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시선을 끄는 것은 쉽다. 알록달록한 색감, 귀여운 캐릭터 등 누구나 탄성을 지를 법한 디자인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음식에 적용될 때는 조금 어렵다. 아무리 예쁜 모양이어도 맛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저 한번 환호하고 끝나는 소모품에 불과해진다.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눈길이 닿게 할 수는 있어도 솔직함으로 무장한 진짜 소비자들의 후기에는 맛에 대한 냉정한 평가까지 담기기 때문이다. 블레스롤의 디저트는 오랜 기간 누적된 고객들의 만족도와 리뷰가 하나의 증빙자료다. 빨강, 보라, 노랑, 파랑 등 총천연색으로 둥글게 말아 둔 무지갯빛 블레스롤을 비롯해 우유 크림으로 가득 채워진 점박이 무늬의 젖소롤, 하트나 별 모양, 프랑스 국기를 표현한 색상 등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눈이 번쩍 뜨일 예쁜 색감이 특색이다. 화려한 색상을 보고 약간의 의심을 품었다가도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미소가 퍼진다. 최근 블레스롤 지웰시티점의 문을 연 양서연 점주도 블레스롤 대전 본점의 오랜 단골이었다. 무지개색 아이스크림에 반해 아이들과 찾아가기를 여러 번, 몇 년을 단골로 꾸준히 찾았다. 점점 다양해지는 제품들과 특색있는 디자인, 자신만큼이나 꾸준한 손님들을 보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한 동네에도 수십 개씩 존재하는 카페들과는 메뉴부터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블레스롤은 롤케이크 전문점이자 디저트 카페다. 청주만 해도 최근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지만 블레스롤은 롤케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만큼 색깔이 분명하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색채의 폭신한 빵에 돌돌 말린 크림은 얼그레이 크림, 레몬 크림, 크림치즈, 바나나오레오크림, 크랜베리 체리 요거트 크림, 블루베리 크림치즈 등으로 선택의 폭을 넓힌다. 유지방 함량이 높은 동물성 크림으로 꽉 채워 냉동상태로 보관했다가 실온 해동을 거쳐 부드러운 맛을 선사한다. 덜 녹았을 때는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함이 다 녹으면 느끼함 없이 담백한 우유의 풍미로 입안에 남는다. 화려한 색으로 특별한 날의 즐거움을 더하고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만족스럽게 사라지는 무지개 케이크도 롤케이크만큼 인기다. 주문하면 한 알씩 붙여 색색의 화려한 곰돌이 젤리로 빼곡해지는 하리보 케이크는 아이의 기쁨까지 빈틈없이 채운다. 달콤한 쿠크다스콘과 어우러지는 쫀득한 소프트아이스크림도 우유 함량이 높아 특별한 부드러움과 고소한 달콤함을 내세운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 눅눅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부드러운 콘까지 다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죠리퐁이나 오레오 쿠키 등을 잔뜩 묻혀 '퐁더쿠' '오더쿠' 등으로 이름 붙인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베스트 메뉴다. 쿠크다스 콘을 부숴 넣고 캔 실링으로 배달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단연 손꼽히는 배달 효자상품이다. 블레스롤 지웰시티점만의 매력은 도심 속 쾌적함이 돋보이는 넓은 카페라는 점이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접근성이 좋은 것은 물론 마트와 아웃렛 등에서 쇼핑을 즐긴 이들도 가볍게 카페에 들러 여유를 즐길 수 있다. 1층과 2층으로 구분돼 두 가지 분위기를 예상하지만 2층을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 전혀 다른 느낌의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밝은 개방감의 창가 자리와 초록빛 화단 인테리어를 기점으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안쪽 자리가 이질감 없이 분리된다. 호텔을 참고해 둥글게 마감한 벽 쪽 자리도 또 다른 카페처럼 꾸몄다. 높은 테이블과 낮은 테이블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집에서 앉는 의자처럼 푹신한 소파가 편안함을 준다. 테이블간 거리는 최대한 넓혀 공간이 분리된 듯 한껏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눈이 즐거운 디저트에 맛과 분위기가 매력을 더한다. 블레스롤이 한번 먹어보고 싶은 디저트가 아니라 계속 생각나는 디저트가 될 수 있는 이유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대여섯 가지 채소를 넣고 삶은 쫀득한 족발, 맑은 기름에 튀겨 얇게 저민 파와 함께 먹는 돈가스, 끓이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밀푀유나베가 모두 인기다. 물만큼 많은 양의 한우 사골을 최소 3일에 걸쳐 정성으로 끓이고 소분해 둔 진한 한우 사골곰탕도 있다. 삼겹살, 목살 등 흔히 구워 먹기 위해 찾는 고기부터 볶아먹고 끓여 먹는 고기까지 모든 부위 맛집으로 소문난 이곳은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태암수정아파트 상가 정육점 '주성고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되는 정육점이지만 판매대 뒤로 보이는 주방은 늦은 밤, 이른 새벽에도 분주한 작업이 이어진다. 정육점 하면 떠오르는 일은 손님이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썰어 판매하는 일이지만 주성고기에서는 이 단계에 오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부분육을 받지 않고 지육(머리, 내장, 발을 제거한 고기)을 작업하는 박희석 대표는 평균 7~8마리가량의 돼지를 발골한다. 부위별로 나누어 손질하고 고기 상태에 따라 숙성 온도와 시간을 정해 주성고기만의 숙성 기간을 거쳐 판매대에 오르는 모든 부위가 희석 씨의 손을 거친다. 직접 발골하고 판매하기에 부위별 수요와 재고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별다른 가공 없이 고기 맛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는 구이용, 수육용, 국거리를 제외한 부위를 소진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가공 판매다. 비교적 수요가 적은 뒷다리는 뒷다리에 맞는 숙성을 거친 뒤 양념육으로 판매대에 올렸다. 직접 만든 고추장 양념과 간장 양념 등 집에서는 굽기만 하면 되는 불고기 등이 제품으로 등장했다. 등심은 그에 맞는 숙성으로 연육 작용을 거쳐 손질하고 습식 빵가루를 묻혀 튀겨 돈가스를 만들었다. 돈가스를 시작할 무렵 단골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며 의견을 받아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다. 직접 만든 소스와 파채 구성으로 완성된 돈가스는 판매를 시작하는 오후 2시를 기다리는 단골이 따로 생길 만큼 자리 잡았다. 수요는 있지만 막상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족발도 가게에서 직접 삶는다. 시간을 두고 충분히 물에 담가 잡내를 제거한 족발은 또 다른 별미로 사랑받는다. 찾는 손님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테스트를 시작해 제품을 만든다. 담백한 맛으로 칭찬이 자자한 밀푀유나베의 육수가 완성되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파무침부터 육회 소스까지 가게에 있는 모든 소스는 직접 만든다. 처음에는 서비스 개념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수요가 많아지면서 하나의 일이 됐다. 한우 육회는 작업 한 날부터 3일만 판매한다. 경매를 받아 가져온 고기는 즉각 손질해야 하기에 밤 12시부터 가게 불을 밝히기 일쑤다. 희석 씨는 자신이 손질하고 숙성한 고기에 대한 확신이 있다. 