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방금 지은 것이 분명한 밥이다. 뜨거운 솥밥이 상 위에 오르면 하얗게 퍼지는 연기 속으로 푸짐한 재료가 가득하다. 온갖 내음이 코 끝에 닿는다. 구수한 밥과 어우러진 달콤하거나 짭쪼름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방앗간에서 짜온 기름의 짙은 고소함이 여지없이 꽂힌다. 청주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솥밥과 메밀김밥 전문점 '소로리'는 언제 넣어둔지 모를 식당의 공기밥을 싫어하던 김용현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요리를 접했다. 솜씨 좋은 어머니의 손맛을 근간으로 캠핑과 낚시를 함께 즐기던 아버지의 별미 요리까지 용현 씨가 요리를 시작하는데 두루 도움이 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중학생 때부터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한식, 일식, 양식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요식업계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경험을 쌓고 청주에 내려와 자신만의 메뉴를 내세운 가게 오픈에 참여했다. 메뉴를 만들 때는 상권과 이색적인 조합, 맛과 담음새를 모두 고려했다. 스테이크를 얹은 크림리조또나 카츠산도, 대창덮밥 등 인근에 없던 요리를 내세워 몇몇 가게의 성공을 이끈 뒤 자신의 독창적인 메뉴 선택에 확신을 얻었다. 보기 좋고 맛도 좋은 요리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새롭게 개발한 메뉴는 솥밥이다. 청주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소로리 볍씨'의 이름에 착안해 가게 이름을 정했다. 맛있는 밥을 중심으로 한 그릇이면 충분한 맛과 영양을 고려해 다양한 재료를 얹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갈비찜을 함께 먹는 듯한 맛을 연출한 갈비솥밥은 소로리의 대표 메뉴다. 뼈를 발라낸 소갈비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부드럽게 손질해 사용한다. 자극적이지 않은 짭쪼름한 맛으로 직접 개발한 소스에 졸인 갈비는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대추, 밤, 꽈리고추와 단호박 등을 함께 올려 한그릇 갈비찜처럼 화려한 담음새까지 갖춘 영양솥밥이다. 최근 메뉴에 추가한 전복솥밥도 갈비솥밥의 인기를 따라잡았다. 완도에서 직송으로 받는 활전복을 깨끗이 손질해 압력솥에 따로 쪄 부드럽게 씹힌다. 세 마리의 전복을 통으로 올린 뒤 신선한 전복내장 소스를 더하고 버터와 함께 내니 건강한 보양식에 트렌디한 맛이 더해졌다. 음성 도축장에서 받은 한우 대창을 깨끗이 손질해 특제 소스에 굽고 불맛을 입힌 한우대창솥밥은 기름진 대창의 고소함이 입 안에서 소스와 함께 터져 나오는 매력적인 메뉴다. 게살에 녹진한 대게내장을 얹어 게딱지밥을 먹는 느낌을 살린 게살솥밥과 남해안 꼬막에 어울리는 양념을 더한 꼬막솥밥, 짜지않은 백명란을 듬뿍 얹어 양껏 비벼 먹을 수 있는 명란버터솥밥 모두 각각의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 토핑으로 얹는 참기름, 들기름이나 고춧가루와 깨는 육거리 방앗간에서 직접 가져와 풍미를 더한다. 밥 대신 메밀면을 사용해 만드는 메밀김밥도 청주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회심의 대표 메뉴다. 적당히 삶은 메밀면에 육수를 우려 만든 쯔유가 밴 면만 먹어도 감칠맛이 충분하다. 두툼한 일본식 계란말이와 아보카도, 표고, 유부, 루꼴라, 와사비마요 등이 한 입에 어우러 진다. 소금으로 숙성시켜 불순물을 제거한 생연어를 통통하게 썰어 같이 넣은 연어메밀김밥도 풍성한 맛으로 인기다. 여름 한정 메뉴로 출시했던 삼계솥밥은 큼직한 닭다리와 가리비, 전복, 낙지 등을 찹쌀밥과 함께 내 폭발적인 성원을 받았다. 솥밥을 지을 때 넣은 적정 비율의 육수는 약간의 간장이 들어가 눌은밥의 구수함을 극대화 시킨다. 용현 씨는 이렇다 할 광고 한 번 없이 문 여는 날부터 줄을 선 손님들이 고맙다. 소로리를 찾아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손님들도 재방문을 약속한다. 좋은 재료를 기반으로 한 좋은 식사가 소로리의 기본이다. 메뉴에 대한 고민과 수많은 시도에 대한 해답은 손님들의 빈 그릇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움짤 #충북일보의눈
[충북일보] 시간의 흐름이 변한 것도 아닌데 세상이 빨라졌다. 모든 것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수많은 영상이 각종 플랫폼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돼 건너뛸 수도, 반복해서 볼 수도 있는 화려한 콘텐츠다. 손안의 기기에서 쏟아져나온 영상의 즐거움은 피로와 함께 쌓인다. 영상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시간을 두고 장면을 들여다보면서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감정이 사진의 '맛'이다. 사진 속 사람이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어도 그 순간이 전해진다. 같은 사진에 담긴 감정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청주 북문로 복합문화공간 '카페 광순' 2층에 있는 '메이피프스(Mayfifth)'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소품샵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황지현 대표가 직접 찍은 사진을 엽서, 달력, 스케줄러, 포스터와 마스킹테이프 등 일상 속에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소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지현 씨에게 사진은 즐거운 기억의 조각이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부터 렌즈 앞이 익숙했고 자연스레 셔터 누르는 일을 즐기게 됐다. 함께하는 순간을 사진에 담고 인화한 사진으로 앨범을 채우는 것은 소소하고 행복한 가족의 이벤트였다. 찍는 순간 저장된 가족들의 즐거움은 사진으로 나오면서 한 번 더, 그리고 이따금 들춰볼 때마다 새롭게 소리 내 웃을 수 있는 일상 속 선물이었다. 혼자 보거나 SNS로만 공유하던 사진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처음 접했던 프랑스어에 빠져 전공을 선택하고 석사 학위 취득까지 꽤 긴 학업을 마무리하면서 떠났던 유럽 여행이 계기였다. 그저 습관처럼 좋은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여행을 즐기다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과 가만히 누워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휴식 그 자체로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을 사진으로 표현하니 순간의 감정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해맑게 웃는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이나 유모차 속 아이와 눈을 맞추며 걷는 엄마의 느긋함, 잔디 위의 한가로움을 온몸으로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표현됐다. 화면으로 보는 사진과 인화된 사진, 다른 질감의 소품에서의 느낌이 모두 달랐다. 일상에서 시선이 닿을 때마다 여행의 낭만과 여유가 느껴질 수 있도록 사진을 활용한 소품을 구상했다. 여행지 곳곳에서 보내던 엽서를 떠올리며 엽서로도 제작했다. 달력이나 포스터, 마스킹테이프 등 일상적 소품이 사진을 담아내자 특별해졌다. 지현 씨의 작품은 장소와 시간으로 이름 붙인다. 도시의 이름과 시간이 그 순간을 정의한다. 해외나 국내 여행지뿐 아니라 지현 씨가 나고 자란 청주의 곳곳도 사진으로 표현했다. 심심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이면에서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감성이 담긴 장소와 시간을 발견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청주 매장으로 확장된 메이피프스는 서울과 강릉, 제주 등의 소품샵에도 입점해 색깔을 알리는 중이다. 그 장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하고 아는 이에게는 그리움의 조각을 새삼스레 꺼내 보이기도 한다. 