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민병길 '숨-안개' 연작 여섯번째 작품전

그는 왜 '숨' 이었을까

2008.11.17 13:40:01

"대상을 찾는 일,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명분을 찾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가며 합리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설명이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나를 통해서 보여 진 대상일 뿐이지 하고자 하는, 또는 행하고 있는 그 일 자체는 아닐 것이다.

이제 나는 그 나라는 관념적인 개체를 벗어 '자연'(나와 내 주변의 인위적, 혹은 자연적 환경 모두를 포함)의 입장에서 대상의 본질을 보려한다. 그래서 '숨'이라는 범우주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를 차용하게 되었다. '열반(Nirvana)' 이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 부처나 '도(道)' 란 단어에 특별한 뜻을 담아 쓴 노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숨'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호흡행위가 아닌, 나를 포함한 이 모든 우주적 환경 자체를 담아 사용하고자 한다."

'숨-안개'연작으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사진작가 민병길. 그는 '숨'이라는 작업을 화두로 삼아 자연의 모든 대상을 그 대상 자체로 바라보고 그 대상 안으로 들어가 그 대상이 되어 보는 일 자체를 사진작업으로 삼고 있다. 흑백종이 질감을 선호하는 그의 작업은 잔잔한 수묵화 같다.

사진작가 민병길(51)이 작업의 화두를 '숨'으로 삼아 수년간 탐색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왜 '숨'이었을까.

사진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는 일을 사진작가라고 말하기에는 무색하다. 그렇다면 남들이 찍지 않는 사진을 찍어야 하고, 그것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일이 되어 버렸다. 만들기, 사진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름의 자존심으로 늘 새로운 것을 창작해야 한다는 새로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것이다. 그 허우적거림으로 사진이라는 한정된 장르를 벗어던지고 시각예술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93년 첫 개인전에서는 예술가들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예술가와 예술가가 창작한 작품을 한 화면에 담아 그들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을 인화지가 아닌, 종이에 논실버프린트로 작업해 사진이 순수미술에 주었던 충격처럼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버거운 일이었다. 늘 인위적으로 꾸미고 실험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해보지만 역시 뭔가 미진하다. 일 자체가 버겁기 보다는, 생각이, 마음이 그 일에 흡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 새로운 것에 대한 갈구는 그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새로운 무엇을 탐색하느라 골몰하고. 그것의 반복은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친다. 새로움 찾기는 결국 마음을 비우는 일에서 결론이 났다.

무엇을 의도적으로 담아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대상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다리, 건축물, 쓰다 버려진 폐품들, 그리고 우주의 공간을 이루고 있는 땅, 하늘이 그렇고 자연의 현상이자 자연 그자체인 풀, 바람, 빛, 물, 안개......... . 그것은 자연이다. 존재다. 생명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숨을 쉬는 것이나 멈춘 것이나, 사람이 만든 것이나 생명이 다해 죽은 것이나,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것이나, 모든 것은 그곳에 존재하는 그자체일뿐이다. 그 존재 자체를 무엇으로 이름 지을 것인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찾아 낸 것이 결국 '숨'이었다.

'숨- 안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자. 그렇다면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 대상을 제대로 들여다 보아야했다. 땅을 보고 싶다면 내 스스로 땅이 되어 볼 것이다. 가뭄에 갈라진 땅이 되어보고 그 사이에 자라겠다고 비집고 나와 있는 마른 풀잎이 되어 볼 것이다. 한 겨울 눈에 덮인 땅을 볼 것이다. 언 땅이 그곳에 있을 것이고 스스로 언 땅이 되어 셔터를 눌러 볼 것이다. 물이 잔잔하게 고여 있는 습지의 땅, 사막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땅. 그 위에서 풀을 내어 놓거나, 꽃을 피워 내거나, 무엇인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땅. 그 땅에 수 많은 의미와 상징이 있겠지만 그것은 이제 그의 사진 작업에서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땅은 거기 있는 땅 자체일 뿐이다. 사진의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 대상 자체가 되어 보는 시도가 사진 작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화두를 제대로 찾아간 것이다. 우선, 그 일이 잘 맞는다. 그 대상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더 이상 대상 찾기에 골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다.