소금과 설탕만으로 수육을 삶아도 된다고 권할 만큼 고기 맛에 자부심을 품는다. 그 때문에 단골들의 입맛도 주성고기에 맞춰졌다. 고기 상태를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전화로 주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명절에 쌓인 포인트로 몇 달간 소진할 수 있을 만큼 대량으로 주문하는 고객도 많다. 육질이 손상될 수 있는 진공포장 대신 스킨포장과 산소 포장으로 고기의 선도를 최대한 보존하고 캠핑 등을 위해 멀리 가는 이들에게는 아이스팩과 얼음이 따라간다. 손님의 입에 들어가기까지 자신의 고기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싶어서다. 믿고 찾아주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더 오랜 시간 주방에 머물며 고민이 깊어진다. 가장 맛있어질 순간을 기대하며 숙성고를 채워가는 희석 씨의 즐거움은 너무나 당연하게 손님들의 입에도 전해진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설탕이 생일을 축하해", "해피꼬질이데이", "콜라 첫돌" 등 케이크 위에 적힌 주인공 이름이 독특하다. 별명인가 싶다가도 모두 강아지 그림과 함께인 것이 의아하다. 이 케이크를 먹는 이들도 따로 있다. 예쁜 색깔의 크림으로 덮인 디자인과 모양은 일반적인 케이크같이 보이지만 반려동물의 기념할만한 날에 반려인들이 준비하는 강아지용 케이크다. 시트는 빵 대신 삶은 오리고기나 고구마와 쌀가루 등으로 대신하고 크림은 단호박, 자색고구마, 치자 가루 등에 두부와 치즈 등을 섞어 만든다.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색다른 간식에 환호하는 강아지를 위해 반려인들이 분주하다. 생일 외에도 어린이날이나 명절,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간식을 선물하고 싶은 날 이곳을 찾는다. 다양한 수제 간식이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쪼꼬네 새참가게를 채우고 있다. 쿠키와 마들렌, 타르트, 테린 등 언뜻 봐서는 강아지 간식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과자류가 눈에 띈다. 함박스테이크, 짜장면과 치킨 등 사람이 먹는 것과 비슷한 모양으로 구현한 음식은 특식을 먹는 강아지보다 평소 같은 것을 나눠 먹고 싶었던 주인들에게 더 큰 기쁨이다. 요리학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한 강사 생활에 이어 7년간 요리학원에서 근무하던 정세진 대표는 요리의 즐거움을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 쪼꼬와도 나누고 싶었다. 요리학원이 끝나면 강아지 간식 수업을 따로 찾아가며 재료를 익히고 메뉴를 개발했다. 사람을 위한 요리에서 가장 까다로운 '간'을 배제하고 음식을 만드니 요리가 더욱 즐거워졌다. 맛과 영양에만 신경 써 간식을 만들다가 쿠키와 마들렌처럼 예쁘게 모양 잡은 간식을 반려인 친구에게 선물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쪼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요리학원 대신 강아지 수제 간식 가게를 생각하게 됐다. 쪼꼬네 새참가게의 주방은 여느 요리학원만큼 분주하게 돌아간다. 고구마와 단호박을 삶아 으깨고, 브로콜리도 데쳐서 갈아낸다. 12시간 넘게 물을 바꿔가며 염분을 완전히 뺀 황태를 말리고 가루로 만들며 락토프리 우유를 끓여 치즈를 만든다. 사과와 함께 끓인 돼지코를 건조하고 잘라 오래 씹을 간식을 만들고 쪄서 으깬 해남 고구마를 볶은 검은깨와 섞어서 스틱 형태로 건조한 까마구마도 개발했다. 요리학원 경력은 완성도와 정교함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닭고기를 갈아서 채소 등과 뭉쳐 치킨 모양으로 만든 것은 한번 구워낸 뒤 쌀가루, 달걀, 황태 가루를 묻혀 한 번 더 굽는다. 모양은 물론 색감까지 영락없는 닭튀김이다. 모형을 만들 듯 섬세한 디자인이 탄성을 자아낸다. 고기를 다지고 뭉쳐 만든 함박스테이크 위에는 노란 치즈도 모양을 잡아 올리고 직접 건조해 가루로 만든 이태리 파슬리를 뿌린다.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 칠면조 쿠키는 바나나와 치즈, 단호박 등을 넣어 크림 형태로 만든 바나나 크림이 속을 채운다. 각종 채소를 갈아 달걀과 전분을 넣고 구운 타르트 지 위에 고기를 삶아서 간 것을 무스에 섞어 채우고 소고기 미트볼과 채소를 올려 먹음직스러움을 강조한다. 핏물을 빼고 식초 소독한 뒤 건조한 닭발, 소기름을 모두 제거한 한우 우족이나 딸기와 망고를 더한 우유 껌, 소 떡심 겉 부분에 말고기와 치즈 등을 붙인 말치즈갈비 등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필요한 간식류도 다양하다. 설탕과 소금 등이 들어가지 않아 다루기 어려운 특성을 건조 간식 형태로 해결했다. 냉동이 가능한 콩 크림도 개발해 올해 안으로 택배 주문도 받을 계획이다. 쪼꼬네 새참가게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의류나 목욕용품, 액세서리, 장난감 등도 준비돼있다. 건강 간식을 찾아왔다가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또 다른 것을 가져가게 된다. 세진 씨는 소중한 반려동물에게 뭐든 더 해주고 싶은 반려인의 마음을 가게 곳곳에 채웠다. 쪼꼬만을 위해 준비하던 정성 가득한 새참이 로니, 대봉이, 조콩이, 지방이, 코이 등 많은 강아지를 행복하게 한다. / 김희란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비케케는 동티모르의 도시다. '비케케선셋'이 생소한 나라의 도시 이름에 선셋을 붙인 건 그 나라, 그 도시에서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던 따뜻한 기억을 손님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서였다. 청주 성안길에 있는 브런치펍 비케케선셋의 이상선 대표는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가졌다. 상선씨는 친구들이 운동과 공부 등 자신의 재능을 찾아갈 무렵 요리를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도 없이 뚝딱뚝딱 음식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고 재미를 좇아 시작한 음식 덕에 일찌감치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기특한 중학생이 됐다. 취미를 재능으로 만든 상선씨를 눈 여겨보던 선생님의 권유로 고등학교 진학부터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염두에 두고 조리과를 선택했다. 각종 대회를 출전하고 수상하며 자연스레 대학까지 전공이 이어졌고 전국 각지의 요리 대회를 찾아다녀 군에 입대할 때 즈음에는 50개가 넘는 수상 경력이 쌓였다. 특기를 인정받아 군대에서도 요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여러 행사 등을 주관하며 더 많은 식재료를 다뤄보고 다양한 입맛을 가진 이들을 상대했다. 제대 후에도 색다른 기회는 이어졌다. 캘리포니아와 동티모르 등 해외 대사관저 요리사로 일하며 다른 나라의 식재료와 여러 국적의 손님을 맞았다. 때로는 일상식으로, 때로는 귀빈을 접대하는 코스 요리 등으로 끊임없는 고민과 구상을 식탁 위에 풀어냈다. 요리 대회를 준비하며 창작했던 요리에 더해 여러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다루다보니 실력은 자연스레 늘었다. 동티모르에서 근무할 때 쉬는 날마다 비케케를 찾아 일몰을 보며 먹는 간단한 치킨 메뉴가 작은 즐거움이었다. 고향인 청주에 돌아와 자신의 가게를 열며 그때의 따뜻한 기억을 곳곳에 채웠다. 깔끔한 가게 내부에서 작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선셋을 닮은 조명이나 동티모르 국기 색을 활용한 그림, 그 곳의 맥주, 추억 속 사진 등이다. 비케케선셋에서 가장 먼저 확정한 메뉴는 동티모르 대사관에서 손님을 위해 준비했던 보리새우명란파스타다.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해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가게에 맞게 변형한 파스타는 건보리새우로 감칠맛을 내고 고추기름과 고추로 매콤한 맛을 넣었다.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이 메뉴는 처음 찾아온 손님들이 다시 비케케선셋을 찾아오는 일등공신이다. 