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댄스 컴퍼니 ‘고욤’ 공연실황

몸을 통해 자유로움 상징성으로 드러나

2008.06.15 20:26:23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몸짓, 독수리처럼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 같은 강열한 날갯짓, 그러다 다시 침잠시키는 몸의 유연한 비틀기. 의상 밖으로 비어져 나온 사람의 몸이, 끊임없이 이완되고 수축되는 몸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지는 무용수. 춤이 몸을 통해 말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저 무용수가 대체 누구야, 걸치고 있는 의상이 거추장스러워, 오히려 무거운 짐일 뿐인데.

고작 12명의 무용수로 빠르고 강한,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 30, 40명이 추는 군무 같은 느낌으로 구성한, 관객의 눈속임에 제대로 성공한 저 안무가는 또 누구고.

17회 전국 무용제 참가작으로 결정된 ‘고욤’의 안무를 맡은 류명옥 대표. 한국적 정서를 기본으로 강한 힘과 역동적인 에너지를 접목한 실험적인 무대 구성이 그만의 장점이다.

그렇게 시작된 궁금증은 17회 전국무용제 (9월 전남 목포)참가작으로 결정된 ‘고욤’의 안무를 맡은 류댄스 컴퍼니 대표를 불러내게 되었다. 30여 년 전 처음 춤을 추었고 25년간 청주에서 춤꾼들을 길러낸 류명옥씨(47)를 만나, 작품 ‘고욤’과 그녀의 춤에 관한 단상을 들어본다.

작품은 전국무용제 참가작 선정을 위한 예비 무대, 충북무용제(10일 오후 7시 30분 청주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 올려진 ‘고욤’이다. 우선 작품 ‘고욤’을 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작은 감이라 불리는 고욤은 맛도 없고 열매도 작다. 그래서 천덕꾸러기처럼 사람들에게 외면당해 주로 집 주변에 애지중지 심고 가꾸는 감나무와 다르게 야생에서 저 홀로 자라 열매를 맺는 과실수다.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고욤이란 존재는 과실수로서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한방에서는 열을 내리고 담을 삭이는데 탁월한 효험이 있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게 고욤이다. 이렇듯 상반된 개념에서 출발한, 고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질이 이 춤의 전편에 흐르게 된다.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그대로의 성질을 갖고 있으면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약효로 존재하는 고욤에 대한 상징성을 인간에게 접목시켜본 것이다. 개개인의 자질이나 평가를 짜여진 틀에 맞추려는 습관이나 잘 포장된 겉모습만 보려하는 시선을 빗겨가 보자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는, 속 깊은 내면의 본질을 바라보자는 춤, 그래서 모든 춤꾼들에게 하나하나의 개성과 독특함을 부여한 것이 이 춤 ‘고욤’의 목표다.

작고 자유분방하고 거친 이미지를 가진 남자 주역 무용수 박철중이 모티브가 되었고 류대표의 오랜 제자 류석훈, 노련한 여자 무용수 박정미 등이 에너지 넘치는 힘과 유연한 몸짓으로 호흡을 맞췄다.

한국적인 정서에 역동적이고 테크니컬한 이미지를 접목한 현대무용의 정수를 맘껏 표현한 무대였고 그것이 감지되는 춤이었다.

“작고 볼품없는 것을 잘 다듬고 정제해 빛이 나는 소중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고요하고 정적인 한국적인 정서를 기본으로 해서 개개인의 캐릭터를 살려내 그 안에 숨겨진 열정과 힘의 에너지를 마음껏 표출시키고 싶었다.”

류대표가 설명하는 작품 ‘고욤’의 안무의도다. 그가 추구하는 과감하고 빠르고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를 위해 그는 힙합을 추는 무용수와 체육과 학생들을 무대에 함께 세웠다.

