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안팎으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색색의 꽃과 나무로 잘 가꿔진 정원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조형물이 고개를 내민다. 옹기 하면 떠오르는 크고 작은 항아리부터 흙으로 빚어 구운 사람과 동물 모양 토기도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작품들이 산책하는 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본 뒤 입구 쪽으로 다가서면 작은 식물을 담은 각양각색의 화분들이 늘어서 있다. 같은 모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마당을 실감 나게 꾸민 전원주택이 있는가 하면 작은 간판과 테라스를 갖춘 카페도 있다. 계단이나 굴뚝, 연못 등 각각의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누군가의 꿈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둔 듯하다. 본격적인 갤러리는 실내다. 차곡차곡 칸을 차지한 옹기들이 작품이다. 멋스러운 식기류가 주를 이룬다. 꿈꾸는옹기 박재순 대표는 숨 쉬는 그릇을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마당 한편, 혹은 땅속에 묻혀 기능하는 투박한 형태의 옹기 대신 식탁 위에 올려 입에 닿는 순간까지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으로 쓰는 제품에 집중했다. 오랜 시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박 대표가 마음을 다스리는 취미 생활로 선택한 것이 도자기 공예다. 주말마다 흙을 만지는 일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잠재웠다. 15년쯤 이어오던 취미 생활은 옹기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도자기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양각을 파내는 손놀림이 지나면 은은한 무늬로 특색을 갖게 되는 옹기의 매력에 빠졌다. 된장, 고추장 등 전통 장류뿐 아니라 모든 음식이 옹기에 담기면 숨 쉬는 듯했다. 찬 음식은 더욱 차갑게 느껴지고, 따듯한 음식은 오랫동안 온기를 잃지 않는다. 모양만 예쁜 그릇과 달리 음식을 먹는 시간의 품격마저 올라갔다. 항아리와 단지로 시작했던 작업이 점차 실생활에 밀접하게 사용하는 식기류로 옮겨왔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작업을 멈출 틈이 없었다. 학원을 정리한 뒤 본격적으로 작업실을 만들고 갤러리로 꾸몄다. 식사에 사용하는 식기는 물론 찻주전자, 찻잔, 술잔, 냉장고에 들어갈 만한 작은 단지, 콩나물시루 등 온갖 제품이 탄생했다. 숨 쉬는 구멍을 만들고 헝겊을 덧댄 콩나물시루는 디자인특허까지 취득했다. 틈틈이 만드는 토기 인형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합창단원들이 있는가 하면 꼬리에 사랑을 담은 돼지들도 하나의 작품이다. 집 안에 두면 복이 들어온다는 똥장군도 여러 형태로 빚었다. 다양한 식기를 만들고 전시하는 공간이 늘자 주위에서 판매를 권했다. 가마에서 나온 그대로를 모두 사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청주뿐 아니라 당진, 울산, 포항, 부산 등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재순 씨의 작품을 찾아왔다. 몇몇 방송에 소개된 이후 청주 남일면 고은길로 찾아드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도소매로 옹기 판매를 시작한 꿈꾸는옹기는 2018년 애써 찾아오는 이들을 대접하기 위한 갤러리카페로 틀을 바꿨다. 옹기의 특성과 생활 속 아이디어를 결합한 재순 씨의 작품이 꾸몽갤러리카페에 가득하다. 수학을 가르치던 경력은 일상 속 편의를 반영한 비율과 각도로 옹기에 담겼다. 뜨거운 차를 마시기 좋게 옮겨 담기 위해 만든 작은 잔은 사다리꼴로 모양을 잡아 어느 방향이든 마시기 편하다. 바로 깨를 갈아 쓰기 위한 깨갈이 절구는 엄지손가락 부분이 옴폭 파여 한 손에 쏙 들어온다. 한 송이 꽃이나 식물을 꽂을 수 있게 작은 구멍을 뚫어둔 옹기 받침도 독특하다.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해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옹기로 만든 잔에 차를 마시며 간단한 옹기 제품을 만드는 이들도 흙으로 즐거운 시간을 빚는다. 실용적이고 예쁜 나만의 옹기가 수 백 가지 모습으로 가마에서 나온다. 꾸몽갤러리카페가 꿈꾸는 옹기의 세상이 가까이 있다. /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504.48'. 제주거멍돗의 메뉴 앞에 붙어있는 숫자가 의아함을 자아낸다. 504.48 프리미엄, 504.48 거멍돗 오겹, 504.48 숙성 목살 등 모든 고기 메뉴에 같은 숫자다. 이 숫자는 지난 2015년 경남 사천에서 처음 제주 돼지고기 전문점 거멍돗의 문을 열었던 최희석, 김지영 부부가 작정하고 찾아낸 맛의 비밀이다.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제주 돼지고기를 받아 3주간의 습식 숙성을 거친 뒤 이틀 더 건식 숙성한다. 기나긴 인고의 과정을 마친 고기만 손님들의 상 위에 오를 수 있다. 넓은 홀과 주방의 크기만큼이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저온 숙성창고가 존재하는 이유다. 특색있는 음식을 위해 고민했던 이들 부부는 사소한 것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1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하며 작은 차이가 큰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일단 고깃집이 계절과 관계없이 덥다는 인식은 거멍돗의 문을 열자마자 깨지고 만다. 올해 청주로 본점을 옮기며 가장 주요하게 생각한 것이 쾌적함이다. 주위의 걱정을 살 정도로 작정하고 준비한 다섯 대의 에어컨이 서늘함을 선사한다. 더위가 맹위를 떨친 이번 여름도 손님들은 도리어 시원한 휴양지에 피서 온 기분으로 고기를 즐길 수 있었다.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밥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많은 이유는 갓 지은 밥맛이다. 지역 쌀을 쓰고 싶어 선택한 청원생명쌀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밥을 짓는다. 미리 공기에 담아두지 않아 밥솥에 밥이 떨어지면 시간이 걸리지만 손님들 역시 고소한 밥맛을 위해 선뜻 기다림을 택한다. 504시간 습식 숙성과 48시간의 건식 숙성을 이겨낸 고기는 오겹, 목살, 갈매기, 항정, 가브리 등 부위별로 각자의 매력을 끌어올린다.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한층 풍부해진 풍미가 꼭 다시 찾아오는 고기 맛으로 거멍돗을 각인시킨다. 고기를 굽는 불도 여러 번의 변화 끝에 선택됐다. 강원도에서 24년간 전통방식으로 가마에서 굽는 참나무 참숯을 고집한다. 비용과 편의성 때문에 고민했지만 1300℃에서 220시간 구운 참숯은 고기 맛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져왔다. 은은한 불향이 숙성고기의 감칠맛까지 입 안에 가둔다. 굽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작업대에서 손질한 고기를 초벌로 구워 상에 올리는 서비스도 호응이 높다. 사천에서 제공하던 고사리 장아찌는 불판 위에 고기와 함께 올리는 손님들 덕분에 형태가 바뀌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구워먹기 좋은 양념으로 고사리를 무쳐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적당한 양념을 입고 구워지니 금세 고사리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거멍돗만의 특별한 맛 조합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공수한 식재료들이 한 곳에 모인다. 상차림으로 제공되는 간장게장은 제주와 남해에서 나는 황게를 쓴다. 살에서 밤맛이 난다는 황게는 돌게나 꽃게에 비해 껍질의 단단함이 덜해 남녀노소 부담없이 깨물어 맛볼 수 있다. 15가지 재료를 넣고 끓인 간장 맛에 황게간장게장을 따로 사고 싶다는 손님들의 요청이 이어진다. 땡초와 함께 끓인 게구리(게+너구리) 라면은 시원하고 칼칼한 입가심 메뉴로 인기다. 제주돼지와 어울릴만한 사이드로 고민한 메뉴는 전복 내장 볶음밥이다. 완도에서 가져오는 전복도 황게와 같은 간장으로 장을 담는다. 신선한 내장으로 밥을 볶은 뒤 전복장 하나를 올려 맛을 더하는 전복 내장 볶음밥도 하나의 대표 메뉴가 됐다. 여수에서 공수하는 갓김치나 자색양파·부추 등 계절 채소를 이용한 겉절이, 직접 양념해 삭히는 추자도 멜젓과 목포 갈치속젓, 표고버섯을 불리고 다져 만드는 와사비표고장 등 곁들임 음식이 거멍돗 제주고기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준다. 