닭다리살을 양념하고 숙성한 뒤 튀긴 수제켄터키치킨과 직접 구운 페스츄리로 눈과 귀까지 사로잡는 바삭한 싸이크로플은 해시포테이토와 어니언 소스가 어우러진다. 높이 쌓은 음식이 무너지지 않게 모양을 잡은 페스츄리는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쌓인 재료를 든든하게 받치면서도 적당히 썰어 입에 넣으면 파삭하게 부서지는 빵의 식감이 여러 재료와 함께 새로운 맛을 연출한다. 스테이크 소스로 함께 내는 명이페스토는 머스터드와 간장양념 등으로 숙성시켜 고기 맛을 배가시킨다. 수비드 작업으로 부드러움을 더한 돼지고기 메뉴도 다양하다. 오겹살파스타에는 깻잎으로, 업진살과 항정살을 사용할 때는 영양부추로 맛의 균형을 잡는다. 제철 식재료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을 피클에 담았다. 오이와 무, 알배추 외에 참나물이나 방풍나물, 열무 등 계절마다 달라지는 부재료가 눈에 띈다. 비케케선셋은 청주시민에게 낯선 나라의 음식을 낯설지 않게 소개한다. 상선씨의 추억과 아이디어가 만나 재해석된 이색적인 음식이 비케케에서 바라본 일몰의 분위기까지 한 그릇에 담았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간판을 본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간판 아래 유리 너머로 비치는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간결하게 쓰인 한문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짙은 초록색으로 쓰인 무감각제과점(無感覺製菓店)이라는 글자에 흥미가 돋는다. '무감각'은 아무 감각이 없다는 의미의 명사다. 주변 상황이나 사람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자로 표현한 무감각이라는 글씨가 그 자체로 감각적이다. 없을 무(無) 뒤에 찍힌 작은 쉼표 하나가 무감각에 감각을 더했다. 작은 테이블 몇 개가 놓인 내부에 들어서면 버터향이 먼저 반긴다. 먹음직스러운 샘플 뒤로 곱게 포장된 4가지 종류의 마들렌과 5가지 종류의 휘낭시에가 구운과자 전문점의 존재를 알린다. 학창 시절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들어선 카페의 분위기에 끌려 차츰 커피의 매력을 알게 된 임동훈 대표는 군 제대 후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커피와 일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 하기도 하고 로스팅 회사 등에 몸담기도 했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물론 즐기는 사람들과 호흡하는 일도 즐거웠다. 커피를 좀 더 즐겁게 마시기 위해 취미로 배웠던 베이킹도 적성에 맞았다. 학창시절 등한시 했던 숫자들이 손끝에서 재해석 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과자류는 재료의 배합이나 숙성 시간, 굽는 시간에 따라 명확하게 결과가 달라진다. 오븐에 들어가기 전 작은 차이가 오븐 속에서 커다랗게 반응해 결과로 나오는 것이 일종의 수학이고 과학 같았다. 나중으로 계획했던 자신만의 공간을 열게 된 건 건강상의 이유다. 갑자기 맞닥뜨린 건강 문제는 어딘가에 소속돼 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급하게 준비했지만 꼼꼼하게 기획한 베이크샵은 이전부터 사용하던 자신의 온라인 아이디 무감각에서 따왔다. 타일과 페이팅, 전기, 설비까지 직접 참여해서 만든 인테리어는 그동안의 관심사와 고민을 그대로 담았다. 좋아하는 식재료를 오롯이 담아 만든 메뉴도 그 일부다. 폭신하게 녹아내리는 클래식 마들렌은 일반적인 재료에 동훈 씨만의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그 자체로 특색있는 맛이다. 육쪽마늘빵에서 착안한 육쪽마늘 마들렌은 무,감각 이 내세우는 시그니처 메뉴다. 육거리시장에서 사온 육쪽마늘을 원하는 결대로 빻은 뒤 살살 갈아내고 버터 등의 소스와 함께 숙성시켜 마늘 소스로 만든다. 크림치즈를 가득 채운 마들렌 위에 숙성된 마늘 소스를 입히면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육쪽 마늘 마들렌의 풍미가 완성된다. 발로나초콜릿으로 달콤한 부드러움을 채운 발로나 초코 마들렌도 꾸준히 인기다. 아버지의 여행길에 친구들과 함께 드실 수 있도록 고안했던 흑임자 가나슈 마들렌은 중장년층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고소한 맛과 향의 흑임자 마들렌에 바삭한 식감을 위해 토핑으로 올리는 깨강정까지 직접 만든다. 검은 깨와 어우러지는 색감을 위해 섞은 참깨도 고소함을 더한다. 향미를 강하게 만든 뵈르누아제트(갈색이 될 때까지 가열한 버터)에 적정 비율의 아몬드 가루가 쫀득한 식감을 선보이는 휘낭시에도 다양한 토핑으로 맛의 변화를 줬다. 피스타치오나 카라멜 피칸 등 원하는 견과류를 선택해 각각의 고소함을 즐길 수 있다. 고르곤졸라의 풍미로 채운 블루치즈 휘낭시에나 바삭하게 씹는 재미까지 더한 누룽지현미 휘낭시에도 색다른 디저트다. 새벽부터 준비하는 식재료들의 조합이 작은 오븐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조만간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계절별 시그니처 메뉴도 준비할 계획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자유로운 틀 위에 감각적인 디저트가 디자인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장미, 동백, 벚꽃, 토끼풀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익숙한 꽃부터 양귀비, 작약, 히아신스, 거베라 등 자주 볼 수 없던 꽃도 계절과 상관없이 활짝 피었다. 떡케이크 위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꽃들은 각각의 향기 대신 달콤한 앙금의 맛을 머금었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면서 떡케이크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여러 개의 떡을 쌓아 모양만 케이크처럼 만든 떡케이크도 있지만, 모양을 포기하지 않은 소비자들 덕에 다양한 디자인의 떡케이크도 시장에 나왔다. 앙금플라워케이크가 등장한 뒤에는 오히려 기존 케이크보다 훨씬 화려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앙금에 색을 더해 손끝으로 짜내는 꽃은 만드는 사람의 감각에 따라 색과 모양이 달라져 무궁무진한 표현이 가능하다. 지난해 용정동에 문을 연 이슬기 대표의 아뜰리에듀이의 앙금플라워케이크는 색다르다. 알록달록한 꽃을 크고 풍성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색감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에 초점을 맞췄다. 앙금플라워케이크를 받는 사람은 연령대가 있더라도 선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0~30대라는 것에 착안했다.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이 먼저 선택하고 만족할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을 위해 노력한다. 작은 꽃이 수십 송이 모여 떡케이크 위를 둥글게 장식하는 잔꽃리스 디자인은 흰색이나 연분홍색 등 튀지 않은 색으로도 충분히 시선이 모인다. 설기 위를 겹겹이 가득 채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형형색색의 꽃 잔치 대신 몇 송이의 큰 꽃과 그에 어울리는 작은 꽃들이 만들어내는 색과 모양의 조화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같은 계열의 색도 조색의 비율에 따라 색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져 색을 만드는 과정부터 늘 새로운 창작품을 만드는 자세로 심혈을 기울인다. 국내산 쌀가루를 사용해 슬기 씨만의 비법으로 쫀득한 식감을 내는 설기에 색과 맛을 더하는 흑임자나 쑥, 단호박 등도 국내산 원물 가루만 사용한다. 카카오를 사용해 설기를 쪄내면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떡케이크가 완성된다. 이전에 운영하던 카페에서 판매했던 아이스크림 형태의 팝시클 케이크도 아뜰리에듀이에 맞게 변형했다. 직접 구운 파운드 케이크를 초콜릿으로 코팅하고 슬기 씨의 감각으로 디자인한다. 예쁜 디자인은 물론 하나씩 나누기에도 간단하고 달콤한 맛까지 있어 어린이집부터 기업 행사까지 주문이 이어진다. 