추억의 장소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너구리는 통마늘 똥집과 삼치구이로 유명해졌다. 소세지야채볶음이나 과일 화채, 치킨 등 흔한 안주 메뉴 사이에서 간결하고 독특한 메뉴 구성으로 대학생들을 사로잡았다. 매년 3월과 9월, 개강 시즌이면 선배가 후배에게 소개하는 대학가 맛집으로 십 수년간 명맥을 이었다. 처음 오는 사람을 데리고 온 단골이 내 가게처럼 뿌듯하게 너구리를 소개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4년째 너구리를 이끄는 강동규 대표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던 동규 씨는 어디에서나 성실함으로 각인된 청년이었다. 몇 번이나 정직원을 권유받고도 학업을 위해 거절했지만 너구리에서는 마음이 동했다. 메뉴를 고르는 가게가 아니라 메뉴를 정하고 찾아오는 가게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3~4년간 접객을 전담하며 홀 관리 전반과 운영을 익힌 뒤 결국에는 가게를 넘겨받았다. 육거리 시장에서 공수하는 국내산 마늘과 얼리지 않은 신선한 닭똥집이 맛의 핵심이다. 닭똥집을 주메뉴로 하기에 가능한 식재료 관리다. 일일이 세척하고 손질해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은 최적의 식감을 만든다. 흔한 소금구이나 매운 양념이 아니라 달콤하고 짭짤한 양념도 너구리의 맛이다. 포일에 감싸 테이블에 오르면 선물을 풀 듯 조심스레 걷어내는 손님들의 입가에는 설렘의 미소가 따른다.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삼치구이는 손바닥이나 팔뚝과 비교한 손님들의 인증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청주에서 제일 크다고 자부할만큼 두툼하고 긴 삼치를 통으로 담백하게 구워낸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한 배달 서비스로 너구리를 향한 손님들의 향수를 피부로 느꼈다. "식어도 좋으니 배달만 해 달라" 거나 "집에서도 추억의 맛을 느끼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가 이어진다. 타지에 살지만 옛 연애 장소를 찾아 오는 부부나, 몇 겹을 꽁꽁 싸달라며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지역까지 포장해 가는 손님들도 너구리의 존재 이유다. 동규씨에게 너구리는 지키고 싶은 장소다. 오랜 단골들에게 뿌듯함을 주는 가게로 남으면서도 오늘을 기억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자 한다. 신선한 재료에 대한 자부심은 흔한 재료를 특별한 맛으로 만든다. 뜨끈한 철판 위로 달콤하고 짭짤한 선물이 포일에 싸인다. 받아든 손님이 포일을 여는 순간 새로운 추억이 너구리에 쌓인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만두는 따뜻한 음식이다. 뜨겁게 먹어서가 아니라 '만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렇다. 찜기에서 하얗게 뿜어나오는 수증기나 도란도란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모습이 함께 연상된다. 추울 때 생각나는 만둣국이나 비 올 때 찾는 지짐 만두도 온기로 가득하다. 십여 가지의 속 재료를 버무려 한 장의 작은 반죽 안에 밀어 넣고 예쁘게 닫은 모습도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한입에 느껴지는 다양한 재료의 향연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추억의 맛이다. 담백한 고기만두나 아삭하게 씹히는 김치만두는 선호도를 따지기 어려워 반반을 외치는 이들도 많다. 요식업을 생각해본 적 없던 노연희 대표가 선뜻 여니만두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먹어왔던 아버지의 만두 덕이다. 운영하던 식당에서 판매하던 메뉴 중 하나였던 만두는 집에서도 인기였다. 연례행사처럼 대량으로 만두를 빚는 것이 일상이었다. 굳이 명절이 아니어도 친척들이 함께 모여 만두를 빚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 앞에 하나 된 마음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김장하기 전 남은 묵은지를 처리할 때도, 가족들의 행사가 있을 때도 만두는 항상 모임의 주인공이었다. 수 백 개의 만두를 빚어도 지퍼백에 차곡차곡 나눠 담으면 많은 줄 몰랐다. 출출할 때나 입이 심심할 때, 언제든 냉동실에서 꺼내 다시 쪄먹으면 든든하게 속을 채웠다. 실내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던 연희 씨다. 배울 때와 다른 현장에서의 이질감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다 문득 만두 생각이 났다. 수십 년간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우리 집 만두는 내세우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30여 년째 음식을 하시는 아버지의 만두 비법을 정식으로 배웠다. 3개월 정도는 만두 모양에 집중했다. 집에서 먹기 위해 편하게 만들던 것과는 다른 모양이어야 했다. 손에 익을 만큼 예쁜 잎새 모양이 빚어진 뒤로는 만두소에 대한 연습이 이어졌다. 제대로 물을 뺀 두부와 김치, 잡내 없이 육즙의 고소함만 남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비율과 양념,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식감의 무말랭이 등이 여니만두의 색깔이다. 매일 신선하게 준비하는 양파, 파, 숙주 등 채소와 일정량의 당면도 늘 같은 맛을 내기 위해 철저한 계량을 거친다. 