벽에 걸린 몇 장의 엽서가 기억을 조작한다. 햇살 가득한 마루에서 나른하게 몸을 늘이는 고양이가 있던 그 시간,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숲의 그 시간이 보는 사람의 기억과 겹쳐진다. 실용적인 소품 속 사진을 볼 때마다 여행의 설렘과 편안한 감상이 동반된다. 소품의 다른 뜻이 규모가 작은 예술 작품일 수 있는 이유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이색적인 이름으로 채워진 메뉴판이지만 어렵지 않다. 상세한 설명과 사진, 재료를 알리는 그림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수제 메뉴판이 자꾸 들여다보게 만든다. 어려운 이름도 친절한 설명이 가볍게 풀어준다. 메인 메뉴를 선택하면 샐러드와 지라시즈시, 튀김, 생선구이가 포함되는 요조라 만족 세트와 전골과 모듬회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단품 세트는 한 눈에 요조라의 색채를 알 수 있는 메뉴 구성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어린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던 오오시로 유와 대표는 도쿄에서 온 일본인이다. 일본의 이자카야에서 일하던 중 유학생이었던 아내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아내의 고향인 청주로 와 자리잡았다. 어느새 7년차를 맞은 이자카야 요조라는 일본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와 늘 이야기했던 가게 이름이다. 밤하늘의 의미를 담은 요조라라는 이름은 언젠가 열고 싶었던 자신의 이자카야였다. 요조라는 그야말로 정통 이자카야다. 메뉴에는 진심을 담아 질 높은 수준의 음식을 내면서도 분위기나 격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일상적으로 가볍게 접할 수 있는 분위기로 꾸몄다. 가족 단위 식사 손님이나 회식을 위해 찾는 단체, 일본 여행을 곱씹으며 찾아오는 혼자인 손님까지 다양한 이들이 요조라를 단골 삼는 이유다. 생선의 수급과 상태를 확인하며 때마다 바뀌는 모듬사시미는 선택의 고민없이 그날의 가장 맛있는 생선을 고루 즐길 수 있다. 같은 생선도 가게마다 다른 맛인 이유는 손질과 숙성 방법의 차이다. 요조라에서는 각 생선에 어울리는 숙성법을 찾아 감칠맛을 찾는다. 흔히 맛볼 수 있는 메뉴보다는 유와 대표만의 특색을 담은 맛을 선보인다. 다시마로 숙성한 광어나 살짝 데친 후 겉면을 익힌 붕장어, 다시마 숙성 후 불향을 입힌 삼치, 크기에 따라 시간을 조절하는 침수숙성 학꽁치와 방어 등 각각의 특색을 끌어올린 찰기와 고소함이 숙성회 맛을 살린다. 특정 계절에만 맛 볼 수 있는 벤자리와 금태, 잿방어, 능성어 등이 계절이 변할 때마다 방문할 구실을 만든다. 수준급 전골요리도 단골을 사로잡았다. 배추, 파, 양파, 버섯, 두부, 곤약, 유부와 소고기 등을 육수에 끓여 날달걀에 찍어 먹는 일본 전통 전골요리 스키야키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췄다. 자극적으로 달고 짠 맛을 제하고 가다랑어와 다시마를 듬뿍 넣어 끓인 간장 육수는 건더기와 함께 국물까지 먹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한우곱창을 이용한 모츠나베는 빨갛게 끓이는 한국식 곱창전골과는 다른 맛이다. 비교적 하얀 육수를 기본으로 곱창의 기름진 맛이 야채의 깔끔한 맛과 조화를 이루며 매운맛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 기호대로 먹기 좋다. 새우와 게, 가리비, 바지락 등과 그날의 생선, 닭을 넣어 끓이는 요세나베도 낯설지만 익숙한 국물 요리로 찾는 이들이 많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전골 손님들은 면사리를 추가해 깨끗이 비워낸다. 닭고기와 치즈가 들어간 토마토 스튜나 크림치즈와 두부로 만들어 바게트에 올려먹는 치즈두부, 주문이 들어오면 손질한 닭고기를 튀기는 가라아게도 요조라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특색있는 요리다. 모든 음식을 먹은 뒤 탄수화물로 마무리해야 하는 손님을 위한 오야꼬동, 카레우동 등 식사 메뉴도 준비된다. 일본에서 가져오는 다양한 종류의 사케와 일본주, 하이볼도 요조라의 매력이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일본 여행에서 느껴본 맛과 분위기가 생각나는 이들은 요조라에서 여행의 기분을 채워볼 수 있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질감이 단단하고 맛이 진한 그릭요거트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맛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요거트 중에도 그릭의 이름을 붙여 나온 제품이 늘어나긴 했지만 호불호가 갈린다. 기존에 먹던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함을 지닌 요거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어서다. 반면 좀 더 뻑뻑한 질감을 원하는 그릭요거트 마니아에게는 다소 부족한 시판 제품의 꾸덕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해부터 청주 율량동에서 그릭요거트 전문점 '빨간그릭앤'을 운영 중인 강은혜 대표는 몇 년 전까지 그릭요거트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릭요거트를 알게 한 건 운동을 좋아하는 친한 친구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은혜 씨와 함께 전국 각지의 그릭요거트 전문점을 찾아다녔다. 파는 곳이 적다며 불평하는 친구를 따라 먹어본 그릭요거트는 물음표가 생기는 음식이었다.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요거트도 아닌 밋밋한 맛으로 느껴졌다. 평소 손이 빠르고 요리를 즐기던 은혜 씨는 친구의 부탁으로 그릭요거트를 직접 만들어보며 그 맛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구하기 힘들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시작한 그릭요거트 만들기에 차츰 은혜 씨도 그 매력에 빠졌다. 우유와 치즈의 고소함과 담백한 맛,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의 산뜻한 마무리가 입에 붙었다. 단백질로 쌓인 든든함은 간식으로도 식사 대용으로도 제격이었다. 유청을 제거하는 시간과 비율을 조정하고 여러 음식과 곁들여 먹어보며 그릭의 세계에 들어섰다.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방법을 연구하며 자신의 가게로 준비하길 1년여. 은혜 씨만의 다양한 조합을 완성해 빨간그릭앤을 열었다. 처음에는 빨간 배경에 'GREEK'이라는 말만 보고는 무엇을 파는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뭐 하는 곳인지 물어본다거나 무작정 들어와 아이스크림 하나 달라는 이들도 있었다. 은혜 씨는 그릭요거트를 모르는 이들도 거부감 없이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조합으로 과일볼을 먼저 권한다. 바나나, 키위, 블루베리, 용과 등 익숙한 맛의 조화부터 그 계절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딸기나 복숭아의 풍부한 당도와 과즙이 별도의 첨가물 없이도 그릭요거트의 맛을 돋보이게 한다. 직접 선별하고 공수해오는 생과일의 품질은 은혜 씨가 자부심을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다. 요거트 위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 얹어 맛을 배가 시키거나 수제 콩포트로 졸여 요거트와 섞어 내기도 한다. 맛의 조화를 고려해 정해둔 메뉴도 있고 고객의 취향에 따라 과일을 추가할 수도 있다.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 아몬드와 오트, 캐슈넛과 브라질너트 등 6~7가지 견과류를 저당과 함께 구워 만드는 수제 그래놀라도 빨간그릭앤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소한 토핑이다. 디저트를 먹는 듯한 느낌을 주는 치즈큐브와 브라우니, 이색적인 조합을 맛볼 수 있는 직접 절인 토마토 등도 고심 끝에 찾아낸 최적의 조합이다. 생크림 대신 빵 사이에 그릭요거트와 과일을 채운 과일샌드나 베이글 사이에 크림치즈 대신 그릭요거트와 키위를 넣은 베이글 세트는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한 포만감을 준다. 보다 건강한 착즙 주스도 만날 수 있다. 가정에서 선뜻 해먹기 어려운 당근주스와 케일사과주스나 적양배추와 사과, 파인애플을 착즙한 주스 모두 마시기 좋은 맛과 건강함으로로 인기를 끈다. 