호두를 오븐에 구워 고소함을 살리고 쌀 조청 등으로 건강한 단맛을 내는 호두 정과도 인기다. 곶감 속을 파내고 유자와 대추 등과 함께 넣던 곶감 단지에서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단일 제품이 됐다. 설기와 함께 답례품으로 나가거나 단일 상품을 선물용으로 찾는 이들도 많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맛과 모양을 만들어내기에 주문 단계에서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생일이나 감사, 상견례 등 어떤 행사에 이용하는 것인지부터 받는 사람의 성향이나 주는 사람의 의도 등을 파악하기 위해 되도록 자세히 묻고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보태기도 한다. 앙금플라워케이크나 팝시클케이크 등에 대한 재주문이 이어져도 행사의 성격과 용도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기에 완전히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여러 번의 다름을 경험하고 만족한 이들이 아뜰리에듀이의 단골을 자처한다. 고객의 주문을 씨앗 삼아 정성으로 피워 낸 앙금 꽃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폭신한 떡 위에 펼쳐지는 작은 꽃밭으로 완성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갓 지은 밥 먹기가 쉽지 않다. 밥 먹는 시간 맞추기도 어려운 가족 구성원이 매끼 새로 밥을 해 먹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즉석밥이나 냉동 밥 등 간편하게 한 끼 해결할 방법이 늘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윤기가 흐르는 공깃밥도 있지만 대량으로 밥을 해 꾹꾹 눌러 담아 보온한 공깃밥이 뭉쳐져 숟가락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도 왕왕 있다.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많은 사람이 '집밥'의 이미지를 그리워하는 것은 밥을 차려주는 이의 따뜻함과 정성의 부재다. 사 먹는 음식에서도 집밥 같은 밥상을 찾는 것은 집에서 먹는 밥 그 자체보다는 정성이 담긴 밥상을 찾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용암동에 문을 연 솥밥집은 이름 그대로 솥에 한 밥을 내주는 솥밥집이다. 홍준기 대표가 초점을 맞춘 것은 따뜻하게 대접받는 듯한 한 상이다. 시대적 배경에 발맞춰 개인위생에도 신경 썼다. 개인 식판에 개인 식기로 타인과의 식사가 부담스럽지 않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에 그치지 않고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재료를 한 솥에 담았다. 전복, 꽃갈비, 장어 등 주문한 메뉴에 맞는 부재료가 함께 담긴 갓 지은 솥밥이 한 사람당 하나의 쟁반에 놓인다. 곁들여 먹을 음식은 깍두기와 겨자소스를 두른 백목이버섯, 된장찌개뿐이지만 작은 쟁반이 꽉 찬 실속있는 구성이다. 솥밥이 나오면 함께 나온 그릇에 밥을 덜어두고 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든다. 따뜻하고 구수한 마무리까지 하나의 코스다. 밥에 올라간 재료에 따라 비벼 먹을 수 있는 간장소스도 달라진다. 꽃갈비 스테이크 등의 메뉴에 함께 내는 솥밥집 소스는 양조간장에 양파, 마늘, 정종, 닭 등을 넣어 6시간 이상 끓여 만드는 정성으로 밥과 재료에 맛과 향을 더한다. 완도산 활전복만 사용하는 전복솥밥은 전복내장을 쌀과 함께 볶아 만들어 초록빛 진짜 전복 밥이다. 건강하게 맛있는 재료를 생각하다 보니 당연히 완도, 당연히 살아있는 전복이었다. 홍 대표도 전복 밥을 취급하기 전에는 본 적 없던 초록색 밥알이 빛깔과 윤기로 신선한 재료를 증명한다. 한 숟가락 가득 소복하게 퍼 올린 한입에 바다의 건강함이 그대로 담긴다. 여기에도 직접 끓인 맛 간장을 함께 제공해 취향에 따라 간을 채울 수 있다. 빨갛고 자극적인 재료 없이 간장을 베이스로 양념해 채소와 비벼 먹는 꼬막 비빔밥도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으로 인기다. 솥밥에 올라가는 재료는 최대한 자극적인 요소를 뺐다. 가게 초기에는 매운 주꾸미 등 고추장 베이스의 메뉴도 있었지만 가게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중단했다. 꽃갈비 스테이크, 전복, 장어, 명란 아보카도, 새우 등 재료와 조리법만으로도 맛있는 밥이지만 한알 한알의 밥알 자체가 맛있다고 말하는 손님들이 많은 이유는 밥물에도 있다. 북어 대가리, 새우, 무 등 8가지 재료를 넣고 대량으로 끓여 사용하는 밥물 대용 육수는 여러 재료와 섞어 먹는 솥밥에 감칠맛을 더한다. 솥밥이 완성되기까지 8분 정도 필요하다고 적힌 작은 글씨가 기다림을 배려한다. 상 위에 놓인 바삭한 누룽지도 궁금한 입안을 달랜다. 인근에 있는 어린이 놀이시설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오는 부모가 많아 어린이 메뉴도 신경 썼다. 자극적이지 않은 재료 덕에 모든 메뉴를 쉽게 먹일 수 있지만, 간장 달걀 밥처럼 준비되는 어린이 메뉴는 더욱 인기다. 아이와 함께 와본 이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찾는다. 좋은 재료로 푸짐한 솥밥에 밥물과 간장 등을 위한 수 시간의 노력까지 담겼다. 한술 뜨기도 전에 감탄이 나온다. 누룽지로 마무리 할 때까지 내내 남는 온기는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대접받은 기분까지 내어준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특별한 기념일에 형식적으로 촛불을 꽂아 부는 것에 그쳤던 케이크의 역할이 달라졌다. 케이크는 생일에 먹는 것이라는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케이크는 가벼운 이벤트에도 부담 없이 함께 나누는 선물이 됐다. 혼자 먹어도 충분한 손바닥만 한 크기부터 여럿이 나누기에 충분한 크기까지 다양해진 크기가 선택의 폭을 넓혔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은 줄었다. 제과점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케이크도 다양해지고 시즌별로 다른 디자인을 내놓지만 그보다 조금 더 개인적인 케이크를 바라는 이들도 늘었다.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케이크 위에 그림과 글로 표현하기도 하고 선물 받는 사람의 상징적인 무언가를 케이크에 담기도 한다. 카드나 편지 대신 케이크에 직접 담긴 메시지는 화려한 시각적 자극으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나만의 위해 제작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는 감동까지 남는다. 알오알오케이크의 SNS 계정에는 대략 450가지의 디자인이 올라와 있다. 종류별로 서너 가지씩 비슷한 케이크를 제작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1년 새 2천 개가 넘는 주문 케이크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어릴 적 봤던 공연에서 아름다운 선에 이끌려 한국무용을 전공한 김세희 대표는 코로나19로 정기적인 공연 등이 줄어들면서 취미였던 베이킹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었다. 제빵을 하며 가장 화려하다고 생각되는 케이크를 집중적으로 만들어보고자 했을 때 생일에만 먹는 음식이라는 그간의 편견에서 벗어났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을수록 맛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끼고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섬세한 이미지 표현을 위해 꾸덕꾸덕한 크림치즈를 사용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미리 구워 숙성한 뒤 사용하는 촉촉한 시트와 사이사이 적절하게 들어가는 생크림의 비율 덕이다. 알오알오케이크는 색부터 다양하다. 직업적 특색을 살린 제복을 형상화한 케이크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색을 입은 것도 있다. 