지난 10일 청주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 올려진 ‘고욤’

류대표의 전국무용제 참가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94년 ‘소리 없는 함성’으로 출전해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이 첫 번째. 작품 ‘소리 없는 함성’은 핵이 인간에게 가해졌을 때 발생되는 끔찍한 현상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춤으로 담아낸 것이다.

안무가로서 춤꾼으로서 사회에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는 늘 춤으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진이 다 빠져 나간다. ‘남자 플러스 여자는 못난이 삼형제’로 현대 핵가족들의 실상을, ‘여자의 방’은 동성애자들의 삶을, ‘우울한 블루’에서는 40대 중년 여자의 현실과 이상사이의 갈등을 표현하기도 했다.

늘 새로운 것을 보여 줘야하는 창작과 실험적인 안무의 구성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담금질 하는 기폭제다. 미래의 춤꾼들을 지도하면서 각종 콩쿠르 대회에서 지도자상, 안무상의 화려한 경력이 그의 실험정신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분이다.

충북에서 춤꾼으로 산다는 것이 신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춤을 가르치는 일도 신나고 공연을 만드는 일도 신이 나던 그런 시절. 그러나 최근 충북에서는 춤을 만들고 싶어도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의욕을 꺾는다. 우선 춤꾼이 없다. 특히 남자 무용수가 전무한 실정이다. 어린시절부터 춤을 추려는 학생들이 급격히 줄었고 영어나 학과 공부에 밀려 춤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도 줄었고 대학에서 전공을 한 춤꾼들조차 진로를 바꿔 현장에서 순수 예술을 위해 춤을 추는 꾼들의 부재가 갈수록 심각하다.

다음은 춤이 무대에 올려지는 환경의 부재다. 현재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주로 춤 공연이 이뤄지고 있지만 조명이나 무대 장치가 현대무용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역부족한 공간이다. 춤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모든 부족한 장치를 보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춤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대공연장이나 소공연장 보다는 500석 규모의 중공연장이 제격이다. 그러나 청주에 그런 조건을 갖춘 무대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특히 한 공연장에서 정기적인 레퍼토리를 갖고 상설공연 할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것은 충북 예술이 퇴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례로 충북무용제를 통해 전국무용제에 참가 했다 그곳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 지원에 의해 앵콜 공연이 이뤄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전국 무용제 참가로 그 작품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대관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거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무용제 참가작 ‘고욤’의 연습장면.

이것은 충북 무용인들은 물론 충북도민들의 문화예술향수 차원에서도 상당한 손실을 가져다주는 이야기다. 각종 지원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 전국무용제에 나가지만 안무가 개인의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두 번 세 번 씩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여건이 현재로서는 불가능 하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관의 지원제도나 기업의 협찬 문화가 활성화 될 때 순수 예술이 제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충북 무용제는 전국대회를 위한 전단계이기 때문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 좀더 보강하고 다듬어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전국대회 무대에 올려질 수밖에 없다. 그 작품이 다시 충북에서 재공연 된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일이 없다. 그러나 대관문제나 비용 문제등 거기에 수반되는 일들이 참가자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쨌든 그는 현실적인 환경에 연연해하며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다. 남은 시간 동안 전국무용제를 위해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 올릴 것이다. 반듯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며 돌아와 청주에서 앵콜공연을 할 계획이다.

그의 당찬 욕심이 단순한 욕심으로 머물지 않고 실현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다.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작품 창작에 몰두하고 스폰서를 구하러 직접 발로 뛰는 전천후 같은 그의 성정을 믿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춤이 좀더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춤꾼 스스로가 관객들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는, 그래서 관객을 찾아다니는 공연을 그는 기획하고 있다.

“춤은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그 마음이 몸으로 드러난다. 적어도 춤 앞에서는 진실이 최선이다”

그가 춤을 가르치며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고 자신이 춤을 출 때 마음에 새기는 좌우명 같은 것이다. 춤으로 사람의 마음을 일렁일 가을 무대가 기다려진다.


/김정애 (소설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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