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출신 100주년 작가 재조명 세미나

속에 묻혀있던 문인들 세상 밖으로 끌어내

2008.05.18 20:33:06

지난 16일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가 주관하고 서울시가 후원한 ‘탄생 100주년 작가 기념 세미나’가 청주 예술의 전당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충북의 근현대문학하면 정지용의 ‘향수’나 홍명희의 ‘임꺽정’을 떠올린다. 문학에 조금 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조명희의 ‘낙동강’이나 이무영의 ‘흙의 노예’, 권태응의 ‘감자꽃’, 김기진, 오장환, 조벽암, 이흡 정도를 교과서를 통해 접했으리라. 그 맥을 잇는 작가들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신경림, 도종환, 송찬호, 김사인 등이 있고, 있는 듯 없는 듯 충북문단의 거대한 줄기를 이루고 있는 홍구범, 권구현, 신동문, 박계륜, 권운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인들이 많다. 충북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고 자랑거리인 셈이다.

그럼에도 작가들 개개인의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어떤 작가는 월북해 이데올로기에 묻혀 가려졌고, 어떤 작가는 빨치산활동하다 현장에서 사살돼 자료가 없고, 어떤 작가는 작품성이 낮다고 연구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떤 작가는 친일작가라, 어떤 작가는 후대 평론가들의 무관심 때문에 외면당했다. 그 이유는 분분하지만 대부분 어느 일정한 문인들에 대한 연구만으로 편중돼 왔던 게 한국 문단의 경향이었고 충북문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토양 속에서 최근 몇 년간 충북의 젊은 비평가들이나 문인들이 나서서 잊혀졌던 작가들의 실체를 하나씩 드러내 일반인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일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작가들의 이름을 단 많은 문학제의 탄생(지용제, 포석제, 홍명희 문학제, 권태응문학제, 오장환 문학제, 무영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한 젊은 평론가는 혼자 묵묵히 잊혀진 시인의 숨겨진 자료들을 찾아 ‘권구현 전집’을 묶어 내놓았고 모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 역시 지역에서 잊혀진 소설가를 발굴해 먼지속여 묻혀있던 그의 흔적을 찾아 ‘창고근처 사람들’(홍구범)이라는 장정을 거쳐 세상의 빛을 쪼이도록 해주었다.

이즈음에 한 기업의 지원으로 매년 이뤄지는 ‘100주년 작가 기념 세미나’에 올해 충북의 문인 세 사람, 이무영, 조벽암, 이흡이 선정돼 지난 16일 청주예술의 전당 대회의실에서 세미나가 진행됐다.

음성 출신의 이무영은 농민 문학의 선구자라는 칭호를 달고 이미 한국문단에 한 족적을 차지하고 있다. 1926년 ‘달순의 출가’로 등단해 1960년 타계하기까지 장. 단편 소설 180여 편을 남겼으며 희곡, 평론,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문학평론가 임기현은 이번 세미나에서 ‘이무영 문학의 성과와 성찰’을 짚어보면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 했다. 이무영의 작품에 대해 비역사적인 텍스트 자체만을 문제 삼느냐, 역사적이고 발생론적인 사회조건과 작품과의 친족관계를 전제로 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 한 뒤 결국 그가 일군 것이 개성적인 농민문학이었느냐 아니면 생산문학(국책문학, 친일문학)에 동조한 것이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무영 문학의 원점이 되고 있는 가토 다케오라는 인물의 영향에 대해 피력했으며 친일작가라는 논란에 대해 “오로지 단죄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서는 진정의 의미의 극복도 불가능하다”며 “중요한 것은 친일의 내적 논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무영은 ‘체제 순응형’의 문학을 했으며 시기별로 달라지는 그의 문학관은 반도시적이고 반문명적이면서 인정이나 관습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에 집착했던 인물로 평가 했다. 그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사람 좋은 그의 천성’에 말미암은 것으로 설명하면서 일반의 문학연구가 진정으로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무영



음성 출신 농민 문학의 선구자
등단: 1926년‘달순의 출가’
타계: 1960년
소설 180여 편을 남겼으며 희곡, 평론,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월북해 북한에서의 활동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매몰되었던 조벽암(1908~1985)은 ‘조벽암 시선집’에 250여 편의 시가 수록돼 있어 그 작품성의 궤적이 흥미를 끄는 인물이다. 잘 알려진 조명희의 사촌동생으로, 조명희의 문학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사실 또한 연구자들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남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은 조벽암의 작품에 대해 연구해온 몇 안 되는 평론가다. 그는 이번 세미나에서 조벽암의 문학에 대해 ‘관념취향의 기질과 미숙성이 빚어낸 혼돈’이라고 귀결짓는다. 그 이유로 시 ‘수향’ 등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극적 세계관의 모호한 투영과 습작기 특유의 맹목성, 몽롱성, 섬약성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 ‘밤’에서는 이유와 배경이 불분명한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있으며 시 ‘경’에서는 해체되지 않은 관념의 원석을 남용하고 있고, 난삽한 한자와 일본식 조어법이 범람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지식인의 자기 우월적인 언어조어법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조벽암문학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자기 극복과 자기 갱신을 위한 노력에 철저했던 점, 구체적 역사발견과 민족사의 본체성 확인에 대한 갈망을 나타냈던 점, 절제의 미학에 바탕을 둔 변화를 모색하려 했던 점, 서사적 구조의 활용을 통한 시적 성과를 획득하려고 시도 했던 점, 해방기 시단의 혼란에 대한 정면 대응의 시도를 했다는 점’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긍정과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연구역시 분단시대 매몰문학 연구의 본격화를 위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다.

조벽암



진천출신
타계: 1985
월북해 북한에서의 활동 ‘조벽암 시선집’에 250여 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청주대 국문학과 정종진 교수(문학평론가)는 ‘이흡의 시 연구’에서 이흡은 한국근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소홀했던 작가 중 한사람이었다고 전제하면서 ‘한국근현대사에서 중도인물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흡이 문학사에서 소홀했던 이유는 해방 후 ‘조선 문학가 동맹’의 일원으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사살됐기 때문에 그의 생애가 전면 가려져 있어 자료가 미비하고 작품활동 기간에 비해 작품수가 적다는 것 등이다. 이로 인해 이흡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고 그의 연보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을 새로이 찾아 연보를 수정한 것이 또 다른 결실이다. 현재까지 그의 작품은 시 43편과 산문 13편이 되었다.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한 이흡의 문학에 대해 정교수는 몇 가지로 집약하고 있다. 자료가 흡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을의 울분’ ‘오늘과 래일’ 등 몇몇 작품은 항일 시로 제법 의미심장하고 격이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해방 후의 ‘뒤 따르리라’와 ‘별을 안고’ 등은 민족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의 문제에 고뇌하는 시적자아가 서정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정교수는 또한 "그가 택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정의로운 쪽을 택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며 “이흡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자료가 보완되면 이미 평가되었던 작품들도 재평가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더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100년을 넘나드는 한 조촐한 세미나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한국 평단의 거장 김윤식의 ‘이무영,조벽암,이흡과 식민지시대’라는 기조강연의 내용처럼 가장 험난한 시대에 태어나 선구자로 살다간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일들은 후학들에게 지워진 짐이고 몫이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제기된 문제들은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했던 문인들에 대한 활발한 연구에 단초가 될 것이며 향후 좀더 심도 있게 조명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정애(소설가·프리랜서)

이흡

충주출신
해방후‘조선문학가동맹’일원 빨치산 활동하다 사살 자료미흡.
시 43편과 산문 13편이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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