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정종진 교수의 자기 성찰에 관한 담론

“인문학은 물질과 정신의 균형추”

2008.06.22 19:59:01

20여 권의 저서를 내고도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아 눈이 짓무르도록 책을 읽는 광기의 학자. 월급보다 책값이 많이 나가던, 무책임한 가장. 지혜의 숲이라 하는 책 속에 파묻혀 그 책이 주는 기쁨과 고통을 즐기는 학자. 세상에 쏟아져 나온 무수한 모든 책이 궁금한 학자. 이제 지천명을 넘어 인생의 중반에 다다른 그는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보고 싶은 책이 산적해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채집해서 또 다른 책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책과 씨름할 수 있는 힘의 뒤 배경에는 흙이 있단다. 어린시절부터 유난히 운동을 좋아하던 그가 몸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몸속에 쌓이는 나쁜 기운을 털어내는 일로 운동을 즐겨했다면 이제는 흙을 만지는 농사일이란다.

가지와 고추를 심고 온갖 나무를 가꾸는 가운데 소요되는 노동은 단순한 노동 이전에 그에게는 휴식이고 자기 성찰의 시간인 것이다. 이것이 그가 최근 힘의 뒤 배경으로 삼는 일이다. 삶을 결코 추상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인문학자로서 구체적인 삶을 실현하고 있는 정종진교수(54.청주대 국어국문학과). 그의 삶을, 생각들을 엿보려한다.

20여 권의 저서를 내고도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아 눈이 짓무르도록 책을 읽는 광기의 학자. 월급보다 책값이 많이 나가던, 무책임한 가장. 지혜의 숲이라 하는 책 속에 파묻혀 그 이 주는 기쁨과 고통을 즐기는 학자. 세상에 쏟아져 나온 무수한 모든 책이 궁금한 학자.

인문학은 시대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요즘 시대가 바로 그런 때고 인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역설한다. 인문학의 위기니,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 들은 진정한 인문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사회에서 잘못 바라본 시각이라는 것.

“1930년대 대공황이 닥쳐왔을 때 위대한 인문학자나 지성인들이 많이 나왔다. 현 사회가 물질을 숭상하는 것은 세태풍조일 뿐이다. 이것이 막다른 길에 치달으면 언젠가는 다시 정신을 중요시 하는 세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고 흐름이며 이런 풍조는 또 변하기 마련이다.”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고 대중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 다고 하지만 그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인문학의 정신은 분명히 살아있고 그럴수록 할일이 더 많고 그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물질과 정신,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일 보다는 성찰에 의해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그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바로 인문학자들이 해야 한다. 인문학 연구나 발전을 위해 몇 천억을 투자한다고 인문학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욕구를 억제하며 돈 없이 살수 있는 게 진정한 인문학적 사고방식이다. 그 진정성은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하게 돼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문학적인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보다는 한순간의 재미에 탐닉해 독서를 한다. 굵은 뼈대가 있는 위대한 작품은 여전히 출판되지만 감수성을 자극하는 얄팍한 작품을 독자들은 선호한다. 이런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잘못가고 있는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자들이 몫이라는 것.

그래서 일까. 그는 대중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질책하기 이전에 인문학자로서 제 역할을 했는지 반성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의식 또한 잘 먹고 잘사는 것에 골몰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해 그 역할이나 대의명분이 약화되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할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학자이자 교육자인 그는 이 가운데 교육의 역할을 강조한다. 모든 교육의 핵심을 사회적 경쟁력을 키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고 그 중심에 공부가 있다.

공부가 전부인 교육은 개인의 이익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몰두하게 돼 있고 이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좀스러운 인간을 양성하는 기관일 뿐이라는 게 그의 걱정이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외국어를 배웠다. 현대는 개인의 출세를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교육에 관한 대의명분이 변하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다. 공부로 얻어진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 예를 들면 예의 같은 항목이다, 그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굳이 교육을 부르짖지 않아도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 대중들 가까이에 책이 있고 곳곳에서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정보를 제공하는 강의가 넘쳐난다면 분명 문화도 달라질 것이다.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문화보다는 오랜 세월 면면히 흐르는 가운데,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만들어가는 문화가 더 소중하다.

이런 근본적인 생각의 출발은 20여 년 전 국문학자로 입문하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된 우리말의 속담에 대한 애정으로 로 귀결된다. 그는 왜 속담을 그토록 흠모하는 세월을 살았을까.

농사짓는 일을 자기 자신을 가다듬는 수양의 시간으로 선택한 정종진교수. 흙 속에서 생명체를 가꿀 수 있다는 새로운 자긍심에 감사하며 구체적인 인문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우리말에서 속담은 구비문학이나 고전문학에서만 존재했던 죽은 메타포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토지’와 같은 우수한 소설작품에서 속담의 사용이 얼마나 말맛을 돋우는지, 많은 책을 읽다보니 대가들은 글속에서 속담을 잘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야말로 삶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살아있는 언어이며 지혜가 담긴 우리말의 보고다. 현대의 일상생활 문화가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보다는 영상이나 활자로 전해진다. 그러다 보니 속담의 사용이 점점 줄 수밖에 없고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시작한 작업이다.”


인문학의 위기시대에 진정한 인문학자의 출현이 있었듯이 속담이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시대야 말로 다시 속담을 끌어낼 필요가 있는 주효한 시절이다. 발품을 팔아가며 나이든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현장 조사했다.

남북한에서 출판된 문학작품과 중국 연변 조선족들의 작품을 망라해 그 안에서 이 잡듯 속담을 찾아 채집하기를 20여년. 이곳에서 찾아낸 속담만 무려 5만개. 4년의 편집과정을 거쳐 ‘한국의 속담 대사전’(2006)이라는 대장정의 정상에 오르고 거기서 수반된 관련 도서 ‘한국의 성 속담 사전’(2006, 범우사), ‘생로병사의 지혜, 속담으로 꿰뚫는다’(2007, 범우사)로 이어지기 까지.

길고 긴 여정이었음에도 멈추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는 국가의 문화 역량은 어휘수로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풍부한 어휘가 살아 있느냐가 문화의 척도라는 것.

그래서 그는 아직도 속담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5만개의 속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소설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속담으로만 한국문학사를 쓰고 있다. 기존의 딱딱한 문학사의 이미지를 바꿔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사를 집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문학과 비교해 세계문학을 선별해 읽을 수 있는 안내서발간도 준비 중이다. 이러한 각박한 시대일수록 어른들이 동시와 동요를 읽어야 할 것 같아 그것의 모음집도 준비 중이다.

좋은 책을 내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읽을 것이다. 이미 자연이나 정신을 고양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중들이 많아졌다. 이는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는 말이다.

이런 모든 과정을 농부가 김을 매는 일과 같다고 본다. 치열하게 감내 해야 할 자기 삶이다. 어느 날 책으로 쌓여 굴속 같은 서재에서 불빛과 씨름하고 있는데, 이렇게 죽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육체가 소진되고 탈진되고 정신이 고갈되어 곤죽이 되어 있을 때 실낱같은 희망을 본 것이다. 그것이 농사일이다. 어쩌다 자기 땅이 돼버린 괴산군 청천면 후평리의 밭. 뙤약볕 아래서 풀을 뽑고 보리수나무를 돌보며 열매를 수확하는 일이, 생명체를 키울 수 있다는 신선한 자긍심이 되었다.

강단에서 강의할 때 당연히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책을 내는 일이나 농사일이나, 이는 자기 자신을 다듬는 일이고 삶을 추상적으로 살지 않으려는 인문학자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김정애 (소설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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