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절정 담아 내는 도예가 서영기

옛것·새것 접목…간결·절제된 아름다움 '백미'

2008.05.11 23:50:27

서영기 作‘ 달항아리’

간결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의 상징인 16세기 조선시대 순백의 백자가 21세기라면 어떤 빛깔과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까? 그 해답을 서영기(48.경기대 교수. 단양군 대강면 방곡)의 백자작품들에서 찾고자 한다.

그 어떤 상념이나 세상의 때가 묻어 있을 것 같지 않은 조선시대 순백의 백자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오늘날의 흙에서 철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흙을 찾기란 어렵다. 결국 무수한 실험과 반복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근접한 흙과 유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는 시대를 거슬러 16세기의 백자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닌, 21세기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현대 백자를 창작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과거 백자가 갖고 있는 장점과 현대적인 미의식을 접목하는 도예가 서영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서영기가 지금의 작업을 선보이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을까.

서영기는 충북 단양 방곡 출신이다. 방곡 서동규, 좌봉 김응한, 소봉 모성수의 문하생으로 지내기도 했으며 부산, 울산 등지에서 도예를 하다 10여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방곡도예촌에 둥지를 틀었다. 분청자기 만드는 일에 몰두하던 그가 방곡 흙 속에서 종종 발견되는 백자의 파편들을 들여다보면서 깨끗하고 단아하고 간결한 선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백자에 빠져 들게 되었다. 방곡 주변의 흙만으로는 어렵지만 백자 제작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박하고 질박한 느낌의 다완이나 분청자기 만들기에서 백자로 선회한 것이다.

“과거의 백자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재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장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이고 현대적인 조형성이나 실용성을 곁들여 나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이제 서영기의 백자가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공예관에서 만난 도예가 서영기

만월(滿月)을 닮기도 하고 아이를 잉태해 만 삯이 된 여인의 살을 닮기도 한 달 항아리가 황홀하다. 극도로 팽창돼 마치 어느 한곳에서 터질 듯 하면서도 한없이 머물 것처럼 고요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붕어가 물속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처럼 탄력 있는 작은 항아리 입에서부터 흘러내린 단아한 곡선이 백미다. 여기에 현대적인 조형성을 가미해 각을 주거나 들꽃과 같은 그림을 간결하게 그려 넣는다.

다음은 커다란 함지박 같은 발(그릇)이다. 넓은 그릇 안의 한점 청색의 붓 터치는 물고기가 뛰어 노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롭다. 물레를 돌리면서도 중간 중간에 자유로운 느낌의 손맛 선이 살아 있도록 했으며 그릇 가장자리가 칼로 자른 듯 날렵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질감이 느껴지도록 마무리 한다든가 했다. 이는 정확성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그만의 기법이다.

“분청작업은 자유로운 반면 백자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규칙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을 받아들여 규칙성이 있으면서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조화를 이루어 내고 싶은 것이 내 작업의 화두다.”

맛좋은 떡이 놓이면 어울릴 것 같은 사각 접시와 정갈한 음식이 담겨지면 그 맛이 배가 될 것 같은 접시들이 누구나 탐 낼만 하다. 역시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을 가볍게 붓터치 하듯 한줄기씩 그려 넣어 보일 듯 말 듯 감미로운 백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사각 모서리의 불규칙한 선이나 접시의 아주 미세하게 다른 색감과 질감이 조선의 백자가 현대적인 디자인 요소가 가미되었을 때 오늘의 눈 맛에 맞게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다기와 다관 역시 그만의 것을 만들어내느라 고심 중이다. 한 마리의 날렵한 새를 닮은 다관은 손잡이에 기하학적 형태를 가미해 다관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새가 된 다관 곁에는 한손에 움켜쥐면 고스란히 거머쥐게 될 다기들의 청초한 자태가 조화롭게 노닐고 있다. 그의 다양한 실험방법들을 쫒아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실용적인 그릇 만들기에 머물지 않고 도예를 활용한 장식적인 조형작업에 대한 고민도 그의 몫이다. 벽에 그림을 거는 회화작품을 낮은 자세, 낮은 위치에서 볼 수 있도록 한 사각도예에 그린 회화는 그의 미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전시장 가운데는 일그러지고 깨지고 금이 간 달 항아리를 볼 수 있다. 작품이 가마에 들어간 후 의도 하지 않았지만 실패한 것들이다. 그는 이것을 작품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단지 도예를 하다 우연히 발생한 새로운 도자기의 형태들일 뿐이다. 도예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설치성의 작품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의 작업과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도자기를 하다보면 우연히 만들어 지는 경우가 많다. 그 우연성에 너무 기대다 보면 큰 것을 잊기 쉽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정확한 메시지를 담아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백자가 그가 하는 백자작업의 마지막이 아니듯이, 그는 달 항아리에 무한한 우주의 영원성이나 대지의 신성함들을 담아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한다. 청주시 한국공예관에서 충북의 젊은 작가 초대전으로 ‘죽연 서영기 백자전’이 오는 22일까지 전시된다. 전시문의 043)268-0255.


/김정애(소설가·프리랜서)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2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