빨간그릭앤은 단골이 많다. 다시 오는 손님도 새로운 맛의 조합을 느껴볼 수 있도록 메뉴 개발을 쉬지 않는 은혜 씨의 노력이 또 다른 단골을 만든다. 그릭요거트가 아직 어려운 이들도 빨간그릭앤에서는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입에 맞는 과일과 함께 꾸덕꾸덕한 질감의 조화를 느끼다보면 어느새 그릭요거트 본연의 맛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커피를 결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고소하거나 씁쓸한 맛, 또는 산미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고 드립이나 더치 등 내리는 방식을 고르는 이도 있다. 카페의 디저트, 음악, 분위기 등으로 방문을 결정하기도 한다. 청주에도 특색있는 커피와 공간을 선보이는 곳이 늘면서 커피 애호가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최근 가경동에서 문을 연 'N88카페/바리스타학원'은 흔히 볼 수 없는 스페셜티 커피를 만나고 싶은 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스페셜티 필터 커피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이곳에서는 콜롬비아 파라미소92 크랜베리 주스, 온두라스 산타루시아 카소나 게이샤, 파나마 알티에리 토마스 게이샤 등 원두 구입과 로스팅 상황에 따라 바뀌는 어려운 이름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스페셜티 커피는 고도, 토양, 일조량 등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원두 맛의 차이가 특징이다.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입에 머금는 순간 화사한 꽃향기나 은은한 초콜릿의 단맛, 고소한 견과류 등 직관적으로 풍부한 향미를 느낄 수 있다. 전형적인 이과생 출신 정진욱, 박연희 씨 부부가 카페와 바리스타학원을 운영하며 커피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연희 씨의 취미에서 시작됐다. 처음 필터 커피를 마셨을 때 눈물 날 정도의 감동이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며 하던 일을 멈춘 기간에 좋아하던 커피를 배워보려던 가벼운 걸음이 무거워졌다.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배움을 즐기는 성격 때문에 자격증 수집가처럼 커피 관련 자격을 모았다. 눈을 반짝이며 커피를 설명하는 아내의 열정은 진욱 씨까지 빠지게 했다. 원두를 고르는 일부터 로스팅과 추출 등 커피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끝이 나지 않았다. 종일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부부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원산지별 생두의 특색을 찾는 작업은 대기업 수석연구원 일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원두에 맞춰 적당한 로스팅으로 최적의 맛을 찾아내는 일은 전에 없던 성취감을 가져왔다. 블랙 티, 라즈베리, 재스민, 크랜베리, 열대과일, 호두 등 한 모금의 커피에서 혀끝에 맴도는 독특한 맛을 찾는 것이 기쁨이 됐다. 1년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문을 연 N88은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 필요한 원두의 개수다. 원두의 크기에 따라 80~90알을 오갔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88개의 원두를 이름에 담았다. 부부가 선택한 그 날의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할 때는 산지 정보와 특징적인 맛을 원두 옆에 적어둔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손님의 요청이나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사장님의 자부심이 상세한 설명을 더 할 때도 있다. 카페 아래 N88바리스타학원은 새벽과 밤을 가리지 않는 연구실이다. 생두를 고르고, 볶고, 분쇄하고, 추출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컵에 담아 입안에 머금고 숨은 맛을 찾는 것도 일상이다. 부부간에도 커피 취향이 갈리는 만큼 특정한 맛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맛을 추구한다. 일반 테이블에서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 커핑(cupping:커피의 향과 맛 평가)을 편히 하기 위해 전동 테이블로 채운 것도 커피를 향한 진심이다. 스페셜티 커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크와 클래식 버전으로 준비한 머신 커피는 필터 커피와 다른 매력이 있다. 레몬, 패션프루트, 대추 생강 등 자격증을 따며 배운 비법으로 만든 수제청 음료도 준비된다. 몇 가지 빵과 케이크 등 디저트도 커피와 함께 즐기기 좋다. 같은 자리에서 지난 30여 년 목욕탕을 운영한 부모님과 이웃 주민을 위한 추억도 일부 남겨뒀다. 미끄러지지 않게 타일을 격자무늬로 긁어둔 바닥이나 냉탕이 있던 부분을 살린 옥석과 지압 돌 등을 찾는 재미가 곳곳에 숨어있다. N88카페는 스페셜티 커피가 익숙지 않은 이들의 도전도 반긴다. 부부가 엄선한 커피는 어려운 커피라는 선입견 대신 색다르고 맛있는 커피의 기억만 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엔틱한 의자와 장식, 벽을 꾸민 클래식한 그림이 유럽의 어느 골목을 연상시킨다. 쇼핑몰 내부에 딱히 눈에 띄는 칸막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상업공간과 분리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분위기만으로 독립된 공간이 설정된다. 청주 지웰시티몰에서 밀크티 맛집으로 자리 잡은 홍차와 커피 전문점 클로리스다. 겨울을 맞은 클로리스는 한껏 화려해졌다. 트리와 조명의 반짝임이 테이블 위에 닿아 양초 모형 속 반짝임으로 응답한다. 귓가를 넘어 온몸을 감싸는 듯한 재즈 음악도 겨울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님들의 사진 촬영을 배려해 꾸며놓은 가게 앞 테이블은 화면 속에서나 볼 듯한 이상적인 티테이블로 완성됐다. 홍차를 즐기는 사람도,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들어서 카메라를 꺼내 든다. 전지선 대표가 클로리스 청주 지웰시티 점을 시작하게 된 것도 클로리스 카페만의 분위기에 반해서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핫플 찾아 나서기를 즐기는 부부의 취미가 클로리스 신촌 본점을 찾아냈다. 한눈에 부부의 취향을 모두 충족시킨 카페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지선 씨지만 영국 여행에서 마셔본 부드러운 밀크티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기에 홍차와 커피를 갖춘 클로리스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여러 카페를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밀크티를 마셔봤지만 지나치게 달거나 텁텁한 마무리가 아쉬운 터였다. 향긋하고 깔끔한 클로리스의 밀크티 한 잔에 사로잡힌 마음은 몇 군데의 직영점을 둘러본 뒤 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굳어졌다. 청주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공간과 서비스를 가져오고 싶었다. 부부는 오랜 상의 끝에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지선 씨 일을 과감히 정리하고 카페 일을 차근차근 배운 뒤 클로리스 청주 지웰시티 점을 열었다. 특정 브랜드 티가 아니라 클로리스 티 마스터가 준비한 다양한 차 종류가 특색을 더한다. 산지 찻잎의 맛과 향이 그대로 담긴 홍차부터 과일을 섞어 상큼하고 달곰한 향미를 더한 블렌딩 티, 매력적인 허브차 등이 준비된다. 특화된 원액 추출 방식을 이용해 차별화된 깊은 맛과 풍미를 자랑하는 밀크티는 취향에 따라 당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만족하는 건강한 단맛으로 제공된다. 세계 3대 홍차로 알려진 우바를 베이스로 풍부한 향과 맛의 기본 밀크티부터 베르가못 오일의 산뜻함을 더한 얼그레이 밀크티도 인기다. 