그가 오래간만에 여섯 번째 작품전(2009년 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자인 제노 갤러리)을 연다. 이번 작품전에서 선보일 작업은 '숨- 안개' 연작들이다. 어느 날 물가에서 안개가 다가 왔다. 아니 안개는 늘 그곳에 있었던 것인데, 환경이 안개가 다가오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안에 있었다. 이 놈의 안개, 이것을 대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안개가 아니고 안개 그 자체로서의 안개를 담고 싶었다. 안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잠시 나타났다 쉬이 사라지는 자연현상일 뿐이지만 사실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 보다 훨씬 더 깊은 숨을 가진 영속적인 존재인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의 안개는 순간적이다 못해 아주 찰나적인 것으로 보여지 곤 하지만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지면 언제고 안개는 등장하고 숨을 이어갈 수 있는 우주적인 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안개의 이미지, 아스라한 풍경이 주는 모호함이나 신비감 덕분에 문학이나 영화 에서 꿈과 현실, 진실과 거짓 등 복선적인 의미로 표현되는 안개가 아니고 존재 자체로서의 안개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안개가, '나 여기 있어'라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을 뿐이고, 그 드러내고 싶은 도구로서 그가 차용하는 것은 가로등이나 나무나 산등성이를 화면에 배치하는 일이다.

물이나 땅을 촬영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물이 거기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는 물이 눈에 보여야 하고 물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본인의 역할일 뿐이다. 그래서 물을 보이도록 하기 위해 물결을 찍고 물 위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를 찍는 것이다. 땅을 드러내기 위해 건조한 땅을 비집고 서 있는 메마른 풀잎을 찍는 것이다. 바람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을 드러내기 위해 움직이는 풀잎을 찍어야 하는 것처럼. 그는 이렇게 대상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의 또 다른 대상을 빌려 화면에 담아 주는 것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뿐이다.

한동안은 광고와 같은, 소위 돈이 되는 산업용사진을 찍기도 했다. 자신 역시 세상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인가. 그런 일들은 자신을 자꾸만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그만하라고. 그 일은 접어버렸다. 어쩌다 자신의 작품이 좋아 누군가 돈을 내밀고 가져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으로 질 좋은 종이도 사고, 자꾸만 변해가는 기계문명에 느리지만 조금씩 발을 딛기 위해 스캐너도 구입하곤 한다.

'숨- 안개'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확대경을 들여다보며 필름작업을 하고 자신만의 암실에서 사진을 만들어내는 아나로그적인 작가다. 아무리 디지털을 선호하는 세상이지만 편하게 가자고 눈에 보이는 색감의 질이 떨어지는 작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작업은 반듯이 흑백화면일 수밖에 없다.

컴퓨터 포토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의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어서 그의 손맛이 느껴지는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묵화같다. 이렇게 다다르기 까지는, 그가 좋은 카메라, 좋은 렌즈, 좋은 대상에 집착하는 사진 기술자이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이 담긴 작업을 지향해 왔기 때문이다. 대상을 찾는 일 보다는 어떻게 하면 온전히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것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닮은 흑백종이이기를 고집하고 '숨'인 것이다.

다음의 화두는 '숨- 하늘'이 될 것이다. 하늘은 구름이 있고 해가 있고 달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보이는 하늘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다시 하늘이 되어 보아야 할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가족들조차 버린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을 돌보는 또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저것이 하늘일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하늘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을 때 뭔가 생경한 것이 떠오를 수 있겠다. 역시 서두르지 않을 작정이다. 자신은 느린 예술가이기를 바라므로.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빠르게 앞서간 문명이 되돌아와 느린 필름 작업을 바라봐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정애/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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