참기름 한 방울도 50년 전통 기름집에서 가져온다. 거멍돗이 선보이는 모든 음식에 담긴 정성과 시간을 손님들이 알아차린다. 경남 사천에서 시작해 충북 청주로 이어진 거멍돗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많아진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누군가의 캠핑장을 들여다보는 듯 현실감 넘치는 풍경이 펼쳐진다. 불 켜진 가로등, 자갈이나 나무 조각 위에 자리잡은 화로와 의자, 침낭과 탁자 등이 여러 조합과 배열로 갖춰진 몇 동의 텐트에 마음이 들뜬다. 쌓여있는 장작과 나뭇가지 등도 야외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지핀다. 개인용 식기와 배낭 등을 짊어지고 홀로 캠핑을 온 사람이 펴 놓은 것 같은 작은 텐트부터 여럿이 둘러앉아 불멍을 즐기다 간 듯 커다랗게 둘러쌓인 장막도 있다. 높은 천장과 넓은 대지를 강점으로 내세운 캠핑용품 전문점 '아웃도어247'의 특장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캠핑용품 전시에 제한 없이 활용했다. 일반적인 매장은 물론 캠핑지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대형 텐트가 하나의 장식물처럼 벽에 걸린 모습을 바라보는 캠퍼들의 눈빛이 놀라움과 설렘으로 채워진다. 아웃도어247은 언제나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매장을 찾아온 손님들은 들어서는 순간 캠퍼로 변신해 여행을 시작한다. 채운규 대표가 지난 2017년부터 청주 산남동에서 운영 중인 헬스장은 코로나 시점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 중 하나였다. 그 즈음 무형의 상품 대신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의 상품으로 어려운 시기를 타개해 보기로 한 것이 캠핑용품이다. 아버지를 따라 야영을 다닌 어린시절부터 텐트와 장비들을 다양하게 접했기 때문이다. 캠핑시장은 코로나가 기세를 높일수록 함께 성장했다. 개인의 위생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과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 속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자유로움은 질병의 두려움 속에서도 일상을 보존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운규 씨는 프랜차이즈 캠핑용품점을 몇 년간 운영하며 브랜드별 제품의 특징과 캠핑 트랜드, 유통의 흐름 등을 익혔다. 구조적으로 제약이 있는 프랜차이즈 캠핑용품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SNS,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캠핑 콘텐츠가 수도 없이 쏟아지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에 주목했다. 캠핑은 야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이다 보니 실물 크기나 사용감 등이 중요하다. 지인의 용품, 캠핑장에서의 간접 경험 이후 구매로 이어지는 소비패턴에 확신을 얻은 뒤 지인들과 뜻을 모아 새로운 쇼핑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프리미엄 캠핑용품점 아웃도어247을 완성했다. 아웃도어247에서는 날카로운 캠퍼들의 시선이 오간다. 펼쳐진 텐트의 소재를 쓰다듬는가 하면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제품을 들어 올려 무게를 확인하는 이들도 있다. 텐트 폴대의 조립 부분이나 테이블 이음부를 살피는 움직임에 신중함이 느껴진다. 몇몇 제품 앞에서는 탄성도 터져나온다. 온라인에서나 보던 것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시다. 프리미엄 캠핑용품점을 지향하는 아웃도어샵 답게 캠퍼들의 선호도가 높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여럿 유치한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아웃렛처럼 다양한 브랜드가 있지만 각 브랜드 매장에 들른 것처럼 집중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색채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배치했기 때문이다. 가벼운 것으로 이름난 브랜드 영역에 와이어로 매달아 올린 의자가 직관적이다. 열 맞춰 늘어선 알록달록한 색채의 침낭들이 가볍고 폭신한 잠자리를 연출한다. 카키색 톤으로 야생의 색을 입은 공간도 있다. 전시동인 A동이 주로 대형 장비를 확인 할 수 있는 곳이라면 B동은 세심한 장비 위주다. 조명부터 식기까지 캠핑에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 곳곳에서 의외의 물건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별다른 구매 의사 없이 아웃도어247에 들어선 이들도 오랜 시간 발이 묶여 나가지 못한다.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기에 캠핑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아웃도어247이 추구하는 공간은 캠핑에 관한 소통의 장이다. 캠핑을 사랑하는 이들은 물론 캠핑 세계에 이제 막 입문한 초심자들도 부담없이 들어오면 된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캠핑 고수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쁘게 둘러보던 손님들은 커다란 화목보일러 앞에 잠시 앉아 쉬면서도 계속 분주하다. 잔뜩 들뜬 손님들의 눈빛이 이미 다음 캠핑을 준비하고 있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옛것의 재발견이다. 할머니 집의 추억으로 기억 속에 남았던 자개장은 검은색 배경에 오색영롱한 빛으로 그려진 산수화가 주를 이뤘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고 유행처럼 번져 혼수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보석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자연스레 빛나는 아름다움이 가치를 더했다. 묵직한 가구 위를 수려하게 꾸미던 자개가 한껏 가벼워진 매력으로 전혀 다른 세대에 스며들었다. 거울, 키링, 그립톡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품 위에 자개가 들어앉았다.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 악세사리의 포인트로 쓰여 영롱하게 반짝이기도 한다. 전복·소라·진주조개 등을 껍데기에서 추출한 자연의 빛은 모두가 오묘하게 다른 무늬를 내어보인다. '옻필무렵' 최다은 대표는 자개공예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매개체를 활용한다. 소품과 악세사리 등 실생활에 사용하는 물건에 자개를 담는가 하면 마크라메 패턴을 자개로 표현한 작품이나 친근한 캐릭터를 오려 만든 구성으로도 시선을 끈다. 다은 씨는 무작정 공예가 하고 싶었다. 오랜시간 집중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커다란 십자수를 완성하거나 세밀하게 도장을 파는 등의 취미가 꼼꼼한 성격에 맞았다. 처음 생각한 공예는 금속공예다. 프랑스에서 금속 공예를 접해야 겠다는 생각과 추진력으로 프랑스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언어 문제를 해결한 뒤 프랑스에서 1년 정도 생활하면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이곳에서 다른 나라의 공예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목공예에 눈을 돌렸다. 나무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며 실력을 쌓다 전통공예를 추천받았다. 나무로 만든 물건에 시간과 가치를 입히는 옻칠이 흥미로웠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하는 결단력으로 충북 무형문화재 스승님을 수소문했고 무작정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그릇이나 가구 등에 천연도료인 옻나무 수액을 바르는 옻칠은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해 광택을 더하고 오랜시간 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6~7번씩 칠하고 고온다습한 곳에서 말리기를 거듭할수록 내열성, 내염성을 갖춰 더욱 가치있는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3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옻칠에 매진했다. 함께 배운 기술로 자개 소품 등을 만들어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출강을 나가기도 했다. 