클로브, 시나몬 등의 향신료가 블렌딩 된 차이 밀크티나 루이보스와 마누카꿀이 들어가 임산부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루이보스 밀크티 등 7가지 밀크티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4가지 원두를 블렌딩한 고소한 맛의 커피도 만족도가 높아 밀크티 맛집으로만 부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바삭한 타르트 위에 초콜릿 쿠키와 아몬드, 얼그레이 초콜릿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홍차 타르트도 클로리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티푸드다. 배달을 시작한 뒤 가장 많이 선택되는 더블린프로즌과 밀크티프로즌은 계절을 잊을 만큼 사랑받는 메뉴다. 콜드브루 커피와 밀크젤라또를 더한 더블린프로즌과 밀크티에 홍차젤라또를 얹은 밀크티프로즌이 새로운 단골을 만들었다. 가르쳤던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지원한다거나 우연히 손님으로 찾아올 때면 다시 '쌤(선생님)'이 되는 지선 씨지만 7~8년을 머물렀던 교단보다 3년 차를 맞는 클로리스의 주방이 익숙해졌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수학선생님 출신 사장님의 정확한 계량이 한결같은 맛을 선보인다. 뒷맛이 남지 않는 깔끔한 밀크티는 기분좋은 부드러움과 향긋한 마무리가 새롭다. 클로리스가 소개하는 차와 디저트, 커피는 잔잔한 음악과 이색적인 공간의 분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구르메℃ 제과점'. 증평읍 송산로의 한 아파트 상가에 몇 달 전 낯선 간판이 들어섰다. 하얀 배경에 구름 그림 속 구르메, 섭씨(℃)를 붙인 독특한 이름은 제과점이라는 수식어로 존재감을 알린다. 제과 제빵 관련 분야에서 여러 직장을 거친 김태구 대표가 자신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중심으로 가게를 꾸리며 이리저리 조합해 본 단어 중 선택한 이름이다. 구르메(gourmet)는 프랑스어로 '미식가, 조예가 깊은 사람' 등의 뜻을 갖는다. 미식가의 온도, 그리고 구름처럼 폭신한 디저트를 만들기 위한 온도라는 뜻으로 구르메도씨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르메도씨를 채운 디저트는 온전히 태구 씨의 취향이다. 막연히 요리를 하고 싶었던 고등학생 시절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본 제과제빵 학원이 가장 현실적인 요리의 시작이었다. 간판만 보고 들어간 학원에서 사먹는 빵에서는 충족되지 않았던 재료의 양과 조합에 만족을 느끼며 제빵에 재미를 붙였다. 크림의 양을 듬뿍 넣거나 토핑을 가득 채운 빵은 원하는 맛으로 즐길 수 있는 맞춤형 요리였다.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하며 얻어지는 성취감도 있었다. 제과 데코레이션을 전공하며 기본기에 섬세함을 더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 배우던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며 새로운 적성을 찾았다. 연령대를 가리지않고 빵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차근차근 가르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베이커리카페, 프랜차이즈 제과점, 호텔 제과분야 등에서도 경험을 쌓게 되자 태구 씨만의 공간이 그려졌다. 원하는 디저트를 만들며 가르치는 일도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제과점이다. 먼저 자신만의 디저트로 이름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의 목록을 정하고 판매할 제품을 정했다. 겉이 바삭하면서도 속은 부드럽고 폭신한 다쿠아즈를 중심으로 마카롱 사이즈의 다쿠아즈인 마쿠아즈가 다양한 맛으로 소개된다. 기본에 충실한 딸기와 초코 크림부터 쑥가루와 흑임자가 들어간 크림으로 다쿠아즈가 어색한 이들에게도 익숙함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맛까지 갖췄다. 오랜 연구와 시도 끝에 만들어진 '내안에돼지바잇슈' '내안에초코잇슈'는 주먹보다 커다란 슈 위에 비스킷을 입히고 부드러운 크림과 꾸덕한 딸기잼, 혹은 가나슈와 초콜릿크림을 채운 구르메도씨의 대표 메뉴다. 아몬드 등 견과류를 카라멜라이징한 간식거리와 초콜릿이 가득한 쿠키도 찾는 이들이 많다. 디저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단맛의 중간 지점이었다. 달콤한 휴식을 원하면서도 지나친 단맛을 찾는 이들은 없어서다. 디저트를 찾아 들어온 이들이 "너무 단 건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처음의 태구 씨는 당황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단맛의 정도가 궁금한 손님에게 선뜻 맛을 보여줬다. 입 안에 퍼지는 은은한 단맛과 진득하게 남지 않는 깔끔한 뒷맛은 양손가득 디저트를 챙겨가는 단골을 만들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디저트를 하나의 특색으로 내세우고 싶어 다양한 제품 개발도 진행했다. 증평 인삼을 이용한 디저트로 인삼가루를 넣은 다쿠아즈를 선보였지만 만족스러운 맛과 향에도 선뜻 먹어보려는 손님이 적어 아쉬움을 남겼다. 계절에 따라 영동 포도, 괴산 옥수수 등 특산물을 활용한 특색있는 디저트를 향한 시도는 계속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준비했던 떠먹는 딸기 케이크도 호응을 얻었다. 새로운 해에는 아이들과 함께 쿠키나 케이크를 만들어 보는 체험 클래스를 구상 중이다.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과 즐길거리가 없다는 손님들의 고민에 귀기울인 결과다. 디저트를 위한 구르메도씨가 엄마뿐 아니라 아이까지 만족할만한 적당한 온도를 준비한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푸르름이라곤 다 사라졌을 법한 추운 계절에도 싱그러운 나뭇잎이 남았다. 잔디나 흙이 없는 마당이지만 가운데 심은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살린 자연친화적 구성이다. 이웃과 맞닿은 담벼락 쪽 둘레로는 대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하얀 철제 의자와 테이블, 파라솔 등이 한폭의 서양화 같다. 아주 춥거나 아주 덥지 않은 날에는 늘 마당을 한 편을 차지한 손님이 눈에 띈다. 도로에서 올려다 봐야 할 만큼 높은 마당이 이색적이다. 대문이랄게 없는 출입구지만 애써 살피지 않으면 마당의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아 지나는 이의 시선에 방해받지는 않는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야 마당에 닿는데 마당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다른 곳에 온 듯하다. 건물의 형태도 눈에 띈다. 낮은 건물이 주를 이루는 운천동에 잘 어우러지면서도 비교적 높고 고풍스러운 주택이다. 쉐르엘제이는 작지만 우아한 휴식을 내세우는 주택개조카페다. 마당의 외견에 반해 홀린 듯 들어선 손님도 실내에 들어서면 한번 더 탄성을 지른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문으로 마당이 훤히 내다보이고 3층까지 이어지는 엔틱한 계단은 이미 크리스마스를 맞은 듯 화사하게 꾸며졌다. 방 마다 개성있는 꾸밈으로 특색을 더한 인테리어는 올 때마다 다른 분위기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사람 수에 따라, 카페를 찾은 목적에 따라 마음에 드는 장소를 선택하면 된다. 높은 천장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조명과 장식도 멋스럽다. 쉐르엘제이는 주인장 부부의 인생 2막이다. 수십 년간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던 부부가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으며 온 가족이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다. 일해온 세월보다 길게 남았을 여생을 그저 여행이나 일상을 즐기며 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취미와 딸의 적극적인 권유가 큰 역할을 했다. 아내와 딸은 시간이 날 때면 하루에도 두 세개의 카페를 다니며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만큼 커피와 카페 문화를 즐겼다. 새로운 도전 앞에 망설이는 부모님의 손을 끌고 일본의 초고령화 시대를 미리 체험하게 한 것도 딸이다. 