캐릭터 피규어와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케이크는 아이들은 물론 제작을 맡긴 부모님까지 환호성이 끊이지 않는 특별한 맞춤 케이크다. 연인의 얼굴이나 함께 찍은 사진의 실루엣, 부모님의 결혼사진 등도 자주 그려지는 소재다. 골프나 낚시, 소주 등 좋아하는 무언가를 담은 케이크도 있다. 반짝이는 티아라를 얹은 케이크는 화려함의 정점이다. 특별함을 선물하고자 하는 이들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온전히 케이크 위에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만나야 가능한 선물이다. 선물하는 이들은 받는 이를 떠올리며 가장 기뻐할 아이템을 찾는다. 선물을 건네기 한참 전부터 행복한 고민이 이어진다. 학교 인근에 있어 유독 학생 손님이 많은 알오알오케이크는 그만큼 귀여운 아이디어도 많다. 저금통 속 동전을 양손 가득 모아온 초등학생 손님은 부모님의 사진을 담아 기념일을 축하했다.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케이크에는 칠판과 선생님이 들어가기도 하고 친구의 별명과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도 특별하게 이미지화된다. 세희 씨는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기 전에는 몰랐던 특별한 날들을 새삼 깨닫는다. 생일, 기념일, 크리스마스, 연말뿐 아니라 프러포즈, 어버이날 등 꽃이 필요한 날도 크림 꽃을 피운 케이크가 대신한다. 주문한 문구와 디자인에 따라 손님들의 특별한 날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손님들의 머릿속에 그려졌던 나만의 케이크가 세희 씨의 손을 거쳐 눈앞에 나온다. 주고받는 이의 즐거운 나눔이 입안까지 만족시켜야 제대로 완성이다. 거의 매달 알오알오케이크를 찾아 주변의 소소한 일상까지 특별하게 기념하는 손님이 늘어나는 이유는 달콤한 마무리로 맛있는 디저트의 역할까지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손바닥보다 작은 접시에 톡톡, 화사한 색채의 가루가 쏟아진다. 분명히 무슨 색이라 말하기 어려운 오묘한 색의 구성이다. 흔히 알던 빨강이 아니라 홍매, 홍주, 양홍 등 낯선 이름이 붙었다. 미묘한 색감의 차이는 같이 붉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느낌의 붉음이다. 덩어리진 가루를 개는 작업이 이어진다. 곱게 간 분채에 아교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흔히 알던 물감의 형태가 된다. 윤기를 머금은 재료는 다른 색과 섞여 새로운 색이 되기도 하고 그대로 한지 위에 얹히기도 한다. 화려한 색을 가진 탐스러운 꽃이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호랑이, 여러 몸짓의 새 등이 표현된 이 그림들은 처음 본 이들도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을 느낀다. 예전에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 '민화'다. 지난 3월 29일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에서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한올 한올의 털끝이 표현된 호랑이 그림부터 색색의 꽃이 가득하거나 소나무와 학으로 채워진 병풍 등 35점의 작품이 다양한 민화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몇 번의 단체전을 거쳐 지난 3월 첫 민화 개인전을 연 양선희 작가는 미술교습소 '그림먹는여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화sun민화'의 민화 선생님이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미술을 전공하고 학원을 운영하던 선희 씨가 민화를 시작한 것은 8년 전이다. 당시 미디어에서 연일 슬픈 이야기가 쏟아졌다. 우울감으로 이어진 슬픔을 지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민화다. 민화를 가르치던 친구의 유쾌한 입담과 함께 하는 그림이 당시의 탈출구였다. 가볍게 시작했던 민화에 깊이 빠져든 것은 성격 때문일 것이다. 수채화를 가장 좋아하던 선희 씨에게 민화는 새로운 재미였다. 한동안 가르치기만 하다 다른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어린 시절 그림 실력을 쌓기 위해 꼭 하루 한 장씩 작품을 완성할 만큼 미술에 열중했던 열정이 다시 샘솟았다. 많은 작품을 그리고 칠하며 민화에 푹 빠졌다. 관심을 가지고 서울 등 여러 전시를 찾아다니며 배움을 이어가던 때 눈에 들어온 그림을 찾았다. 이제껏 봐온 민화의 알록달록함과 다른 은은한 색채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를 수소문해 교육과정을 찾았지만 생각지 못한 대기 행렬에 직접 작업실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서울을 오가며 도안부터 채색까지 선희 씨만의 민화 체계를 완성한 뒤 운영하던 미술교습소에서 민화 교실의 문을 열었다. 분채와 봉채, 호분 등 낯선 재료와 바림(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 등의 낯선 작업에도 불구하고 민화는 연령대에 상관없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림이다. 같은 도안을 가지고 그림을 시작해도 나만의 작품이 나온다. 어떤 색을 어떤 형태의 재료로 섞어 사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꽃잎이 그려지고 같은 색을 칠했다 해도 바람 붓의 움직임에 따라 그라데이션이 달라진다. 며칠에 걸쳐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면 그 자체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색을 칠하기 전 분채를 개고 아교로 붙이는 과정부터 붓을 적시는 순간까지 수련하듯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집중의 시간이다. 마음을 쏟아부어 그림에 몰두하는 순간이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이미 수많은 민화를 완성하고도 매주 민화 교실을 찾는 수강생들이 새로운 도안을 찾고 요청한다. 붓끝의 화사한 색감을 종이 위에 얹으며 자신만의 그림 세계가 열린다. 바림붓에 깨끗한 물을 적셔 쓰다듬으면 점차 옅어지는 은은한 색채로 마음까지 맑아진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손편지와 일기장, 가계부 등 자연스레 손으로 기록하던 것들이 특별한 콘텐츠가 됐다. 대부분이 스마트한 기기 하나쯤 품고 다니는 시대가 종이와 펜을 생략하게 했기 때문이다. 글씨를 써야겠다고 애써 마음먹지 않으면 이름 석 자 써볼 일도 별로 없다. 그나마 종종 하던 카드 결제 사인도 5만 원 이하 무서명으로 바뀌면서 줄어들었다. 쓰는 일이 적어진 만큼 필기구를 판매하는 곳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대규모 문구센터나 잡화점을 찾아야 한편에 마련된 펜류 등을 써볼 수 있다. 그런데도 꾸준히 필기구와 지류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직접 선을 그어 종이에 글씨를 남기는 이들은 끄적이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종이 위에 남은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대단지 아파트와 거리가 먼 청주 흥덕구 운천동의 주택 골목에 그 욕구를 충족할만한 공간이 있다. 2020년 9월 연필가게로 시작해 볼펜과 지류와 몇몇 문구류 등으로 판매 목록을 확장한 11포인트다. 묵직한 목재로 만든 수많은 사각형이 벽을 채우지만 어쩐지 여백이 느껴지는 11포인트는 이 골목을 찾는 이들의 성향과 어울린다. 어떤 가게인지 모르고 이끌리듯 문을 열고 들어선 이들이 한껏 천천히 공간을 누벼도 보채는 이가 없다. 계산하는 곳 옆의 숨겨진 공간에서 손님들의 선택에 방해되지 않으려 모습을 숨기고 있는 김상재 대표의 작은 배려 덕이다. 벽면을 채운 원목 장 속 하나하나의 공간에는 한 종류의 필기구가 비커에 담겨 전시돼있다. 제 방을 차지한 듯 명확한 구획의 나눔은 모든 제품에 천천히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시즌에 따라 달라지는 디자인의 연필이나 같은 종류의 펜도 색에 따라 다른 칸에 놓여 매력을 뽐낸다. 함께 놓인 간단한 설명 덕에 주인장의 설명 없이도 누구나 제품을 이해할 수 있다. 