대중들과 함께하는 공예에 매력을 느꼈다. 칠공으로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취득하고 4번의 작품 수상으로 경력을 쌓은 뒤 자신의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정교한 기술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옻칠 대신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분야로 자개공예를 선택했다. 다은 씨의 수업은 주로 한 시간 내외로 작업하는 자개공예로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든다. 자개는 20~30대에게는 흐릿한 추억 속 낯선 아름다움이고, 50~60대에게는 귀한 것이라는 인식이 더해진 추억의 재료다. 익숙한 영롱함을 각기 개성을 담은 모양으로 자르고 붙이면 전혀 새로운 공예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판자개, 알자개, 실자개 등 여러 종류의 자개에 다은 씨의 도안을 담아 모양을 잡는다. 토끼, 돌고래, 별, 강아지 등 모양 자개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귀여운 자개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같은 조각들을 골라도 디테일은 모두 다르다. 가루 자개는 별들이 수놓인 밤하늘도 될 수있고 일렁이는 파도나 모래알로 표현되기도 한다. 자개의 변화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끊음질로 글자를 만드는 것도, 평소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도안으로 그려 완성하는 것도 각자의 공예다. 자연물이 주는 오묘한 빛을 한껏 끌어안은 자신만의 소품이 일상 속 공예의 가치를 재해석한다. 언젠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상 속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옻칠 과정도 운영해볼 생각이다. 천연안료와 섞은 색옻칠은 시간이 지나야 제 색을 낸다고 한다. 한참의 시간을 겪어야 옻이 핀다. 이곳 저곳에 겹겹이 칠해둔 다은 씨의 옻이, 피고 있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놓인 열 두어 개의 과자가 왠지 낯설다. 디저트를 진열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전시해 둔 느낌이다. 멋스러운 접시 위에서 매력을 뽐내는 과자들은 일견 비슷한 모양이나 자세히 보면 뚜렷한 개성이 담겼다. 구운 과자류는 대략 갈색이라는 편견을 깨고 노랑, 주황, 녹색, 검정 등으로 화려하다. 각각의 접시 앞에 놓인 메모에는 메뉴 이름과 작은 사각형으로 나타낸 상징적인 색, 눈으로 맛을 짐작게 하는 짧은 글이 작가의 설명처럼 애틋하다. 청주 운천동의 피엘티는 구운 과자류 디저트를 선보인다. 작은 가게에 들어서면 흰색 벽면과 반듯한 목재 카운터, 그 위에 덩그러니 놓인 몇 개의 디저트 샘플이 전부다. 디저트 제품은 고객의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장 깨끗하고 온전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두툼한 가벽 위쪽의 두 뼘 남짓한 직사각형 모양 창으로 매장보다 넓은 주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슬쩍 봐도 깔끔한 상태는 매장과 주방이 다르지 않다. 피엘티는 최지원 대표의 성격이 그대로 담긴 곳이다. 엄마와 요리하는 순간이 즐거웠던 아이는 주방 그 자체를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미술과 요리,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중 더 많은 시간을 들여도 좋을 만한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제과제빵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완성품이 그 자체로 요리이자 디저트,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같은 틀 안에서도 무한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색채를 뚜렷이 반영할 기회이기도 했다. 지원 씨의 디저트는 느긋하다. 저온에서 반나절 이상 숙성한 반죽이 시작이다. 제품의 특성별로 반죽도 따로 하는 것이 조금만 떼어먹어도 다름이 느껴지는 맛의 비밀이다. 가장 좋아하는 식자재인 토마토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담은 토마토 휘낭시에는 토마토를 고르는 과정부터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다. 십여 년째 취미인 토마토 말리기를 적용한 제품이기도 하다. 원하는 품종의 토마토를 숙성시키고 자르고 데쳐 말린 것은 쫀득하고 깊은 맛으로 변한다. 토마토 페이스트와 치즈를 더한 반죽 속 토마토와 고명으로 올라간 토마토는 같지만 다른 식감과 풍미가 있다. 제주 말차의 푸르름이 특징인 말차마들렌은 말차 애호가를 만들었다. 촉촉한 말차 반죽을 비릿하거나 퍽퍽한 맛 없이 싱그럽게 담았다. 말차가나슈의 쌉쌀한 달콤함이 아작 하게 코팅된 말차향 글라쎄를 넘어 여러 겹의 진한 즐거움을 준다. 말차를 원래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말차 본연의 맛을 부담 없이 즐긴다. 시제품을 쓰는 대신 고집스럽게 생과를 손질해 제스트를 갈고 즙을 짜 반죽에 담는 레몬 마들렌은 기본에 충실한 만큼 상큼하고 폭신한 시작과 향긋한 마무리를 남긴다. 모히또에서 영감을 얻어 여름 메뉴로 내세운 라임민트마들렌은 로즈마리, 애플민트, 라임 등의 새콤하고 청량한 어울림이 시원하고 독특한 풍미로 더위를 식힌다. 단순히 커피나 차 등에 곁들여 즐기는 것보다는 하나의 요리로, 안주로도 즐길 수 있는 과자가 지원 씨의 목표다. 손으로 찢은 그린올리브와 원형으로 자른 블랙 올리브를 더하고 그라나 파다노와 후추 향을 입힌 올리브휘낭시에나 고르곤졸라 치즈의 깊은 풍미에 짭짤함이 날카로운 블루치즈 휘낭시에, 초콜릿의 단맛과 말돈 소금의 감칠맛이 일품인 소금초코 휘낭시에 등도 그 시도의 일부다. 투명한 전면 유리와 하얀 벽, 하얀 간판의 피엘티는 이를테면 하나의 팔레트다. 물감을 풀어서 조합하는 데 쓰이는 회화기구인 팔레트는 그 자체로는 특색이 없지만 그 위에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원 씨만의 색채를 섞어 만들어낸 피엘티의 작품 세계가 고객들의 입안에서 인상적인 감상평을 남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https://naver.me/51aCO6Vm
[충북일보] 아득히 먼 옛날에도 냇가에서 옷을 두드리던 그림을 볼 수 있다. 빨래의 의미다. 우리나라에 세탁기가 보급된 지도 50여 년이 지났다. 세탁소에나 가야 세탁기를 구경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탁기 없는 집은 거의 없다. 세탁기를 넘어 의류 관리기까지 집 안으로 들이는 추세다. 동네마다 무인 빨래방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도 세탁전문가의 손길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세탁전문가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의류마다 옷감과 스타일 등이 다양화되며 단순 세탁으로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져서다.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고 20여 년 전부터 세탁업에 몸을 담은 청년이 있다. 수년 전부터 전국에서 의뢰 택배가 쏟아지며 여러 방송에서 세탁 명인으로 소개된 '최정민과 함께하는 크리닝마스터(행복드림세탁)'의 최정민 마스터다. 신사복 판매장에서 일하던 정민 씨는 셔츠와 정장 등을 갖춰 입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셔츠를 세탁하고 다려입는 자신과 달리 며칠씩 같은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옷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원단을 배우고 섬유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세탁업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세탁 일을 배우기 위해 동네 세탁소에 들어갔다. 세탁업계는 폐쇄적이었다. 쉽게 기술을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몰래 세탁 기술을 배우며 정리와 배달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다 5년쯤 지났을 때 무작정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가게를 차렸다. 의류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기존에 없었던 운동화 전문 세탁소로 시작한 업장은 편의를 위해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1년 6개월쯤 운영해본 뒤에는 중고 세탁 기계를 들였다. 