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대 연영애 교수의 삶과 작업이야기

낯선 땅에 사는 고독…그림으로 어루만져

2008.06.30 23:18:48

물설고 낯 설은 타국 땅.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이주 여성들. 그들 곁에 그들과 함께 하고자 다가가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들의 삶이 결코 팍팍하지 만은 않으리라.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와 인연을 맺고 이주여성들의 삶 곁으로 다가간 충북여성미술작가회. 충북여성미술작가회를 결성해 누구나 떠맡기 싫어하는 수장자리를 6년째 맡아 온갖 궂은일을 해결하는 맏형, 연영애 교수(56.서원대 조형대 미술과). 그를 만나 그의 삶과 작업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주여성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미술가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이주여성인권센터를 통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전공한 미술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에 와 많은 상처를 받고 보호시설인 쉼터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 자원봉사를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보호시설의 여성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타국에 와서 한국인으로 정착하고자 열심히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충북여성미술작가회는 지난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청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에서 일본, 태국, 베트남, 중국, 몽골, 캄보디아 등에서 와 결혼해 가정을 갖고 있는 충북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실을 진행했다.

이주 여성‘미술동아리’에 참여한 이주 여성들이 석고로 자기 얼굴을 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은 매주 한번씩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기 얼굴 석고 뜨기를 해보고, 미술관을 탐방하고, 도자기를 빚어보는 등 문화활동에 목말랐던 욕구를 미술 강좌를 통해 충족시켰던 것이다.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각 나라의 독특한 색채나 조형적인 특징이 드러나기도 한다. 청주시 외곽지역에서 한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오거나, 출산을 앞둔 임산부나, 아이를 등에 업고 오는 여성까지.

이들은 미술을 통해 이주 여성 자신들 간에, 혹은 미술가들과, 그리고 지역의 사회와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원봉사에 나선 미술가들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느끼고 돌아가는, 상생을 체험하는 미술강좌였다.

이때 만들어진 조촐한 이주여성들의 작품이 내달 1일부터 10일까지 청주시 사직동 신미술관에서 여성미술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된다.

“강좌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은 소박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이주 여성들의 향수를 달래고 우리와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어서 의미 있는 것이지요. 미술가들도 개인의 활동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 흡족합니다.”

여성미술가들이 자신들의 개인 활동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소외계층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충북여성미술작가회 결성이라는 단체의 힘이 한몫했다. 이곳에서 6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연영애교수의 남다른 지역사랑이 힘이 되고 있다.

서원대 미술관 작업실에서 만난 연영애교수. 여름방학이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에 나와 학생들을 지도하기로 약속했다는 그다. 오는 10월에 청원군 대청호미술관에서 열릴 동아시아미술전 운영위원으로, 충북 여성미술작가회의 맏형으로 분주한 일이 많다.

6년 전 처음 단체를 결성할 때만해도 미술작업을 하는 사람이 여성미술가라는 별도의 호칭이 꼭 필요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기관에 여성가족부를 두고 있는 만큼 여성이어서 미술활동에 도움이 되는 게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를 결성하자 정부의 지원에 대한 문도 열렸다. 세미나를 열어 토론을 하거나 해마다 기획전을 열었다.

이러한 활동이 일반인들에게는 충북 여성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전시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하는가 하면, 전공을 했지만 미술 활동을 주저하던 여성미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매년 기획전을 열면서 회원도 증가했고 회원들의 활동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작가들의 발굴은 고무적인 일이며 앞으로 그들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단체를 이끌어 가면서 때로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충북 화단에 튼실한 뿌리가 될까를 늘 고민하는 그로서는 단체의 활동을 통해 충북미술계의 단단한 기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고.

학교에서나 화단에서나 여성임을 내세우기 보다는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미술가로 살아온 그에게도 늘 소소한 고민들은 따라다닌다. 평생 활두로 안고 가야할 작업에 대한 고민이 그 첫 번째다.

아주 오래전, 딸아이가 유년기 시절이다. 종이 오려 붙이기 놀이를 함께 하다 평생 작품의 화두가 돼버린 그만의 독특한 작업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커다란 유리에 특수 제작된 테이프를 붙여 꽃과 잎 형태를 그리고 칼로 오린다. 그것을 다시 캔버스에 붙여 나이프를 이용해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고 테이프를 떼어낸 다음에 다시 중첩되게 여러 형태를 만들면서 붙이고 칠하고, 떼어내고를 반복한다. 이 작업과정에서 오는 육체적인 고단함과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을 창작해야 하는 화가로서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이다.

초창기에 탁하고 어둡고 복잡한 느낌의 그림이었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해지고 맑고 투명해지는 그림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루전이 발생해 그림은 점점 투명하고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밤새 작업을 하고 이제 손을 씻고 자야지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싱그럽고 촉촉한 기운이 가슴으로 느껴지면서 그 맑은 기운이 캔버스에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영애 作‘새벽’, 100x100cm, 캔버스에 아크릴 칼라.

오랜 세월의 반복과 변화를 통해 디자인적으로 패턴화시키는 그의 작업형태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순간 삶의 복병 같은 것이 찾아 들었다. 평생 반려자이면서 같은 예술가로서 서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던 남편 이완호교수(서양화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천상 이시대의 마지막 선비였고 너무나 고요하고 정적인 남편이어서 그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했으나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빈자리가 커지고 있다.

영정 앞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아직도 많은 제자들이 남편을 추억하며 가슴아파하는 것을 보며 당신만이 완벽한 삶을 살다 가버린 것이 원망스럽고 미워 울컥울컥 삶의 의욕을 꺾는다.

그럼에도 때로 천길 낭떠러지로 떠밀리는 것 같은 지독한 절망감이 다시 캔버스 앞에 앉게 하는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 슬픔을 차고 올라와야 하는 지렛대로서.

그래서 살아지는 모양이다. 육신이 녹아 들것처럼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숙명이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 하고 있어 다행인 것이다. 새벽에 느끼는 청명한 기운이 밤새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캔버스에서 되살아나는 것처럼, 그의 삶도 작품으로 승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겨울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100년 전통의 아트페어 ‘Salon DAUOMME 2007’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고 돌아왔다. 다녀와서 한차례 몸살을 심하게 앓았지만 어김없이 찾아드는 봄의 계절처럼 다시 현실 인이 되어 강단에서, 화단에서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여름방학이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에 나와 학생들을 지도하기로 약속했다는 그다.

오는 10월에 청원군 대청호미술관에서 열릴 동아시아미술전 운영위원으로, 충북 여성미술작가회의 맏형으로 분주한 일이 많다. 가슴 깊이 새겨진 아픈 옹이를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로 꼭꼭 감싸며 더 깊이 박아 행여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될까 염려스럽다.

이제 조금씩 그 상처를 드러내면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것도 삶의 짐을 덜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정애 (소설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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