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3년6개월이 지난 올해 4월 초. LS네트웍스는 흥업백화점의 재매각을 기습 발표했다. 지속적인 경영 부진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LS네트웍스 측은 새 인수자인 ㈜건동 측과 백화점 직원의 고용승계 및 입점 업체 영업보장을 약속하지 않았다. 당시 건동 관계자도 "직원들의 거취 문제는 (백화점을 매각한)LS네트웍스에서 해결할 일"이라며 "향후 재고용 여부에 대해선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흥업백화점은 6월30일 폐업됐고, 정 직원 15명을 비롯한 130여명은 모두 해고됐다. 정 직원들에게는 LS네트웍스 차원에서 소정의 위로금이 지급됐으나 입점 업체 판매 직원들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백화점을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LS네트웍스의 무책임한 매각 발표와 침묵 속에 거리로 나앉게 된 흥업백화점 직원들. 추석을 앞둔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다행이 일부는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여성의류매장 판매사원 20여명은 이달 초부터 성안길 쥬네쓰 쇼핑몰 1층에 자신들이 근무했던 브랜드 매장을 다시 열었다. 협동조합형 매장을 만든 이들은 모두 10년~20년가량 흥업백화점에서 근무했던 베테랑들로 오랜 경험을 살려 스스로의 자구책을 찾았다.
흥업백화점 정문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원들도 쥬네쓰 행사 때마다 파트타임 형태로 고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역시 일부 직원들에 한정되는 얘기. 나머지 직원들은 현대백화점 충청점, 롯데아울렛 청주점, 에버세이브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나마도 젊은 직원들에 한해서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은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공장, 병원 등 그동안의 일과 전혀 관계없는 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근무 시간과 업무 강도 등은 전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났다.
전 흥업백화점 직원이었던 A씨는 "옷 파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중장년 여성을 누가 써주겠느냐"며 "그나마 이 정도 일이라도 구한 게 다행"이라고 했다.
또 다른 직원 B씨도 "다들 뿔뿔이 흩어져 소식을 잘 모른다"며 "몇명은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집에서 노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청주지법으로 고용승계와 영업활동 보장을 건네받은 LS네트웍스가 지역사회와의 신의를 저버린 채 기습매각을 발표한 지 다섯 달. 평생직장이라 여겼던 곳을 떠나게 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직도 몇몇 중장년 여성들의 손에는 때 묻은 이력서가 들린 채.
/ 임장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