아내와 결혼하며 의류 세탁도 함께 해보기로 한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차츰 성장하던 행복드림세탁은 세탁 교실에 참가해 전국 각지의 세탁인들을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일명 숨은 고수라는 기능인들을 알게 됐다. 3~4년간은 쉬는 날 없이 전국 각지를 찾아다녔다. 대구, 부산 등 작은 골목에 은둔한 수십 년 기술자들에게 비용을 내며 하나하나의 기술을 습득했다. 10년쯤 세탁업의 기초를 쌓았다면 다음 10년은 완성형 세탁 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 태명이 행복이었던 첫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새로운 세탁 기술도 자연스레 익혔다. 유모차와 카시트 등 아이에게 닿는 것을 씻을 때 나쁜 것은 모두 빼내야 했다. 직접 개발한 친환경 세제를 사용한 유아용품 세탁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지역에 퍼졌다. 니트, 패딩, 부츠 등 어려운 소재와 형태의 복원도 문제없이 해냈다. 세탁을 단순한 얼룩 제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식에서 비롯됐다. 크리닝마스터의 세탁은 고객과의 상세한 상담을 통해 섬유와 얼룩, 얼룩과 염색 등의 관계 정립부터 시작하는 의류 관리다. 자신이 배합한 세제로 오염 요인과 섬유에 맞는 세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청주 시내 11개 가맹점에서 점주들과의 상담을 거쳐 크리닝마스터 본사로 모이는 의류는 몇 년 전 설립한 100평 규모의 공장을 가득 채운다. 각각의 특색과 상태에 따라 관리받은 의류는 다시 처음과 비슷한 상태로 고객의 손에 닿는다. 고객들의 추운 겨울을 감싸던 두꺼운 패딩들은 3~6월 이곳에 모여 전용 세제로 관리를 받은 뒤 다음 겨울을 준비한다.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밍크 수십 벌을 한 번에 맡긴 업체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디자이너의 복원 의뢰, 명품 브랜드의 제휴 요청이 정민 씨의 자존감을 올린다. 수소문 끝에 찾아올만한 기술을 가졌다는 자부심이다. 언제나 사람들의 차림새를 살피고 백화점 신상에도 부지런히 시선을 돌린다. 만져보고 입어보는 것부터 제대로 된 의류 관리의 시작이다. 여러 오염 물질을 다양한 옷감에 묻혀보고, 흔적없이 지우기의 반복이다. 어떤 옷감과 색감이 세상에 나와도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집념으로 갈고 닦는다. 크리닝마스터가 추구하는 스스로의 성취감은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는 행복드림 비법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이웃집에 놀러 온 듯 편안한 분위기가 감돈다. 널찍한 식탁에 커피 한 잔을 올려두고 등을 기대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는 사람까지 편하게 만든다. 예쁜 불편함이 당연해진 듯한 요즘 카페의 인테리어 추세를 조금은 벗어난 셀레빈커피로스터스는 그래서 더 특색 있다. 청주 흥덕구 운천동 특유의 정겨운 세월이 묻어나는 하얀 건물 전면에 깨끗한 통유리가 셀레빈의 내부를 투명하게 내어 보인다. 이모아 대표의 손길로 구석구석 단장한 공간이다. 모아 씨는 첫 가게에 자신의 색깔을 담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반쯤은 직접 참여한 인테리어이기에 기본적인 건물의 구조는 그대로 살렸다. 거실 같이 개방된 공간이 있는가 하면 방처럼 개인적인 공간도 있다. 문은 없지만 골목처럼 들어서는 방 구조가 충분히 독립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좁은 공간에 일부러 찾아들어 일행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재미를 찾는 이들이 앞다퉈 향하는 곳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다락이다. 의자 없이 낮은 천장에 푹신한 방석, 낮은 테이블이 아지트 같은 아늑함을 연출한다. 구석에 놓은 작은 소품부터 반려견 뿅이의 얼굴을 직접 그려 만든 대표 캐릭터까지 모아 씨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이 셀레빈커피로스터스를 대변한다. 처음 맛본 필터 커피에서 깊이 배어 나온 초콜릿 향 단맛은 커피를 제대로 시작한 계기였다. 커피는 쓰다는 편견을 깨버린 커피를 마시고 나니 커피를 취미로만 둘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진짜 커피 맛을 선보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개인 커피숍과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 등에서 일하며 각각 배울 점을 자신의 것으로 모았다. 분위기와 서비스, 커피의 맛과 메뉴 등의 지향점을 정한 모아 씨는 자신만의 커피를 하기 위해 원두 선별부터 로스팅까지 차근히 배워나갔다. 식당을 운영하신 부모님을 보고 배운 것은 내 가게에서는 나의 것을 손님들에게 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준비한 가게에서 특별한 메뉴를 제공하기 위해 취미로 즐기던 제빵과 청 담그기 등도 체계화시켰다. 매일 아침 따끈하게 나오는 베이글과 스콘 등의 디저트도 모아 씨의 취향이다. 커피와 곁들이기 좋은 디저트 중 담백한 메뉴다. 계절마다 제철 과일 등으로 만드는 잼도 이 메뉴 구성에 한몫한다. 딸기, 블루베리, 토마토, 체리, 금귤 등 제철 과일을 오랜 시간 저온으로 졸여 만드는 수제 잼이 커피 향과 디저트로 어우러진다. 사과와 계피로 청을 담아 또 다른 시그니처가 된 애플시나몬라떼는 커피 맛이 좋은 가게에서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모아 씨의 정성이다. 셀레빈은 셀레브리티(celebrity)와 콩(bean)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유명한 커피콩을 소개하고 커피 맛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포부를 담았다. 수시로 비즈니스 커핑에 참여하며 좋은 원두와 그에 맞는 로스팅을 고민한다. 원두의 질 뿐 아니라 온도와 습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로스팅이 늘 커피를 궁금하게 만든다. 셀레빈커피로스터스가 추구하는 커피는 맛과 향이 선명한 커피다. 뇌리에 박히는 쓴맛이나 신맛보다는 모아 씨의 로스팅으로 제 나름의 이름을 가진 커피가 깔끔하게 제맛을 전하는 것이 목표다. 원두와 로스팅의 제한없이 셀레빈의 메뉴를 소개해도 흔쾌히 모아 씨를 믿어주는 손님들의 선택이 또 다른 필터를 망설임 없이 채우게 한다. 조만간 음식과 디저트 등 커피와 어울리는 조합으로 커피페어링을 시도해 새로운 커피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로스팅부터 디저트까지 모아 씨가 모아둔 즐거운 커피 세상이 셀레빈커피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선명한 즐거움을 안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여기 흥덕초등학교 앞에 a로 시작하는 집으로 와" 붉은 벽돌로 이뤄진 건물에 푸른 색으로 쓰인 'aerer'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아에레(aerer)는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라 더욱 그렇다. 이곳에 자주 들르는 손님들은 아에레라는 이름을 알지만 누군가에게 약속 장소를 설명할 때는 a로 시작하는 집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김지은 대표도 그런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젤라또 가게를 열면서 선택한 이름을 포기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젤라또가 가져다주는 느낌이 아에레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에레는 '환기시키다' '산책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다. 지은 씨에게 젤라또는 그런 디저트다. 한 스쿱의 젤라또가 담긴 작은 컵 하나로 충분히 분위기가 환기된다. 시원하고 달콤한 디저트 한 입이면 익숙한 곳에서 먹어도 가벼운 산책을 하고 온 듯 산뜻한 즐거움을 준다. 흥덕초등학교 앞의 아에레는 5년 간 연인이었던 최성준, 김지은 씨가 부부의 연을 맺으며 새롭게 시작한 가게다. 서울 목동에서 지은 씨가 운영하던 젤라떼리아를 함께 운영해보기로 결정하며 이곳으로 옮겨왔다. 청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이 이 동네를 선택한 것은 우연과 인연이 겹친 선택이었다. 몇 년 전 개관한 미술관에 놀러왔다가 검색을 통해 찾아간 운천동 골목에서 이유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가게 자리를 결정하기 위해 여러 도시들을 찾아다니다 두 사람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 다시 찾은 곳이 바로 이 자리다. 