몇 주 혹은 한달간 머물며 여러번 둘러본 일본의 카페에는 희끗한 머리로 차를 내리고 친절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 수십년 노포가 즐비했다. '카페'하면 젊은 사장을 떠올리는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 편안한 장소와 사람이 주는 매력을 온몸으로 체득한 아내는 부부의 카페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쉐르엘제이를 찾아온 이들이 유독 친절하고 따뜻한 사장님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사장님 부부가 바라던 바를 온전히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쉐르엘제이는 프랑스어 '쉐르(cher) : 친애하는'에서 따왔다. 부부의 이니셜을 한 자 씩 떼어 서로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꾸려나가자는 의미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가 커피와 디저트를 전담하고 차를 즐기는 남편의 취향도 전통차에 담았다. 갓 구운 와플을 겹겹이 쌓아 특제 소스를 뿌린 시그니처 디저트와 크로플 등은 다른 곳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맛을 보완한 메뉴다. 커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식감과 맛을 내세웠다. 자몽, 레몬, 청포도, 백향과 등 계절에 어울리는 과일로 청을 담고 숙성시켜 진한 향미를 갖는 수제청은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즐길 수 있다. 계절마다 다르게 준비하는 생과일 주스도 신선함을 그대로 담는다. 쉐르엘제이는 작지만 우아한 휴식처다. 꾸미지 않아도 여유가 흘러넘치는 다정한 부부의 친절이 분위기 있는 장소와 만나 따뜻한 편안함을 제공한다. 취향에 따라 음료 한 잔 곁들이면 소설 속 한 구절이 된 듯 이 공간에 스며들 수 있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것은 몇 년 전 어느 방송에서 유명 쉐프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실제로 신발을 튀겨 먹어본 사람은 없겠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 담긴 의미에 공감했다. 바삭하고 기름진 튀김은 어느 정도의 맛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여전히 그 말은 뜨거운 기름으로 조리한 튀김요리의 맛에 대한 상징처럼 쓰인다. 물론 모든 튀김 요리가 맛있을 수는 없다. 특히 튀김은 시간에 취약하다. 아무리 맛있게 튀겨진 음식도 차게 식은 뒤에는 갓 튀겼을 때의 감동이 식어버린다. 그럼에도 튀김 요리를 자신있게 내세운 가게가 있다. 청주 봉명동에서 올해 7월 문을 연 '이백도'는 쿠시카츠 전문점이다. 쿠시카츠는 여러 음식을 꼬치에 꽂아 기름에 튀긴 일본 요리를 말한다. 10대 후반에 겪은 첫 아르바이트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한 이자카야 등을 경험한 최시윤 대표는 자신의 가게를 기획하며 지역 상권부터 분석했다. 흔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히 호불호가 없는 음식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튀김류다. 튀김으로 방향을 잡은 뒤 안 튀겨본 재료가 없을만큼 기름과 함께 했다. 식사를 하다가도 맛있게 먹은 음식은 튀김으로 조리해봤다. 이백도 율량점을 먼저 운영한 지인의 가게도 힘이 됐다. 대략 26가지의 튀김 메뉴를 갖추고 이백도 봉명점을 열자 손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튀긴다고 해서 재료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날 가져온 채소와 고기, 해물 등을 먹기 좋게 손질하고 꼬치에 꽂는 것부터 일이다. 가장 인기가 좋은 돼지고기 튀김은 안심과 등심, 항정 부위를 받아 질기거나 기름진 부분 없이 손질해 꼬치로 만든다. 대파와 연근, 가지, 버섯 등은 큼지막하게 썰어 준비하고 몸통과 다리를 섞은 오징어나 새우를 하나하나 꼬치에 꽂는다. 단호박, 고구마 등 단단한 채소나 베이컨에 팽이 버섯을 말아 꽂는 것은 몇 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방울토마토, 파인애플 등 달콤함이 극대화된 튀김류를 먹으면서 상큼하게 입 안을 정리하는 이들도 많다. 바삭하게 튀겨내면서도 최대한 얇게 튀김옷을 입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이백도 튀김의 비법이다. 친구들이 비닐에 대충 포장해 간 튀김으로 확인한 바삭함은 배달 주문을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이다. 수많은 재료를 기름통에 넣으며 체득한 반죽의 농도와 비율은 각 재료의 표면에 더해지는 고소한 풍미를 담당한다. 단단한 채소와 속까지 익어야 하는 고기와 해물 등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조리 시간도 관건이다. 뜨거운 기름통에 그냥 넣는 것 같아도 재료를 넣는 순서와 꺼내는 순서까지 계산된 엄연한 요리다. 여러 주방에서의 경험은 다양한 요리로 발현된다. 주인장의 손에 맡겨지는 세트 메뉴의 단품요리는 한 달에 한 번정도 변화를 준다. 8가지 꼬치 튀김류와 제공되는 요리는 바지락 술찜파스타나 숙주볶음, 직접 담근 새우장, 나가사끼 짬뽕 등으로 변해 먹는 즐거움을 더한다. 8가지 채소를 넣고 우린 육수에 어육 함량이 높은 어묵을 끓이는 어묵탕도 시원하고 깊은 맛에 중독된 단골을 만들었다. 간단한 식사를 위해 이백도를 찾는 이들도 많아 메로구이와 고등어구이 메뉴도 넣었다. 비법 튀김을 가득 얹은 텐동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맨정신에 바삭한 즐거움을 만끽한다. 봄에는 두릅, 가을에는 전어와 생대하 등이 튀김옷을 입는다. 바나나초코과자나 양갱 등 이벤트성으로 맛볼 수 있는 이색 튀김도 있다. 파삭하게 부서지는 튀김옷 아래 쫄깃하거나 부드러운 재료가 진한 달콤함으로 입 안을 채운다. 처음 보는 백설기 튀김을 호기심에 맛본 뒤 그 맛에 빠져 단골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 튀겼지만 무겁지 않은 꼬치 한입이 뜨겁고 신선한 경험을 동시에 안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식빵은 흔한 빵 중 하나다. 굳이 빵집이라고 이름 붙은 곳이 아니더라도 마트나 편의점은 물론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에서도 식빵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밀가루에 효모를 넣고 반죽해 구운 주식용 빵으로 정의되는 식빵은 활용도가 높다. 자르지 않고 그냥 뜯어먹을 수도 있고 샌드위치, 토스트 등 어떤 재료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빵을 부재료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식빵의 기본 맛에 집중하는 마니아층 역시 많다. 지난 2014년 청주 수곡동에서 문을 열고 2020년 1월까지 한자리를 지켜온 '꼬마식빵'은 식빵 맛 하나로 수많은 단골을 확보했던 가게다. 저온 숙성으로 긴 발효시간을 거쳐 소화가 잘되는 쫄깃하고 담백한 식빵으로 이름을 알렸다. 올리브와 치즈가 어우러지는 올리브 치즈 식빵, 공주 밤을 직접 졸여 빵에 담아내는 공주 밤 식빵, 호두를 살짝 구워 씹는 맛이 일품인 호두 식빵, 우유의 고소함이 돋보이는 우유 식빵 등 어느 것 하나 뒤처지는 메뉴 없이 고루 인기를 얻었다. 쉼 없이 달려온 김영식 대표가 몸을 추스르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잠시 문을 닫은 사이에도 꼬마식빵의 행방을 묻는 아쉬운 질문이 온라인상에서 계속될 정도였다. 청주 용담동으로 자리를 옮긴 꼬마식빵은 2020년 7월 '빨간기린'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기존의 이름이 아이들을 위한 식빵이라거나 식빵만 파는 가게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쉽게 각인될 수 있는 이름을 고심하다 인상 깊게 읽었던 동화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이름을 바꾸며 빨간기린의 주력상품도 더해졌다. 식빵과 쿠키, 잼 등을 내세웠던 꼬마식빵을 바탕으로 파운드케이크와 휘낭시에, 마들렌, 쿠키 등의 구운 과자류를 새롭게 담았다. 나만 먹기 위한 빵으로 남는 것이 안타깝다는 단골들의 바람을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다. 먼 곳에서도 김 대표의 빵을 위해 꾸준히 찾아오던 손님들은 혼자만 먹기 아쉬웠다. 