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에 둥지 튼 화가 이난희

“그림은 습관…보여지므로 그릴 뿐”

2008.07.29 10:13:46

나팔모양의 꽃이 낮에는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면 오그라드는 메꽃. 어느 길을 산책하다 이놈이 시선을 사로잡으면 발걸음을 멈추고 한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스케치북을 들고 다시 오게 된다. 이번에는 꽃의 색감이나 주변의 환경, 날씨와 빛, 그날의 기분 등을 고루 살핀다.

그리고 집에서 캔버스를 펼쳐놓고 메꽃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다시 그놈의 실체가 궁금해지거나 화면을 구성하기위한 뭔가가 미진하다면 다시 그놈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가고 또 가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그림 한 장이 스스로 흡족할 때가지 그것을 보고 즐기며 보고 또 보는 것이다. 서양화가 이난희(56·청원군 문의면 남계리)가 자연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여정이다.

시골의 풍경이라는 것은 문만 열면 보이는 것이 자연이다. 울타리 안, 뜰에 핀 꽃을 즐겨 그린다. 이는 세상과의 소통을 스스로 단절시키려는 의미이며 그 과정을 통해 고요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함이다. 자연을 관조하고 음미하며 사색적인 경지로 이끌어내는 동양적인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셈이다.

자연의 풍경이 그림의 화두였던 그는 현장의 사생을 중요시 하는 작가다. 청년시절에는 청주 가로수 길 주변의 풍경이나 명암동 약수터, 괴산 화양동, 속리산 등을 즐겨 그렸고 결혼해 서울에 살 때는 서울 주변의 양평이나 설악산 등이 배경이 되었다.

청원군 남계리 작업장에서 양귀비를 그리고 있는 서양화가 이난희. 그는 그림의 대상이 결정되면 그 대상이 완성될 때까지 보고 또 보며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언젠가, 6년쯤 전이다. 늘 단짝이 되어 함께 스케치북을 들고 사생을 다니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멀리 현장스케치를 위한 외출이 버거워졌다. 친구 없이도 현장에서 스케치할 수 있는, 그림에 대한 치열성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지만 삶이 점점 위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3년 전 고향 청주로 내려오게 되었고 작얼실인 남계리 뜰 안으고 자신의 공간을 한정시켜 놓았다. 멀리 현장스케치 대신에 집 안의 뜰을 택했고, 이것은 보이는 모든 자연이 작품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울타리 밖의 세상과 단절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울 안에서의 그림 소재에 한계를 느낄 때 들꽃을 심었고, 그도 부족하면 정물을 그리기도 한다.

“보여 지는 것, 보이므로 그림을 그린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그림은 오래된 습관과 같다.”

청주시 북문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늘 그림을 그렸다. 유년시절 집 앞에 유일하게 깔려 있는 아스팔트가 그의 캔버스였던 것이다. 곱돌로 검은 아스팔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담임선생님의 눈에 띄어 미술반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학교대표로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오기 때문에 또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놀이이고 생각의 표현이고 남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말이었다.

청주여자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현 서원대)을 전공하고 교사생활을 시작했지만 결혼과 함께 서울로 가면서 교사 일을 접었다. 아이들을 낳고 살림하면서 그림에 대한 습관이나 열정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평생 붓을 놓은 적은 없었다. 그가 자연의 풍경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는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일 뿐이었다. 정령 그가 캔버스에 맘껏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일대기나, 전쟁과 평화와 관련된 군중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델을 구하기도 어렵고 설사 모델이 있다 해도 지속적인 작업을 할 수 없어 마음을 접은 지 오래다. 앞으로는 더 힘들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뜰 안의 꽃을 그리돼 사실에 충실하기 보다는 그림을 바라보는 때의 상황적인 바탕을 중요시 여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환경적인 이미지가 꽃과 어우러져야하는 것이다. 다음에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색채다. 보색의 느낌을 살리고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의지대로 색채를 조절하는 것이다.

화가 이난희씨가 즐겨 그리는 ‘맨드라미’

그림의 소재로 꽃 중에 붉은 맨드라미를 좋아한다. 그림을 시작했을 때 가장 처음 그린 꽃이면서도 그 꽃을 보면 왠지 자꾸만 마음이 끌린다. 닭 벼슬을 닮아 꽃 같지 않은 것이 때로는 괴기스러움마저 느껴지지만 붉은 꽃과 초록의 대비며 풍겨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마음을 끈다.

오랫동안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려왔다. 이제 그리던 정물화들을 완성하면 표현방법을 바꿔 보려 한다. 맑고 투명한 수채와가 매력을 끈다. 유화와 다르게 수채와는 감각적이고 경쾌한 느낌을 주어 그린이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재료다. 그림을 보관하는 것도 고민이다. 세상을 떠날 때는 같이 사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유하고 보관할 사람이 없어 쓰레기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실 한쪽에는 그가 손수 바느질해 만든 규방 소품들이 눈에 뜨인다. 손가방이나 식탁보 등이다. 그가 디자인하고 바느질해 완성한 퀼트 소품들은 그림 그리는 것의 응용이다. 복잡한 상념을 떨쳐내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고 싶을 때 하는 작업이다. 반복적이고 단순한일을 못 견뎌 하는 성정 때문에 바느질을 해도 자신이 밑그림을 그려 도안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도 꽃이나 나무 등 뜰 안의 자연이 옮겨지는 것이다.

“인생의 전 과정을 놓고 볼 때 전반기는 부모의 영향하에 살아지는 것 같다. 중반기에는 내가 생각하는 인생과 세상 속에 처한 현실이 적당히 타협하면서 맞추어 살게 된다. 이제 종반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내의지대로 살아내고 싶다.”

그가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중년의 몸을 남계리 뜰 안으로 작업공간을 한정시켜놓은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몸에 평화를 주려는 시도다. 자신을 둘러싼 가족이나 사회의 울타리에서 진정으로 벗어나 자신만을 위해 살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그림과 함께 있기에 가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는 8월 2일부터 청주시 북문로 우암갤러리서 6회 초대 개인전을 갖는다. 문의043)256-2265.


/ 김정애(소설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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