가게 전면 유리를 넘어 보이는 야트막한 산과 작은 학교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볼거리로 눈길을 머물게 한다. 서울에서 늘 숫자와 싸우며 일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던 성준 씨에게 젤라떼리아를 함께 운영해보자고 권한 것은 지은 씨다. 100여 가지가 넘는 젤라또를 만들고 판매해 보며 아에레에서 성준 씨의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료의 일관된 배합 비율을 조정하는 것부터 매번 다르게 들어오는 과일을 균일하게 후숙시키고 같은 당도를 설정하는 성준 씨의 깐깐한 고집이 아에레의 디저트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재료마다 젤라또나 소르베로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분쇄와 착즙이 주를 이루는데 입 안에 알갱이나 껍질이 남지 않도록 여러번 걸러내는 것이 아에레의 비법이다. 흔히 천연 재료를 눈에 보이게 하기 위해 껍질을 그대로 넣기도 하지만 입 안에 찌꺼기처럼 남는 것이 싫었던 사람들에게는 산뜻한 마무리까지 만족 그 자체다. 천연재료만을 고집하는 젤라떼리아 아에레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도 볼 수 있다. 봄 참외, 가을 사과, 겨울 딸기 등 제철 과일의 달콤함이 소르베에 신선하게 담긴다. 상큼한 과일이 새로운 형태로 입 안에 녹아들며 계절을 알린다. 아이스크림 소비가 가장 많으면서 과일의 풍성함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여름에는 훨씬 다양한 맛의 향연이 준비된다. 초당옥수수를 이용한 달콤한 고소함을 시작으로 새콤달콤한 자두와 은은한 단맛의 수박이 시원한 젤라또와 소르베로 재탄생한다. 첨가물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의 경우 시원하게 먹고도 입 안의 갈증이 남지만 아에레의 젤라또는 깔끔한 맛과 수분을 가득 채우고 흔적도 없이사라진다. 쌀알이 젤리처럼 씹히는 리조는 우유의 고소함을 너무 무겁지 않게 표현해 남녀노소 좋아하는 적당한 단맛의 스테디셀러다. 잘 우려낸 밀키우롱의 은은한 향미도 특별하다. 목이 아파 다른 것은 쉽게 넘기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매번 새로운 맛의 젤라또를 하나씩 포장해 가는 따뜻한 할아버지의 손길이나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쫀득한 초코 맛을 함께 음미하는 귀여운 장면도 이 동네와 가게에 어울리는 수채화 같은 그림이다. 어느 계절에도 좋지만 여름에 가장 시원할 입 안의 환기가 아에레로의 산책을 부추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색색의 유리조각이 모여 하나가 된다. 고래와 행성, 무지개, 캐릭터 등 표현된 형태도 다양하다. 그냥 봐도 예쁜 유리 공예품이 빛을 머금으면 색채를 지닌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 '다즐링'을 찾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는 제품은 다양한 색의 유리를 자르고 붙여 만드는 선캐처다. 초보자도 쉽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재주가 전혀 없다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다즐링에 들어선 이들도 금세 밝은 표정을 되찾는다. 그 자체로 예쁜 색과 무늬를 가진 색유리를 고르는 순간부터 보석을 발견한 듯 눈망울을 반짝인다. 원하는 색의 유리를 골라 두툼한 장갑을 끼고 유리를 자른다. 색의 조합을 생각해 조각의 모양을 구성한 뒤 동테이프를 붙이고 납땜 하는 것까지가 유리 공방 체험이다. 짧은 시간 안에 완성품을 만드는 다른 공방과 달리 유리 공방에서는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을 들인 작업의 결과가 나만의 작품이 된다. 유리공예의 매력에 빠진 수강생들은 열쇠고리, 선캐처, 반지나 귀걸이 등 작은 소품으로 시작했다가도 더욱더 긴 시간을 투자해 캔들 받침을 만들고 조명, 거울, 액자 등으로 작품 세계를 넓혀간다. 자격증을 위한 전문가반이 아니라면 조유나 대표가 손길을 살짝 보태준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작업도 마지막 퍼즐을 끼운 듯 뿌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웹디자인부터 광고디자인, 편집 디자인 등 8년간 디자인 업계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았던 유나 씨가 '눈부심 황홀함 (dazzle)'을 내세운 유리 공방을 시작한 것은 2년 전이다. 전 직장의 시작은 디자인이 좋아서였다. 회의가 느껴진 순간은 나의 디자인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판을 짜고 있다는 자각이 든 때다. 반면 유리공예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지역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배워 온 취미였다. 자신만의 도안을 그리고 유리를 자르고 붙여 만들어가는 재미에 빠졌다.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어느새 자격증까지 모두 취득했다. 온전히 행복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에 새로운 시작을 걸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여러 조각의 유리를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여러 사람이 모든 조각을 같은 색의 조합으로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혹여 남들과 같은 색을 선택했다 해도 같은 작품이 나오지는 않는다. 색유리 자체의 속성이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색을 같은 모양으로 잘라도 어느 부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온다. 모든 작품이 세상에서 하나뿐이다. 집중이 필요한 작업 끝에 완성하는 나만의 유리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놀이다. 섬세하게 유리를 자르고 동테이프를 감고 손끝에 집중해 여러 조각을 열로 이어 붙이는 작업이 일상의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3시간여의 작업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좀 더 복잡한 작품을 시도하는 이들은 만드는 과정까지 치유의 시간으로 활용한다. 아이들을 위한 과정은 따로 있다. 직접 자르지 않고 조각난 유리를 마음대로 붙여 컵 받침 등을 만들 수 있다. 작은 손으로 조각을 집어 연결하는 일도 아이들 나름의 집중력이다. 다즐링에서는 유나씨가 만든 유리 상품도 판매하지만 도안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예도 많다. 특히 표정은 없지만 사진 속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유리 조각으로 붙여 만든 각자의 사진 작품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나의 제품에 두 가지 느낌이 담긴다. 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전혀 다른 색의 즐거움이다. 단조로운 일상 속 우연히 눈길에 닿은 소품 하나가 반짝이는 하루를 선물한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지는 양상추와 치즈를 막을 수 없다. 토르티야(또띠아)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치즈를 손으로 꾹꾹 누르고 양손으로 감싼 뒤 고개를 45도 각도로 기울여 먹으라는 친절한 팁까지 그려 붙였지만 모든 이들의 테이블 위에는 몇 조각의 흔적이 남는다. 손님들은 각자의 자리에 고개를 비틀고 앉아 멋쩍은 웃음으로 눈을 마주치면서도 먹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신선한 채소와 고소하고 짭조름한 치즈, 각자가 선택한 고기류 등 토핑의 향연이 체면 불고한 식사 시간을 가능하게 한다. 타코를 만드는 사람, 청주 운천동의 타코맨은 운천동 골목 끝자락에 작은 멕시코 식당을 가져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미에서 멕시코 국경으로 향하는 길 어디쯤 자리한 휴게소에서 즐기는 타코와 퀘사디아, 브리토 등 간단한 미국식 멕시코 음식을 지향한다. 격식을 차리는 식사보다는 든든하면서도 가벼운 식사다. 윤성호 대표는 일식, 양식, 한식 등 다양한 업계에서 경험을 쌓았다. 순수 과학에 재미를 느껴 생물학을 전공한 그가 요식업을 택한 것은 졸업 무렵 공부를 더 할지 아니면 다른 진로를 찾을지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일단 취미로 좋아하던 요리를 직업으로 만나보니 열정이 더해졌다. 