지인의 고추밭에 온 가족이 총출동해 수확한 고추로 담은 고추 지는 집 만두 맛을 완성하는 핵심적인 재료다. 고기만두를 만들고 김치와 고춧가루를 추가하면 김치만두, 거기에 청양고추와 청양 고춧가루를 더하면 먹는 사람은 계속 찾는다는 매운 만두다. 일반적으로 튀김기에 튀겨 판매하는 튀김만두 대신 한번 찐 만두를 프라이팬 위에서 기름에 굴려주는 지짐만두를 메뉴에 넣었다. 불 앞에서 한참을 이리저리 굴려 만드는 지짐만두는 시간과 정성이 배로 들어가지만 찐만두에 물릴 때쯤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다. 평소 가족들이 만두와 함께 즐기던 식혜도 음료 메뉴로 준비했다. 엿기름물에 밥알을 하룻밤 삭힌 뒤, 찜기에 쪄서 껍질을 벗기고 갈아낸 단호박을 더해 매일 만드는 단호박 식혜는 만두와 어울리는 달콤함을 자랑한다. 단호박의 은은한 단맛 덕분에 일반 식혜보다 설탕은 적게 들어간다. 분홍색 만두를 귀여운 표정으로 그려낸 여니만두 디자인은 연희 씨가 직접 만들었다. 여니만두를 상징하는 만두 캐릭터는 소장용으로도 손색없어 개업 이벤트에는 텀블러와 그립톡으로, 1주년 이벤트에는 컵과 키링으로 제작해 손님들과 추억을 공유했다. 여러 종류의 바위솔로 가득한 가게 앞 화단은 아버지의 배려다. 만두를 찌는 시간 동안 볼거리를 공유하기 위해 꾸몄다. 추운 날씨에도 푸릇하고 독특한 모양으로 펼쳐진 식물들이 만두가 익는 시간을 짧게 느껴지게 한다. 여름을 시원하게 채웠던 비빔만두는 겨울에는 만두전골로 대신할 생각이다. 한손 가득 쥐어 만든 신선하고 다양한 속 재료가 추워질수록 빛을 발하는 따듯한 즐거움을 전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청주 곳곳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매력적인 파노라마 뷰가 펼쳐진다. 공장과 주택, 도로와 골목 등 별 것 아닌 도심 풍경이지만 사창동 언덕 위 16층에서 내려다보니 특별한 그림이다. 액자 같은 창문 안쪽에는 진짜 그림이 가득하다. 유화, 아크릴화, 수채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린 그림은 꽃이거나 눈 쌓인 자연이거나, 사람이다. 은담화실을 찾아온 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 장에 담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혹은 표현하고 싶은 기법에 따라 색색의 이야기가 한 폭의 그림으로 쓰인다. 성인들을 위한 감성 미술 스튜디오를 표방한 은담화실은 처음에는 작업실로 쓰고자 마련한 공간이었다. 학창시절 미술관에서 본 그림에 매료돼 미술을 시작한 김은후 대표는 쭉 그림을 공부하며 예고에 진학하고 동양화를 전공했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뱀이 그림 속 이야기와 함께 아름답게 느껴진 것이 붓을 들게 된 계기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 교육 관련 분야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이어가다 지친 은후씨는 어느새 바닥까지 소진된 자신을 발견했다.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금 간절해졌다. 가족과 상의 끝에 아버지가 오래전 마련해둔 공간을 작업실로 쓰기로 했다. 탁 트인 풍경이 심신을 달랬다. 어둡기만 했던 자신의 그림이 차차 밝아지는 것을 실감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어색한 사람들에게 쉼이 있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교육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인 미술을 기획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훔쳐볼 수 없는 공간의 매력도 일조했다. 전단을 만들어 붙이고 SNS를 통한 홍보를 이어가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용기를 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성인들이 은담화실의 문을 두드렸다.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그림을 찾는 이들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단으로 그림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학창시절 이후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그림이지만 그저 그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화실을 찾는다. 화실 밖에서는 내성적이면서도 자신의 공간에서는 한없이 밝고 친절한 선생님이 되는 은후씨는 누구나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 비타민 같은 존재다. 척척박사가 꿈이었을 만큼 잡지식에 관한 관심도 높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간의 경험과 이야기를 더한 커리큘럼은 은후씨만의 독창적인 구성으로 마련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기법에 대한 강좌도 귀여운 그림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섞어 지루할 틈 없이 익히게 한다.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해 즐겁게 따라가다 보면 비었던 종이는 이미 아름답게 채워져 있다. 원데이클래스로 찾아왔던 이들이 정규 반을 등록하고 몇 년을 한결같이 찾아오게 되는 비법이다.