필기구 테스트를 위해 놓아둔 두꺼운 노트는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남긴 흔적이 채워졌다.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려고 파일을 열면 기본값으로 설정된 글씨 크기인 11포인트에서 따온 이름의 문구점에서는 디지털과 거리가 먼 물건들을 취급한다. 다이어리나 가계부, 잡지와 엽서 책 등 몇몇 지류와 필통, 가위 등 감각적인 문구류 몇 개, 펜과 연필이 전부다. 10여 년간 온라인을 활용한 업계에 몸담았던 상재 씨는 학창시절부터 펜 등 문구류를 모아온 아내의 취미에서 문구류에 대한 가능성을 읽었다. 악필이 콤플렉스라 웬만해서는 펜을 잡지 않는 자신과는 다른 부류였다. 11포인트에 가져오는 물건은 상재 씨의 고민과 선택의 산물이다.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이 분명한 제품이나 제작자의 목적성이 뚜렷한 제품, 이야기가 담긴 작가의 작품 등이 주된 고려 대상이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의 가격 측면 이점을 해결할 수 없지만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볼 수 있는 장점이 그를 상쇄한다. 수많은 펜 중에도 손에 집히는 느낌과 선이 그려지는 필기감이 착 붙는 나만의 펜은 따로 있다. 그저 구경하러 들어왔다가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선도 문구류의 매력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다는 브랜드의 연필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희소성 등으로 가치를 입었다. 한정적으로 나오는 제품 특성상 최초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요가 있어도 팔지 못한다. 무언가를 쓰기 위한 지류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가을, 다이어리나 플래너 등의 수량이 급증하는 겨울, 친구나 연인이 함께 써 내려 가기 위해 2권씩 판매되는 일이 많은 일기장 등 각각의 제품이 특별한 이야기를 갖는다. 11포인트가 소개하는 아날로그는 사라져가는 옛 정서가 아니다. 지금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한 현재의 기록이나 고민 끝에 눌러담은 미래의 계획이 디지털을 벗어난다. 손가락으로 두드려 쉽게 열어 볼 수는 없지만 서랍 한쪽에 넣어두고 몇 번이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소장품으로 남는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기호식품이란 필요한 영양소가 없어도 독특한 향이나 맛 따위를 즐기는 것에 중점을 둔다. 향과 맛에 대한 취향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커피 전문점이 계속 생기면서도 각각의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기호를 가진 이들이 그만큼 많은 덕이다. 청주 남이면 가마교차로 인근 도로에 인접한 카페에쏘(cafe so)는 김성진 대표의 커피 취향을 담았다. SO는 싱글오리진(single origin)의 약자다. 에티오피아 단일 품종 커피만을 취급하는 이곳의 커피는 산미를 강조한다. 가게 한편에서 볶아내는 로스팅 기계는 성진 씨의 선호도에 맞게 조절돼 원두의 상태에 따라 취향껏 색을 입힌다. 대학을 다니다 잠시 휴학하고 떠났던 캐나다 어학연수가 계기였다. 별다른 목적 없이 다른 나라 그 자체를 즐기며 젊음을 만끽하던 때 커피를 처음 만났다. 일상 속에 녹아든 그들의 커피를 습관처럼 마시다 보니 어느새 커피는 아침을 상쾌하게 깨우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됐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커피가 궁금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카페 아르바이트에 열중했다. 무작정 이력서를 돌리다 연이 닿은 카페는 우연히도 캐나다에 본사를 둔 곳이었다. 일하는 틈틈이 기계와 원두를 공부했다. 원두의 양과 물의 양, 온도와 시간에 따라 추출량이 달라지고 맛과 향이 변하는 과정은 알수록 더 알고 싶은 미지의 세계였다. 업무 중 참여하게 된 카페 쇼에서 캐나다 현지의 본사 직원을 만나 졸업 후 다시 찾아갈 날을 기약했다. 인사치레로 흔쾌히 반겨준 그를 믿고 졸업 후 다시 캐나다로 떠났다. 일하던 브랜드를 나와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브랜드로 새롭게 문 연 베이커리 카페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설거지와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바리스타로 인정받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규모가 큰 가게여서 한국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기기와 원두를 원 없이 접하며 꿈을 키운 뒤 다시 돌아왔다. 새로 문 여는 가게를 함께 한 경험만 6~7번, 커피 외에도 매장 운영에 대한 자신감마저 쌓였을 때 성안길에서 성진 씨의 카페에쏘를 시작했다. 메뉴판 없이 원하는 커피를 제공하거나, 맞춤 셔츠를 함께 서비스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거쳤다. 지나다 들르는 손님보다는 커피 맛을 찾아오는 이들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채웠다. 청주 남이면 가마리로 터를 옮긴 카페에쏘는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러 오는 이들의 공간이다. 나이대를 불문하고 혼자만의 아지트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단일 산지 원두만 사용한 에스프레소는 커피콩 본연의 맛을 추출하기 위해 애쓴다. 꽃같은카노라는 이름의 꽃 모양의 커피 얼음이 띄워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최대한 오랫동안 맛과 향을 간직한다. 메뉴에는 없지만 레드아이나 롱블랙, 플랫화이트 등 취향대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재료가 있고, 만들 수 있으면 손님이 원하는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성진 씨의 방식이다. 직접 구운 호박고구마로 만드는 군고구마라떼나 고소한 흑임자라떼를 비롯해 레몬과 자몽 등 수제청 음료나 직접 구운 미니 파운드케이크도 만나볼 수 있다. 두 대의 피아노가 놓인 널찍한 내부는 음악을 공유하기에도 적합하다. 코로나로 인원이 제한되기 전에는 다양한 버스킹 공연이 이뤄지기도 했다. 같은 원두도 로스터와 바리스타에 따라 다른 커피가 된다. 들쑥날쑥한 맛의 변화가 없어지려면 원두의 상태를 제대로 판단하고 미세한 조절을 해야 한다. 성진 씨의 커피는 곧 카페에쏘다. 성진 씨가 자신있게 소개하는 싱글오리진 커피는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노란 달걀옷을 입은 김밥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이 앙증맞다. 얇은 김밥이 색다른 맛을 선보인다. 속에 들어간 재료라고는 얇은 소시지와 단무지, 데쳐서 살짝 무친 부추 몇 줄뿐이다. 꼬마김밥과는 다르지만 그와 비슷하게 어린아이들도 한입에 먹을 수 있을 만한 작은 크기다. 담백하고 고소한 이 김밥은 짝꿍이 있다. 잘 절인 뒤 물을 빼고 얇게 썰어 오독오독한 식감을 자랑하는 무 장아찌다. 매실청 등 양념으로 무친 새콤달콤한 맛을 기본으로 매운 고춧가루를 섞은 매운 무 장아찌나 다진 소고기를 양파와 고춧가루 등 양념과 함께 볶아낸 소고기고추볶음도 선택할 수 있다. 단출한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재료는 신중하게 선택했다. 김밥의 주재료인 김부터 여러 시도를 거쳤다. 수십 가지 종류의 김을 비교한 끝에 결정된 김은 전남 고흥에서 직접 받는다. 눅눅하고 비릿한 맛 없이 바삭한 김은 주문과 동시에 얇게 부쳐지는 계란 지단을 둘러 따뜻하게 감싸도 질겨지지 않는다. 통조림 햄부터 다양한 햄과 소세지까지 테스트 해본 뒤 결정한 소세지도 맛의 균형을 잡는다. 임승연 대표가 처음 계란말이 김밥을 만난 것은 몇 년 전 천안에서다. 친구 집 근처에서 추천을 받아 먹어본 계란말이 김밥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 남았다. 