여러 분야의 요리 기법과 메뉴를 다루다 보니 응용하고 조합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고향인 청주로 돌아올 결심을 하며 가장 눈에 들어온 동네가 운천동이다. 도시 같지 않으면서도 접근성이 좋고 마을에 가까운 분위기임에도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았다. 그 안에서 접할 수 없는 음식을 찾던 중 다뤄본 적 있던 멕시코 음식이 떠올랐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의 자긍심에 소스 하나도 대충 만들지 않는다. 손목이 시큰거릴 만큼 수많은 칼집을 넣고 수 시간을 썰어대는 토마토와 양파는 박스로 가득한 양을 채워 두어도 하루 이틀 안에 반복하게 되는 일거리다. 숙성시킬 틈도 없이 신선하고 상큼한 살사 소스가 손님상에 오른다. 기본 제공되는 나초는 콘 토르티야를 바로 튀겨 따뜻한 상태로 상에 오른다. 옥수수 향 그대로 고소하게 튀긴 나초에 사워 소스와 살사 소스를 곁들여 낸다. 바삭한 나초로 소스를 듬뿍 떠 입안에 넣으면 제대로 멕시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셈이다. 타코와 퀘사디아, 브리토 등 주요 메뉴에 모두 들어가는 풀드포크와 브리스킷은 각각 밑간과 숙성 작업을 거쳐 오븐에 굽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각각 6시간, 8시간 동안 구운 뒤 손으로 찢어 부드럽게 결을 느끼는 풀드포크와 얇게 썰어 고기와 양념의 풍미를 제대로 살린 브리스킷은 어떤 메뉴에 무엇과 함께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연출된다. 건강에 관한 관심을 반영해 특별히 추가한 속재료는 두부다. 타코를 구성하는 모든 재료가 비건에 어울리기에 고기 대신 두부를 넣으면 또 다른 기호까지 충족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으로 구성했다. 점차 두부 토핑을 찾는 손님의 비율이 올라가는 것으로 그 판단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부재료는 같은 것을 택해도 아삭한 채소가 신선함을 더하는 타코와 눅진한 치즈가 바삭한 겉면에 더해지는 퀘사디아는 전혀 다른 맛을 전한다. 빼곡한 쌀알이 한 그릇은 될 듯한 브리토는 많은 여성 손님들이 채 먹지 못하고 포장을 부탁하는 푸짐한 메뉴다. 간단한 형태의 식사라도 부족함 없이 배부름을 느끼게 하고 싶은 성호 씨의 넉넉함 때문이다. 운천동의 타코맨은 멕시코 음식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익숙한 맛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머리를 기울여 한 입 가득 욱여넣는 아삭한 즐거움이 타코맨을 다시 찾게 만든다. /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오븐에서 갓 구운 휘낭시에를 꺼내며 세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는가 하면 단면을 잘라 보기도 하고 함께 사용한 재료의 형태를 눈으로 확인한다. 여러 번의 검수가 끝나면 입으로 가져가 가만히 맛을 음미한다. 첫입의 식감과 입안에 남는 마무리까지 꼼꼼히 살핀다. 각자의 의견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연구에 가깝다. '디저트 개발연구소 作'으로 이름 붙인 이곳에는 세 분야의 전문가가 자리를 잡았다. 공방과 카페 등으로 경력을 이어오던 어머니와 딸, 아들이 함께 디저트 개발에 나선 것이다. 쌀 디저트를 담당한 어머니 최윤정 대표를 중심으로 커피를 전공한 딸 전지민 대표, 제과 분야를 책임지는 아들 전지원 대표가 디저트를 개발하고 연구한다. 쌀가루의 촉감 그 자체가 좋아 쌀가루를 만지기 시작한 최 대표는 어느새 10여 년 이상 떡을 만들고 있는 전문가다. 영양사로 일한 경력에 어울리게 한식, 양식, 중식 등 음식 관련 자격도 모두 갖췄다. 영양학을 다루며 전문적인 요리실력까지 맞추고 싶어 취득했다. 여러 강의와 수업 등의 기회를 만나보니 직접 요리를 하는 것 이상으로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로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한 것이 쌀 디저트다. 수분의 함량에 따라, 또는 함께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세상에 없던 쌀 디저트가 만들어지는 것이 한없이 재미있었다. 떡을 쪄서 주변과 나누고 다른 이들의 특별한 날에 손을 보태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최 대표가 만든 쌀 디저트는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특별함이 있다. 떡케이크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앙금플라워 대신 절편을 선택했다. 색색의 절편을 얇게 밀어 다양한 모양 떡을 케이크 위에 올리면 화려함은 간직한 채 달아서 물리는 일 없이 끝까지 쫄깃함을 즐길 수 있는 절편 케이크가 완성된다.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전처리를 거친 견과류도 쌀가루와 어울려 형태를 변화시킨다. 흔히 들어가는 콩이나 대추 등도 가공 방식을 변형해 다른 식감과 맛으로 표현한다. 떡 속에 크림류를 품거나 위에 얹어 이색적인 모양을 갖춘 퓨전 떡도 이미 수년 전부터 판매와 교육을 병행해왔다. 수년 전부터 연을 이어온 단골들이 새로움을 지향하는 속도를 3년만 늦춰달라고 말할 정도로 시대를 앞선 메뉴를 선보였다. 찹쌀가루를 우유로 반죽하고 견과류 등 여러 속 재료를 넣어 오븐에 굽는 구움 찰떡은 수년간 사랑받는 대표 메뉴 중 하나다. 바삭한 겉의 식감에 쫄깃하고 고소한 속 재료가 처음 맛보는 이들도 매료시킨다. 식사 대용으로 손색없는 든든함에 디저트로도 어울리는 달콤함까지 갖췄다. 우연히 커피 입문 교육을 들은 뒤 오히려 커피에 대한 의문이 깊어진 지민 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커피를 공부했다. 이론과 실기를 넘나드는 경험과 대형 로스터리, 커피 유통 등 실무에 종사하는 동문으로 인해 자신만의 커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초 단위로 향을 맡으며 커피를 볶기도 하고 원두의 개성에 맞게 커피를 내리는 방법 등을 터득한 지원 씨는 음료 개발과 카페 컨설팅의 업무를 전담한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머릿속 레시피를 굽기 시작한 지원 씨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제과제빵 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꿈을 키웠다. 제과제빵기능사는 물론 떡제조기능사, 초콜릿마스터, 케이크데코레이션 등 관련 자격을 하나씩 갖추며 디저트의 모든 것을 섭렵하는 중이다. 강의와 수업 등 각자의 스케줄을 소화한 뒤 비는 시간은 늘 연구소에서 디저트 개발에 몰두한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디저트를 생산하고 평가한다. 디저트개발연구소作에서 불가능한 디저트는 없다. 적정 수량 이상을 주문하면 고객들의 의뢰에 따라 여러 조합의 디저트가 만들어진다. 이들 가족이 추구하는 디저트는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잠깐의 즐거움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구 개발을 이어가는 세 전문가의 열띤 토론이 더 많은 즐거움을 세상에 내놓는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쉽게 숨기지 못하는 취미로 손꼽히는 것이 낚시다. 물고기 잡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만큼이나 깊이 빠진 이들이 많은 것이 독특한 점이다. 낚시인들은 손맛을 보기 위해 기꺼이 떠난다. 낚시 채비에 오랜 시간을 들이고 먼 곳으로의 출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처 떠나지 못하는 시간도 낚시를 살핀다. 다른 이들이 낚은 장소나 어종을 공유하거나 이전에 비해 다양해진 채널을 통해 낚시하는 모습을 그저 보기도 한다. 낚시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 바다와 민물처럼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낚으려는 물고기의 종류나, 낚시대와 장비, 잡는 방법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갖기도 한다. 각자의 장비와 기술이 다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자부심은 겨루기 어렵다. 같은 취미를 가지면 마음을 열기 쉽다. 각종 낚시용품으로 가득한 프로피싱에서는 낚시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물건을 찾아오는 단골들이 눈에 띈다. 낚시를 좋아하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낚시인이라면 누구든 환영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이광희 대표의 친절 덕이다. 