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현 한국공예관 큐레이터, 충북공예 현안을 고민하다

살기 위해 공예와 더 깊은 사랑에 빠진다

2008.08.24 21:05:18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감흥을 감당해 내기 힘든 대표적인 분야가 공예다. 공예는 태초에 만들어진 물질에 작가의 혼과 육체적 수고를 더해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살이 과정에서 사용하고 감상하며 즐김으로서 세월의 흔적을 쌓아가게 되고 그 멋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예는 그 형태가 완전히 파손되어 존재조차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만들어지는 진행형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예만이 갖고 있는 ‘향(香)’이다. 그 향을 공예가나 소비자가 함께 만들고 영위하는 것이다.”

충북에서 이 남자만큼 공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과한 표현도 아니고 아부는 더더욱 아니다. 많은 관객들이 이 남자로부터 공예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이 남자로 인해 공예를 다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청주시 한국공예관의 안승현 큐레이터(41. 청주시 흥덕구 흥덕로)다. 공예관 큐레이터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이 사람. 죽을 때 까지 하고 싶은 일이란다.

오는 26일부터 9월 13일까지 충북공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 이름하여 ‘충북의 공예- 열정에 호흡하다: 충북공예 대표작가 62인 전과 공예특별판매전’이 그것이다.

그는 이 특별기획전을 진행하면서 충북공예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공예와 사랑에 빠져 이제 헤어 나올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 남자. 결국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공예와 더 깊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충북이 앞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가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 공예를 기반으로 했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충북공예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그의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셈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충북공예의 제반적인 문제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북공예인들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안돼 있다는 것이다. 공예가 개개인에 대한 상세한 자료파일이 없기 때문에 타 지역, 혹은 해외와의 교류나 초대전 기회가 왔을 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없다.

한국공예관의 안승현 큐레이터와 충북공예의 현안과 그 발전 방안들을 나눠 보았다. 공예가 충북의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는 불편하지만 자연을 닮은 공예의 사용이 몸에 배어 길들여진다면, 그것처럼 우아한 삶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누가 해야 하는가. 충북공예협동조합이나 충북도, 한국공예관 등 모든 단체와 기관에서 당연하게 추진할 일이다. 공예인들이 어디서, 어떤 작품의 작업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각자의 방법대로 공예인들의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이들 자료는 외부 홍보 및 기획전 등을 추진하는데 있어 그 근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에 중요한 것은 공예가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 현재 단위사업별로 경진대회를 위한 상금과 일부사업비, 전통공예분야에 한해 문예진흥기금이 지원되는 정도다. 현대공예가들의 개인 창작 지원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젊은 공예인들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정기공모사업에서 조형작업 전시를 하는 일부 공예인들만이 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다.

우선 이 제도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 기성 작가보다는 젊은 공예인들이 의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기회 제공 차원에서 조형작업뿐 아니라 쓰임을 위해 만들어진 순수 공예작품도 시각예술분야(미술전시)에 포함시켜 기회를 공유해야한다. 이는 예술에 대한 장르나 경계가 이미 오래전에 허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공예를 시각예술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작가들 간의, 혹은 전시장과 작가 공방간의 유대관계강화가 필요하다. 이는 작가들의 작품수준 향상을 위해서나, 불공정한 거래를 없애기 위한 작품판매 가격 지키기를 위해서나, 꼭 필요한 조건이다. 결국 단체나 기관에서는 정책을 잘 세우고 작가들과의 유대관계가 잘 이루어진다면 충북 공예가 발전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 일의 중심에 그가 있고자 한다.

충북에는 한국공예관이 있다. 이는 많은 공예인들에게 희망의 공간, 내지는 기회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예관은 공예가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럼에도 늘 아쉽다. 좀더 인력이 있었으면, 좀더 예산이 있었으면, 좀더 공간이 넓었으면 하는 갈증이다. 전통전승 공예가 현대적인 생활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그 맥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장 안타깝다.

