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시인들은 시를 꿈꾼다

허의행 시집 '꽃잠' 자연친화 생활 형상화

2008.08.31 23:05:38

첫 시집을 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문화부 기자들이 바빠지겠다 했지요. 지방에 있는 제게 취재를 오려면 말입니다. 두 번째 시집을 같은 출판사에서 냈습니다. 첫 시집의 재고품을 택배로 보내왔습니다. 이 삼백 권은 족히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아, 나는 몽상가였던 가요. 꿈이 무너지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차라리 보내오지 말고 불태워 버렸으면 그 꿈이 깨지지 않았겠지요.

첫 시집을 낸 시인들의 심정은 대략 이럴 것이다. 공감을 한다. 이날, 지난 29일 흥덕문화의 집 충북작가회의 정기 문학세미나에 참석해 자신의 시집 “치워라, 꽃!”(실천문학사)의 발제와 토론이 끝난 자리에서 이안 시인(41.충북작가회의 회원)은 이런 고백을 했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시를 쓴다. 이안 시인의 시 ‘출판기념회’에서 ‘죽도 밥도 찬거리도 되잖는 것’이 시일지언정 시를 쓴다. 그러기에 마련된 작품토론회다.

지난 29일 흥덕문화의 집에서 열린 충북작가회의 정기문학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이안의 시집 “치워라, 꽃!”(실천문학사)과 허의행 시집 “꽃잠”(시학사)에 대해 논의를 벌이고 있다.

평론가 정준영은 이안의 시집 “치워라, 꽃!”의 전체적인 맥락을 “반성적 삶으로서의 절제미”라며 “삶의 현실적 내부를 비판하는 정신에 기반한다”고 전제한다.

그는 ‘치워라’ 하는 이안의 목소리는 우리의 현실적 삶을 외면하거나 삶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분배의 공정성 문제를 도외시하는 순수예술에 대한 당위성의 검토에 다른 결정적 명령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인이 시적 모티브로 등장시키는 ‘꽃’이란 비판정신 하에 치워져야할 대상으로서, 우리의 삶에 효용성이나 해답의 의무 자체를 목적으로 두지 않는 순수예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시인에게 순수예술은 속없는, 혹은 배알 없는 사람들의 배부른 짓이며, 부르주아적 비합리주의로서 인식된다는 것이다. 시의 영역으로 와서, ‘꽃’으로 상징되는 순수시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서 이안에게 반성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이안의 시집 “치워라, 꽃!”(실천문학사)

식전 산책 마치고 돌아오다가
칡잎과 찔레 가지에 친 거미줄을 보았는데요
그게 참 예술입니다
들고 있던 칡꽃 하나
아나 받아라, 향(香)이 죽인다
던져 주었더니만
칡잎 뒤에 숨어 있던 쥔 양반
조르륵 내려와 보곤 다짜고짜
이런 시벌헐, 시벌헐
둘레를 단박에 오려내어
톡!
떨어드리고는 제 왔던 자리로 식식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식전 댓바람에 꽃놀음이 다 무어야?
일생일대 가장 큰 모욕을 당한 자의 표정으로
저의 얼굴을 동그랗게 오려내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퉤에!
끈적한 침을 뱉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이안 시 ‘치워라, 꽃!’ 전문-

정준영은 시 ‘치워라, 꽃!’은 ‘거미의 철저한 거미줄 관리 철학’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거미줄이 곧 밥줄이니 당연하다. 쓸모 없는 것은 단박에 오려내 버린다. ‘시벌헐, 시벌헐’ 부들부들 떨면서 ‘퉤에’ 침까지 뱉는 거미의 단호함은 생의 목적으로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철저한 단호함이다.

꽃향기라 일컬어질 수 있는 것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버려져야할 것임을 눈앞에 선연히 각인하듯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이 꽃의 환영들을 채 극복하지 못해 밥도 안 되는 아름다운 것을 두고 마음을 앓는 시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준영이 바라본 이안의 시는 현대 자본주의의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인간의 삶은 절제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가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적 삶으로서의 절제미 인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적 이념의 철저함 역시 그가 쓰는 시의 핵심이 아니다. 사상적 경향에 바탕을 두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그의 마음 바탕, 곧 시의 바탕은 순하고 여린 그의 고유한 심성에 있으며 그 심성에 스스로 철저하고자 하는 정직성과 자기반성까지 더해진 것이 이안의 시라고 본다.