민물낚시의 세계에 들어서기로 결심한 초심자나, 붕어낚시의 재미에 푹 빠진 전문가를 가릴 것 없이 프로피싱에서 이 대표의 얼굴을 본 이들은 반가움을 표한다. 이 대표는 낚시인 사이에서 유명인이다. 낚시계의 대표 채널이라 할만한 한국낚시채널(FTV)에서 최장수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9년 째 낚시를 선보이는 진행자이기 때문이다. 광희 씨에게 낚시는 자연스레 몸에 익은 어린 시절 유일한 놀 거리였다. 수업을 마치면 동네 형들을 따라 낚시대를 하나 챙겨들고 인근 저수지 등을 찾아 나서는 것이 일이었다. 복싱을 하며 진학한 체육고등학교에서도 낚시라는 공통 취미로 친해진 친구와 시간이 날 때마다 낚시를 했다. 십수 년간 여러 사업을 하면서도 낚시는 꾸준히 지켜온 취미다. 낚시를 하기 위해 흔하지 않은 장소를 찾고 낚시대를 드리운 동안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큰 돈을 벌어도 보고 잃어도 본 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15년 전쯤 낚시용품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좋아하는 붕어낚시용품으로 채웠다. 10평 남짓한 낚시용품점을 운영하며 붕어낚시에 더욱 몰두했다. 가게에 있는 시간 외에는 무조건 낚시터로 향했다. 각종 장비를 섭렵하고 전국 곳곳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방식대로 꾸준히 낚시를 했을 뿐인데 낚시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낚시 전문지에 글을 쓰기도 하고 각종 회사의 새로운 낚시 용품 테스트를 도맡으며 완성도에 기여하기도 했다. 우연한 계기로 첫 진행을 맡았던 프로그램에서는 대물낚시를 목적으로 하는 그의 행보를 가감없이 내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거침없이 물 속으로 들어가 수북한 수초를 작업하고 쉬운 포인트를 버린 채 어려운 곳을 찾아 좌대를 띄우는 등 야전 낚시꾼으로 입지를 굳혔다. 여러 대의 낚시대를 드리우거나 오랜 사투 끝에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전투낚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꾸밈없이 담아낸 과정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다음 프로그램 진행도 맡을 수 있었다. 낚시대를 드리우면 금방 입질이 오는 곳보다는 허탕을 치는 것으로 이름 난 곳에서 끝내 대물 붕어를 잡아 내는 일에 더 큰 재미를 느낀다. 몇 번의 허탕 끝에 마침내 잡아채는 묵직한 손맛은 비할 바 없다. 곳곳에 늘어가는 낚시금지 팻말이 광희 씨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자연이 주는만큼 거두며 공생하려는 낚시인들의 행복한 순간이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낚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광희 씨가 수많은 낚시인들을 대변해 앞으로 나선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다림을 택한 이들이 물 위에 던지는 시선이 얼마나 순수한 열정인지 가장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말고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흔히 제주도 여행에서 한번쯤 보고 들었을 요리지만 먹어보지 못한 상태로 쌓여버린 선입견이 선뜻 경험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아닌 청주에서 쉽게 말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청주와 진천에서 영업중인 마돈가에서다. 마돈가는 제주도 아닌 지역에서 과감하게 말고기를 주메뉴로 넣은 독특한 고깃집이다. 제주흑돼지구이 전문점으로 운영하다 몇 년 전 색다른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 선택한 것이 제주 말고기였다. 마돈가(馬豚家)는 말과 돼지가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바꿔 지은 이름이다. 5년 전 청주 가경동에 문을 열고 제주 돼지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고기맛을 선보이며 단골을 늘렸지만 청주 곳곳에 제주돼지 전문점이 생기면서 차별화가 필요해졌다. 조선시대 왕에게 제주 말고기가 진상됐고 제향에 말고기가 올라갔다는 옛 문헌에 착안했다. 왕들이 즐겼다는 특별한 고기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제주 말고기는 제주 돼지와 연관이 있으면서도 독특한 메뉴로 충분한 수요가 있으리라 판단했다. 여러 유통업체를 비교하며 정착한 것이 지금의 거래처다. 말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해 영양을 위해 찾는 이들도 많다. 한 번의 용감한 시도가 가능하다면 그다음은 고소한 감칠맛과 몸소 느낀 효능이 말고기를 다시 찾게 했다. 처음 먹어보고도 쉽게 그 맛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마돈가 손님들의 재방문으로 증명됐다. 하나의 메뉴에 국한되지 않고 말고기와 제주 돼지고기를 고루 즐길 수 있는 것도 이곳을 여러 번 찾아올 수 있는 이유다. 마돈가 청주터미널점에는 류미 대표의 손맛이 고루 배어있다. 주문과 동시에 고기를 손질하는 것이 고기 맛의 비결이다. 적절한 냉장 숙성을 거친 생고기는 손님들이 주문하면 두툼하게 썰어낸다. 참숯 위에서 골고루 굽는 고기는 육즙을 가득 품고 손님을 만난다. 부드럽고 쫄깃한 돼지고기를 즐기던 이들도 호기심에 말고기를 주문하고 만족스러운 평을 내린다. 말고기는 예약하면 좋다. 모둠 구이의 이름으로 제공되기에 그날의 수급 현황에 따라 다른 부위를 맛보게 된다. 2인분은 2가지, 4인분은 4~5가지 부위의 다른 맛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신선한 육회와 사시미는 구이와는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산뜻한 메뉴다. 낯선 메뉴를 낯설지 않은 맛으로 품는다. 선택하는 이들에게 함께 제공하는 와사비와 멜젓, 갈치속젓 등은 소금을 찍어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의 변화를 얹는다. 찾아온 사람 수대로 주문했다가도 몇 인분이고 추가하게 만드는 조합이다. 여느 곳에서 먹어보기 힘든 메뉴는 또 있다. 해삼창자젓을 이용한 와다비빔밥이다. 고깃집인 마돈가에서 바다의 맛으로 입안을 정돈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이드 메뉴로 사랑받는다. 계절에 따라 달리 내는 반찬들도 모두 류 대표의 손맛이다. 봄 내음이 물씬 나는 미나리 무침이나 여름을 시원하게 반기는 열무김치, 오이김치 등 곁들임 메뉴로도 밥과 고기의 맛이 풍성해진다. 육수를 따로 끓여 만드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도 선택적으로 기본 제공된다. 시원하고 칼칼한 김치찌개나 청국장을 섞어 구수함을 더한 된장찌개가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에게 추가 주문을 이끌어 낸다. 다른 것도 다 좋지만 고기 맛 자체로 가장 자신있다는 당당한 자부심이 말과 돼지가 있는 집에 대한 단골들의 말을 널리 퍼뜨린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박스'는 물건을 넣어두기 위한 네모 상자를 말한다. 물건을 포장하거나 이동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상자를 상품 일부로 인식하게 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다. 이전과 비교하면 개인사업자, 택배, 포장 배달 등으로 소비자를 찾아가는 물건의 품목과 경로가 다양해졌다. 대기업에서 생산 판매하는 소비재의 일괄적인 포장과 달리 각각의 상품과 유통경로에 맞춘 개성 있는 포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같은 물건도 담음새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사는 사람들이 까다롭게 상품을 선택하는 만큼 파는 사람들의 고려 대상도 늘었다. 좀 더 고급스럽게, 또는 산뜻하고 깔끔하게 자신의 판매 대상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몰두한다. 포장재에 무조건 좋은 것은 없다. 그 안에 있는 제품과 어울려야 하는 것은 물론 적정 단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무리한 포장 비용은 다시 소비자에게 청구돼 소비자가를 높이기 때문이다. 처음 자신의 제품에 맞춘 포장재를 설정하는 이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상자의 형태, 디자인, 종이의 질, 구성 등 제품의 특성을 살펴 꼭 맞는 옷을 입히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해서다. 1999년부터 성업 중인 '대명수출포장'이 기업은 물론 개인사업자들에게도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떤 제품을 의뢰해도 자기 일처럼 고민하고 적격의 포장 상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경환 대표에 대한 신뢰다. 