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규 국립 청주박물관 학예연구 실장

“숨겨진 과거 발굴땐 희열 느껴”

2008.09.07 19:58:42

“언젠가는 개발되어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설 땅입니다. 변하기 전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이들이 발굴현장에 있는 고고학자들인 것 같습니다. 흙을 다룰 때는 간난아이 다루듯 조심스럽습니다. 몇날며칠을 파도 아무것도 안 나올 때가 많지만 어쩌다 손끝에 무엇이 만져지면, 그 희열이란 말할 수 없습니다. 땅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것이 세상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는 순간, 그것을 처음으로 만지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색다른 느낌입니다. 발굴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하고 고고학의 매력이지요.”

한봉규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49)이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고분에 빠져든 이유다. 대학시절 단양적성비를 탁본해 보았을 때의 경이로운 느낌이나 발굴현장에서 귀중한 유물을 발견했을 때의 설레임은 자연스럽게 박물관 학예사로 발을 들여놓도록 이끌었다. 학창시절 익산 미륵사지나 경주 황룡사지 발굴조사를 비롯, 그는 경주 용강동고분, 천안 청당동고분, 창원 다호리고분, 홍천 물걸리 사지 발굴 등에 참여한바 있다. 특히 경주 용강동고분에서는 처음으로 토용(흙으로 만든 인형)과 청동 12지 신상을 발굴해 우리 문화재 유물발굴사상 획기적인 성과가 되어 잊지 못할 지역으로 남아 있다.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들은 현장 발굴조사에서 학술연구, 전시기획, 디스플레이까지 만능 엔터테인먼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청주에 부임해 청주의 지역,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중인 한봉규 학예연구실장. 그에게 학예연구사들의 ‘일’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현장조사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기에 좋은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이나 바다 주변과 같이 물과 먹을 것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좋은 유물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92년 처음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에 근무하면서부터는 전시기획과 병행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발굴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 일반인들에게 전시, 공개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한정되게 알고 있던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을까가 새로운 고민이었다.

당시 박물관 학예사라는 것은 발굴조사는 물론 자료정리, 전시기획, 전시 디스플레이 까지. 만능엔터테인먼트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용산새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 기획단에서 맡은 전시담당을 비롯, 스키타이황금전, 알타이문명전, 가야문화전, 한국청동기문화전, 한국의 선 · 원사 토기전, 한국고대의 토기전 등을 기획했다. 국립부여박물관 이전 개관 전을 비롯,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전시, 국립춘천박물관 개관전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사설 문화재연구소가 증가했고 발굴현장조사가 그쪽으로 이관돼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이 전시기획과 시민들을 위한 체험형 문화교육프로그램으로 강화되었다. 종종 학술활동을 위한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만 일반사설 문화재연구소와 연계한 지역중심의 연구 활동이 주된 업무가 되고 있다. 그래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종종 발굴 현장에 나가본다. 흙을 만지는 느낌이며 땅을 바라보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박물관의 전시기획은 주로 유물과 관련된 특별기획전이지만 전통공예나 현대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또한 묵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역민들의 정서와 함께 가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다양화나 대중화 덕분에 일반관객들의 눈높이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시를 본다는 입장보다는 느끼고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이 오늘날의 관객이다. 박물관에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오래된 유물을 진열하듯이 전시하는 일만으로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옛것과 오늘의 것을 접목시키는 일이나, 관객들이 옛 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가가 관건이다. 다행인 것은 같은 작품을 전시하더라도 박물관 학예사들이 전시 디스플레이 하면 좀 다르다. 전시될 작품을 유물을 바라보듯 섬세하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같은 컵이라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들이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한다. 전시 기획을 결코 단순하게 바라 볼일이 아닌 것이다.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들은 현장 발굴조사에서 학술연구, 전시기획, 디스플레이까지 만능 엔터테인먼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청주에 부임해 청주의 지역,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중인 한봉규 학예연구실장. 그에게 학예연구사들의 ‘일’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선 주제를 정한다. 정해진 주제에 맞는 유물의 정도를 파악한다. 그다음은 필요한 유물들이 어디에 있는지 소재를 파악한다. 다음은 유물이 소재하고 있는 곳에 대한 실사를 실시한다. 원하는 유물인지, 전시가 타당하고 가능한지 등을 확인하고 판단한다. 소장자와 의견을 조율해 협조공문을 발송한다. 파손과 분실을 책임지기 위한 보험을 계약하고 유물을 인수 받는다. 한 가지 기획전을 열기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데 대략 1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유물의 파손과 분실에 대한 우려다. 보험을 들어놓기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유물을 다루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학예사들이 전시 유물이나 작품을 대하는 게 발굴현장에서 흙을 파는 일보다도 더 조심스럽고 섬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국립청주박물관의 경우 최근 기획전과 문화행사가 다양해져 시민들의 좋은 복합 문화공간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관객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른 박물관과 다르게 일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가장 중요한 관객인데 그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이 참여해 좋은 체험학습장이 되기를 바란다.

그는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 단체관람도 좋지만, 좀더 자주 개별적인 관람과 어린이 박물관 학교 운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체험학습을 통해 보고 느끼기를 원한다. 적극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경우 이들이 미래에 박물관 학예사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박물관 차원에서 교육청 등과 연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의 박물관 참여는 곧 수업의 연장인 셈이다.

이것이 좀더 보편화 된다면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유물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토기조차도 예사로 보지 않는 눈이 생긴다고 믿는다. 훗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른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 박물관이 전국에 11개다. 지역을 순회하며 보직을 맡지만 이 또한 큰 매력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느끼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직업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행운이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지역적 특징이나 문화를 고루 체험 하므로써 그 지역에 맞는 문화적 특징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안목도 생긴다. 청주라면 중원문화가 상징하는 것처럼 여러 지역의 문화가 혼합되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 것처럼 보인다.

이제 박물관의 전시 기능도 지역적 특징을 부각해 그 지역을 상징하고 특화 할 수 있는 유물 중심으로 취합하는 추세다. 청주의 경우 금속공예가 압권이다. 청주 사내사 절터에서 발굴된 금속공예품과 직지 금속활자와 연계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박물관 전시실 리노베이션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기존의 공간을 최대한 현대적이며 효율적으로 재구성해 금속공예를 특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어린이 박물관 역시 정보화 시대에 맞게 앞서가는 미래의 어린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새롭게 꾸민다.

박물관의 학예연구사들의 행보는 이렇게 다양하고 분주하다. 그들이 있기에 박물관을 찾는 관객들의 감성이 자극을 받아 나날이 새로워 질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문화가 발전하는 모양이다. 한봉규실장은 서울 출신으로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고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정애(프리랜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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