식빵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지만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마음을 전하는 용도로 김 대표의 솜씨를 빌리고 싶은 이들은 메뉴의 다양화와 선물 포장 등 새로운 구성을 원했다. 뭐든 대충하는 일이 없는 영식 씨가 준비한 것은 빨간 상자에 담긴 빨간기린만의 특별한 세트 구성이다. 파운드 케이크와 구운 과자류가 식빵과 함께 담기니 맛과 실속에 고급스러움까지 갖췄다. 6~7가지 과일을 럼에 절여 풍미를 살린 후르츠, 오렌지페이스트와 필이 씹히는 향긋한 오렌지, 달콤하게 카라멜라이징한 바나나, 아몬드와 커피가 어우러지는 커피 등의 파운드 케이크는 특별히 구한 얇은 틀에 구워 두툼하게 썰고 개별 포장된다. 계절이나 이벤트에 따라 나오는 밤, 곶감, 장미, 홍차, 애플시나몬 등을 이용한 파운드 케이크도 기대를 부른다. 오븐에 가득 줄을 세운 반듯함이 좋아 정사각형으로 만드는 쿠키도 별미다. 두 가지 치즈를 섞은 치즈, 설탕 옷을 입는 슈가, 카라멜라이징한 피칸을 시나몬과 갈아 넣은 시나몬 넛츠 등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도톰한 비스킷 모양의 쿠키는 산뜻한 티타임에 제격이다. 초코칩과 아몬드 초콜릿 등 적당한 달콤함도 커피 맛을 돋운다. 음료로 판매하는 레몬청이나 빨간기린의 식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딸기잼, 우유잼도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 쉬는 날(일, 월요일)에도 새벽 5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빨간기린의 비밀이다. 2~3일 전에 예약하면 주문 가능한 제철과일 케이크도 꾸준히 인기다. 선물 받아 먹어본 이들의 재주문은 지역을 불문한 택배 요청으로 이어진다. 당일 먹어야 가장 맛있는 식빵과 두고 먹어도 맛이 깊어지는 구움 과자류의 조합이 조화롭다. 빵도 결국은 음식이다. 또 먹고 싶다는 말보다 더 빛나는 칭찬은 먹어보니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어진다는 마음일 것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간판도 없는 3층. 주변에 이렇다 할 상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청주대학교와 동부창고 인근이긴 하지만 북적임과는 거리가 멀다. 지나는 이가 우연히 들어오는 일은 없다. 일면식에 대해 전해 들었거나 알게 된 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눈에 길게 뻗은 카페 내부가 펼쳐진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천천히 뜯어볼수록 송종현 대표가 정교하게 계산한 하나하나의 구성을 깨닫게 된다. 입구 쪽 벽면을 채운 LP와 스피커는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음악을 선보인다. 다른 시선을 등지고 음악에 집중하며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청음 공간으로 꾸몄다. 재즈부터 팝, 가요, 캐럴까지 종현 씨의 과감한 선곡이 즐거움을 더한다. 공부나 작업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은 개별 콘센트가 마련된 작은 테이블을 택한다. 나란히 놓였지만 개인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방해받지 않을 영역이 보장된다. 여럿이 왔거나 넓은 테이블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꼭 맞는 테이블도 있다. 작업대와 연결된 바 형태 테이블은 사용감을 고려해 널찍하게 재단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기에도 좋아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저마다의 위치에 놓인 목제 테이블은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묵직하고 따뜻한 느낌을 더한다. 공간을 준비하며 용인까지 찾아가 목재 더미 속에서 몇 겹의 목장갑을 끼고 찾은 나무들이다. 어울리는 결을 가진 폐목재를 골라 싣고 와 목공 작업을 거치는 정성을 들였다. 줄자를 들고 쫓아다니며 다시 태어난 가구는 모두 같은 높이로 맞췄다. 수많은 카페를 찾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것을 모으고 싫은 것을 빼다 보니 가장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 구성이 나왔다. 맨 위 등받이를 비스듬하게 누인 각도나 앉았을 때 무릎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닿지 않는 길이의 합은 당연히 손님들에게도 편안함으로 각인된다. 길게 이어진 통창은 바깥 풍경을 통해 계절감을 느끼고 싶은 종현 씨의 감각에 맞아떨어졌다. 날씨에 따라 다른 액자로 세상을 담는 창문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색을 바꾼다. 특히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조용히 해를 맞는 손님들이 일면식의 공간을 하나의 그림으로 만든다. 머무르며 즐기는 풍경과 분위기도 좋지만 카페에서 중요한 것은 커피 맛이다. 원두와 용도에 맞는 추출이 관건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만족스럽게 비우는 일면식의 필터 커피는 취향에 맞는 원두를 선택하면 눈앞에서 내려준다. 깔끔한 맛과 향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데 원형 얼음과 투명한 잔을 함께 제공해 위스키를 먹는 듯 색다른 재미도 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두어 개는 먹을 수 있을 만한 가벼운 디저트류도 종현 씨가 직접 굽는다. 커피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풍미는 배가될만한 휘낭시에와 까눌레, 마들렌 등에 티라미수를 더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바질과 토마토로 만든 청으로 시원하게 제공하는 바질토마토에이드는 일면식의 또 다른 시그니처다. 손으로 쓴 메뉴판이나 벽에 걸린 종현 씨의 풍경 사진, 손님들의 역사가 담긴 10권의 방명록 등 일면식을 구성하는 요소는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집중해 잔잔히 스며들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가까이에서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눈치껏 빠져주기도 하는 종현 씨의 배려도 일면식을 한 번만 만나지 않게 하는 편안한 요소다. 단골들만 안다는 '일면식 답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일면식'과 일면식(한 번 만나 인사나 나눈 정도로 조금 앎)밖에 없는 이들도 이 공간이 낯설지 않다. 일면식의 이모저모를 천천히 즐기다보면 금세 젖어드는 친밀감에 놀라게 될 것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기능이 같은 제품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형태가 다르다. 비슷한 맛의 음식을 파는 매장도 분위기에 따라 드나드는 손님에 차이가 난다. 간판 하나 바꿨을 뿐인데 가게 이미지가 달라지기도 하고 손잡이만 바꿔 달아도 다른 제품처럼 보이는 것은 디자인의 힘이다. 디자인은 일상과 맞닿아있다. 주변의 디자인 요소를 찾으려면 거창한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 같지만 우리가 보고 만지는 대부분의 것들은 디자인 과정을 거친다. 사용하는 제품에 각이 지거나 둥글고, 두껍거나 얇은 모양도 모두 의도된 것이다.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필요에 따라 취향을 반영해 물건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디자인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다. 세상에 없던 물건이나 공간을 채우는 디자인 앞에 막연해진다. 주나디자인 박준하 대표는 그런 이들을 위해 이름을 내세웠다. 머릿속 어딘가에 갑갑하게 숨어있는 디자인적 요구를 시원하게 밖으로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다. 잘 모르지만 디자인이 필요한 사람, 그것이 제품이든 판매를 위한 이미지든 주나디자인은 고객을 위해 디자인한다. 디자이너로 살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 좋아하던 미술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하나둘씩 진로를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그림이다. 