대명수출포장의 벽면을 가득 채운 박스는 그간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고객이 만족한 결과다. 처음 공장 문을 열었을 때는 온몸으로 부딪히며 영업 대상을 물색했다. 산업단지에 있는 공장들은 물론 농산물을 생산하는 하우스까지 유 대표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간단한 포장재도 고객 만족을 위한 시제품 생산이 필요했다. 제품에 꼭 맞는 옷을 찾으며 소비자의 반응 변화를 몸소 느낀 사업자들은 지속해서 유 대표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5년 전 홍보마케팅을 시작한 아내 이해경 팀장의 지원은 또 한 번 반등의 기회가 됐다. 연을 맺은 사업자들의 제품을 직접 다시 사 포장재와 제품의 시너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은 SNS는 더 많은 고객의 유입을 일으켰다. 대명수출포장은 종이로 만든 모든 포장재를 취급한다. 유 대표의 종이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제한이 없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음료, 한과, 쌀, 과일은 물론 선물용 고기까지 플라스틱 등의 도움 없이 포장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과정이 번거롭더라도 한 번 더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독특한 형태에 관한 연구도 끊이지 않는다. 물결무늬로 입구를 마감한 과일 상자는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문의가 폭주했을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형태의 포장재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었다. 상품을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별도의 가방 없이도 선물로 사용할 수 있는 포장은 실용성과 편의성의 모두 갖춰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구성이다. 핼러윈 데이에 의뢰받았던 사탕 상자는 길쭉한 육각형으로 드라큘라 관 모양을 연출해 포장부터 특별한 이벤트의 기분을 더했다. 초기부터 환경과 부피 등을 고려해 종이 포장을 염두에 뒀던 한 의료기기 업체는 제품에 꼭 맞춘 조립형 상자를 함께 제작해 꾸준히 생산한다. 이동과 보관 등에 일정 공간이 필요한 사출성형 제품과 달리 종이상자는 조립 전 형태로 납품하면 보관의 부담까지 덜어진다. 한과 포장재는 선물 받은 이들이 다과상이나 윷놀이 판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종이 다리를 세워 특허까지 받았다. 지기 구조의 변형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받은 셈이다. 필리핀과 일본 등으로 수출한 포장재도 대명수출포장의 자랑이다. 독특한 모양으로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포장재는 한국인 관광객의 손에 들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곤 한다. 25년째 한길을 걸어온 대명수출포장은 충북 1등이 목표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로 전국 각지에서 도움을 의뢰하는 고객이 이어진다. 고객만큼이나 깊은 고민으로 마침내 꼭 맞는 포장을 찾아내는 유 대표의 열정이 서로의 꿈에 날개를 단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
[충북일보] 마음의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외향적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인사처럼 묻는 MBTI(성격유형검사) 결과에서 'E'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외향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교적인 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청주 수곡동의 한적한 도로변에 자리잡은 '와플다방'에서는 에너지가 쏟아져 나온다. 듣는 사람이 없어도 흥겨운 웃음 소리가 퍼진다. 와플다방 허현주 대표는 누가 봐도 '파워 E'다. 실제로 만난 적이 없이 SNS를 통해 현주 씨를 본 사람도 느낄 수 있다. 유튜브하는와플다방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콘텐츠는 카메라 앞에서 반죽을 휘젓거나 포장을 하는 등 와플다방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다. 단체 주문이 있을 때는 반드시 카메라를 켠다. 반죽을 만드는 과정은 물론 수 십개의 와플 속 작은 사각형 속에 균일할 크기로 크림치즈를 짜넣는 과정도 사람들과 공유한다. 와플을 먹는 것처럼 보이는 콘텐츠는 먹는 모습보다는 음악에 몸을 맡긴 춤사위가 중심이다. 해피현주라는 별명답게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눈다. 현주 씨는 14년간 직업상담사로 일했다. 20대 초반 일했던 매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 뒤 시작한 일이다. 당시 판매를 담당하지 않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다가서면 소비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자신의 말에 힘이 있음을 느끼고 자격을 취득한 뒤 시작한 것이 직업상담사다. 일에는 만족도가 높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 화장품 판매에도 시선을 돌렸다. 지인에게는 영업하기 싫어 시작한 것이 유튜브다. 늘 분주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휴대폰을 놓을 수 없는 구조였다. 생각한 것 이상의 성과는 있었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일주일간의 휴식을 얻은 뒤 피로가 쌓여있음을 깨달았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운영할 매장을 그렸다. 확신의 디저트 하나만 있으면 카페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아 두루 고민한 뒤 결정한 것이 와플이다. 남녀노소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엄청난 투자 비용이나 특별한 기술 없이도 가능한 창업이라는 생각에서다. 원하는 맛을 구현하는 곳에서 크로플과 와플, 홍콩와플 등을 배운 뒤 자신만의 레시피로 와플다방의 메뉴를 완성했다. 크로플은 보통 크로와상을 와플기기에 눌러 마름모꼴을 하고 있다. 촉촉하고 쫄깃한 대신 두꺼운 부분과 얇은 부분의 식감이 차이난다. 현주 씨가 선택한 크로플은 네모 반듯해서 모든 부분이 바삭한 스타일이다. 시간이 지나도 눅눅해지지 않고 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단체주문이나 포장시 가끔 포크나 나이프를 깜빡해 난감한 경우가 있었다. 고심 끝에 찾은 방법은 한쪽 모서리를 자르고 나무 손잡이를 밀어넣는 작대기크로플이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손이 가지만 회의나 소풍, 간식으로 크로플을 만난 이들은 별다른 도구 없이도 손에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계란빵과 땅콩빵 사이 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홍콩와플은 나이에 관계없이 즐기는 달콤함이다. 크로플과 홍콩와플 모두 기본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애플시나몬, 흑임자, 티라미수, 오레오, 팥들었슈 등 가운데에 넣는 부재료에 따라 다른 맛의 디저트가 완성돼 다양한 조합을 맛볼 수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않는 현주 씨는 최근 새로운 쌀와플도 개발했다. 우유, 버터, 계란 없이 쌀가루로 구운 비건와플이다. 청주의 특산물로 뭔가 해보고 싶은 생각에 청원생명쌀로 시선을 돌려 개발한 상품인데 단가와 공정, 유통 등을 고려해 타지역 업체와 쌀가루 와플 반죽을 상품화 하게 됐다.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에 누룽지를 먹는 듯한 구수함이 느껴지는 건강한 와플이다. 개발한 와플 반죽은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와플다방에만 있는 모든 메뉴는 개별 포장된 간식으로 어느 단체에서나 가볍게 찾는다. 카메라를 켜고 분주히 사각형을 채우는 현주 씨의 손길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하다. /김희란 기자 ngel_r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