다음 시집은 허의행시인(충북작가회 회원)의 두 번째 시집 “꽃잠”(시평사)이다. 발제에 나선 평론가 김대희는 시집 “꽃잠”을 ‘다름의 자연, 공간, 인간 경험’으로 분석한다.

허의행 시집 “꽃잠”(시학사)



나무는 하늘에 등불을 켠다
여린 가지 연분홍 꽃
키 세우고 봄밤 장식하는 나무
마른 가지 연초록잎
간지럽게 피어오르는 사오월
창가에 참 예쁜데
흐리나 개이나
마을의 언덕이나 산을 보면
텅 빈 하늘 수놓은
나무는 얼마나 신비로운가
허허로운 벌판에
끝없이 피어오르는 날개를 달고
나무는 푸른 커튼을 친다
내 마음 가득 구겨진
시름을 펴고 빈 구석마다
나무는 사랑의 등불을 켠다


-허의행 시 ‘나무’ 전문-

김대희가 바라본 허의행의 ‘나무’는 일상성 속의 비일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우선 나무는 화자의 ‘시름 젖은 마음을 펴주고 사랑의 등불을 켜주는’ 존재로 드러난다. 이 시에서 나무는 시인의 삶을 근원적으로 들여다 보게 하는 나무 이면서 나무를 초월한 존재다. ‘나무’외에 다른 시 ‘하늘재’ ‘미륵리 오색 구름’ 등의 시에서 시인이 자연을 통해 삶을 갈무리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자연을 통해 다름을 경험하는 내용을 김대희는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다름의 자연 경험의 내용이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정리하여 삶을 되지니게 해주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자연의 원시적 생명력을 통해 삶의 열림을 기원하는 경우다. 이 두가지 경우 모두가 시인의 삶을 정화시킨다는 점에서 의미를 둔다고 밝힌다.

김대희가 밝히는 허의행의 또 다른 ‘다름의 공간 경험’은 폐교, 산, 강, 바다 등으로 드러난다. 그중 폐교를 보면 시 ‘폐교 2’에서 다름의 공간에서 다름의 시간을 경험하는 정황이 포착된다. 시인은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와 ‘아이들 올 날 기다리고’ 있는 ‘녹슨 안내판’을 바라본다. 아직도 폐교에 대한 정을 간깆하고 있는 시인은 시인의 ‘작은 사랑 마저도 떠나면/ 외로운 눈물과/ 단절의 아픔’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눈시울 젖어 폐교를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시인과 아이들의 영혼의 숨통을 열어 놓던 분교가 폐교가 되었으니 시인은 자꾸 폐교에서 과거의 공간과 시간 경험을 다시 하게 되며 다름의 공간 경험을 하고 있는 시인의 지배적 정서는 쓸쓸함이라고 김대희는 단정한다.

김대희는 허의행의 시가 점점 도시화와 문명화로 각박해지는 현실의 상황을 볼 때, 생명력 있고 평화로운 공간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고 자연치화적 삶의 풍요로움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있다.

다음에 주장하고 있는 것이 ‘다름의 인간 경험’이다. 시인은 ‘국도 36번을 지날 때마다’아버지를 생각한다. 평상시에 의식하지 않던 일상을 넘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아버지, 늘그막이 소박하고 평온한 아버지이기를 바랬다.

그런데 시속에서의 아버지는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 직면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김대희는 여기서 시를 읽는 동안 다름의 시간 속에서 공감과 연민, 유대감을 통해 삶을 되지니게 하는 계기를 만든다고 한다.

아버지 외에 다른 다름의 인간 경험은 단재 신채호, 의병, 이수연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의 ‘다름의 인간 경험'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을 다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김대희가 분석한 시집 “꽃잠”에는 ‘다름의 경험’이 다양하게 드러난다고 전제하며 이러한 다름의 경험들을 통해 시인은 삶을 갈무리하고 의미화하며 그것으로 힘을 얻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김정애 (프리랜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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