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량 현대미술의 오브제, 그 무한한 세계

충북미술, 시장 봄이 오려나?

2008.05.28 23:08:08

충북 미술시장에 따뜻한 봄이 오려나?
청주시 사창동 무실갤러리 전시장. 그림이 걸려 있는 벽에 오래간만에, 고가의 현대 미술품아래 몇 개의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본다. 서울이나 부산의 아트페어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최근 충북에서는 미술거래가 뚝 끊긴지 오래되었고 그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미술시장의 관계자들은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는 입소문 아래서는 그런 노심초사가 한순간에 불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전시가 있었다.
작가 오이량(47.광주시 서구 풍암동)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청주시 사창동 무심갤러리 초대전으로 청주를 찾은 오이량씨. 파장과 울림이라는 형식을 통해, 영구적인 실리콘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영원불멸의 자연의 심오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단다.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다. 그의 이력이나 경력을 보더라도 미술에서 어떤 장르의 작가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다. 그는 조선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다마미술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판화를 공부 했다. 그의 주요 개인전 경력이 일본 동경이나 오사카에서 출발한 것과 맞물리는 얘기다. 7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던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기존에 작업하던 판화의 세계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오브제를 찾는데 고심했다. 그 오브제를 활용한 작업은 설치라는 장르의 이름이 걸 맞는다. 이렇듯 한 작가의 작업 변천 과정만 보더라도 이제 현대미술에서 장르를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다면 오이량이 왜 주목을 받고 있는가. 오이량의 작품을 보면 현대미술에서 오브제로 사용될 수 있는 재료의 세계는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음료수를 마시고 버린 깡통 쓰레기나, 텔레비전과 사람들이 사용하던 골동품들이 어우러져 설치미술이 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음료수 빨대, 솜, 천, 타이어, 유리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미술의 오브제로 사용되고 있다. 더욱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물질을 개발해 사용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창작의 그 끝은 어디일까. 그런 의문을 갖게 하는 작품 중의 하나가 오이량의 이번 작업이다.

건축자재‘실리콘’을 작업 주재료로 한 오이량씨의 작품들.

실리콘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건축용 재료나 여성들의 가슴 성형재료 등으로 인식돼 있다. 이 실리콘이 미술작품에 오브제로 사용된다면, 또 어떤 형태와 어떤 느낌으로 표현될 수 있을 런지. 오이량이 최근 몇 년간 작업의 주재료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실리콘이다.

그가 실리콘을 작품 오브제로 사용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 작업하던 판화의 분위기와 잘 맞는 재료를 찾던 중 실리콘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보통사람들처럼 그 역시 실리콘 하면 인체에 해로운 건축자재로만 생각했고 그 본질을 알지 못했다. 그가 새롭게 알게 된 실리콘의 본질은 쌀이나 옥수수, 돌 등 자연재료에서 채취되는 것으로 아주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썩지 않는 영구적인 물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건축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경화제 같은 화학물질을 섞기 때문에 본래의 실리콘 물질이 변형된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리콘, 그 본질 자체를 작품 오브제로 활용할 경우 환경문제와 같은 모든 우려는 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건축자재‘실리콘’을 작업 주재료로 한 오이량씨의 작품들.

그 후 그는 실리콘 생산업체인 KCC 개발 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KCC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작업에 필요한 모든 실리콘 전량을 공급받게 되었다. 연구소와 합동으로 인체에 해롭지 않은, 가장 실리콘의 본질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 작품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형태와 크기, 색채, 성질 등을 주문하면 연구소 측은 완전한 제품으로 생산해 그에게 공급해주는 형식이다. 그가 주문하는 실리콘은 특허청에 특허가 나 있을 만큼 그만의 실험적인 과정을 거쳐 생산하고 있다. 생산업체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반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자연친화적인 실리콘을 공급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미술과 기업이 만나 극대화를 이루는 모범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까지 그간 그의 노력은 둘째문제로 치고 오이량은 운이 좋은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실리콘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다. 그동안 그 존재가치를 잘 몰라 부정적이었지만 실리콘을 알고 나니 내가 작품에 담고 싶은 주제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오브제라고 생각되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작 의뢰한 실리콘은 빨강, 파랑, 연 노랑, 연보라, 회색 등 파스텔 톤의 다양한 색채가 들어 있다. 폭은 1cm에서 1.5cm 이며 두께는 1mm 정도에 중간 중간 입체감이 있는 요철무늬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 것을 다양한 크기로 잘라 캔버스에 반복해 붙여 파장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붙이는 작업도 실리콘을 이용한다. 그가 이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것은 파장이나 울림이다. 한 꼭지점을 중심으로 해서 연속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출발해 넓게 퍼져나가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건축자재‘실리콘’을 작업 주재료로 한 오이량씨의 작품들.

언뜻 보면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양을 이루고 있다.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는 것보다는 3차원적이면서 추상적인 형태를 선호하는 그의 경향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한 부분을 옮겨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바다에서 생기는 파도의 일부분이기도 하고, 강 물결의 일부분이거나, 나무나 풀잎의 문양이나 결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산과 들에서 생기는 곡선의 한 부분이거나, 사람 손바닥의 지문이기고 하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작업의 모든 생각은 자연과 생명에서 출발한다. 영원한 생명성을 가진 자연을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파장이 시작된 정점은 모든 생명력의 근원이며 거기서 확장되고 파생된 것이 우리와 우리의 주변이다. 이러한 과정을 울림이나 파장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 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유학 시절 블랙이라는 색채에 탐닉했던 그가 자연의 다양한 색채인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채에 몰두하게 된 것은 작업의 중요 전환점을 시사하면서도 파장과 울림을 통한 영원불멸의 생명력, 그리고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라는 본질은 아직 유효하다.

건축자재‘실리콘’을 작업 주재료로 한 오이량씨의 작품들.

오는 6월 제주도 해비치 호텔에서는 전 세계 3백여 개국에서 참여한 실리콘 연구자들의 학회가 개최된다. 여기서 학회 참가자들을 위한 ‘오이량 특별전’이 전시된다. 개인전만 27회째이며 아갈트국제판화 페스티벌 대상, 베오그라드 국제판화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등 세계적인 공모전에서 작품이 인정을 받고 있는 그다. 이미 서울 시립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과 일본, 노르웨이, 폴란드 등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제주도 학회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작업세계가 세계를 향해 나래를 펼 것으로 기대된다.

한때 타 지역에 비해 앞서가던 충북 미술시장은, 그 한 때 라는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에 잠재된 가능성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더 인정을 받고 작품이 판매되고 있는 오이량의 작품이 청주에 걸리는 순간 그 잠재된 불씨가 되살아난 것이다. 물론 그간에 충북에서 미술거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좀더 저렴하게 사기 위해 화랑보다는 작가와 직접 거래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루트로 거래는 있었다. 하지만 화랑 전시를 통해 전시기간동안 여러 점의 고가 미술품이 판매되는 분위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충북미술시장이 결코 어둡지 만은 않다는 것이다.


/김정애 (소설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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