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거나 학생이었다가 졸업 후 취업을 한 수강생도 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따듯한 시간을 그려가는 이들도 많다. 다양한 직군과 연령층이 찾아오니 은담화실은 밥상 위의 메뉴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색으로 색색이 물든다. 원하는 방식에 따라 기초부터 차근히 배워나가기도 하고 조언과 첨삭을 받아가며 그리고 싶은 무엇이든 그릴 수도 있다. 수학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머릿속에 그렸던 이상적인 방향으로 함께 가는 즐거움을 찾는다. 은담화실은 마음이 탁 트이는 공간이다. 발랄한 선생님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그려볼 수 있다.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이야기가 한 장 한 장 세상으로 나온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내면의 대화가 스스로를 위로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처음의 기억은 강렬하다. 어떤 음식은 처음 맛봤을 때의 느낌으로 그 음식에 대한 인식이 결정되곤 한다. 첫입에 만족스러워 손꼽는 메뉴가 되거나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다시 입에 대고 싶지 않아질 수도 있다. '청춘국물닭발'을 운영 중인 오승근 대표와 이현우 이사는 생각지도 않았던 첫번째 닭발에 인생을 걸었다. 20대 초반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와 우연히 들어섰던 가게다. 닭발을 먹어본 적 없던 오승근 대표는 청춘국물닭발에서 인생 첫 닭발을 맛봤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먹을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 손이 가지 않던 음식이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분리되는 국물 닭발 맛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뼈째 으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는 유지한 채 살과 뼈가 나뉘었다. 깔끔하게 매운맛이 적당히 씹히다 녹아내렸다. 걸쭉한 국물이 배어든 숙주나물은 아삭하게 씹히며 재미를 더했다. 끓을수록 깊어지는 국물맛이 국물 닭발의 매력을 확인케 했다. 몇 년간 닭발과 함께 일하며 확신을 얻은 승근 씨는 8년 전 가게를 넘겨받았다. 그사이 수많은 닭발 가게가 생기고 그 맛을 봤지만 청춘국물닭발의 맛에 충분히 청춘을 걸어볼 만하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왔던 조리 과정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양념을 넣는 순서나 시간, 숙성의 차이다. 미묘한 맛의 변화는 손님들이 먼저 알아봤다. 승근 씨가 본격적으로 맡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가게를 넘겨받기 전보다 4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매장에서 먹을 때는 닭발 위로 수북하게 쌓아 올린 숙주나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숙주의 양으로 매운맛을 조절하기도 하고 쫄면 사리 등을 추가해 면과 함께 재미있는 식감을 즐기기도 한다. 취향에 따라 뼈있는 닭발과 무뼈닭발을 선택할 수 있다. 국내산 생닭발을 손질하고 한번 데친 뒤 8가지 재료가 들어간 양념과 함께 끓인다. 매운맛의 정도는 인위적인 향신료 없이 고춧가루로만 결정한다. 불의 크기와 시간, 양념이 들어가는 순서 등이 모두 맞아야 혀끝에서 발골의 재미를 느끼는 청춘국물닭발 만의 부드러움이 완성된다. 하루 전에 미리 준비해둔 숙성 양념이 조리시간을 단축한다.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수량 예측도 한몫한다. 쉽게 변하는 숙주나물은 당일 수요를 정확하게 준비해야 손실이 없다. 5년 전 청춘국물닭발로 인생 첫 닭발을 만난 뒤 함께 일하게 된 이현우 이사는 현재 청주 사창동 본점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손님들을 겪으며 배달 서비스에 도가 텄다. 커다란 솥에 몇 시간을 끓여 밑 작업을 해둔 닭발은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소분해 센 불에 볶아 낸다.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볶는 작업을 거쳐 주문받은 것 이상의 서비스를 준비한다. 주문 후 짧은 시간 내에 받아볼 수 있는 데다 주먹밥이나 계란찜, 음료 등 예상외의 서비스로 기쁨을 선물하는 것이 재주문을 이끄는 비결이다. 양이나 가격 면에서 혼자 먹기 부담스러운 다른 야식에 비해 가볍고 남으면 볶아먹거나 다시 조리해 먹어도 되는 닭발의 특징이 인근 원룸 학생들에게도 통했다. 대학 인근에 있는 특성상 매장 방문 손님이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배달 수요가 급증했지만 청춘국물닭발은 오히려 손쉽게 우위를 점했다. 빠른 조리시간과 보장된 맛을 앞세워 올해부터 시작한 가맹점 사업으로 전국적으로 90여 개의 가맹 계약을 완료했다. 매장에서 운영하는 이벤트와 배달 서비스 구성 등을 변화시키며 늘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재미를 찾는다. 인생 첫 닭발의 맛에 매료된 청춘들의 열정이 뜨겁다. 또다른 이들의 처음을 사로잡을 청춘국물닭발이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른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