김밥을 먹기 위해 찾아가기를 몇 번, 생각해본 적도 없던 가게를 해볼 용기가 생겼다. 8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영업력으로 연도대상을 받기도 했다. 말하고 듣는 일을 좋아하는 성격과도 맞았다. 하지만 늘 귀를 혹사하는 직업에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으로 병원을 찾은 뒤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게 됐다. 그즈음 만난 것이 계란말이 김밥이다. 맛있게 먹었던 그 집에 무턱대고 찾아가 기술 전수를 요청했다. 뒤에서 보고 배우며 기본을 익혔다. 배운 것을 토대로 다양하게 응용해 본 뒤 승연 씨의 입맛에 가장 맛있는 조합을 찾아 청주에서 가게 문을 열었다. 배달과 포장 전문으로 운영했던 가게는 처음부터 호응을 얻었다. 청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계란말이 김밥의 특성에 어울리는 메뉴 구성을 더 해 단골을 만들었다. 같은 계란말이 김밥도 같이 먹는 메뉴에 따라 새로운 조합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란말이 김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스로 제조한 쫄면과 떡볶이 등은 장아찌를 능가하는 단짝 메뉴로 떠올랐다. 직접 볶은 소고기고추볶음이 감칠맛을 더하는 비빔밥도 인기다. 돈가스나 우동, 어묵, 떡갈비, 볶음밥류, 덮밥류 등 다양하게 준비되는 메뉴는 여러 명이 함께 먹어야 하는 상황이나 사무실 식사에서도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한 배려다. 매장을 옮기며 가장 신경 쓴 것은 식사와 디저트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분식 카페로 콘셉을 정한 새로운 매장은 밝고 깔끔한 카페다. 김밥과 식사로 시작해 음료와 디저트까지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한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메뉴 구성은 치솟는 배달료에 맞서는 전략이다. 배달료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식사와 디저트를 따로 시켜 먹기 부담스러운 소비자를 위해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식사 메뉴부터 디저트 메뉴까지 수십 가지에 달하는 메뉴가 준비된다. 배달을 하지 않던 거리가 먼 지역에서도 배달비를 낼 테니 배송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청주 전 지역에 배달을 허용했다. 매장과 먼 곳에서 메뉴 두 개 가격에 다다르는 배달비를 내면서도 주문을 계속하는 손님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도 먹고 싶은 다양한 메뉴를 먹게 해줘서 좋다는 손님들의 격려가 고맙다. 배달 현황을 공개해 둔 손님들은 최근 6개월간 수십 번의 배달을 이용한 경우가 대다수다. 매일 비슷한 메뉴를 먹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도장 깨기를 하듯 카페의 모든 메뉴를 한 번씩 먹어보는 손님도 있다. 승연 씨가 원하던 대로다. 입이 떡 벌어지는 맛집보다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될 때 늘 먼저 떠오르는 밥집을 바란다.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만족스러운 한 끼가 또 다른 단골을 만든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청주육거리시장의 어느 골목에서 손을 잡고 걷던 가족이 발길을 멈춘다. 이내 아이의 손을 놓은 아빠가 만두 앞에서 지갑을 꺼낸다. 뭘 또 먹냐며 타박하던 아내도 진열장을 가만히 보더니 메뉴를 고른다. 새우 꼬리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아이를 위한 새우만두까지 추가된다. 일부러 찾아온 단골들이 줄을 서는 시간이 아니라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이 가게는 40년 가까이 이 골목을 지켜온 육거리 소문난만두다. 소문난만두는 이름 그대로 소문난 만두다. 3대째 운영했던 가게의 시간은 손님들에게 3대의 추억을 남겼다. 인근 은행에서 일하던 이지은 대표에게도 소문난만두는 퇴근길의 즐거움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만두에서 직접 빚는 만두가 된 과정은 복잡했지만 결국은 될 인연이었다. 남편의 친척이자 이웃사촌인 전 사장님이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를 남 얘기처럼 넘길 수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휴직과 복직을 거듭한 뒤 직장생활과 사업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터였다. 일단 청주지역의 유명 만둣집을 찾아다녔다. 이것 저것 고루 맛보고 난 뒤 남은 것은 소문난만두의 만두맛에 대한 확신이었다.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하면서 틈이 나는대로 만두집에 찾아가 일을 배웠다. 만둣집의 명절을 경험해 보고 드나드는 손님들을 한동안 파악한 뒤 본격적으로 소문난만두를 인수했다. 50년 전통의 만두맛은 유지하되 적극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시장 밖의 손님들에게까지 찾아가는 서비스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장에 있는 가게의 가장 좋은 점은 누구보다 신선한 식재료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근 채소가게에서 가져오는 부추, 양파, 마늘, 생강 등과 바로 앞 정육점에서 필요할 때마다 갈아서 쓰는 한돈 고기는 기분 좋은 육즙과 조화로운 감칠맛을 만두에 담는다. 두부나 당면 등 속을 부풀리는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것도 소문난만두의 특징이다. 무말랭이를 한참 불린 뒤 끓는 물에 데치고 다시 물을 빼고 다지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한 입에 꽉찬 소에 부드럽게 씹히는 맛을 놓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고기만두, 김치만두, 새우만두에 손님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김치왕만두, 고기왕만두, 핵폭탄만두까지 준비한다. 대한제분에서 받는 밀가루를 적정 비율로 섞어 전분과 소금으로 반죽해 만드는 촉촉한 만두피까지 온전히 수제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아쉬움이 없도록 이전보다 만두소의 양을 조금씩 늘렸다. 여러번 베어 물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왕만두도 선택의 폭을 넓혔다. 국내산김치의 매콤함으로 아쉬운 이들을 위해 출시한 핵폭탄만두는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를 더 넣어 중독적인 매운맛을 자랑한다. 양배추, 양파, 소시지 등이 들어간 고로케나 잘게 썬 양배추로 가득 채운 샐러드빵, 도넛과 꽈배기 등도 출출한 이들의 시선을 뺏는다. 직접 삶은 팥으로 찐빵과 팥 도넛 속을 채우니 고소한 달콤함을 찾는 단골 고객이 끊이지 않는다. 은행 창구에서 배운 고객과의 소통 방법은 육거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은씨는 만두를 빚는 틈틈이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개선점을 찾는다. 빵집을 하던 어머니의 맛이 생각난다며 치즈 도너츠를 찾는 손님에게서 영감을 얻고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여러 치즈를 넣어보며 테스트해 완성한 크림치즈 도너츠도 소통의 결과다. 자신의 추억을 찾거나 가족의 추억을 선물하고픈 이들의 전화 택배 주문이 잦아 최근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소문난만두가 새로운 소문을 준비한다. 40여년 시장 안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던 소문난만두가 근거있는 입소문을 타고 시장 밖 손님들을 만나러 간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통유리로 둘러싸인 2층 건물이 주변을 반영한다. 