예컨대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 있어도 활용하지 못해 사장시켜 그 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 안동의 하회탈이나 수원의 화성을 지역 브랜드화 시켜 문화 지역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지역민의 문화수준 향상은 물론 경제발전까지 이루는 자치단체가 부럽다.

우리 충북에도 좋은 공예예술이 있다. 어떤 것이든 특화시키고 상품화 해 많은 사람들이 고급 공예와 늘 함께 호흡하기를 바란다. 설사 사치스럽더라도, 그 사치스러운 문화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를 바란다. 좋은 공예품을 쉽게 구입해서 늘 사용할 수 있는 생활화가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광장형의 공예장터가 절실하다. 넓은 야외 장터에 좋은 공예품이 상설 전시된다면 누구나 쉽게 다가가 공예품을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충북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무심갤러리에서 10년, 충북공예관에 입성한지 7년이다. 공예관에서만 70여회의 기획전을 진행해 왔다. 그동안 실수나 시행착오는 다반사였다. 중요한 것은 공예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고 공예를 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 시간들로 인해 큐레이터로서의 방향설정이나 사명감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공예를 더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도예에 매료돼 있는데, 젊은 도예가들이 전시를 하면 필히 그들의 작품을 구입한다. 그릇이 좋은지 어떤지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사용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먼저 사용해보고 느껴보지 않으면 남들에게 추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 학원비는 아껴도 구입하고 싶은 그릇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그릇을 보면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중독에 다다라 밤마다 들여다보고 또 보곤 했다. 이젠 무조건적인 탐닉 보다는 작가들의 자료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본적인 행보로 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미래 한국공예의 버팀목이 될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역할. 작가와 소비자를 연계하는 역할, 컬렉터들의 폭이 넓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역할, 타 지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해주는 역할, 그 역할이면 족하다.

기획전을 앞두면 그 작가의 공방을 여러 번 방문하게 된다. 작업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단상이나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공예의 다양한 면을 글로 기록하기도 한다. 작가를 연구하고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언젠가 일에 연륜이 쌓여 기회가 된다면 작가들의 비망록을 한권정도 내고 싶다. 그들이 공예가로서 어떤 갈등과 어떤 어려움을 견디며, 혹은 어떤 즐거움을 누리며 작업을 해 왔는지 증거가 되고 싶다.

열심히 하는 작가를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말이나 행동보다는 작품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정신으로 무장한 작가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난다. 이런 분위기가 충북공예의 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충북의 문화이기를 바란다.

문화는 결코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체험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화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를 만들어 내거나 즐기는 수요의 층이 더 넓어져야한다. 이를 위해 평생교육 프로그램 활성화나 체험행사가 풍부해져야 한다. 그가 공예관 큐레이터로서 늘 염두에 두는 점이다. 전통 생활공예를 모체로 현대의 예술적 감각으로 발전하는 공예의 탄생. 이것 역시 그가 지향하는 바다. 공예관 평생교육원 과정을 통해 구성된 동아리, 규방공예의 산실 ‘땀&땀’이 만들어진 이유다.

이와함께 정부의 지원정책이 현실화 된다면 공예품의 가격이 현재보다 저렴해 질 수 있고 결국 질 좋은 공예품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공예관 근무 이후 남들처럼 제대로 된 휴가를 즐겨보지 못했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감수하고 있다. 처음에는 공예의 본질을 잘 몰랐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보고 깎아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이제 조금씩 공예의 매력을 알 것 같다. 그 안에 담기 무한한 기능과 정신들을. 겉으로 화려한 공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보다 못생겼지만 그 안에 담긴 독특한 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이 조금씩 열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공예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불편을 감수하고 자연을 닮은 공예품이 자신의 몸에 길이 들여진다면, 그런 문화가 자신의 일상이 된다면, 그것처럼 우아한 세계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김정애 (프리랜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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