오디오, 리모콘, 전화기 등 손에 닿는 모든 가전들을 분해하고 그려왔던 취미가 진로와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꺾고자 서울까지 가서 받아본 테스트는 합격이었다. 진로는 정해졌고 산업디자인을 택했다. 디자인 에이전시 등 몇몇 회사에 합격하고도 집과 가까운 전동공구 회사에 발을 들였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직접 제품을 디자인하며 설계팀과 합을 맞춰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기능에 따른 형태를 만들어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니 좋은 제품이 나왔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은 더 좋은 디자인의 밑거름이 됐다.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의 장점은 제품 디자인 이외에도 모든 디자인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품 디자인 외에도 카달로그나 사용 설명서, 제품 패키징 등 편집 디자인이나 웹 디자인 등 관련 영역의 많은 디자인을 실무로 배울 수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일하며 신사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다른 분야의 디자인까지 섭렵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면서 일깨운 것은 회사에서의 쓰임을 넘어선 디자이너로서의 도전 정신이다. 이름난 중견기업인 문구용품 회사로 이직해 다른 분야의 디자인도 경험했다. 디자이너가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건 디자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주나디자인은 그야말로 전반적인 디자인을 전면에 세웠다. 로고, 명함, 간판부터 온라인 페이지, 광고 디자인은 물론 창업 디자인, 제품 개발까지 가능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소상공인에게는 가게 이미지와 홍보 수단의 통일성 있는 디자인의 기초를 잡아준다. 기획 단계에서 분위기나 흐름을 잡아놔야 장기적으로 튀는 요소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품을 가지고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기업에게는 그 제품에 합당한 디자인을 더한다. 시선을 끄는 것은 제품 자체의 디자인 뿐 아니다. 카달로그나 포장 등 용도에 맞는 이미지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매력을 느껴야 시각적인 시너지가 발휘된다. 모두가 디자이너일 수는 없다. 주나디자인은 디자인을 전담한다. 박준하 대표의 경험과 시선을 담은 결과물이 목적에 맞게 디자인된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향기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코끝을 스치는 향에 따라 어떤 장소나 상황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비슷한 향기를 풍기던 사람을 떠올릴 때도 있다. 후각신경에서 뇌로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은 다른 감각과 다르다. 시상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에 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할머니 옷장에서 나던 나프탈렌 냄새라든가 쿰쿰하지만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코끝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 이유다. 향기의 힘을 아는 이들은 이것을 실생활에 적용한다. 집이나 차, 사무실 등 한정적인 공간을 다르게 쓰고 싶은 이들이 디퓨저를 선택한다. 공간에 향을 입히면 구조나 색을 바꾸는 것보다 간단하게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다. 디퓨저는 중세시대 유럽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한 기호품으로 허브나 꽃에서 추출한 아로마오일이 나무 스틱 리드를 타고 발향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이용하기 좋게 다양한 모양의 스틱과 장식이 추가됐다. 향기를 내뿜으며 보기에도 좋은 이 소품은 집들이나 기념일 등에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로도 유용하다. 직접 고르거나 사지 않았어도 디퓨저 하나쯤 선반에 안 올려본 사람은 없을 정도다. 김진영 대표는 5년 전 친구의 권유로 디퓨저와 향수 판매점 '홀린'을 시작했다. 충분히 공부하고 향을 다루기 시작했지만, 매장을 운영하며 접하는 향기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단계로 나누어졌다. 같은 원재료에서도 농도와 배합에 따라 다른 향이 만들어지고 발향과 잔향의 정도에 따른 취향도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향을 대하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계절에 따라 많이 찾는 향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줄곧 한 가지 향만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 자주 머무는 모든 곳에 같은 향을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소마다 다른 향으로 특색을 살리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에게는 향긋하게 느껴지는 향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체취로 전해지는 향수의 경우 함께 있는 사람의 취향도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나만의 공간을 꾸리는 디퓨저는 온전히 본인의 취향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무수에탄올과 아로마오일, 유화제가 섞인 비율에 따라 향의 지속성이 달라진다. 무심코 산 저렴한 제품이 일주일 만에 향을 잃고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공기 중에 머무는 만큼 안전성 검사를 마친 제품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코끝이 예민하거나 아직 원하는 향을 찾지 못한 사람도 홀린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100여 가지로 준비된 다양한 향을 맡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숲속의 향기를 담은 '포레스트'부터 달콤하고 진한 꽃향기가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된 '일랑일랑' 등 선호도 높은 제품 외에도 시트러스 계열의 상큼한 향과 추워진 계절에 어울리는 나무 느낌이 나고 묵직한 향까지 비슷한 계열 속 미묘한 차이가 있는 향을 직접 맡아보고 고를 수 있다. 디퓨저 모양도 자신의 기호대로 꾸밀 수 있다. 액상을 담는 병과 리드 스틱이 정해진 기성품이 아니라 색과 모양을 자신이 선택한 병에 종이꽃이나 섬유 스틱, 갈대 스틱 등 원하는 모양과 발향 정도를 가진 리드 스틱을 선택해 좋아하는 향을 채우면 나만의 디퓨저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 연인이나 친구에게 선물할 때도 카네이션, 장미 등이 들어간 기성품보다는 직접 제품을 구성하고 향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형식적인 선물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고 어울릴만한 향기를 고민한 노력의 산물이다. 집 안 곳곳의 선반 위, 혹은 자동차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그 사람의 일부를 표현한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같은 향기를 만나는 순간 지금의 기억이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시원한 디저트에 대한 관심은 늘 뜨겁다. 