안에서만 밖이 내다보이는 낮과 어두움 사이로 안이 환하게 비치는 밤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맑은 날의 해 질 녘과 비가 오는 날의 반여울도 색다르다. 카페가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을 따서 반여울이라 이름 붙인 증평의 이 카페는 외관부터 멋스럽다. 가게 옆으로 보이는 논의 전경을 살짝 가리기 위해 적당한 높이로 쌓아 올린 벽돌이 그 자체로 예쁘다. 같은 벽돌로 만든 화단에 사계절 푸른 소나무를 조경수로 선택한 것도 인상적이다. 문을 열면 느껴지는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이예린 대표가 몇 개월을 고민하며 구상한 결과물이다. 1층에 들어서면 밝은 실내에 커다랗게 놓인 동그란 거울과 어울리는 원형 스피커, 은은한 조명과 깔끔한 메인 바가 어우러진다. 반려동물을 키우며 증평 지역에서는 함께 갈만한 실내가 없던 것에 아쉬움을 느꼈던 예린 씨는 반여울의 1층은 애견 동반이 가능하게 꾸몄다. 애견 가방을 놓기에 적당한 높이와 너비로 설계한 일체형 의자와 테이블 구조는 경험에서 비롯된 섬세한 배려다. 날이 좋을 때는 방석을 들고 마당의 소나무 옆으로 자리 잡는 손님도 많다. 입식 의자와 테이블이 설치된 2층에서는 주변의 한가로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곳곳에 놓인 포스터와 소품 등이 1층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5살 때 처음 접했던 피아노를 시작으로 예고와 음대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쭉 피아노를 연주하던 예린 씨가 카페를 운영하게 된 것은 모를 일이었다. 입시생들의 개인 레슨을 주로 하다 코로나로 인해 이전과 달라짐을 느꼈다. 취미로 배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베이킹이 소소한 위로를 넘어 일상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피아노 외에는 손재주가 없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달콤한 향기와 풍성한 맛에 익숙해져 베이킹에 전념하다 보니 예쁜 모양도 덤으로 따라왔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집에서도 연습을 거듭했다. 디저트를 좋아해 카페 투어를 즐기던 둘째 동생도 언니의 손맛에 매료돼 함께하는 카페 운영을 결심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터를 닦은 반여울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베이커리 카페다. 자매 사장님의 입맛을 그대로 투영해 재료를 아끼지 않는 레시피로 메뉴가 나온다. 전날 반죽을 숙성시킨 뒤 아침에 굽는 반여울의 제과류는 휘낭시에부터 까눌레, 스콘, 쿠키, 마들렌 등 다양하다. 휘낭시에와 마들렌 등 각각의 메뉴도 부재료를 달리해 여러 가지 맛으로 나온다. 반건조무화과를 와인에 졸여 만드는 무화과 휘낭시에나 트러플오일에 올리브를 절여 만드는 트러플 올리브 휘낭시에, 럼주에 넣은 코코넛을 담은 코코넛 휘낭시에 등은 부재료를 만드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농축된 풍미가 입안을 채운다. 감자를 삶아 으깨고 잘게 썬 베이컨과 버무려 속에 넣은 베이컨 치즈 감자 스콘도 담백하고 짭짤한 맛으로 인기다. 바스크 치즈케이크 이외에 케이크 메뉴가 없다는 것을 고려해 고안한 크림 스콘은 예린 씨만의 레시피로 완성한 독특한 디저트다. 스콘 가운데를 갈라 크림을 채워 만드는 크림 스콘은 빅토리아, 레몬 얼그레이, 다크초코체리, 쑥절미, 단호박 등 다양한 맛으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바삭한 스콘의 겉면과 부드러운 속이 향긋한 크림과 어우러져 반여울을 찾는 이들이 커피와 함께 찾는 단짝이 됐다. 쉬는 날 없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하는 영업시간 덕에 아침부터 디저트를 잔뜩 담아가는 손님도 많다. 레몬, 자몽, 백향과, 베리류 등 사계절 챙겨두는 수제청과 여름의 복숭아, 자두청, 겨울의 감귤청 등이 다양한 손님들의 취향을 살핀다. 건반 위를 잠시 내려온 손끝은 여전히 쉴 틈이 없다. 반여울에서 연주하는 디저트의 선율이 증평에 퍼진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충북일보] 손님들의 추억이 담긴 낙서로 빼곡한 벽이 조용한 가게에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는 듯하다. 아늑한 공간에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노랫소리가 잔잔하게 퍼진다. 달이 바뀔 때마다 그때의 감상을 담은 시구 같은 문장이 색색의 도화지를 채운 채 인테리어가 됐다. 청주 운천동에서 만날 수 있는 한라산생삼겹살의 전경이다. 냉장고 속 줄지어 서 있는 음료와 주류에서부터 주인장의 성격이 드러난다. 라벨 하나 흐트러짐 없이 각을 맞췄다. 이 자리에서만 3년이 넘게 고기를 구워낸 불판과 테이블도 엊그제 들여온 양 깨끗하다. 미세한 끈적임이나 미끈거림도 찾아볼 수 없다. 바닥조차 고깃집의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음식점은 청결이라는 신조를 따른 결과다. 뜨거운 물에 세제를 풀거나 때로는 스팀으로, 때로는 알코올로 소독하는 청소 방법은 작은 가게를 씻어내는 데만 두 시간 이상 필요하지만 늘 첫 손님처럼 깨끗한 한 상을 받아볼 수 있게 한다. 종이에 일일이 담아둔 수저나 하나씩 올라오는 이쑤시개마저 다른 이의 손길과 겹치지 않게 하는 작은 배려다. 백승혁·심상님 대표는 대학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이었다. 수학을 전공한 이들은 졸업 후 각자 사회생활을 하다 수학 학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제천 덕산에서 시작해 아내의 친정인 청주로 터를 옮기고 25년간 수학 학원을 운영했다. 많은 학생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알려가며 소통했지만 어느 순간 벌어진 학부모들과의 세대 차이에 고민하다 학원 문을 닫았다. 아내의 음식 솜씨와 친척이 운영하는 육가공업체가 고깃집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다. 질 좋은 고기를 정직하게 판매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부부가 작심하고 고기를 배워 숙성 삼겹살의 묘미를 찾았다. 학원에서부터 사용한 '한라산'은 딸 아이의 이름인 백록담에서 가져왔다. 오랜 세월 함께한 의미있는 이름이다. 상호 때문에 제주 돼지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한라산생삼겹살에서 사용하는 고기는 등급 좋은 국내산 암퇘지다. 1차 숙성을 거친 후 가게 숙성고에서 최적으로 숙성된 고기는 부드러운 감칠맛을 선보인다. 기름기 적게 손질한 항정살과 담백한 가브리살 등도 인기다. 쌈 채소의 시장가가 요동을 쳐도 한라산생삼겹살의 식탁에 오르는 쌈 채소의 양은 언제나 푸짐하게 일정하다. 원가가 저렴할 때 포장해주는 것이 아니니 비쌀 때도 한결같이 내겠다는 신념이다. 된장찌개나 소면에 사용하는 육수도 늘 수가지 재료를 듬뿍 넣어 우려낸 것을 사용한다. 언제든 가족들이 놀러와도 손님상에 오르는 것과 똑같이 먹을 수 있어야 판매한다는 것이다. 아로니아로 물들인 냉면 무나 계절별로 달라지는 맛깔나는 밑반찬도 고기와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소주나 맥주 등 주류를 시키면 첫 번째 병에 붙여 나오는 단풍잎은 부부 사장님의 낭만을 담은 선물이다. 가을이면 때가 덜 묻은 낙엽을 찾으러 산성이나 좌구산 등 산속으로 향한다. 사계절 사용할 만큼 많은 양을 줍는 부부를 보며 어떤 보물을 찾는지 궁금해하는 산객들도 많다. 정성껏 씻어 말린 잎사귀는 책갈피에 끼워 빳빳하게 말린다. 정성으로 보관한 그해 가을의 상징은 이듬해 가을이 오기까지 손님들의 상 위에서 술맛을 더한다. 누구보다 수학과 가까운 부부지만 가게 주방에서는 계산이 없다.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동네 맛집으로 남고 싶어서다. 그 마음을 아는 것은 동네 사람들이다.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고깃집에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든다.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반드시 다시 찾아오는 단골들의 발걸음은 수학적 증명만큼이나 명확한 고기맛의 증빙이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