유명 프랜차이즈 외에도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동네마다 열렸고 빙수 전문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라는 말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람이 많으니 한겨울에도 주문 받는 이들은 뜨거운 음료인지 차가운 음료인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청주 동남지구에서 지난해 문을 연 수제 젤라또 전문점 '러푼젤'을 운영하는 김은지 대표도 시원한 디저트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다. 늘 아이스음료, 빙수, 아이스크림 등으로 입 안을 차게 식혔다. 유독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죄책감이 따라왔다. 한 두입은 맛있지만 지나친 단맛은 생각만큼 갈증을 없애주지도 않거니와 칼로리에 대한 부담과 첨가제에 대한 의심으로도 이어졌다. 직장 생활을 위해 서울로 향했던 20대 후반에서야 접하게 된 젤라또는 그간의 아이스크림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쫀득한 질감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며 던지는 맛은 재료 본연의 맛 그대로였다. 쌀이면 쌀의 고소함, 과일로 만든 소르베의 경우는 상큼하고 달콤한 과육이 온전히 느껴졌다. 깔끔한 뒷맛은 물론 덜어진 죄책감까지 시원한 디저트 최강의 만족도였다. 6년 간 일하던 회사생활을 정리하며 청주에서 맛보지 못했던 젤라또의 아쉬움을 풀어보고자 마음먹었다. 학원 다니며 기본을 익히고 자신만의 젤라또를 만들기위해 부단히 많은 재료를 갈고 섞고 얼렸다. 20가지가 넘는 맛을 완성했을 때 러푼젤을 열었다. 러푼젤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은 모두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러푼젤만의 메뉴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만큼 다채로운 메뉴를 준비하는 것도 은지 씨의 전략이다. 자두와 수박, 복숭아 등 여름에 만날 수 있는 메뉴와 홍시, 귤 등 겨울의 제철 과일이 다르다. 과육 그대로를 높은 함량으로 넣어야 첨가물 없이도 충분한 과일 맛이 난다. 1년 내내 만날 수 있는 과일은 백향과와 망고, 딸기, 블루베리 등이다. 후숙이 필요한 과일은 매장에서 직접 후숙을 거쳐 가장 맛있을 때 손질하고 갈아 넣어 얼린다. 부모님이 농사 지은 산머루도 매장에 가져와 메뉴로 담았다. 보다 건강한 디저트를 위한 고민은 부재료 선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옥수수나 단호박은 찌고, 고구마는 구워서 갈아 넣는다. 본연의 단맛과 스프를 먹는 것처럼 진한 풍미가 아이스크림으로 시원하게 재탄생한다. 평소에 먹어본 합이 좋은 식재료도 아이스크림에 담기위해 노력한 결과 특색있는 메뉴로 쌓였다. 팥을 삶아서 갈고 버터를 녹여 섞는 앙버터나 무화과로 잼을 졸여 크림치즈와 섞어내는 무화과크림치즈는 러푼젤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맛이다. 입안에서 즐거운 식감을 위해 수백번의 시도로 농도와 비율을 조절했다. 쑥과 미숫가루, 누룽지, 들깨 등 손님들의 요청에 의해 탄생한 고소한 맛도 인기다. 쫀득한 젤라또의 질감에 고소한 가루가 섞여 마치 떡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특색있다. 음료로만 맛보던 미숫가루나 칼국수나 수제비로 접하던 들깨의 구수함이 입 안에서 시원하게 퍼지며 익숙한 맛을 새로운 경험으로 담는다. 초등학생들도 선뜻 들어와 자연스레 맛을 고른다. 우유, 딸기, 초콜릿 등 아이스크림의 전통 강자인 기본적인 맛을 선택하는 것은 어린이 손님들이 많다. 러푼젤은 모든 재료를 직접 손질하고 만들어 사랑을 퍼담은 젤라또라는 의미다. 온통 굳은살로 단단해진 은지 씨의 손에서 상큼하고 달콤한, 때론 쫀득한 러푼젤식 정성과 사랑이 한 스쿱씩 쌓인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댕밀헌은 다소 복잡한 조합의 이름이다. 멍멍이의 멍멍과 모양이 비슷해 강아지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한글 '댕댕이'와 식사를 뜻하는 영어 '밀(meal)', 집을 뜻하는 한자 '헌(軒)'을 조합해 만들었다. 권수진 대표가 반려견의 음식을 만드는 집을 구상하며 오래 고민한 결과다. 수제 간식도 만들긴 하지만 간식의 개념보다는 식사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간간이 먹는 특식이라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밥에 반려견별로 맞춤식 영양을 담는 것이다. 수진 씨는 강아지마다 다른 체질이나 상황에 맞게 영양을 고려한 맞춤형 식사 메뉴를 구성해주는 반려견 영양사라고 할 수 있다. 손님들의 의뢰를 받고 식단을 짜주는 영업 방식은 낯설 수 있지만 충분한 상담과 연구를 통해 최적의 식단을 제공한다. 조리된 제품을 진열해두고 팔면 접근은 쉽겠지만 맞춤형 식단의 장점이 사라지기 때문에 레시피에 중점을 뒀다. 레시피가 완성되면 기호성 테스트를 거친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먹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잘 먹어줄 만한 대체 재료를 찾고 성분검사 결과도 받아 볼 수 있다. 조리가 어려워 완성품을 만들어 가고 싶으면 댕밀헌에서 수진 씨와 함께 만들어 가도 된다. 수술이 끝나 보양이 필요하거나 질환이 있어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강아지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이 맞춤형 식단이다. 댕밀헌의 이름과 영업 방식만큼이나 공간도 이색적이다. 강아지 안전문이 한 번 더 설치된 실내에 들어서면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정보 단말기)와 수제 간식이 채워진 냉장고 하나가 전부다. 처마와 툇마루, 창호가 한옥처럼 꾸며진 벽면은 방석과 강아지 한복, 반상 등을 두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뒀다. 마땅히 자기 자리인 것처럼 마루 위로 뛰어오른 강아지들이 인생 사진을 위해 자세를 잡는다. 키오스크 옆 작은 문 너머로 닫아둔 곳은 음식을 만드는 장소다. 수진 씨가 작업하고 있어도 손님들이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무인 매장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강아지와 사진 촬영만을 위해 찾아와도 부담스럽지 않도록 주인의 모습을 감춘 배려다. 안쪽 벽면에 적힌 화려한 이력도 눈에 띈다. 펫 아로마 상담사, 애견미용사, 반려동물영양전문강사 마스터, 반려견 지도사 등 반려동물과 관련된 자격증과 수료 이력이 빼곡하게 적혔다. 반려견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진 씨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다. 공동주택에서 짖는 동물은 안된다는 부모님의 만류에 강아지를 대신할만한 여러 동물을 돌봤다. 다람쥐, 십자매, 거북이, 토끼 등 함께 해본 여러 동물을 최고의 방법으로 열심히 길러냈다. 대부분 새끼를 보기까지 했으니 투명한 결과다. 강아지에 대한 아쉬움을 애견미용사로 일하며 채우다 지금의 반려견 아잉이를 만났다. 더 잘 해주고 싶어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한 것이 이력으로 쌓였다.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시작한 지도 교육으로 자격증을 따고 운동과 교육을 병행하다 보니 음식에 관한 관심도 생겼다. 운동만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부족했다. 좋은 먹거리가 잘 키우는 일의 완성이었다. 강아지가 먹을 음식은 사람이 먹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간식에 들어가는 닭, 오리, 말, 소, 캥거루 고기와 가자미, 명태, 갈치 등도 재료에 따라 달리 손질한다. 살을 바르고 염분을 제거하고 고온에 말리거나 찌는 일의 연속이다. 댕밀헌에서는 시판 제품에 많이 들어있는 브로콜리, 당근, 단호박 등 대신 콜리플라워, 팽이버섯, 파프리카 등으로 영양소를 맞춘다. 다른 제품과 겸해서 먹여도 영양의 충돌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비트, 쑥, 치자, 딸기 가루 등으로 색을 입혀 보기에도 좋다. 훈련하기 좋게 잘게 찢기는 질감도 고려했다. 그림같이 예쁜 모양보다는 반려견이 익숙할 맛과 모양에 신경을 썼다. 통 먹는 것이 없다는 강아지도 댕밀헌의 간식에 식욕을 찾으니 입 짧은 강아지를 키우는 다른 손님도 입소문을 듣고 댕밀헌을 향한다.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마음은 비단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